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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기가 되면 가슴이 설렌다. 학생들을 만나 새로운 내용을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학이 가는 것은 아쉽지만 동시에 얼른 새 학기가 되길 기다린다. 이런 모순된 듯 보이는 생각이 우리 일상에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 모순을 느끼면서도 우리는 잘 지낸다. 가끔 모순을 적극적으로 돌파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면서. 이번에 소개하는 <<생각의 지도 - 동양과 서양, 세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리처드 니스벳 지음, 최인철 옮김, 서울, 김영사, 2004)은 사회심리학의 관점에서 동양인(한, 중, 일)과 서양인(미)을 대상으로 실시한 수많은 실험과 조사를 통하여 위에서 제시한 모순 및 사고의 특징을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저자 리처드 니스벳 (Richard E. Nisbett)은 예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를 역임했고 2004년 현재 미시간대학교 심리학과의 시어도어 M 뉴컴 석좌 교수로 재직 중이다. 또 번역자인 최인철은 서울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니스벳 교수의 지도 아래 사회심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미국 일리노이대학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하였고 2000년 서울대 심리학과에 부임하여 재직 중이다. 이 책의 번역자로서 적격이라고 생각된다.
첨부한 각 신문의 책 소개가 있으므로 자세한 내용 소개는 생략하고 내가 느낀 두 가지만 소개하고자 한다. 우선 우리는 문화적 상대주의를 운운하지만 그 실증적인 근거를 충분히 갖고 있지 못할 뿐만 아니라 논리적으로 궁할 때가 많다. 문화적 우열을 강변할 경우 반박하기 쉽지 않은 것이 그것이다. 이는 우리가 받은 교육에서 서구문화가 중심이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책에서 왜 문화적 상대주의가 필요하고, 어느 쪽이 더 좋고 바람직한지에 대하여 해답의 일단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교육과 관련하여, 미국에서 동양인들이 수학과 과학을 잘하며 그 이유 가운데 하나로, “미국인들은 능력이란 애초부터 주어진 것이거나 아니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떤 능력이 결여되어 있는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별 수 없다는 생각이 사회 전반에 팽배해 있다. 그러나 동양인들은 적절한 환경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면 누구라도 수학을 잘할 수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고 하였다. 우리의 교육관과 인간관이 결코 낙후하거나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새삼 확인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가능성을 믿는 것이 곧 가능성을 계발하는 첫걸음이며, 동시에 사람을 평등하게 대하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다음에 왜 동양인이 개인보다 집단을 중시하고, 부분보다 전체를 보면, 전문화보다는 종합화를 잘하는가에 대하여 이 책 전편에서 확인을 할 수 있으며, 그 인식에 대한 기원에서부터 원리에 이르기까지 이해할 수 있다. 특히 그 기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리스는 도시 국가들이 공존하고 있어서 의견이 다른 사람이라도 생존할 공간이 있으며, 해안이란 지리적 위치 때문에 다양하고 모순된 문화를 접하면서 이를 해결할 논리 개발의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중국은 평야와 경제적 특성으로 인해 문화적 동질성이 매우 강했으므로 서로 다른 주장들을 만날 가능성이 적었으므로 이를 결정하는 절차를 만들 필요가 거의 없었다. 이렇게 두 사회의 생태환경이 경제적 차이를 가져왔고, 이 경제적 차이는 다시 사회구조의 차이를 초래했다. 그리고 이 사회 구조적인 차이는 각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사회적 규범과 육아 방식을 만들어냈고, 이는 환경의 어떤 부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지를 결정했다. 그리고 서로 다른 주의 방식은 우주의 본질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민속 형이상학)를 낳고, 이는 다시 지각과 사고 과정(인식론)의 차이를 가져왔던 것이다.
