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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기행
---소문의 덫 7---
홍 성 암
영진리에서 가장 모범적인 농삿군이라면 단연 김진우를 친다. 그는 부모에게서 단 한 뼘의 땅도 물려받은 것이 없었지만 평생 근실하게 농사를 지어서 지금은 수천 평의 논과 밭을 소유한 부농이 되었다. 그리하여 영진리의 땅부자가 누군가라고 물으면 이구동성으로 바우재의 김진우라고 말할 정도다.
그는 새벽부터 들판에 나가서 날이 어두워져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친구와 어울려 술 한 잔 나누는 일도 없었다. 그저 일하는 자체가 즐거움이었다. 심지어는 자식마저도 낳지 않았다. 일부러 낳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의 아내가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고 걱정을 하자 걱정도 팔자라고 벌컥 화를 낼 정도였다. 돈 잡아 먹을 자식이 생기지 않으니 다행이지 무슨 걱정이냐고 덧붙이는 것이다.
그렇게 열심히 일해서 논밭을 늘리는 재미로 평생을 살아왔다. 아무튼 농사지을 한 뼘 땅도 없던 예전에 비하면 엄청 달라졌다. 영진리에서 제일가는 땅부자가 된 것이다. 그렇게 땅부자가 되고 보니 일하는 것에 더욱 신이 났다. 매년 소출이 늘고 그렇게 늘어나는 소출은 곧 다시 땅을 늘리는 일에 보태게 되었다. 그렇게 진우는 농토를 늘리고 또 늘렸다.
허기진 귀신이 먹거리에만 관심을 두듯이 진우는 온통 땅에만 관심을 두었다. 아니 욕심을 냈다. 악착같이 농토에만 매달렸다. 자식 따라 도시로 떠나게 된 농군들의 농토는 대부분 진우가 맡았다. 진우는 상대방이 부르는 대로 군말 없이 땅을 맡았다. 진우는 이 세상에서 믿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땅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그런 믿음을 행동으로 실천했다.
그런 진우에게 전혀 뜻밖의 사건이 생겼다. 위암 판정을 받은 것이다. 평소 건강하다고 자부했고 이렇다 할 병을 앓는 일도 없어서 병원이라곤 한 번도 가 본적이 없던 진우였다. 하긴 영진리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다. 그래서 면소재지에 작은 개인병원이 있지만 환자가 없어서 의사가 파리를 날리는 판이었다. 그런데 나라에서 선심이라도 쓰듯 건강검진이란 제도를 도입해서 누구나 2년에 한 번씩 신체검사를 하도록 했다. 의무는 아니지만 나이도 예순이 넘으니 한 번 쯤 건강검진을 받아 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서 병원에 갔었던 것인데 뜻밖에 위암이란 판정을 받게 된 것이다. 의사는 진우에게 서울 강남의 한 대학병원을 소개해주었다. 그래서 진우는 생전 처음으로 병원 출입을 하게 된 것이다.
영진리 사람들은 별로 앓는 일이 없다. 농부들의 경우는 아침 해가 뜰 무렵에 일어나 밭에 가고 저녁 해질 무렵에 논밭에서 집으로 돌아온다.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피로가 감탕처럼 몰려오고 그렇게 되면 깊은 단잠에 빠지게 된다. 그런 생활의 되풀이니 언제 병날 일이 없다. 그런 터에 느닷없이 암이라니 마른하늘에서 날벼락이라도 떨어진 기분이었다.
“아니 평생 앓는 것을 못 보았는데, 그 강골이 입원했다며.”
“암이라네. 암 앞에는 장사가 따로 없제. 속수무책이라네.”
“아니 그럼 죽게 되었다는 말인가?”
“그야.... 요즈음엔 약도 좋고 의술도 좋아서 더러 살기는 한다누만.”
사람들은 그렇게 쑤군거렸다. 영진리 같이 좁은 곳엔 이렇다할 사건이 별로 없다. 그러니 진우의 입원은 근래에 없는 사건이었다. 더구나 암이라니. 암이라면 으레 죽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터였다. 영진리에서 암으로 죽은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 늙으면 노환이라고 해서 자연사하는 것이다. 그런데 암이라니....
진우가 암수술을 받았다는 소문이 마을을 떠들썩하게 했다. 그런데 서울로 간 진우에게서는 달포가 넘도록 아무 소식이 없었다. 진우야 원래 과묵한 성격이라 누구에게 자기 병 이야기를 할 위인이 못되지만 그 아내인 소돌댁에게서도 영 소식이 없었다. 휴대폰이란 게 있어서 얼마든지 소식을 전할 수 있는 시대인데도 말이다. 답답한 마을 아낙네들이 전화를 걸어도 아예 전원이 꺼져 있다는 답변이었다.
