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 과 바다와 기명들을 만듦 (왕상 7:23~51)
본문 ① 23~26절은 “바다를 만듦”이고, ② 27~37절은 “물두멍 받침 열을 만듦”이며, ③ 38~39절은 “물두멍 열을 만듦”이요, ④ 40~51절은 “기타의 기명들을 만듦”입니다.
1. 바다를 만듦(23~26절)
1) 23절은 “(놋을 녹여, 영어성경에는 ‘놋바다’라 하였음)부어서 바다를 만들되 그 바다의 직경은 10규빗, 높이는 5규빗, 둘레는 30규빗의 줄을 두를 만하다” 하였으니, 이것을 자로 환산하면 15척×7.5척의 둘레는 17.5×3.14로 할 때, 55척이 됩니다. 둘레 30규빗은 45척이므로 10척의 차이는 대략으로 기록한 것이지요. 그러면 이 바다가 무엇입니까? 이 용어는 육지의 반대인 바다(얌)를 뜻하는데 영어로는 round tank(둥근 탱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물 담는 둥근 그릇입니다. 그 둥근 그릇의 직경이 15척이고 높이가 7.5척인즉 몽고의 둥근 토담집만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왜 “바다”라고 명칭하였을까요? 그것은 물이 귀한 곳에서 많은 물을 말할 때 바다로 과장된 표현을 한 것입니다. 마치 갈릴리 호수를 갈릴리 바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또 의문나는 것이 있지요. 거기에 물은 얼마나 들어가며 그 물을 무엇에 쓰려고 그런 시설을 하였을까요? 26절 끝에서 “그 바다는 (물을) 2,000밧을 담겠더라” 하셨는데, 1밧은 부피의 단위로 23ℓ정도라 하니 2,000×23=46,000ℓ이고 200ℓ을 한 드럼(10말)으로 잡으면 460드럼의 물이 들어가는 놋그릇을 말합니다. 이 물의 용도는 제물을 씻고 제사장들이 몸을 씻으며 제사와 관련된 모든 일에 사용하기 위함입니다. 그렇게 많은 물이 필요하겠는가? 하시겠지만 솔로몬의 일천번제나 절기 때의 제사 행사를 생각해 보십시오.
2) 24절은 그 바다의 주변에 무늬를 조각한 말씀입니다. 집채 만한 대접으로 상상하시고 “그 가장자리 아래로 돌아가며 박(6:18, 식물 이름)이 있는데 1규빗에 박 그림 열개씩 새겨 넣었는데 이것은 부어 만들 때 두 줄로 부어(놋물 붓는 통로가 둘이란 뜻으로 사료됨) 만들었다”고 하였습니다.
3) 25절은 바다를 받치고 있는 시설이 소 열 두 마리를 조각하여 세쌍씩 동서남북에 세우되 소머리를 다 밖으로 향하게 하고 열 두 소의 등 위에 바다가 얹혀지도록 한 것입니다. 26절에서는 그 바다의 눗 두께가 “한 손 넓이 만하다”(아홉치 또는 한자쯤) 하였고, “그 가(바다의 위쪽)에는 백합화의 식양으로 잔(술잔)가의 무늬처럼 만들었다”고 하였습니다.
2. 물두멍 받침 열을 만듦(27~37절)
1) 27절은 보시면 “놋으로 받침 열을 만들었는데 그 받침의 크기는 기장과 폭이 각 4규빗이고 높이가 3규빗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한평 정도의 넓이에 높이가 보통사람 어깨쯤 올라오는 크기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받침을 왜 만들었는가? 하는 것을 아셔야 받침을 만든 설명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2) 28절에서 물두멍 열을 놋으로 만들었는데(물두멍은 4규빗 폭인즉 바다보다 작은 물그릇을 뜻함) 그 크기는 40밧(40×23ℓ=920인즉 4.4드럼)의 물을 담게 되는데, 그 물두멍의 직경이 4규빗인즉 그 둘레와 폭이 받침의 크기와 같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열 받침 위에 열 물두멍이 각각 하나씩 얹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받침”이란 물두멍의 받침이고, 이 물두멍에 4드럼 정도의 물이 들어간다고 생각하시고 그것을 운반하거나 용도에 알맞고 편리하게 만든 것이 “받침”이라고 생각하시면 그 받침의 제도(28~37절)를 이해하시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 물두멍의 용도는 바다의 물을 나누어 사용하는데도 필요하고(출 30:17~21), 또 그 물두멍이 놋솥과 같은즉 소 한 마리 정도를 삶을 수 있으므로(삼상 2:14~15) 절기 때에 모여든 수 천명의 사람들에게 고깃국을 제공하는데도 쓸 수 있게 하였을 것입니다.