대부분 동의하면서 중국사 연구자의 입장에서 조금 보충설명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우선 95%의 민족이 한족이라고 했지만 이것은 지금 얘기고 역사적으로 이렇게 된 것은 오랜 역사과정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 역사과정을 무시한 채 95%의 한족과 농경을 근거로 문화적 동질성을 강조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을 가져오지 않을 수 없다. 간단히 말하면 문화적 동질성이란 중국의 오랜 역사과정에서 절대 권력의 등장과 지속, 전쟁과 자연재해의 문제 등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서서히 형성되었음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은 황제지배체제라는 정치체제가 2천년 이상 계속되었고, 고대문명이 현재까지 지속된 세계 유일의 문명국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중국의 생태환경의 다양성 및 지리적 고립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 즉 중국 문명은 북으로 고비사막, 서로 티벹 고원, 동과 남은 황해와 남중국해로 막힌 제한된 공간에서 고립적으로 형성되었다. 그렇다고 좁은 폐쇄공간이 아니라 기후와 토질, 지형 등 지리적 요소가 다양하여 내부적으로 자급이 가능한 대륙이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외부의 팽창보다는 내부적 해결의 길을 찾게 되었으며, 전쟁이 나면 도피하기 곤란하므로 생존을 위해서 개인적 노력보다는 집단적 노력을 중시하게 되었다. 따라서 경제적으로 농업의 집약화, 상인과 상품유통의 발달, 사회적으로 향촌공동체 및 혈연조직의 발달, 각종 결사 발달 및 관계 중시(三綱五倫이 전형적임) 등의 현상으로 나타났다.
특히 문명 형성 초기인 신석기시대 후기에 나타난 전쟁은 夏나 商(殷) 왕조를 만들고, 다시 춘추전국시대의 전쟁은 秦 帝國을 만들었다. 춘추시대에는 1년에 1國이 망할 정도였으며 전국시대에는 대국인 7개국이 2백여 년간 목숨을 건 싸움을 계속하였다. 예컨대 춘추시대 때 전투에 동원된 군대는 많아야 수만 명에 불과했으나 전국시대에는 수십만이었다. 趙와의 전투에서 秦軍이 4십만을 몰살시킨 것은 그 전쟁의 치열함이 극치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이런 치열한 전쟁 속에서 개인은 의미를 갖기 어렵고, 개인의 생존은 자신이 속한 조직(향촌, 사회, 국가 ……)의 힘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또 중국은 왕조순환의 역사를 가진 국가이며, 이 순환은 대부분 전란을 수반하였다. 그리고 전란이 끝나고 나면 인구의 1/2 또는 1/3 이 줄었다. 그 치열함과 잔인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밖에도 “十年八九災(10년 중 8, 9년이 재해가 있다)”라는 자연재해나 인구증가에 따른 치열한 생존 경쟁도 개인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요소의 하나이다. 실용적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역사적 과정과 생태환경 속에서 절대 권력은 등장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존재이유를 갖게 되었다. ‘王道政治’란 유교의 이상은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 절대 권력의 존재이유이기도 하였다. 가끔 공산주의정권이 지향하는 이상이나 독재국가에서 외치는 이상이 왕도정치와 거의 같은 내용을 갖는다는 글을 보고는 이 역시 자연스럽다고 생각하였다. 이런 정치적 구조 하에서 개인은 미미한 존재인 동시에, 사회적 존재· 사회의 일부이며, 사회유기체론이 힘을 가지게 되었다. 오늘날 중국에서 대중이 보는 앞에서 사형을 집행하는 것은 2천여 년 전 시장에서 사형을 집행하던 것과 동일한 것이다. 공포를 통해 인민을 지배하려는 오랜 전통, 개인의 인권이 고려되지 않는 오랜 전통이 현재 진행형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 절대 권력은 사상, 종교, 문화, 경제구조 등 전 영역에 걸쳐서 지속적인 영향을 행사하여 왔고 또 행사할 것이란 점에서 개인의 시각 역시 쉽게 변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가 이런 절대 권력 체제에서 벗어난 지 여러 해 되었지만 여전히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는 동양적 경향이 강한 것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끝으로 앞으로 동양과 서양의 사고방식은 충돌할 것인가, 통일될 것인가? 저자는 양자의 차이가 수렵된다고 하는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 다만 한 마디 토를 단다면, 중국의 역사는 수렴의 역사였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그의 주장은 좀 더 힘을 가질 것이다. 一讀을 勸한다!