진우는 영진리에 이렇다할 친척이 없다. 리장 일을 보는 사촌인 이규가 유일한 친척이었다. 진우 위로 누님이 한분 계시긴 하지만 일찍부터 청상과부가 되어 오대산 자락의 만월암의 비구니가 되어 속세와는 인연을 끊고 사는 처지였다. 그러니 직접 연락이 닿지 않으면 누구에게 수소문해 볼 수도 없는 처지였다. 그러니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겠고 병이 낫고 있는지 더 심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퇴원은 할 수 있는지 어떤지도 모르겠고 도무지 모르는 것 천지였다.
그렇게 답답한 대로 두어 달이 지났는데 어느 날 사촌 동생인 이규에게로 전화가 왔다는 소문이 돌았다. 장실의 산자락에 있는 닷 마지기의 논을 팔아 달라는 부탁이었다. 평생 땅을 사기만 했지 파는 것을 못 보았던 사람들로서는 굉장히 충격적인 소문이었다.
“병원비가 제법 많이 드는 모양이제.”
“그러게 말이여. 서울 갈 때 기백만 원은 챙겨 간 모양이던데.”
“그것 가지고도 모자랐던 모양이제”
마을 사람들의 추측대로 진우는 기백만 원의 돈을 준비해서 서울로 왔다. 그런데 그런 돈으로는 병원비를 대는데 턱없이 부족했다. 진우가 처음 입원한 병실은 1인실이었다. 하루에 30만원이라고 했다. 특실도 있는데 그것은 백만 원도 넘는다고 한다. 이틀이 지나서야 6인실로 바꾸어 주었다. 6인실은 보험이 적용되어서 3만원 안팎이었다.
임원한지 하루가 지나면서 각종 검사가 실시되었다. 혈액검사, 내시경 검사, 엑스레이 검사, 초음파 검사. 단층 촬영. 검사의 수도 한 둘이 아니었다. 그러니 시골 돈이 맥을 출 수 없었다. 평소 땅을 사기만 했지 팔줄 몰랐던 그지만 땅을 팔아달라고 부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진우의 경우는 검사결과 위장의 깊숙한 쪽에 2센티 정도의 용종이 발견되었다. 용종이란 내장에 수시로 생기는 종류다. 그 크기가 1센티 미만인 경우는 대부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러나 진우처럼 2센티가 넘고 보면 암이 될 가능성이 매우 컸다. 칼을 대어 절개하는 방법과 내시경 레이저로 시술하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내시경 시술을 하기로 했다. 식도로 내시경을 집어넣고 용종을 떼어내는 작업이라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그래서 모든 것은 의외로 순조롭게 끝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나중에 수술의 경과를 재검해 보니 그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했다. 용종의 뿌리 일부가 위벽에 그냥 남아 있었던 것이다. 자칫 더 긁어내다가는 위벽에 구멍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재수술이 불가피했다. 아예 위의 대부분을 잘라내는 절개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위를 잘라내는 수술을 하기 전에 초음파 검사와 더불어 정밀 내시경 검사를 다시했는데 위와 연결되어 있는 십이지장 깊숙이에도 악성 암이 숨어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수술은 진단을 맡은 내과 소관이 아니고 외과 소관이다. 빨리 수술을 했으면 좋겠는데 외과에서는 얼른 수술 날짜가 잡히지 않았다. 소화기 내과에서 내시경 수술로 환부를 긁어 놓아서 주변의 근육이 부어서 염증이 생겼기 때문에 그것이 가라앉을 때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외과의사와 면담이 있었다. 수술의 방법이 두 가지가 있단다. 위의 상당 부분을 잘라내야 하는데 배를 절개해서 하는 방법이 있고, 다른 방법으로는 복강경 수술 방법인데 배의 서너 군데에 구멍을 뚫고 그곳으로 기계를 투입하여 수술하는 방법이다. 이른바 로봇을 사용하는 수술이다. 복강경 수술이 회복이 빠르지만 외국에서 수입한 최신식 기계를 사용하는 것이어서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개복 수술보다 3백만 원 정도를 더 내야 한다고 했다. 진우로서는 고민스런 일이었다. 또 농토의 일부를 팔아야 한다. 그러나 병원생활에 지친 아내가 결단을 내렸다. 매일 같이 죽어가는 환자들이 안 보이느냐는 것이다. 진우는 아내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하루라도 빨리 퇴원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진우가 입원한 병동은 암병동이다. 암환자들만을 모아 놓은 곳이다. 암병동의 환자들은 대체로 두 종류다. 암 선고를 받고 수술 날짜를 기다리는 경우와 이미 수술을 받고 나서 항암주사를 맞기 위해서 재입원한 경우다. 물론 입원실이 모자라서 암환자가 아닌 데도 입원하는 경우도 간혹 있긴 했다. 그렇게 같은 종류의 환자들을 뫃아 놓으니 병에 대한 정보 교환이 쉬워진다. 암의 종류가 다양한 만큼 치료 방법도 다양했다. 그러다 보니 불신도 크고 불평도 많았다.
