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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 밖의 횡재, 흐린 날 삼봉산에서 색다른 겨울 풍광에 취하다 [대간 10]
1. 일자: 2014. 1. 25 (토)
2. 장소: 소사고개-빼재
3. 행로/시간
[소사고개(10:20, 690m, 삼봉산 2.9km) -> (794봉) -> (급경사 된비알) -> 소사삼거리(11:35, 삼봉산 0.8km) -> (암봉지대) -> 삼봉산(11:58, 1254m, 빼재 4.2km) -> 바위 전망대(12:24) -> 금봉암 갈림 (12:34) -> 호절골재(12:43, 1122m) -> (된새미기재 / 봉산 삼거리 / 수정봉) -> 빼재(13:45, 950m) / 7.1km]
< 대간 10구간 산행을 준비하여 >
대간 10구간은 지난 7월 설봉천-빼재 구간을 다녀온 후 6개월만에 원위치 하는 코스다. 계절 요인을 고려하고 비법정구간을 피해야 하는 나름의 사정으로 대간 코스가 남진/북진의 일관성이 없고 진행 순서도 왔다 갔다 한다. 남진으로 진행되는 10구간을 마치고 2/3월 16-20구간까지를 걷고 나면 조령산으로 향하는 24구간으로 연결 될 것이다. 군데군데 빠진 퍼즐을 맞추어 가는 마음으로 대간 길에 나선다.
이번 10구간의 맏형은 삼봉산이다. 산경표에는 삼봉산울 덕유산의 맏형 격으로 취급하여 덕유원봉이라 표기하고 있다. 정상부가 석불바위, 장군바위, 칼바위의 세 개 봉우리로 이루어져 삼봉산이라 부르며, 전북 무주와 경남 거창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멀리서 보면 그 모습이 마치 연꽃 봉우리 같아 보인다 한다.
지도를 보며 가야 할 길의 대강을 살펴본다. 해발 690미터 소사고개에서 비고 564미터를 이기고 1 시간 30분 오르면 삼봉산에 도착할 것이다. 비탈이 가팔라 길 사정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이후는 정상 인근 암봉지대를 지나 대세 내리막 길을 따라 4.2km 거리를 2시간 정도 걷고 나면 빼재에 닿게 된다. 대간 구간 중 가장 짧은 코스다. 여유 있는 산행을 예상해 본다.
< 희망사항 >
‘경험이란 실수를 좋게 포장한 말일 뿐이다’. 지난 우두령-괘방형 산행은 경험 있는 산이라 우쭐해 하며 걷고, 확신도 없으면서 길의 형세를 떠벌리고, 지나는 말에 귀가 열려 클램폰을 일찍 벗어 버리고 걷다 자빠져 발목이 접질리는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늘 겸손해야 한다는 산의 가르침을 저버린 결과다.
자고 나면 낮겠지 하는 희망은 시간이 지날수록 옅어지고, 이러다 이번 토요일(1/18) 무등산은 고사하고 다음 토요일(1/25) 대간 길도 포기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발을 디디면 통증이 심해져, 정형외과와 한의원을 찾아 검진을 받았다. 다행히 뼈나 인대가 아니고 힘줄에 이상이 있고 며칠 치료를 받으면 좋아질 것 같다는 의견을 듣고서야 마음이 놓인다. 또 무리하면 상처가 악화될 수 있다는 판단에 무등산 산행은 취소했지만 대간행 만은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마음으로 치료에 최선을 다했다.
정말 오랜만에 집에서 맞는 토요일 오전, 안방 침대에 누워 거실 창을 들어오는 풍경을 따라 가니 하늘 맞닿은 곳에 산이 있다. 관악산 능선을 멍하니 바라본다. 육봉 능선이 끝나는 지점에서 삼성산 방향으로 완만한 산줄기가 이어지다 절벽을 만난다. 산 길은 벽을 우회하여 나 있음을 안다. 절벽을 지난 산 줄기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완만하게 흐르다 무너미 고개로 연결된다. 중국발 미세먼지가 남아 있지만 산 능선을 바라보는 시야를 방해할 정도는 아니다. 아픈 발목을 핑계되고 산을 쉬었더니 오히려 온몸이 쑤신다. 나는 아무래도 다시 산으로 가야겠다. 소사고개, 빼재, 삼봉 산이 나를 부른다.