목차
1 동양의 도와 서양의 삼단논법
: 고대 그리스와 중국의 철학, 과학, 그리고 사회 구조
2 동양의 더불어 사는 삶, 서양의 홀로 사는 삶
: 현대 동양인과 서양인의 자기 개념
3 전체를 보는 동양과 부분을 보는 서양
: 세상을 지각하는 방법의 차이
4 동양의 상황론과 서양의 본성론
: 동양과 서양의 인식론적 사고
5 동사를 통해 세상을 보는 동양과 명사를 통해 세상을 보는 서양
: 동양의 관계와 서양의 규칙
6 논리를 중시하는 서양과 경험을 중시하는 동양
: 서양의 논리와 동양의 중용
7 동양과 서양의 사고방식의 차이, 그 기원은?
: 경제구조와 사회적 행위
8 동양과 서양, 누가 옳은가?
: 실생활에 주는 교훈
에필로그 - 동양과 서양의 사고방식, 충돌할 것인가, 통일될 것인가?
한국일보 :
색색의 볼펜을 죽 늘어놓고 그 중 마음에 드는 걸 하나 고르라는 실험이 있었다. 미국인들은 가장 희귀한 색의 볼펜을 골랐다. '튀는' 걸 마음에 쏙 들어 했다는 얘기다. 한국인은 무얼 골랐을까? 짐작대로 가장 흔한 색의 볼펜을 골랐다. 미국인들은 항상 남의 눈에 띄고 싶어 하나, 한국인들은 늘 남들 정도만 되고 싶어 하는 경향을 엿볼 수 있다. 이런 걸 두고 서양과 동양은 정말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동양과 서양을 딱 갈라서 대비하는 건 물론 무리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동양과 서양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철학과 예술을 가르칠 때 '동ㆍ서양의 차이'는 단골 주제다. '비교○○'라고 이름 붙인 모든 학문이 좀 거칠게 말하자면 대부분 동ㆍ서양의 차이를 다룬 것이다.
가장 극명하게 대비되는 것은 의학이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권에서 칼로 인체를 해부해서 병을 고친다는 수술 개념이 적극 도입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한의학은 아픈 자리만 손댄다고 병을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인체는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균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침이나 뜸, 경락 요법 같은 것이 치료술로 중요하게 여겨진다.
미국 미시간대 심리학과 석좌교수인 사회심리학자 리처드 니스벳은 이런 동ㆍ서양의 차이가 과연 존재하는 것인지, 있다면 어떤 부분에서 어떻게 다른지를 다양한 실험을 통해 증명해내고 있다. 기존의 심리학 연구 성과를 인용하고 자신이 미시간대, 서울대, 베이징대, 교토대 등 한국, 중국, 일본의 연구진과 여러 실험을 진행한 결과 니스벳은 동양인과 서양인은 사고방식과 판단의 태도가 분명히 다르다는 결론을 얻었다. 동ㆍ서양의 차이를 '과학'이라는 체계적인 절차에 따라 밝혀 낸 저자의 작업을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
책에 소개된 실험과 사례 몇 가지만 예로 들어보자. 일본과 미국 학생들에게 물고기가 중앙에 등장하는 물속 장면 애니메이션을 20초가량 보여주었다. 양쪽 모두 중앙의 물고기를 비슷하게 기억했지만 물풀이나 개구리, 우렁이 등 배경 요소에 대해서는 일본 학생들이 미국 학생보다 60% 이상 더 많이 알고 있었다.