암환자들은 수술 후에 일정 기간 항암주사를 맞는다. 경우에 따라서 항암주사를 6번, 12번, 나누어서 맞는다. 1번 맞기 시작하면 5일간을 계속 맞는다. 그렇게 6주 또는 12주의 주사를 맞는다. 그러나 모두 일괄 그런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3일에 1번 씩 맞기도 한다. 그렇게 17차례나 맞는 사람도 있다.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항암 치료주사는 대개 86종이나 있다고 한다. 그 중에서 실제로 많이 투약되는 경우는 36종 정도다. 그런데 의사들은 신약이라면서 새로운 약을 추천한다. 한 병에 많은 것은 5백만 원에서부터 차등적으로 4백만 원 3백만 원 1백만 원도 있다. 신약이 아닌 일반약은 십만 원 안팎이다. 비싼 신약 일수록 보험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비싼 신약이라 해도 그것의 약효에 대해서는 확실한 보장이 없다. 그래도 의사가 권하니 환자는 고민하게 된다. 돈 때문에 신약을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엔 마치 그것 때문에 병이 낫지 않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중증 암환자들의 경우는 대부분 암이 재발해서 여러 차례 수술을 거듭한 경우가 많다. 처음엔 위암이다가 나중에 그것이 간이나 대장으로 전이된 경우다. 위암인 경우는 대개 대장, 직장으로 전이 되는 경우가 많고(밑으로 옮아가고) 폐암인 경우는 머리쪽으로 전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속설이 널리 퍼져 있었다.
진우의 옆 침대의 환자는 울산에서 왔다는 기업가였다. 처음엔 폐암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그것이 위암이 되고 다시 십이장암으로 전이되었다고 한다. 이번 항암주사는 9번째란다. 그래선지 표정이 매우 어둡다. 너무 주사바늘을 많이 꽂아서 꽂을 데가 없다. 심지어는 엄지발가락 끝에 겨우 혈맥을 찾아 주사바늘을 꽂을 정도다. 매우 아픈 곳이라고 한다. 아파도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그는 링거 호수가 발끝에서부터 주렁주렁 매달린 불편한 모양으로 화장실 출입을 했다.
문간의 침대에 누운 환자도 폐암환자였다. 이제 70이다. 고통으로 얼굴이 찌그러져 있다. 옆에서 그 아내가 위로한다. 폐암도 하기에 따라서는 잘 낫는다요. 그는 항암주사를 견디지 못해서 걸핏하면 도망친다. 그는 보신탕을 좋아한다고 했다. 항암주사를 맞으면 음식을 들지 못한다. 입맛이 없어서다. 그런대로 평소 즐겨하던 보신탕만은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그래서 아내와 약속을 했다고 한다. 항암주사를 맡는 동안 계속 보신탕을 끓여 온다는 조건이다. 의사도 만류할 엄두를 못냈다. 우선 먹고 영양을 보충해야 살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건너 침대의 환자는 대장암이다. 암덩어리가 너무 커서 처음에는 그것이 똥덩어리인 줄 알았다고 한다. 변비가 되어 똥이 돌덩이처럼 굳어 있는 상태로 여겼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녹혀 밀어내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암덩어리였다. 그것을 방사선으로 쐬어서 축소시켜서 겨우 수술을 했다. 예후가 별로 좋지 않다고 했다.
진우는 그런 환자들과 생활했다. 수술 이후에도 항암주사를 계속 맞아야 했기 때문에 고향으로 내려 갈 수가 없었다. 진우의 경우는 위의 암보다 십이지장 쪽의 팥알만한 암이 매우 악성이어서 3일에 한 번씩 17번을 맞아야 했다. 병원 주변에 있는 모텔 방을 얻어서 며칠 묵었다가는 병원에 다시 입원해서 항암주사를 맞았다. 항암주사를 맞는 중에도 여러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한 사람은 담랑암 환자였다. 의사는 앞으로 20일밖에 살지 못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처음엔 담랑에 10cm 정도의 종기가 생겼는데 그것이 온 몸으로 전이 되었다. 폐와 간에도 전의되어서 거의 손 쓸 수 없게 되었다. 의사가 권했다. 도저히 나을 가망이 없는 터이니 임상실험용 약을 써 보겠느냐고. 임상실험용인 경우는 약값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니 응할밖에. 그런데 다행히 약효가 나기 시작했다. 6차의 항암주사를 맞으니 폐와 간에 전이된 종기는 없어지고 담랑의 본래 종기도 2센티 정도로 줄었다. 좀 더 줄인 다음에 수술을 할 모양이라고 했다.
