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들은
저 별들의 등을 보았나요?
밤이 놓아둔
고요의 손길
잡아 보았나요?
저 별의 뒤편
저 고요의 뒤편
놓아둔
시와 음악으로
소통의 다리 놓고 싶습니다. - 거창문학회/ 창작동인 예장
작년 도보여행때 고을` 고을` 지인들의 신세를 참 많이 졌었지요.
그 분들 중, 문학회에서 활동하며 알고 지내던 불함님이 계셨어요.
도보여행지인 함양에 살고 계시고, 또 한의사이기도 하셔서 지나는 길에 신세를 톡톡히 지고 왔지요.
이번에 거창문학회 제3회 시낭송회를 한다고 불러 주셔서 열일 제껴두고 다녀왔습니다. 제가 신세를 갚는 일은 이렇게 신발이 닳도록 불러주는대로 쏜살같이 달려가는 일이지요.^^;; 어줍잖게 시 한편을 들고 참여를 하고 왔습니다. 영월에서 거창가는 길은 참 멀기도 해요. 제천을 거쳐, 대구를 찍고, 거창으로 넘어가는 시간이 8시간을 넘게 걸렸답니다. 뭐, 걸어서도 갔다 왔는데 까짓.^^;;


도착하니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거창문화센터 야외무대를 멋지게 꾸며 놓았더군요. 때맞춰 내려준 비가 오히려 더 고맙게 느껴질 정도로 분위기가 멋졌답니다. 비에 젖고, 시에 젖어, 음악에 또 한번 젖고, 사람에 마저 젖어 드는 밤......

오카리나 연주 '철새는 날아가고, 사랑의 숲'은 마치 새가 날아들어 숲을 노래하는 듯, 빗속에서 눈을 감고 듣는 소리는 천상 새의 노래소리 였지요. 마저, 가곡과 익춤, 대금이 시낭송회에 운율을 더해 주었습니다.

'여는 시'로 이기철시인이 '정신의 열대'를 낭송해 주셨습니다. 내내 좋은 자리를 마련해 주신 불함님.
두 분의 시를 함 들어 보셔요.
정신의 열대 - 이기철
내 정신의 열대, 멱라를 건너가면
거기 슬플 것 다 슬퍼해본 사람들이
고통을 씻어 햇볕에 널어두고
쌀 씻어 밥 짓는 마을 있으리
더러 초록을 입에 넣으며 초록만큼 푸르러지는
사람들 살고 있으리
오늘 아침 배춧잎처럼 빛나던 靑衣를 물고
날아간 새들이여
네가 부리로 물고 가 짓는 삭정이집 아니라도
사람이 사는 집들
남으로 흘러내리는 추녀들이
지붕 끝에 놀을 받아 따뜻하고
오래 아픈 사람들이 병을 이기고 일어나는
아이 울음처럼 신선한 뜨락 있으리
저녁의 고전적인 옷을 벗기고
처녀의 발등 같은 흰 물결 위에
살아서 깊어지는 노래 한 구절 보탤 수 있으리
오래 고통을 잠재우던 이불 소리와
아플 것 다 아파본 사람들의 마음 불러 모아
고로쇠숲에서 우는 청호반새의 노래를
인간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말로 번역할 수 있으리
내 정신의 열대, 멱라를 건너가면
강 - 정연탁(불함)
거침없이 달리고 있다 생각했다. 길 가운데 서 있는 저 산모퉁이, 그저 자신의 길
가로막는 걸림돌이라 생각했다. 이미 낡아버린 질서라 생각했다. 쭉쭉 뻗어나가기
위해 부셔도 좋을. 그러나 알지 못했다. 은밀히 내민 저 산의 손길을. 바다로 나갈
때까지 한시도 눈 떼지 않고 바라보는 그 눈길을.
산을 가른다 생각했다. 산을 가르며 철벅철벅 소리치며 저 혼자만 아픈 줄 알았다.
산이 온몸 밀어 넣어 제 살 내어 주는 소린 줄 미처 알지 못했다. 잉태한 해가 자신의
배를 날마다 가르고, 그때마다 전신이 핏물로 흥건해지는 바다에 도달하기 전까지,
산이 새벽마다 흘리는 이슬의 의미를 아무래도 알지 못했다.

18편의 낭송된 시 중 '그 길이 아닙니다'를 낭송해준 김수미양의 시가 내겐 많은 울림으로 다가 왔습니다. 그녀가 추억하는 그 길은 개발로 잘 다듬어져 더 좋은 길이 됐지만 이제 그 길은 길이 아니라는. 발가락으로 마이크를 잡고 끝까지 아름다운 모습으로 낭송해준 그녀가 읽어 준 시, 어린 마음에도 그런 시를 써낸 그녀가 참 예쁩니다. 그리고, 여행길에 고택에서 묵게 해 주시고 밤새도록 우리 고전을 맛깔스럽게 이야기 해주셨던 동화작가이자 거창문학회 대표이신 이경재님, 이번에 새로운 동화집을 내셨다고 했는데 책 제목을 깜박했네요.
그 길이 아닙니다 - 김수미
그 길이 아닙니다
오래전에 친구들과 함께 지나던 그 길
꼬불꼬불 덜커덩 덜커덩 차가 이리저리 흔들릴 때마다
우와~ 청룡열차다 신난다!!
목이 터져라 소리소리 지르면서 가던
그 길이 아닙니다.
돼지우리들 지날 때는 그 독한 응아냄새에.....
모두 소리 지르면서 너무 향긋한 냄새다 라며...
죽어라 깔깔대고 웃으며 가던 그 길
그 길이 아닙니다.
전혀 맞지 않는 화음으로...
웃음 반 노래 반이었지만
서로 마주보며 함께 노래를 부르며 가던
그 길이 아닙니다.
그 길은 지금은 잘 다듬어져 꼬불꼬불 하지도
덜커덩 덜커덩 거리지도 않지만
그래도 그 길이 너무 보고 싶고 그립습니다.
고구마를 심으며 - 이경재
고구마밥 고구마죽에
늦은 밤 생고구마 깎아먹는 일까지
그렇게 하루끼니를 해결하던
사십 줄이 넘어도 여전히 신물이나 쳐다보기 싫은
고구마를 심는다
평생을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는
고구마 등처럼 울퉁불퉁한 어머니 손등과 함께
손바닥 크기만 한 잎에 매달린
가느린 줄기를 흙으로 덮으며
묻고 싶었다 씨도 아닌 것이 뿌리도 아닌 것이
어머니 고래심줄처럼 묵묵히 살아온
모질게도 비집고 파고들던 인고의 세월
작은 공간 알 하나 묻어놓고
그 아래로 또 다른 피붙이
줄줄이 키워놓은 생명줄 따라
암흑 같은 탯줄 흔적을 더듬으며
무게를 키워가던 세월을 여행하고 싶었다
울퉁불퉁 못나도 내 새끼라던
파삭파삭한 고구마 속살 같은
어머니 가슴팍 파고들며
오래전 옹기종기 모여들던 고구마이고 싶었다.
시인의 음성으로 듣는 시는 그 마음이 고스란이 담겨있기에 더욱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비를 그대로 맞아도 좋을 그런 시와 음악과 춤이 있는 밤이었습니다. 뒷풀이에서 마저 이어진 시낭송과 하모니카 연주로 밤을 조각내어 봅니다.
가끔 이런 일탈은 생의 점심이기도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