동양인과 서양인은 글자 그대로 다른 세상을 보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차(茶)를 청하는 상황에서 중국인은 '더 마실래(Drink more)?'라고 묻지만, 미국 사람은 '차 더 할래(More tea)?'라고 묻는다. 동양은 동사를 통해 세상을 보고, 서양은 명사를 통해 세상을 본다.
서양인은 사물의 속성에 따른 범주화를 더 자연스럽게 생각하지만, 동양인들은 사물을 조직화할 때 범주보다는 관계성에 더 주목한다. 부분_전체라는 각도에서 세상을 이해하려 하는 것은 동양의 어린이들이 자랄 때 관계성에 주목하도록 사회화되었다. 사물의 특징을 표시하는 것은 명사이고, 관계를 나타내는 것은 동사다.
중국 학생과 미국 학생에게 사람들 사이의 갈등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 상황을 분석토록 했다. 중국 학생들은 72%가 문제의 원인을 쌍방에서 찾으려는 양비론적인 의견을 내거나 대립하는 견해를 절충하려고 노력한데 반해, 미국 학생들은 26%만이 그런 식으로 문제를 분석했다. 서양은 양자택일(Either/Or)을, 동양은 종합과 융화(Both/And)를 지향한다. 나아가 서양은 논쟁을 중요하게 여기고 동양은 타협을 미덕으로 삼는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걸까? 니스벳에 따르면 폐쇄적이고 동질적인 사회였던 고대 중국에서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했던 데 비해, 개방적인 해양국가였던 고대 그리스는 개인의 자율성을 존중했다. 의견이 다른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 논리개발이 필요했고, 논리학이 학문의 중요한 기초가 됐다.
자연환경, 경제구조의 차이는 결국 동ㆍ서양의 사회구조와 생활태도, 사상의 차이를 낳고, 교육을 통해 전승됐다. '서양에서는 튀어야 인정받고, 동양에서는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마음을 읽는 동양과 표현을 중시하는 서양' 같은 말은 너무 단순한 것처럼 들리지만 모두 일리 있다.
니스벳은 나아가 동ㆍ서양의 문화가 새뮤얼 헌팅턴이나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주장처럼 충돌하거나 서구식 자본주의로 통합되기보다 중간 지점으로 수렴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경제발전과 함께 동양이 급격하게 서구화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전통 문화가 깡그리 없어지진 않으며, 서양은 동양 문화의 독특한 매력에 갈수록 빠져든다는 것이다.
미국 중심의 실험을 서양 일반으로, 한국 중국 일본인의 사고와 태도를 동양 일반으로 이해하는 것은 무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지역에 따라 사람들이 세상을 얼마나 다른 방식으로 보고 있는지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 김범수 기자(2004-04-17)
동아일보 :
"의사소통의 문제다." "문화 차이 때문이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인 선수들이 부진할 때마다 꼭 한 번씩 나오는 이야기다. 서양 선수들은 자기 몸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생기면 팀 상황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절대 숨기지 않는다. 심지어 아픈 몸으로 팀 승리에 공헌했다 해도 나중에 부상 사실이 알려지면 오히려 비난받는 분위기다. 거짓말을 해서라나.
서구화가 많이 됐다고는 하지만 이런 풍경이 우리에겐 아직 낯설다. 온몸이 쑤시고 허리가 뻐근해도 팀 승리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주사라도 맞고 등판하는 것이 아직까지는 우리 사회의 미덕인 듯하다. 패한다 해도 이를 부상 투혼이라 칭송하지 않는가. 똑같은 행동을 보고도 우리와 그들은 왜 이렇게 달리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 정말로 우리와 그들이 다른 식으로 생각하는 걸까?
동서양 문화가 서로 다르고 그 속에서 숨 쉬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에 뭔가 차이가 있다는 이야기는 이미 상식이다. 서로 만나 보면, 미묘하지만 분명한 차이가 느껴진다는 생각은 전혀 새로운 발견이 아니다. 그러나 정말로 어떻게 다른지를 실험심리학적 연구를 통해 보여준 사례는 이 책이 처음인 듯하다.