또 한 사람은 폐암이라고 했다. 처음엔 감기인줄 알았는데 도무지 낫지 않았다. 석달이나 약을 먹었는데도 허탕이었다. 폐에 물이 가득 고였다는 것이다. 더 이상 고일 수 없을 정도로 고여서 폐가 온통 찌그러졌다고 한다.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통증이 심했다. 건축용 드릴로 몸뚱이를 뚫는 것 같았다. 암이 이미 전신에 퍼진 상태였다. 일단 폐에 고인 물부터 뽑아야 했다. 노란 물이 쏟아져 나왔다. 황달에 걸린 것처럼 몸이 온통 노랬다. 그렇게 10일 넘게 물을 뽑고나니 그나마 살 것 같았다. 통증도 조금 가셨다. 수술이 어려워서 항암주사를 계속 맞고 있다고 한다.
췌장암 환자도 있었다. 췌장을 잘라내는 수술을 했다. 수술을 하고나서 항암주사를 맡는데 견딜 수 없었다. 구토와 더불어 통증이 오는데 너무 아파서 뭐라고 말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세차례 항암주사를 맡고 그만 포기하고 말았다. 그렇게 얼마동안 쉬는 사이에 암이 폐와 간으로도 전이되었다. 다시 항암주사를 맞기로 했다. 여전히 힘들었다. 첫날 항암주사를 맞다가 반도 못 맞고 포기하고 말았다. 항암주사를 견딜 수 없는 특이 체질인 모양이라고 의사는 말했다. 머리가 너무 무거워서 들 수가 없다고 했다. 체중이 줄고 허리가 꼬부라져서 걷지도 못하고 엉금엉금 기어다녀야 했다.
진우의 경우는 암수술의 경과가 좋은 편이라고 했다. 그래서 곧 바로 항암주사를 맞기 시작했다. 진우의 처는 그동안 놀랐던 마음이 조금 진정 되었는지 꺼두었던 휴대폰을 다시 켜고 고향 사람들과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동안 감감 무소식이던 진우의 투병 이야기가 조금씩 마을 사람들에게 전달되기 시작했다. 답답해 하던 영진리 아낙네들도 진우의 소문에 접하자 활기를 되찾았다.
“세상에! 환자가 목매달아 자살하는 것도 보았다누만.”
진우처의 말로는 코암에 걸린 환자인데, 아직 마흔도 안된 젊은 사람이 새볔녘에 복도 층계에 목을 매고 늘어졌더라는 것이다.
“그 전날 젊은 아내와 티격태격 하더라고요. 젊은 아내의 말이 ‘병원비도 없는데 의사는 또 새로 나온 주사를 맞아 보자고 권하니 싫단 말도 못하고 어쩌지요?’ 그러니 그 남편이 버럭 화를 내면서 ‘싫다고 해. 새로 나온 주사약이란 게 검증 된 것도 아니잖아. 매번 새로 나온 약을 권하면서 값만 올리고 있다니까?’ 하더라고요. 그러자 그 아내가 ‘그렇기야 하겠어요. 기존 주사약으론 별 차도가 없으니까 그런거겠지요.’ 그러자 남편이 ‘값이 한 두 푼이어야지. 기만원이면 될 약이 기백만원이니 어떻게 감당하느냐고?’ 한탄하는데 그 아내가 ‘어떻게든.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당신은 몸조섭이나 잘 해요.’ 그렇게 달래더라고요. 그러면서 그 처가 돈을 구해 보겠다고 자리를 비운 사이에 코암 환자가 충계에 목을 맨 것이지요”
아무도 그가 목을 맨 것을 알지 못했다. 병실은 금연 구역이기 때문에 담배를 참지 못한 간병인 하나가 몰래 층계의 비상구 문을 열고 나갔다가 목매단 시체를 목격한 것이다. 코에는 숨을 쉬도록 산소호흡기가 매달려 있고 팔에는 주사바늘이 꽂히고 행거에는 고무 호수에 서너 개의 약주머니가 매달린 채였다. 혀을 빼물고 늘어진 모양이 매우 끔찍했다. 경찰관이 셋이나 달려 오고 환자들과 간병인들이 놀라서 몰려들고 온통 야단법석이었다.
“차마 눈뜨고 못 볼 광경이었다누만”
“코암이라 게 어떤 병인데?”
“코에 암이 생인 병이라는 데, 코를 잘라내고 거기에다 호수를 박았다고 그러데”
목을 매고 자살한 환자의 침대에 중년 사내가 입원했다. 원래는 응급실에 있어야 할 환자라고 했다. 그런데 응급실에 침대가 모자라서 임시로 암병동에 입원한 것이다. 착실한 기독교인이라고 했다. 목사거나 전도사쯤 되는 모양이었다. 아직 병명이 밝혀지지 않았다고 했다. 목에 가래가 끓어 호흡이 곤란하다고 했다. 기침이 심했는데 그때마다 가래침 속에 피가 묻어 나왔다. 응급실에 있어야 할 환자였다.