산행 후 삼겹살 파티가 예정돼 있다. 다리님이 문자로 ‘불과 불판’을 준비하라는 지시가 내려진다.‘비닐 신혼방’에서 고기를 구워 먹으며 뒤풀이를 할 준비가 진행되나 보다. 벌써부터 입맛이 돋는다. 산행보다 젯밥에 관심이 더 간다. 하하!
(여기까지는 산행 준비 과정을 기록한 것이다. 실제 산행은 이와는 달랐다.)
< 소사고개 가는 길에 >
낯설다. 비 내리는 겨울도 그렇고 삼겹살
구워 먹는다고 불 판을 들고 길을 나서는 내 모습도 그렇다. 토요일 새벽, 검은 비닐 봉지를 들고 집을 나서는 기분이 뒤숭숭하다. ‘이 뭐
하는 짓인가’하는 우스운 생각마저 든다. 겨울 비와 겨울
산, 산에서의 삼겹살 파티, 모두가 정상은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낯설다.
5시 30분 집을
나선다. 다행히 아직은 비가 내리지 않는다. 일기예보가 빗나가기를
기대해 본다. 교대 집결시간이 헷갈린다. 오늘은 노원파들이
교대에서 가장 늦게 탑승했고, 버스는 흐린 어둠이 내린 고속도로를 질주한다. 오늘은 동이 늦게 틀 것 같다.
천안에서 모처럼 아침을 먹고 잠의 나락에 떨어진다. 깨어 보니 무주다. 산 많은 고장의 도로는 굽이친다. 10시 20분 무렵’탑선수퍼’라는 낯선 곳에서 산행은 시작되었다.
< 소사고개에서 삼봉산 >
들머리는 잔설이 녹고 있는 고랭지 채소밭이다. 빽빽한 소나무 숲과, 널찍한 길을 따라 산에 들어선다. 하늘에 구름이 인다. 선두 그룹의 모습 뒤로 흰 구름이 낮게 깔려 무리 지어 흘러간다. 변화 많은 일기가 예상된다. 변화는 늘 걱정과 함께 설렘을 준다. 왠지 낯선 풍경이 싫지 않다.
< 들머리 풍경 >
완만하고 편한 길이 한동안 이어진다. 가끔 발목이 따끔거리지만 큰 무리는 없다. 해비치님과 아모레님이 손님으로 길을 함께 한다. 두 분 모두 인상이 참 너그러운 분이다. 794봉을 지난 작은 안부에서 올라 오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니 좋아하신다. 이렇게 또 산에서 인연을 만든다.
11시를 지나며 길이 조금씩 가팔라진다. 작은 밧줄이 놓인 암릉지대를 올라서는 것으로 본격적으로 삼봉산 자락에 들어선다. 해발 900미터 부근부터 시작된 된비알은 끝없이 이어진다. 다리님을 도우려 따라 온 아들은 비탈을 걷는 것이 힘에 겨운가 보다. 말이 없다. 그래도 새벽부터 엄마를 따라 나선 용기와 착한 마음이 대견하다. 우리 아이들도 마음과 몸이 건강한 사람으로 키우고 싶은데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고도가 1000미터를 넘으니 완전 눈 밭이다. 작은 고도 차에도 산은 금세 반응한다. 바람마저 분다. 다행히 한 두 방울 떨어지던 비는 더 이상 내리지 않는다.
거칠고 길 오르막이 끝 없이 이어진다. 멀리 선두가 힘겹게 된비알을 치고 오르는 모습이 보인다. 밧줄에 의지하여 조금씩 앞으로 전진한다. 앞서가는 아이넷님이 오늘따라 자주 자빠진다. 그만큼 길에는 눈이 많고 녹은 눈은 미끄럽다. 30분 정도 깊은 눈 길을 오르니 소사삼거리가 보인다. 안부 바로 밑 커다란 나무를 지지대 삼아 팔팔님이 올라오는 이들의 사진을 찍고 있다.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데…. 쉽지 않은 일을 하고 있는 팔팔님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본다.