이 책의 저자가 지난 몇 년간 역자를 포함한 동양인 연구자들과 함께 수행한 흥미로운 실험들을 찬찬히 음미해 보자. 서양 아이들이 동사보다 명사를 더 빨리 배우는 이유는 물론이고 적어도 박찬호와 김병현의 고군분투(孤軍奮鬪)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지평이 열릴 것이다.
이 책에 언급된 많은 실험들을 꼼꼼히 따져 보면서 동서양의 사고방식 차이를 비로소 제대로 이해하게 됐다는 어떤 이는 이 책이 인문학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와 있다는 말에 우리 사회에도 희망이 보인다고 좋아한다.
이 책의 독자들은 저마다 다른 기대를 품고 첫 장을 넘겼으리라. 인문사회학도들은 문화상대주의의 심리학적 기초를 찾으려고, 한의학도들은 전일적 사고방식이 분석적 서양의학에 비해 열등하지 않다는 주장을 듣고 싶어서, 그리고 외국인과 협상해야 하는 바이어들은 지피지기(知彼知己)의 전략을 전수받을 수 있을까 하고….
사실, 인간 본성의 보편성을 믿는 나는 인간의 사고 내용뿐 아니라 그 과정마저도 동서양이 서로 다르다는 저자의 도발적 주장에 발끈해 이 책을 펼쳤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모든 기대나 반발을 만족시켜 줄 만한 단초들이 이 얇은 책 속에 들어 있다는 사실에 이내 매료되고 말았다. 곧 또 한 권을 더 사서 보스턴 레드삭스의 김병현 선수에게 팬으로서 선물할 생각이다. - 장대익 (한국과학기술원 강사)(2004-07-10)
동아일보 :
이 책은 동양인과 서양인의 사고(思考)과정에서 나타나는 차이들을 섬세하게 검토하고 있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에서 동양(Orient)이라는 말이 이슬람교 중심의 중동(中東)사회를 지칭한다면, 이 책에서 동양(Asia)은 유교와 한자에 근거해서 문화를 형성해 온 한국 중국 일본을 의미한다. 비교문화학적인 태도와 문화심리학적인 관점에서 공자(孔子)의 후손과 아리스토텔레스 후손의 사고방식에 나타나는 차이점들을 고찰하고 있는 셈이다.
저자에 따르면, 서양인은 사물의 개체성을 중요하게 여기며 범주화와 형식논리를 선호하지만, 동양인은 상호의존적 관계성에 근거해 사물을 파악한다. 또한 자기 자신에 대해 설명할 때 서양인은 직접적으로 자신의 성격과 행동을 묘사하지만, 동양인은 가정이나 직장에서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역할이나 관계를 중심으로 표현한다.
중국인들은 상황이 달랐으면 살인사건이 발생하지 않았을 거라고 가정하는 반면, 미국인들은 범인의 인격적 특성이 그대로라면 상황이 다르더라도 사건은 발생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비교는 단순히 문화적인 에피소드들이 아니라, 동서양의 사고(思考) 과정과 그 내용에 나타나는 근원적 차이를 포괄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이 저자의 기본적 생각이다.
