아차산-서울특별시 광진구와 경기도 구리시에 걸쳐 있는 산.
[아줌마 홀로산행]임진년 섣달그믐날-아차산 등반[송구영신의 마음으로 계사년을 준비합니다] 호미숙
자전거만 타느라 한 해 동안 산행을 한 번도 못했기에 임진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차산을 다녀왔어요. 하얀 솜이불을 끌어다 덮은 아차산 자락 양지쪽은 녹은 눈이 얼어 유리성을 만들고 계곡의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청아한 봄이 오는 멜로디를 담았습니다. 아차산에서 내려다보는 탁 트인 한강은 유유히 흘러 어제와 오늘을 이어 내일로 흐릅니다. 묵은설=까치설=아치설=섣달그믐 2012 임진년 마지막 날 계사년에도 복된 일들만 가득하길 소망합니다.
까치설에 대한 알찬 정보 묵은 설(까치설)과 묵은세배 설 하루 전 날, 드리는 세배로 설날 새해를 맞이하기 전에 한 해를 보내면서 조상과 부모, 이웃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는 의례라고 합니다.
그리고 설날 노래 기억하시죠? 까치 까치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설날은 오늘이래요~ 여기서 까치는 우리가 알고 있는 새인 ‘까치’가 전혀 아닙니다. 많은 분들이 까치설에 대하여 자세히 몰랐을 겁니다.
-참고- ‘작은설’을 뜻한 옛말이 ‘아찬설’ 또는 ‘아치설’이었다는데 어째서 ‘아치설’이 ‘까치설’로 변하였을까? 그 이유는 어렵지 않게 설명할 수 있다. ‘아치설’에 쓰인 ‘아치’의 참뜻을 잊고, 그 어원을 찾고자 하는 노력에서 그것과 우연하게도 음상이 유사한 ‘까치’를 떠올려 그것으로 ‘아치’를 대신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마침, ‘까치’는 지혜와 부지런함을 갖춘 새로서 ‘설날’이 지향하는 이미지와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아치설’을 ‘까치설’로 바꾸어 부르는데 큰 저항이 없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아치’가 ‘까치’로 변한 단어에는 ‘까치설’ 말고도 ‘까치고개, 까치밭, 까치산’ 등과 같은 지명도 있다. 이들 지명의 대부분에는 ‘까치[鵲(작)]’와 결부된 유래설이 결부되어 있지만, 정작 ‘까치’와 무관한 지명이 많다. 이들 지명은 해당 지형지물이 작은 규모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까치고개’는 고개의 규모가 작아서, ‘까치산’은 작고 낮은 산이어서 붙여진 지명인 것이다.-
섣달 그믐날의 속담 “섣달그믐이면 나갔던 빗자루도 집 찾아온다.”라고 하여 ‘막가는 달’에 마무리를 잘 하는데 “숟가락 하나라도 남의 집에서 설을 지내면 서러워서 운다.”라는 말이 있으므로, 전에 빌렸던 남의 물건도 모두 돌려주고 돈도 꾸지 않으며 혼인도 하지 않고, 연장도 빌려주지 않는다.
아차산 등산로 입구를 오르며 처음으로 맞이하는 건 바로 얼음계곡입니다. 설을 앞두고 추워진 한파에 봄은 언제 오려나 했지만 얼음장 밑으로 졸졸 물소리가 들리네요.
초입에서 뜨거운 커피를 사들고 갔지만 차가운 물 한 모금으로 정신을 맑게 하고 싶어 약수터 물 한 모금 마셨습니다. 아이젠도 준비하지 않았는데 입구에서 마침 판매하고 있어 급조를 해서 아이젠을 장착하고 눈길을 오릅니다.
굽은 소나무가 얼음에 파묻혀 허리를 숙인 채 세배라도 드리는 것 같네요. 중간 중간 쉼터에 휴식을 취하고 있던 사람들. 갈림길에서 한 쪽을 택합니다. 고구려정 쪽으로..
고구려정에서
팔각정인 고구려정에 잠시 들러 아래를 굽어보는데 어느 분의 신발끈 고쳐 매는 모습을 담아 봅니다.
-운동화 끈 고쳐 매며- 계사년 첫날인 설날 어제와 다름없는 오늘이지만 어제로부터 오늘로 이어진 지금입니다.
송구영신의 마음으로 운동화 끈을 다시 고쳐 묶고 내일로 이어질 지금을 달려야겠습니다.