신도들이 수시로 찾아왔다. 신도들은 병자의 쾌유를 위해서 길게 기도했다. 목소리도 엄청 컸다. 큰 목소리여야 하느님이 잘 들을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이었다. 심하게 기침을 할 때마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힌다고 하더니 신도들의 정성어린 기도의 덕택인지 하루가 지나고부터는 매우 좋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환자는 조금 차도가 보이자 주일날 목회를 쉴 수 없다며 잠시 외출도 했다. 외출에서 돌아 온 그날 밤부터 갑자기 기침이 심해졌다. 환자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쩔쩔 매기 시작했다. 가래가 목구멍을 막아 숨을 쉴 수 없다고 했다. 얼굴이 새까맣게 죽어갔다. 당황한 그의 아내가 간호사를 부르고 난리였다. 일요일이라 담당 의사가 외출중이라고 했다. 링거병을 새로 꽂고 약병을 주렁주렁 매달았다. 당번을 섰던 인턴이 고무 호수에 매달린 약병을 보더니 약이 잘 못 되었다며 다른 약을 가져 오라고 호통쳤다.
모두가 우왕좌왕 갈팡질팡이었다. 환자가 숨을 쉬지 못하니 환자의 처가 아우성을 쳤다. 어서 응급실로 보내줘요. 혼란 중에도 그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인턴이 간호사를 시켜서 응급실로 옮길 수 있도록 이동침대를 가져오라고 일렀다. 그리고 심폐소생술을 하느라 환자의 가슴을 주먹으로 내리 눌렀다. 그런 와중에 갑자기 환자가 꺽- 하고 외마디 소리를 지르더니 목을 툭 떨어뜨렸다. 닭목아지 꺾이듯 그렇게 꺽, 소리 한번으로 목이 툭 꺾였다.
여보. 정신 차려요. 여보 숨을 쉬어 보라니까요. 그 아내가 발버둥을 쳤다. 그러나 환자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뒤늦게 간호사가 조무원의 도움을 받으며 이동침대를 끌고 왔다. 그리고 환자를 눕히고 급히 응급실로 달려갔다.
“쯧쯧, 틀렸어, 이미 숨이 떨어졌는 걸.”
“그러게 말이야. 병명도 모르고 죽게 되었으니,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그런데 그 간호사가 잘못된 주사약을 투입한 게 문제가 된 게 아닐까?”
입원 환자들과 간병인들이 그렇게 말을 주고받는 중에 한 사람이 응급실까지 따라갔던지 그 사람 이미 죽었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세상에. 일요일이라고 교회에 가서 목회일 까지 보던 사람이 그렇게 쉽게 죽을 수 있남? 사람의 목숨이란 게 그런 건가. 병실의 환자들과 간병인들이 모두 허탈해 했다.
다음 날, 죽은 환자의 아들이 찾아왔다. 대학생 차림이었다. 의사와 간호사가 실수해서 아버지가 죽게 된 것이라는 말을 어머니에게서 들었다며 주사약을 잘못 사용한 것이 맞는지, 직접 옆에서 본 분들이 증언자가 되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아무도 호응하는 사람이 없었다. 자정이 넘은 깊은 밤중이고 갑자기 일어난 사건이라 제대로 본 사람이 없네. 그게 다 운명이니 어쩔 수가 없제. 그런다고 죽은 사람이 살아날 것이람. 의사나 간호사는 최선을 다 했구먼. 모두들 그런 식이니 청년은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 채 허탈한 표정으로 병실을 나갔다. 마음속으로는 매우 분개 했을 지도 모른다. 죽은 생명을 위해서도 같은 환자들끼리 그렇게 박정할 수 있겠는가 하는 심정일 것이다.
“그낭, 꺽- 하고 죽더란 말이제”
영진리 사람들은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의사며 간호사가 수두룩한 병원 입원실에서 말이네.”
“사람의 목숨이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정해진게여.”
“그러니 영진리 사람들은 아예 병원 문턱엘 얼씬도 말아야겠구먼.”
영진리 사람들은 병원이란 도무지 믿을게 못 된다는 식의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진우처는 죽어가는 사람들 이야기도 전했다.
진우의 바로 옆 창가 침대에는 팔순이 넘어 보이는 할머니가 입원하고 있었다. 벌써 몇 달 된다고 했다. 간병 도우미를 두고 있었는데 어쩌다 찾아온 며느리가 짜증을 내곤 했다. 도우미는 제할 일만 건성으로 해차우고는 다른 간병인들과 잡담으로 소일했다. 환자는 죽든말든 관심이 없었다. 할머니는 죽은 것처럼 누워 있었다. 숨도 제대로 쉬는 것 같지 않았다. 어쩌다 찾아오는 자식들도 그저 건성으로 들여다 볼 뿐이었다. 간호사들도 건성이고 의사도 건성이다. 팔순이 넘었다고 해서 이미 죽은 사람 취급이었다. 더 이상 입원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분위기였다.