동서양의 비교라는 오래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접근방법과 설명방식은 대단히 신선하다. 특히 인간의 사고 과정은 문화와 상관없이 동일하다는 보편주의적 관점을 수정해 나가는 장면들은 대단히 시사적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생각하는 주체(Cogito)를 인간의 가장 보편적인 지표로 인정하며, 생물학적 기원의 동질성 속에서 인간을 사고한다. 자크 데리다의 지적처럼 인간이라는 기호를 마치 역사 문화 언어적 한계가 없는 것처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인간의 사고가 문화에 따라 근원적으로 다를 수 있으며, 문화적 차이는 생각의 과정과 내용을 규정하는 근원적 원리라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당연한 이야기를 힘들게 반복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인간의 사고가 갖는 문화적 상대성에 대한 주장은 사고 과정의 동일성을 주장하는 인지과학과 진화심리학의 암묵적인 전제에 심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동양과 서양이라는 악명 높은 이분법을 억압하거나 회피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대신 동서양 사이에서 실증적으로 발견되는 차이점들을 활성화시킴으로써 동서양 문화에 대한 상호이해를 높인다.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는 문화적 차이를 나누어 갖는 과정이고, 문화적 차이는 이분법이라는 배제의 틀에 갇혀서는 안 되며 상호보완이 가능한 지평 속에서 함께 뛰어놀아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책을 읽는 과정에서 리처드 도킨스가 창안한 단어 '밈(meme)'이 연상되었다. 밈은 의미(meaning)의 유전자(gene)라는 것으로, 복제되고 전파되는 의미의 단위를 뜻한다.
저자가 역사 심리 논리 언어 경제 등 다양한 측면에서 동서양의 차이를 비교하는 과정은 마치 생각의 유전자 지도를 작성하는 일처럼 느껴진다. 우리의 사고가 '동양'이라는 생각의 유전자를 통해 전달되고 복제되는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라면, 다른 곳에서 생겨난 생각의 유전자와의 관계 속에서 모방과 복제가 일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문화를 '실체'로 파악하면 충돌과 대결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이질적인 문화 코드들 사이의 모방과 복제 가능성을 인정한다면, 상호보완적 융합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문화와 관련해 근본적 문제를 다루고 있는 책을 만났다. - 김동식(문학평론가, 서울대 강사)(2004-04-17)
조선일보 :
고대 중국에서 연산과 대수학은 발달했지만, 왜 고대 그리스처럼 기하학이 발달하지는 못했을까. 서양의 유아들은 동사보다는 명사를 빠른 속도로 배우지만, 동양의 유아들은 명사보다 동사를 더 빨리 배울까. 동서양인은 같은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왜 이러한 인지 능력에서 차이를 보이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이 책을 낳았다. 현재 미국 미시간 대학의 심리학과 석좌 교수인 저자는 동양인 제자와 대화를 나누다가 "선생님, 동양인은 세상을 원으로 생각하지만, 서양인은 직선으로 생각한다"는 말을 들은 뒤 연구에 착수했다. 그는 "문화권에 따라 사람들은 서로 다른 '민속 형이상학'(세상의 본질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동양 사회의 집합주의적이고 상호의존적인 특성은 세상을 보다 넓게 종합적으로 보는 시각"을 유지한다는 것이고, "서양 사회의 개인주의적이고 독립적인 특성은 개별 사물을 전체 맥락에서 떼어내어 분석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 내용 중에 한국인에 관한 대목이 있다. 뻔한 말을 해주는 심리학자나 점술가들이 해주는 얘기에 쉽게 넘어가는 사람들을 가리켜 심리학에서 '바넘'현상이라고 하는데, 그 현상에 가장 대표적인 사람들이 바로 한국인이라는 것이다. - 박해현 기자(2004-04-17)
중앙일보 :
<생각의 지도>는 '동서양 문화의 차이'라는 오래된 주제를,'문화심리 실험'이란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가는 특이한 책이다. 미국 미시간대 심리학과 석좌교수인 리처드 니스벳은 미국·한국·중국·일본인 등을 대상으로 한 심리 실험을 통해 동서양인의 사유 방식이 과거에만 달랐던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차이를 보이고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일본 교토대학과 미국 미시간대학 학생들에게 사진 한 장씩을 보여주고 나서 '자신들이 본 것을 회상해 보라'고 했다. 그 결과 화면 중앙의 초점 역할을 했던 물고기에 대해선 모두 비슷하게 언급했으나, 배경 요소(물·바위·물거품·수초와 다른 동물 등)에 대해서는 일본 학생들이 미국 학생보다 60% 이상 더 많이 언급했다. 일본 학생들은 개별적 물고기보다 전체적인 관계를 언급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를 테면 그들의 회상은 "음, 연못처럼 보였어요"라고 전체 맥락을 언급하면서 시작했지만, 미국 학생들은 "송어 같은데 큰 물고기가 왼쪽으로 움직였어요"처럼 초점의 역할을 했던 물고기를 언급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이런 유의 실험을 거쳐 저자는 "현대의 동양인들이 고대의 동양인처럼 세상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전체 맥락에 주의를 기울이며, 사건들 사이의 관계성을 파악하는 데 익숙하다"고 분석한다. 반면 "현대의 서양인들은 고대의 그리스인들처럼 세상을 보다 분석적이고 원자론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사물을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많다"고 했다. 공자와 아리스토텔레스가 보였던 사고방식의 차이가 지금도 면면히 계승되고 있다는 것이다.