3) 37절을 보시면 “이 받침을 다섯은 전 우편에, 또 다섯은 전 좌편에 두었고 전 우편 동남쪽에는 바다를 설치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오른편은 남쪽마당이며 번제단은 장막 성전대로라면(출 40:6~7) 성전 동문 앞에 있어야 하지만 8:64을 보시면 바다의 맞은편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4) 29~36절은 받침을 만든 방식(제도)입니다. 37절은 “받침 열개를 다 같은 방법으로 만들었다”고 하였습니다. 이 내용을 이해하시려면 한절 한절의 내용을 상상하시되 큰 솥을 담아 운반하는 구루마를 연상하시고 그 용어상의 표현이 옛날 용어를 번역함에 있어서 현재용어와 적당하지 않음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제가 상상한 내용대로 설명한 주석을 읽어본 일이 없습니다.
① 28절에서 “받침의 제도”라 하시고 “받침”이란 용어가 여러차례(30, 34, 35절) 나오는데, 이 용어는 구루마 형태의 기본 틀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4규빗 넓이로 4각형 입방형체의 윤곽틀을 의미합니다. 그 윤곽틀에는 놋판을 끼울 수 있는 틈이 있고, 또 버팀발과 뚜껑을 유연성 있게 폈다 접었다 할 수 있게 된 것과 앞, 뒤, 밑에 바퀴 축이 있는 것까지의 골조, 기본형태를 의미합니다. “옆 변죽 가운데 판이 있다”는 뜻을 공동번역에서는 “판자가 틀에 끼워져 있다”고 하였은즉 이는 변두리의 사방에 동판이 끼워져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바닥은 막은 것이 없고 4면만 3규빗 높이로 막아진 것입니다.
② 29절의 “변죽 가운데 판”이란 사면 변두리 판의 중앙이란 뜻이요, 거기에 “사자와 소와 그룹들이 (조각되어) 있고”, 또 “변죽 위에 놓는 자리가 있음”은 그 받침 중앙이 솥을 놓을 자리란 뜻이요, “사자와 소 아래에 화환 모양이 있음”은 그 조각 무늬 밑에 새겨진 무늬를 말씀한 것이며, 30절에서 “그 받침에 각각 네 놋바퀴와 놋축이 있음”은 바퀴축 네 개가 받침틀에 접합되어 있으며, 거기에 바퀴가 끼워져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이동의 편의를 위한 것입니다. 또 “받침 네 발(이것은 네 바퀴 또는 고정 다리를 뜻함) 밑에는 어깨 같은 것이 있는데 그 어깨 같은 것은 물두멍 밑편에 부어 만들었고 화환은 각각 그 옆에 있다” 하였는데, 여기의 “어깨 같은 것”을 공동번역에서는 “받침두리들”이라 하였는데, 이것은 바닥이 둥근 물두멍에 고정된 것으로 받침 안에 넣을 때 연접되게 한 시설로 사료됩니다. “화환이 그 옆에 있다” 함은 물두멍을 넣었을 때 물두멍과 옆의 판(28절)이 밀착됨을 의미하는 듯 합니다. 31절에서 “그 받침 위로 들이켜 고가 한규빗 되게 내민 것이 있음”과 “그 내민 판들이 네모진 것”은 윗판 4면을 돌출시켜 탁자용처럼 쓰기 위한 것인 듯 하며, “그 면은 직경 한규빗 반 되게 반원형으로 우묵하다” 함은 솥처럼 생긴 물두멍의 둥근 것을 제외한 네 귀퉁이의 공간인 듯합니다.
③ 32절은 바퀴의 시설로서(30절) 바퀴의 고가 한규빗 반은 바퀴의 직경이 3규빗을 뜻하는 것으로 땅과 받침의 공간을 의미하며, 33절에서 “바퀴의 제도가 병거바퀴 제도와 같다” 하였고, “그 축(가로지른 축)과 테(바퀴 외부 땅 닿는 부분)와 살과 통(바퀴 중심부)이 다 부어 만들어졌다”고 하였습니다.
④ 34~36절은 앞에서 설명한 부분과의 관계를 재설한 내용인 듯합니다. 예를들면 “받침 네 모퉁이에 어깨 같은 것이 넷이 있는 것”은 물두멍이 둥근 것인즉 네 모수리의 공간에 손잡이 같은 것이 나와 있을 수 있고, “받침 위에 둥근 테두리 반규빗”도 둥근 물두멍을 안착시키기 위한 시설이며, 또 “받침 위에 버팀대와 옆판”들은 28, 31절을 재설한 것이요, 36절의 “빈 곳을 따라 무늬를 놓은 것”은 둥글고 움푹해진 네 모수리에 무늬를 놓은 것으로 사료됩니다.