병원에서는 퇴원을 종용하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서너 명의 자식들이 있어서 자식된 도리를 하느라고 어느 정도 병원에 입원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그런 의무가 웬만큼 끝났다고 생각한 것일까? 어느 날 자식들과 손자손녀들이 할머니를 보러 우르르 몰려 왔다. 할머니는 먹지도 못하는 과일이며 음료수 통조림 등을 한 아름씩 들고 왔다. 그들은 들고 온 음식들을 게걸스럽게 먹어대며 쉴 새 없이 떠들었다. 마치 잔치집 같은 분위기였다. 그런 절차가 끝나자 아직 의식이 가물가물한 할머니를 앰뷸런스에 태웠다. 서울에서도 한 참 떨어진 경기도 어느 시골이 집이라고 했다. 매우 부자였다고 한다. 할머니가 죽고나면 그 많은 재산을 자식들이 나누어 가질 것이라고 했다. 자식들은 효도의 절차를 모두 밟은 터라 홀가분하고 밝은 표정으로 병실을 떠났다. 들리는 말로는 그 할머니는 고향 집까지도 못가고 앰뷸런스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돈도 소용없고 자식도 소용없네.”
“남의 눈치만 소용 있구먼.”
영진리 사람들은 그 자식들의 소행에 대해서 매우 분개했다. 아직 영진리는 그런 불효자는 없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도 언젠가는 그런 모양으로 바뀔 런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문명이란 이름으로 인간들은 잔인하고 이기적이며 탐욕적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진우의 처가 전해 온 또 다른 소식은 앞의 경우와 비슷했다. 예순쯤 되는 간암 환자의 이야기였다. 집이 ‘정선아리랑’으로 유명한 여량이란다. 간 수술을 세 번이나 했다고 한다. 수술의 경과가 좋아서 곧 퇴원할 꺼라고 했다. 환자의 부인이 이곳저곳에다 전화를 했다. 자식들에게는 아빠가 퇴원하게 되었으니 와서 보란다. 자식들은 모두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한다고 했다. 사촌이며 오촌 친적들에게도 전화를 했다. 이번 내려가면 다시는 올라오지 않을 것이니 모두 와서 보란다. 친정집이 서울 근교여서 친정 형제들은 모두 서울 근교에 산다고 했다. 그들에게도 같은 식으로 연락했다. 병문안을 온 자식들과 친척들은 떡이며 과일, 음료수등을 바구니 가득 담아 왔다. 모두들 즐겁게 먹고 마셨다. 3년도 넘게 투병해 온 그 지긋지긋한 간암이 완쾌되었다니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간을 몽땅 떼어내고 남의 간을 구해서 새로 이식했는데 그게 효과를 본 모양이라고 했다. 의사가 최종 진찰을 하고 내일 퇴원하라는 처방을 내주었다. 같은 병실에 입원한 환자들은 모두 부러운 표정으로 이들의 잔치를 구경했다. 환자의 아내는 매우 활달한 편이어서 가득 넘치는 음식들을 옆 침대의 환자들과 간병인들에게도 푸짐하게 나누어 주었다. 이제 퇴원하면 집에서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고 했다. 여랑에서 부동산을 한다는데 환자도 모처럼 밝은 표정이 되어 휴대폰으로 부동산에서 일하고 있는 종업원에게 이런 저런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워낙 유지라 그곳의 토지 거래는 모두 이 부동산에서 취급한다는 것이다.
진우처는 새벽 두시가 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남편이 얼핏 잠든 기색을 보자 슬그머니 병실을 나왔다. 복도의 끝 쪽 창가에는 환자와 그 가족을 위한 의자가 몇 개 놓여 있었다. 잠시 쉴 생각으로 그리로 갔더니 뜻밖에도 간암 환자의 아내가 창문 밖 어둠을 바라보며 혼자서 훌쩍이고 있었다.
“퇴원하시게 되었다면서요.”
진우처가 놀라서 묻자 여인은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퇴원이 다 뭡니까? 이식한 간을 단층촬영 해 보았더니요.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속은 온통 암덩이로 새까맣게 되었답니다. 이젠 더 이상 수술도 불가능하다면서 퇴원을 종용합디다. 먹고 싶은 것 마음껏 먹고,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하랍니다. 그러니 사형 선고지요. 3년 넘도록 지극정성 간병한 것이 모두 물거품이 되었지요.”
진우처는 어이가 없어 위로의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다음날 아침 밝은 표정으로 퇴원하는 간암환자를 차마 바로 볼 수 없었다.