문화의 차이가 우열 개념과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문명의 서구화'를 주장한 프랜시스 후쿠야마나 '문명 충돌'을 예견한 새뮤얼 헌팅턴과 달리 저자는 동양과 서양이 서로 차이를 수렴해 가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 배영대 기자 (2004-04-16)
한국경제신문 :
"1991년 미국 아이오와대학 물리학과 박사과정 중국인 학생 루강은 논문경연대회에서 입상하지 못했다. 그는 즉각 이의를 제기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교수직을 얻는데도 실패했다. 결국 그는 학과건물에 들어가 지도교수를 총으로 쏘고 다른 학생들에게도 총을 난사한 후 자살하고 말았다." 이 끔찍한 사건에 대한 언론분석은 두 타입으로 나뉜다. 뉴욕타임스는 "사악한 본성의 소유자"가 "성공과 파괴에 몰두한 나머지 저지른 엽기적 사건"으로 보도했으나 중국신문 월드저널은 지도교수와의 불화에 원인이 있다고 보고 총기구입이 쉬웠던 상황을 문제점으로 부각시켰다. 동일한 사건을 놓고 A는 개인적 성격과 심리상태를 강조한 반면 B는 주위 인간관계와 사회모순에 주목한 것이다. 리처드 니스벳 교수가 펴낸 <생각의 지도>(최인철 옮김,김영사)는 동서양의 서로 다른 시선에 관한 비교문화 연구서다.
저명한 심리학자인 저자는 수천년 전 고대 중국의 도(道)와 그리스의 삼단논법을 불러냄으로써 이야기 보따리를 푼다. 평범하지만 남과 더불어 살려는 중국인과 자신의 자질을 자유롭게 발휘하려 했던 그리스인들 간의 문화적 차이, 전체를 보며 경험을 중시하는 동양인과 부분을 보며 논리를 중시하는 서양인의 사고방식 등 시공을 넘나들며 공자와 아리스토텔레스의 후손들을 해부한다.
왜 동양에서는 침술, 서양에서는 수술이 발전했을까? 범죄가 발생하면 왜 동양인은 상황을 탓하고 서양인은 범인을 탓할까? 다양한 색깔의 볼펜들을 보여주고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한국인은 가장 흔한 색깔을, 미국인은 가장 희귀한 색깔의 볼펜을 고르는 이유는?
저자는 풍부한 실험과 체계적인 연구를 통해 "사람들의 사고과정은 세계 어디를 가든 동일하다"는 서구 지성의 가정에 도전장을 던진다.
서구인들의 입맛에 맞춘 획일적인 IQ검사 같은 것은 거부돼야 하고 상대방 문화를 모르는 두려움에서 비롯된 집단 따돌림과 인종간의 대결도 끝장내야 한다고. 이 책은 총선을 막 끝낸 오늘날의 한국사회를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동반자살이 잦고 지역에 근거한 갈등이 크며 양비론적 입장에 선 언론 논조가 많은 한국인의 사고방식과 심리구조를 파악하는 데 "외부자의 시각으로 본 비교"가 필수이므로. - 김홍조 편집위원(2004-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