⑤ 지금까지 29~36절까지의 말씀을 상상하면서 설명 드렸는데, 이 설명으로 받침 전체를 도면으로 보는 것처럼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내용을 확실히 알기 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풀어 설명 드려 보려고 애쓴 성의”를 나타낸 것 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봉함(열려 깨닫지 못함) 되었을 때 사도요한은 “크게 울었다”고 하였습니다(계 5:4). 성도들도 모르는 말씀 때문에 근심할 수 있어야 하겠고, 때가 되면 알려질 것도 있은즉(벧후 1:19) 유의하며 살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성경에는 덜 중요한 말씀이 없습니다. 성전이나 성전 기구를 성경으로 계시하신데도 분명히 목적이 있으실 것인즉 성경 어느 부분이나 깊이 연구하는 습관을 가지셔야 할 것입니다. 이 제도의 상징적 교훈은 결론에서 말씀드렸습니다.
3. 물두멍 열을 만듦(38~39절)
앞대지의 2), 3)항에서 설명 드렸습니다.
4. 기타의 기명을 만듦(40~51절)
1) 40절은 “추가로 만든 것과 모든 제작을 마침”에 대하여 말씀하였습니다. 여기에 추가로 만든 것이 “물두멍, 부삽, 대접들”이라 하였는데, 물두멍은 38절에서 “열 개를 만들었다”고 하였지요. 여기의 물두멍은 38절의 것과 같은 것이 아닌 물통(공동번역에서는 물독)으로 번역함이 옳다고 합니다. 박윤선 목사님의 주석을 보면 델리취(Delitzsch)의 해석을 인용하여 기록하시기를 “원문 글자의 착오 사본이라”고 하였습니다. “원사본에는 תוֹדי(통, 또는 솥들)로 표기된 것인데, 필사자가 תוֹדי(물두멍)로 기록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앞 글자 한자의 차이로 그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두멍은 큰 솥이고, 여기의 물통은 작은 그릇이며, 부삽은 아궁의 불을 쳐내는 삽이고, 대접들은 식기에 해당합니다. “모든 일을 마쳤다”고 하였습니다.
2) 41~42절은 “두 기둥을 만듦에 대한 재설”로서 기둥 둘(15절), 기둥머리 둘(16절), 기둥머리의 그물장식(17절), 그물에 매단 400석류(18절)이고, 또 43~45절은 23~40절에서 제작한 것을 역시 재설한 내용으로 “열 받침, 열 물두멍, 한 바다(23~26절), 바다 아래의 열두 소, 솥(물통), 부삽, 대접들”이라 한 것이며,
3) 46절은 “놋그릇을 제작할 때 사용한 거푸집 흙을 요단 평지의 숙곳과 사르단 지역에서 채취한 차진 흙이라” 하였으니, 숙곳은 요단강 중간쯤의 동편으로 갓 지파의 성읍이고(수 13:27), 사르단은 여호수아가 요단강을 건널 때 물이 역류하여 쌓였던 곳으로(수 3:16) 숙곳 남쪽 7㎞쯤입니다. 마치 우라나라의 낙동강 하류의 흙처럼 코로이드화된 고운 흙을 의미합니다(낙동강 하류, 과거 행정구역으로 김해군 대저면 도도리의 벌판은 열 길을 파도 돌이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47절은 “기구가 심히 많으므로 솔로몬이 (무게를) 다 달지 않고 두었으니 그 놋 중수(무게 분량)를 능히 측량할 수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4) 48~50절은 위에서 설명하지 않은 기명에 대한 내용으로 “전의 모든 기구들, 곧 금단(향단), 진설병의 금상(떡상), 내소(지성소) 앞에 좌우로 놓는 두 정금 등대, 또 등잔과 등대에 장식한 금꽃, 등잔과 불집게(등잔불똥 청소용), 정금대접, (아궁용) 불집게, 주발, 숟가락, 불 옮기는 그릇(부삽으로 담아 붓는 그릇), 지성소와 외소 출입문의 금 돌쩌귀들이라”고 하였습니다. 51절에서 솔로몬은 “이 모든 기구들과 다윗이 준비해 놓은 은금들을 다 여호와의 전 곳간에 두었다”고 하였습니다.
5) 결론적으로 중요한 것은 구약시대에 하나님이 원하셨고 계시하신 대로 성전을 짓게 된 의미를 아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예수님을 나타내는 계시의 의미”와 “속죄사역의 의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헌신의 방법”을 나타내시므로 이것을 시행하는 성도들로 하여금 복을 받게 하시려는데 있는 것입니다(요 2:21, 히 9:1~8, 왕상 3:1~5). 재료나 규격, 무늬에 실제적 또는 상징적 의미가 있음을 상상하십시오. 재료는 최고재료가 금인즉 이는 불변성과 존귀를 뜻하고, 규격은 용도의 실제성을 나타내며, 무늬의 박그림이나 백합화 화관은 기쁨을, 사자는 힘, 소는 희생, 그룹은 가까이 모심 등의 의미를 상징한 것으로 교훈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