“허. 그런 일도 있구먼요.”
“그러니 환자는 누굴 믿노? 의사도 마누라도 다 거짓말을 하니 말이제”
“물론 환자를 위해서 하는 일이긴 하지만 도무지 뭐가 옳은지 알 수가 없네.”
진우처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영진리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하고 모를 것 천지였다. 쉽게 죽고 쉽게 죽어가고 그럼 병이 낫는 사람들은 없단 말인가? 암이란 게 그렇게 불치의 병이란 말인가? 신문이나 텔레비전을 보면 온갖 약 광고가 나오고 암을 이기는 음식들이 소개되고 암을 이긴 사람들의 체험담이 줄줄이 소개되는데 진우처의 말은 그것과 전혀 달랐던 것이다.
“심지어는 자기가 이미 죽은 줄로 알고 있는 환자도 있더라고요.”
“그건 또 무슨 말인교?”
“암수술도 수술이지만 항암주사를 여러 차례 받고 나면 몸속의 건강한 세포마저 죽게 되어 몸과 마음이 불구자처럼 되는 거지요.”
“마음이 불구자라면?”
“어떤 사람은 자기가 천국을 날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은 자기가 지옥을 헤매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자기가 지금 물구나무 서서 거꾸로 걷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해요. 사실은 침대에 그냥 누워 있을 뿐인데두요. 꿈인지 생신지 모르는 상태가 되는 거지요. 그런 환자의 경우 지껄이는 말이 하도 황당해서 간병인들이 놀라지요. 그래서 의사를 찾게 됩니다. 의사는 그런 환각상태가 흔히 있는 것이라며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것이라고 설득하지만 실제로는 더 나빠지는 경우가 많아요.”
영진리 사람들은 진우처의 말을 소문으로 전해 들으면서 그곳이야 말로 지옥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푸른 수의를 입은 환자들. 피주머니를 차고, 또는 오줌주머니를 차고, 팔뚝에 주사바늘을 꽂고, 행거에 온갖 약병을 매달고, 피골이 상접하고, 웃음기를 잃어버린 사람들. 겨우 좁은 병원 복도에서나 어슬렁거려야 하는 그들. 지옥도의 한 장면처럼 여겨졌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영진리 마을 사람들의 생활이야 말로 천국의 생활이 아닐 수 없었다. 이곳 사람들은 감기를 앓는 일도 별로 없었다. 여름동안 햇볕에서 일하느라 등가죽의 허물을 보통 세 번 정도는 벗기게 된다. 그리하여 피부가 탄탄하고 강해져서 겨울이 와도 감기를 앓는 일이 극히 드물었다. 도시에서 유행하는 유행성 독감도 이곳은 늘 비켜 갔다. 세끼 밥 챙겨 먹고, 먹은 것만큼 열심히 일하고, 그리고 밤이면 잡념 없이 깊이 잠들었다. 그렇게 숙면을 취하고 나면 다음날은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웠다. 그러니 병이 생길 이유가 없다. 시골에서 일만하는 무지렁이로 스스로를 자책하고 도시 사람들을 부러워 했는데 진우처의 말을 듣고 보니 공연한 욕심이었다. 현재 영진리 생활이 가장 행복된 삶이 분명했다. 영진리 사람들은 새삼 자신의 처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진우의 처가 마을 사람들에게 이런 저런 소식을 전하는 순간에도 진우는 여전히 항암주사를 맞아야 했다. 한 차례 두 차례 그렇게 차례가 거듭할 수록 얼굴이 까맣게 죽어갔다.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그런 그에게로 교인들이 전도를 나왔다. 암환자들의 절망적인 심정을 이용해서 전도하는 교인들이 줄곧 들락거렸다. 목사를 앞세워 오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찾아오기도 했다. 권사니 집사니 하는 직함을 가진 여자들이 보다 열성적이었다.
어떤 사람은 환자에게 윽박지르듯 위압적으로 말했다. 따라하세요. 아버지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습니다. 구세주임을 믿습니다. 저를 죄악에서 구원해줄 것을 믿습니다. 아멘.
다른 사람은 다른 식으로 말했다. 아버지 하느님. 이제 진우형제께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위암을 낫게 하여 주십시오. 아버지의 성령으로 치료되게 하여 주옵소서. 뼈에, 살에, 피 관절에 있는 모든 암세포가 사라지게 하여 주옵소서. 저도 콩팥암을 앓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기도의 덕택으로 지금은 완쾌 되었습니다. 진우형제님도 그렇게 되도록 도와 주옵소서.
