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시절
이 향 숙
혼란스럽던 4월 지나고 따사로운 햇볕, 산뜻한 바람 머무는 계절 5월이다. 그래서인지 우편함을 열 때 마다 한 두 장씩 청첩장이 들어있다.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문구는 열 일을 제치고 축하 해주러 가고픈 마음이다.
내게도 잊혀지지 않는 날이 있다. 벌써 19년 전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의 일이다. 신랑감이 학생신분이라는 핑계로 간소하게 결혼준비를 했다. 서울 북악터널 근처의 결혼식장엔 생각지도 못했던 하객들이 많았다.어리고 갈 길이 먼 한 쌍의 가난한 신랑신부의 앞날을 축하해주었다.
거울에 비친 신부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이렇게 고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분이 있는데……’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어릴 적 돌아가신 아버지였다. 결혼식 내내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기억이 나는 서너 살부터 그 자리에 서 있는 순간까지 흑백영화처럼 그렇게 내 가슴에서부터 지나갔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회기동에 마련한 반 지하 방, 가난했지만 행복했다. 꿈 꾸는 대로 무엇이든지 이루어질 것만 같던 순수하고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작은 것도 함께 나누며, 남편이 일하랴 공부하랴 애쓰는 모습은 늘 안타까웠다. 나 또한 버스를 두 번씩 갈아타면서 직장생활을 했다. 하지만 그때는 그렇게 힘든 줄도 몰랐다. 남편이 학교를 졸업하면서 J씨가 청주에 백화점을 세운다며 도와달라고 했다. 서울에서 청주까지 출퇴근하기를 6개월이었다. 말이 그렇지 결코 출퇴근하기 쉬운 길은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주말부부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결혼 생활에서 가장 애틋한 나날이었다.
얼마 전 화장대 정리를 하다가 서랍에서 낡은 일기장 한 권을 발견했다. 청주로 이사를 온 후의 이야기였다. 온통 이혼을 생각하고 있었다. 아마도 권태기였나 보다. 남편의 뒷 통수도 밉고, 다정하게 웃는 모습도 예뻐 보이지 않는다는 약간의 심각한 내용이었다. 피식 하고 웃음이 나왔다. 내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구나. 오솔길을 함께 걷다 갈림길에 선 느낌이었다. 누구에게든지 한번쯤은 있을 법한 일이다. 다행히 슬기롭게 잘 헤쳐 나왔다.
요즘은 한부모가정, 조부모가정이 흔하다. 조그만 마트를 하다 보니 남의 가정사를 훤히 알게 된다. 어쩔 수 없이 하늘이 갈라놓지 않는데도 남이 되는 부모들, 홀로 자식을 키우기 어려워 늙으신 부모에게 맡기는 사람들, 이리저리 치이기에 지친 아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인생에 정답이 있을까마는 먼저 마음을 열고 아무리 고되고 어려워도 같이 걷는 것이 부부가 아닐런지, 청첩장을 만들며 행복을 꿈꾸던 그 순간처럼 초심으로 돌아가 인생에 동반자임을 가슴에 새겨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2010. 5. 18.
첫댓글 정도 항상 사는게 전쟁 같은데요..
아직도 긴 터널속에 있는거 같지만..
터널속에도 가로등은 있으니 그 빛을 생각하며 갑니다.
그곳을 언젠가는 빠져 나올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갖고..
나쁜 기억도 시간이 지난면 그냥 추억일 뿐이고 잊혀 져서 그런가 봅니다.
그땐 그렇게 좋았는데...아내에게 미안한날이 많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