< 삼봉산 가는 길의 된비알 >
11시 35분 소사삼거리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시간도 많이 걸렸고 길 사정도 만만치 않았다. 선두 일행은 간식을 먹고 쉬고 있다. 늦게 왔으니 쉼이 짧은 것은 당연지사, 쿠키 하나를 베어 물고 잠시 배낭을 내려 놓는다. 비탈을 오르는 이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힘겨운 여정을 끝낸 이들의 표정이 사진에 그대로 묻어난다.
< 소사 삼거리 풍경 >
길은 암봉으로 이어진다. 당초 암봉은 삼봉산을 지나고 나타날 줄 알았는데 반대였다. 바위가 몸을 일으키며 길을 막아 선다. 손까지 동원하여 네 발로 기어 작은 바위 봉우리에 올라선다. 구름이 소사마을을 넘어 대덕산으로 흘러 가는 모습이 보인다. 어두운 하늘 밑, 몽환적 풍경이 곳곳에서 연출된다. 삼봉산 정상 방향으로 길을 이어가는 선두의 모습도 선명하다. 길은 거칠어 보여도 주변의 화려한 풍광이 모든 것을 압도한다. 흐린 날씨로 인해 먼 풍광은 기대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날씨가 색다른 풍경을 연출한다. 전화위복, 뜻하지 않게 횡재한 기분이다.
등산 실력도 내 비좁은 마음도 산에서 자라난다. 아픈 다리를 이끌고 여기까지 온 것이 대견하다. 구비구비 요동치는 풍경 한 조각과 넘어야 할 비탈이 나를 기다린다. 암봉을 오르고 나면 너른 바위가 나타난다. 오를 때는 그저 높기만 하더니 오르니 넓기도 하다. 삼봉산의 매력이다.
< 삼봉산 오르는 길에 >
풍광에 취해 조심스럽게 길을 이어 간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구름의 이동을 느끼며 다시 전망바위에 도착했다. 널찍하고 무엇보다 대덕산으로 이어지는 대간 줄기가 선명하다. 자리를 잡고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는다.
< 삼봉산 암봉에서 288 1 >
해비치님이 첫번째 손님이다. 이어서 다리임 모자, 카모님, 옥헤님이 다음이다.
< 삼봉산 암봉에서 288 2 >
옥혜님부부와‘미녀 삼총사’의 모습은 참 근사하다. 뒤이은 유박사님, 갖가지 포스를 취한다. 사진을 찍으면서도 말이 많다. 하하!
< 삼봉산 가는 길에서 >
옥혜님께 부탁하여 내 사진도 한 컷 찍었다. 얼굴은 어둡게 나왔지만 구름이 이는 뒤 배경이 좋다. 여러 사람들이 사진 속의 내 미소가 매력적이라 한다. 내가 보기에는 좀 가식적이지만 그래도 칭찬이 싫지 않다.
< 삼봉산 산줄기 풍경 >
구름이 흘러가는 모습을 담는다. 모처럼 이국적인 겨울 산 풍경에 취해 본다, 길을 이어갈까 하다가, 지난 주 수돌이님이 후미 사진도 찍어날라고 한 말이 기억나 후미를 기다린다. 느루님을 선두로 청한, 팔팔, 행진, 춘삼이님이 올라온다. 한 사람씩 포즈를 취하게 하고 모여서도 찍었다. 후미까지 사진을 찍고 나니 밀린 숙제를 다 한 느낌이다. 내가 가진 작은 재주나마 베푸는 행위는 이래서 기분이 좋다. 후미와 일행이 되어 암릉을 넘어간다. 삼봉이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여러 암봉들이 연이어 나타났다. 성치 않은 발목에 암릉 길은 힘겨웠다. 조심스레 한 고비씩을 넘어간다.
< 삼봉산 암봉에서 288 3 >
바위 전망대에서 풍광을 즐기며 사진 찍느라 10여분을 보낸 탓에 꼴지로 정상에 도착했다. 시간은 12시 어름이다. 소사마을 출발 1시간 40분 만이다. 놀며 즐기며 온 것 치고는 빠른 행보다. 산세에 비해 정상 표지석은 초라하다. 더욱이 ‘덕유원봉’이라 칭하던 곳인데 말이다.