또 다른 식의 축복도 해주었다. 저는 이 병원 소속의 집사입니다. 저는 간암이었습니다. 모두 죽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기도만으로 병이 나았습니다. 약 한 번 쓰지 않고 그냥 나은 것입니다. 저는 간증을 위해서 전도에 나섰습니다. 하느님을 믿으세요. 병이 낫습니다. 이름과 나이와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으세요. 필요한 때 방문 하겠습니다. 진우는 이름과 나이와 집주소와 전화번호를 적어 주었다. 병이 낫기만 한다면 무엇인들 못하랴.
그런 중에 영진리에서는 진우가 집과 땅을 모두 팔려고 내놓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논과 밭이 수천 평이요. 모두 요지였다. 근래에는 영진리가 해수욕장으로 개발되어서 여름에는 피서객들이 구름처럼 몰려왔다. 또한 경치가 좋다고 소문이 나서 몫이 좋은 곳엔 까페니 모텔이니 하는 것들이 들어섰다. 그래서 땅값도 제법 올랐다. 앞으로 계속 오를 것이라고들 했다. 그래서 땅을 내놓았던 사람들도 모두 거두어들이는 판인데 진우는 몽땅 내놓았다는 것이다. 리장인 이규에게 모든 것을 일임했단다. 값이 얼마든 팔아만 달라는 주문이었다.
“허. 그 사람 정말 죽게 된 모양일세”
“그러게 말이여. 땅에 허기진 사람이 헐값에도 좋다고 땅을 내놓다니”
“땅은 또 그렇다 치고 집과 집터까지 내놓았다니 그건 어떻게 된 것인고?”
“그러게 말일세.”
“아무튼 무슨 사단이 나도 단단히 난 모양이여.”
사람들은 그렇게 쑤군거렸다. 영진리 사람들은 남자나 여자나 모이기만 하면 진우 얘기였다. 사람이 변해도 그렇게 변할 수 없었다. 집과 집터까지 내놓다니. 영진리 사람들은 온통 궁금하기만 했다.
“무슨 소문 못들었남?”
“소문은 무슨.”
“허, 별 이상한 일도 다 있지.”
그렇게 답답해하던 터에 새로운 소문이 돌았다. 진우가 만월산 자락에 있는 만월암 골짜기에 약간의 농토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만월암 암자에는 진우의 누님인 진숙이 비구니로 있었다. 삼간초옥의 허술한 암자였다. 진우에게 혈육이라고는 손위 누님인 진숙이밖에 없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 소가 닭처다 보듯 했다. 젊어서 남편 잃고 혼자된 진숙이 만월암 비구니가 되어 여러 곳에 다니며 탁발을 해서 암자를 개축하기도 하고 수리하기도 했는데 진우는 그런 누님이 자신에게 손을 내밀까봐 외면하고 진숙은 진우가 그런 오해를 할까봐 외면하고 그렇게 되어서 먼발치에서 서로 만나게 되면 먼저 본 쪽이 외면하고 자리를 비키던 처지였다. 그런데 진우가 전 재산을 팔아서 대부분 절간에 시주하고 자신은 그 암자 밑의 골짜기에 천수답 몇 마지기를 마련해서 생계를 꾸린다고 하니 누군들 믿겠는가?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었다. 진우의 처에게서 나온 말이다.
“이상한 업보지요. 남편은 매일 밤이면 꿈인지 생신지 분간하기 어려운 때에 구들짱을 짊어지고 낑낑거리누만요. 여보. 구들짱이 왜 등에서 떨어지지 않지? 당신이 구들짱에 누워 있구먼요. 일어서서 걷자고 하는데 이놈의 구들짱 때문에 발이 떨어지지 않구려. 그렇게 한참을 낑낑거리다가 겨우 잠에서 깨느만요. 그런데 잠결에도 생시처럼 얘기를 주고받는 터이니 어디까지가 꿈이고 어디 까지가 생시인지 분간할 수 없다니까요.”
그런 구들짱의 고통을 겪으며 진우가 결심하게 된 배경에는 만월암의 부처님이 자꾸만 보여서였다. 진숙누님이 비구니로 있는 만월암의 부처가 그에게 나타나서 마음을 비우라고. 마음을 비우라고 자꾸만 그러는 것이다. 땅이 없는 서러움으로 평생토록 땅 욕심을 부려왔는데 늙은 지금에 이르러서야 그것이 모두 허망하다는 것을 깨우쳐 주는 것이다. 허망한 것이니라. 허망한 것이니라. 만월암의 부처님은 그렇게 염불을 외웠다. 진우는 매일 밤 등에 잚어지는 구들짱의 무게 때문에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마침내 결심을 한 것이다. 땅에 대한 평생동안의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기로 결심한 것이다.
진우는 그렇게 하여 영진리 고향을 떠났다.(*)
첫댓글 이 글을 읽은 사람들이 진우의 삶을 통해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들여다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겠습니다.
성경의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말씀이 떠오르는 시간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요즘 시대정신이 잘 녹아 잇는 이야기입니다....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