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기부
권순철(경주대 교수)
지금도 TV화면의 상단에는 아이티 지진 관련 성금을 모으는 '아름다운 전화번호 060'이 떠 있다.
뒤에 증액되었지만, 아이티 사태에 관련하여 우리나라가 처음에 100만 달러의 성금을 낸다는 보도를 보았을 때 성금규모의 옹색함에 놀란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 금액은 어느 슈퍼모델의 개인 기부금 150만달러에도 못 미치는 것이었다. 요즈음 자주 거론되는 국격(國格)은 그저 G20정상회의를 유치했다고 갑자기 높아지는 게 아닐 텐데….
2000년대에 접어들어 기부에 인색하다던 우리나라에도 '아름다운'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첫째, 일반 국민들의 기부 및 자선 활동에 대한 태도 변화이다. 평생 모은 돈을 장학사업 등에 쾌척하던 '시장 할머니'의 선행과 IMF 위기 당시의 노숙자 대상 자선구호활동 그리고 익명의 기부 천사 등에 대한 취재 방송이 일으킨 반향과 감동이 한몫 했으리라.
종교단체에의 기부 비중이 너무 높다는 흠이 있지만, 2007년 우리나라의 개인 및 법인에 의한 기부금은 8조 5천914억원으로 10년전 2조 5천억원에 비해 세배 이상 늘어났다고 한다.
둘째, 많이 가졌으나 베풀 줄 모르던 부유층과 사회 지도층 사이에서도 미약하나마 기부에 대한 '아름다운 의식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장나라, 문근영, 김연아 등 연예인, 스포츠 선수가 이를 선도하고 있고, '유산 안 물려주기 운동' 및 '소득의 1% 기부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정부와 기관단체도 특히 국제적 기부와 관련하여 달라지고 있다.
OECD의 개발원조위원회(DAC)의 회원국으로서 우리나라는 올해부터 지구촌의 빈곤퇴치를 위한 공적개발원조(ODA)사업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종교단체들 또한 100여개의 나라에 파송한 많은 해외선교사를 통해 상당한 규모의 민간 원조를 제공하고 있다.
한편, 기업가들의 사회환원성 기부는 너무 적은 것 같다.
유한양행의 창립자 고 유한열 박사, 삼영화학 이종환 회장 등 귀감이 되는 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기업인들은 대체로 기부에 인색해 보인다. 한창 때엔 사회의 지탄을 받기도 했으나 말년에 거액을 기부함으로써 지금도 존경을 받고 있는 카네기와 록펠러를 시발점으로 기부문화의 전통이 포드, 빌 게이츠 워렌 버핏 등에 의해 면면히 계승되고 있는 미국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한 재미 언론인으로부터 최근에 들은 이야기다. 미국에서는 돈을 벌어 사회를 위해 일단 돈을 내놓으면 졸부든 자수성가한 사람이든 명사로 대접을 해주고 상류층에 끼워 주면서 사회를 위해 끊임없이 '아름다운 일'을 하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사회의 주류가 되고 가문을 빛내기 위해서는 최소한 비영리시민단체(NPO)의 이사 자리 하나는 가지고 있어야 하며, 그리하여 그런 단체의 명부가 서울시 전화번호부만큼이나 두껍단다.
졸부(猝富)를 내심으로 부러워하면서도 '부자 때리기'를 좋아하는 우리사회가 배울 점이 아닐까?
이제 우리나라는 세계68억 명의 인구 중 불과 10억 명만이 들어간다는 연간 개인소득 2만 달러의 부자나라이다.
기부는 '더불어 함께 사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아름다운 투자'이다.
죽음을 앞두고는 '남에게 베풀지 못한 것'을 후회를 한다고 하지 않나.
"이웃을 돌볼 줄 모르는 신흥 '졸부(猝富)의 나라'"라는 말을 더 이상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갈 길은 아직도 멀다 하겠다.
주변을 둘러보면 꽃동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굿네이버스, 승가원 등에 매달 기부하는 사람이 많지만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국내외에 너무도 많다.
경북일보 2010-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