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는 함(涵), 자(字)는 자허(子虛)이며 대군의 6남이다. 1458년(세조 4) 1월 5일에 지금의 의왕시 내손동 모락산
밑에서 태어났다. 모친은 부부인 안동안씨이다. 성품이 온화하고 재질이 뛰어났다. 임영대군은 이를 기특하게 여겨 유훈하기를 “나의 죽을 해는 이미 정해졌으니 남은 날이 없다. 내가 죽은 뒤에 너는 마땅히 선왕의 법복, 법언, 법행을 살펴야 한다. 깊이 마음에 새기라.” 하였다. 1469년(예종 1년) 정월 21일에 임영대군이 별세하였을 때는 공의 나이 12세였다. 상을 당하자 석달 동안 죽을 먹고 3년 동안 여막에 거처하였다. 또한 어머니를 섬김도 지극히 효성스러워 잠시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경사(經史)를 통달하였으며 약관에 성리학 이치를 궁구(窮究)하였다. 처음에 영양부정(英陽副正)에 봉해지고 이어 오위도총부 도총관에 임명되어 관직에 오른 지 10년 동안 나라와 종실의 안녕에 힘썼다. 정의대부(正義大夫)로 추증받았다. 1526년(중종 21) 3월 1일에 별세하니 향년 69세이다. 부음이 조정에 알려지자 철조(撤朝)하고, 예관 안당(安塘)을 보내어 과천현 동면 장의동(지금의 서초구 서초동)의 건방을 등진 언덕에서 장사지냈다. 후에 서울 도시확장 계획으로 말미암아 경기도 광주군 실촌면 신대리 산1번지로 천묘하였다. 배위는 평산신씨와 청주한씨이다. 현부인(縣夫人) 평산신씨는 참판 윤범의 딸로 두 아들과 딸을 두었으며, 묘소는
실전되었다. 현부인 청주한씨는 영의정 명회(明澮)의 손녀이고 참봉 복(福)의 딸로 5남 1녀를 두었으며, 기일은 1515년(중종 10) 12월 28일이며 공의 묘에 합장하였다. 장남은 하빈수(河濱守) 인손(仁孫) · 차남은 동산수(洞山守) 의손(義孫) · 3남은 오성도정(烏城都正) 신손(神孫) · 4남은 해구군(海口君) 현손(賢孫) · 5남은 청화군(淸化君) 준손(俊孫) · 6남은 장연부수(長連副守) 종손(終孫) · 7남은 능성령(陵城令) 말손(末孫)이다. 맏딸은 평택임씨 응교(應敎) 준(畯)
에게, 둘째 딸은 예안이씨 우후(虞候) 계홍(繼洪)에게, 셋째 딸은 여흥민씨 훈도(訓導) 수건(壽騫)에게 각각 출가했다 |
첫댓글 어제 음력 10월 10일 영양군 시제에 다녀 왔읍니다. 오늘 임영대군 홈페이지에 들렀다가 귀 카페주소를 보고 가입 했읍니다. 아주 반갑군요 우리 임영대군파 영양군할아버님 자손의 카페가 있다는것 만으로도 가슴 뿌듯 합니다. 많은 종현의 참여를 저도 기원 하겠읍니다. (2007/11/20 16:06) --이종길
종현님 찾아주시고 격려의 글 남겨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가입을 확인 하고 바로 메일을 보냈는데 메일 주소가 잘 못 된것인지 전달이 안되는것 같아 여기에 답글을 올립니다 널리 홍보 하시어(일가 친척) 함께 카페를 잘 키워나가길 희망 합니다 감사합니다 (2007/11/20 17:18)
좋은자료 잘보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