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오온(五蘊), 나와 세상을 구성하는 것
- 최영미 「서른, 잔치는 끝났다」
오온은 이 세상 모든 것의 구성에 대한 부처님의 교설입니다.
오온이란 우리가 ‘나’라고 생각하는 다섯 가지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를 말합니다. 이 오온으로 세상을 구성합니다.
“나와 내 앞에 있는 모든 것은 오온 작용으로 드러납니다. 그것이 인간이든, 돌이든 모두 오온으로 이루어져 드러납니다. 이때 마음 작용과 그 드러난 것을 ‘법’이라고 합니다. 즉 법이라는 것이 막연한 ‘우주 만물’, ‘삼라만상’, ‘일체 존재’라기보다는 마음 작용으로 드러난, 내 마음 앞에 펼쳐진, 나에게 파악된 현상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오온은 세상 자체의 구성 요소가 아니라, 마음 작용을 기능면에서 분류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것’이라고 할 자성이 저 밖에 있는 ‘덩어리진 무엇’(법)에 있지 않습니다. 마음의 작용에 따라 그렇게 드러납니다. 이 내용이 바로 제법무아입니다. 인연화합으로 그렇게 드러날 뿐 그것이라고 할 자성이 없습니다. 연기된 법은 그것이라고 할 자성이 없습니다. 따라서 오온의 가르침 역시 ‘이러이러한 내가 있다’거나 ‘이러이러한 법이 있다’거나 하는 집착을 없애주고자 하신 말씀입니다.”(목경찬 『연기법으로 읽는 불교』 72쪽-73쪽)
다음 시를 읽겠습니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
- 최영미
물론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운동보다도 운동가를
술보다도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는 걸
그리고 외로울 땐 동지여!로 시작하는 투쟁가가 아니라
낮은 목소리로 사랑노래를 즐겼다는 걸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잔치는 끝났다
술 떨어지고, 사람들은 하나둘 지갑을 챙기고 마침내 그도 갔지만
마지막 셈을 마치고 제각기 신발을 찾아 신고 떠났지만
어렴풋이 나는 알고 있다
여기 홀로 누군가 마지막까지 남아
주인 대신 상을 치우고
그 모든 걸 기억해내며 뜨거운 눈물 흘리리란 걸
그가 부르다 만 노래를 마저 고쳐 부르리란 걸
어쩌면 나는 알고 있다
누군가 그 대신 상을 차리고, 새벽이 오기 전에
다시 사람들을 불러모으리란 걸
환하게 불 밝히고 무대를 다시 꾸미리라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나의 성실 유무와 의지 유무를 떠나 잔치가 끝났다고 고백 토로합니다.
그럼 이 시가 잔치는 끝났으니 발 닦고 자라는 말입니까?
- 아닙니다. 그런 생각이었다면 굳이 이와 같은 고백 토로가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럼 어떤 감정세계를 말하는 것입니까?
- 참담함에 직면하여 사회운동의 재구성을 위한 심리적 거리 확보를 말합니다.
시인은 충실하지는 못했지만, 그러나 자신의 역할이 있던 잔치는 끝났고 그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그 명백한 사실조차 인정하지 못하고 연연해하면 사회운동은 ‘이러이러해야 한다’고 고정된 생각과 방법을 계속 반복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직 변혁은 끝나지 않았다’며 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린, 어느덧 “운동”, “운동가”, 운동문화로 고착된 생각들을 재생산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동일성의 반복입니다. 그래서 기존의 사회운동 방식은 끝났다고 그 방식에 매몰된 인간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화자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기존 사회운동의 방식은 이후로도 계속될 것임을 압니다. “잔치는 끝났다/ 술 떨어지고, 사람들은 하나둘 지갑을 챙기고 마침내 그도 갔지만/ 마지막 셈을 마치고 제각기 신발을 찾아 신고 떠났지만/ 어렴풋이 나는 알고 있다/ 여기 홀로 누군가 마지막까지 남아/ 주인 대신 상을 치우고/ 그 모든 걸 기억해내며 뜨거운 눈물 흘리리란 걸/ 그가 부르다 만 노래를 마저 고쳐 부르리란 걸/ 어쩌면 나는 알고 있다/ 누군가 그 대신 상을 차리고, 새벽이 오기 전에/ 다시 사람들을 불러모으리란 걸/ 환하게 불 밝히고 무대를 다시 꾸미리라”. 가슴 아픈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기존의 방식 역시 “뜨거운 눈물”이라는 반성을 거쳐 이어져 온 것입니다. 어쩌면 반성조차 동일함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왜? 인간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뜨거운 눈물 흘렸으니까 그리고 사람이 바뀌었으니까 차이를 반복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그것조차도 동일성의 반복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동일성을 깨뜨리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깨뜨려 다시 욕탐 없는 새로운 우리 마음 작용에서 연기하는 것으로 만들자는 것입니다. 이전의 사회운동, 운동가, 운동문화로 고정된 우리의 오온이 무상하고 실체가 없고 고통이며 공하다는 것을 알아 집착에서 벗어나 새롭게 시작하자는 것입니다.
- 오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