선두는 벌써 하산 길에 나섰고, 남은 이들끼리 단체사진을 찍었다. 남들 찍느라 내 모습을 넣지 못해 아쉬웠는데, 나중에 보니 유박사님과 팔팔님 카메라에서 내 얼굴도 볼 수 있었다. ㅎㅎ
< 삼봉산 정상에서 >
< 삼봉산에서 빼재 >
식사 없이 하산 길에 나서려니 뭔가 허전하다. 머리 속에 ‘삼겹살’을 그리며 길을 이어간다. 부러 일행과 떨어져 홀로 걷는다. 길 사정은 오를 때와는 딴판이다. 부드럽고 편안하다. 바위 난간에 위치해 시야가 확 트인 전망대에 섰다. 진주에서 오셨다는 분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간 길을 걷는다 하니 날 다시 보는 눈치다. 오늘 풍경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구름 덮인 대덕산이다. 오래 기억에 남을 듯하다.
< 바위 전망대에서 본 풍경 >
하산 길이 눈에 익을 무렵 조릿대가 눈과 어우러진 길을 만난다. 색감이 참 이쁘다. 바람의 흔적에 따라 길에는 눈이 많았다, 진창이 되었다 한다. 금봉암 갈림을 지난다. 빼재는 아직 3.6km 더 가야 한다. 이어 호절골재를 지나고 머지 않아 물푸레나무 군락을 지나는데 아모레님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달라 한다. 자신은 작게 나와도 좋으니 나무를 잘 찍어 달라 한다. 목소리도 얼굴도 고운신 분이 감수성도 뛰어나다. 진달래 나무에 촉이 올라오고 있음을 보고 봄을 이야기 한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은 맞다. 아모레님은 아직 소녀이시다!
< 조릿대 길과 물푸레나무와 아모레님 >
이런 저런 생각에 천천히 걷다. 후미에 따라 잡혔다. 느루님이 지난 주 봉하마을에 가서 노대통령 묘소를 참배했다 하여,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다 노 대통령을 모시던 후배 생각이 났다. 최고 권력자의 자살과 그와 함께 했던 이들의 몰락. 인생은 원래 한치 앞도 내다 보기 힘들 거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빼재가 점점 가까워진다. 눈에 익은 지형들이 하나 둘 보인다. 일행들이 긴 행렬을 이루며 걷는다. 오늘 산행을 복기해 본다. 누군가 말한다. 짧다 하여 만만히 보았는데 실제는 빡셋다고. 아무도 삼봉산 오름 길의 힘겨움이 강하게 남아서 일 것이다. 7km, 3시간 20분 남짓의 짧은 산행이었지만 풍광만은 최고였다. 하여, 오늘 산행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뜻 밖의 횡재, 흐린 날 삼봉산에서 색다른 겨울 풍광에 취하다.’이다. 저기 빼재로 이어지는 도로가 보인다. 오늘도 산에 올라 행복했다!!
< 빼재 하산 길 모습 >
< 에필로그 >
9기 대간장 역할을 하던 ‘넘버1’이라는 닉네임을 쓰던 분이 돌아가셨다는 무거운 소식을 접하며, 삶과 죽음의 경계가 그리 크지 않구나 하는 생각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대간 산행을 하며 함께 라면을 끊여 먹으며 웃던 모습이 선한데 불과 몇 시간 만에 불귀(不歸)의 혼이 되었습니다”라며 안타까운 소식을 심정을 전하는 동료의 글을 보며’이건 남의 애기가 아니다.’는 생각으로 산행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하산 후 빼재 주유소 터에서 행해진 삼겹살 파티는 훌륭했다. 비록 기온이 낮지 않아 ‘신혼방’은 차리리 않았지만 산을 넘었다는 작은 성취감이 맛난 음식과 술을 만나니 아니 즐거울 수 있겠는가? 물기 있는 시멘트 바닥에 앉아 먹는 김치에 싼 삼겹살은 천하 제일의 음식이었다. 왕초 거북이님을 중심으로 채왕, 춘삼, 팔팔과 나와 나이가 같은 청한, 아사모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산행과 뒤풀이를 총 지휘하신 대장님, 묵묵히 준비해 주신 다리 총무님, 고기 맛나게 구워 주신 산거북님, 그리고 이름 없이 수고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인사 올린다. 꾸벅 ^^
좋은 풍경 보며 토요일 오후를 이리 즐겁게 보내고 나니, ‘법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늙어 가나 보다. ^^
< 10구간 궤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