새로운 각오와 방향의 전환 그리고 휴식 짧은 시간이지만 지금의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
쉼표와 느낌표 그리고 물음표로 나에게 화두를 던지는 시간 다시 운동화 끈 단단히 묶고 선택의 기로에서 다짐하는 순간 인생의 원단(元旦)입니다. -2013. 계사년 설날에-
고구려정을 돌아 나와 다시 산행길을 나섭니다. 임진년 한해를 보내며 산행을 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작은 계곡의 얼음 위로 떨어진 눈별을 담고 겨울을 녹이는 물소리에 발길 멈추는데 지나가던 등산객들과 인사를 건넵니다. 고교 동창생이라던 세분 그 뒤에 우연히 2번을 또 만나게 됩니다.
아차산에서 본 한강
아차산 오르는 길에 본 구리시와 암사동을 잇는 암사대교 그리고 고구려대장간(태왕사신기 촬영지) 산을 오르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풍경을 담고 싶어서였기도 합니다.
아차산 바위를 뒤덮은 얼음성(유리성)을 지나 대성암을 향해
대성암에서
대성암에 오르자마자 반기는 거목
대성암의 고즈넉한 겨울 조용한 바람에 그대로 멈춘 풍경
대성암 뒤편에는 쌀바위가 있습니다.
쌀바위 설화 지금의 대성암 자리는 삼국시대 신라의 유명한 승려인 의상대사가 도를 닦던 곳이었습니다. 의상대사가 이곳에서 수도를 하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대사의 가르침을 받으려고 찾아왔다고 하는데 수도 자리 뒤의 바위구멍에서 쌀이 나와 많은 사람들에게 공양을 할 수가 있었답니다. 그런데 밥을 짓는 사람이 하늘이 내려준 이 천공미를 좀더 많이 얻고자 욕심을 부려 바위구멍을 더 크게 넓히려고 하자 쌀이 하나도 나오지 않고 쌀뜨물과 타버린 쌀이 수삼일 동안 나오다가 멎었답니다. 그 뒤로는 다시는 쌀이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귀엽고 앙증맞은 아기동자 인형들
아차산 대성암에서 만난 동자 인형들 하얀 눈 속에 파묻혀서도 해맑은 모습의 아기동자인형들에게서 미소가 절로 번지게 합니다. 참 평화는 미소 번짐입니다.
아차산성을 향해
홀로 아차산행이지만 외롭지 않습니다. 자연은 수만 가지 이야기를 담아 들려주기 때문입니다.
서로 기대고 포개진 나무들을 보며 아름답게 사는 건 서로를 위함이라고 ..
아차산성 보루
아차산성에는 2가지 슬픈 역사가 전해옵니다. 하나는 백제의 수도 한산이 고구려에 함락되었을 때 개로왕이 성 아래에서 죽임을 당했으며, 다른 하나는 고구려 평원왕의 사위인 온달장군이 죽령 이북의 잃어버린 땅을 찾기 위하여 신라군과 싸우다가 이 성 아래에서 죽었다는 것으로, 이러한 전설을 간직한 온달샘이 성안에 있습니다. 1997년 아차산성 보루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100여점의 토기류와 30여점의 철기류, 100여점의 철제 무기류를 비롯한 수많은 유물들이 나왔는데, 주로 고구려 계통의 토기들이 보이고 있어 고구려와 깊은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답니다. 백제의 옛 도읍지에 있는 아차산성은 누가 쌓았는지에 대해 아직 논란이 있지만 삼국이 한강유역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벌였던 역사의 현장으로 그 의의가 있다고 합니다.
긴고랑길로 하산
긴고랑길을 따라 한참을 내려와
추억하던 겨울을 지우고 봄이 흐릅니다.
겨울이 만든 또 다른 예술 늘 흔하게 보는 풍경들이지만 추운 겨울에만 보여주는 자연 예술입니다.
두 사진을 비교해보세요. 우리는 실체를 보지 않고 자신의 판단으로 가끔 착각하지 않는지도 생각하게 합니다.
비슷해서 판단의 오류를 범 할 수 있는 사진입니다. 위의 게시물을 보면 우리는 이렇게 진실 하나를 놓고도 다양한 답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도 이런 착각 속에 이뤄지는 건 아닐까요?
임진년 마지막 해넘이를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길거리 과일가게의 긴 그림자를 옆으로 두고 광진교 넘어 오는 순간 임진년 마지막 석양을 뒤로 하고 귀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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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호미숙-자전거랑 사진여행[호미호미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호미숙 호미호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