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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정선아리랑전수회 원문보기 글쓴이: 카페지기
정선은 아리랑의 고장이다. 백두대간이 등줄기를 곧추세운 강원도 땅 곳곳에 정선아리랑 가락을 닮은 소리들이 많지만, 정선 땅에서만큼은 ‘아라리’가 들꽃 향기를 낸다. 정선 땅에서는 누구나 소리꾼이 된다. 깊게 패인 노인들의 주름살도 아라리 가락을 닮았고, 빼곡한 산자락과 그 사이를 에돌아 흐르는 강줄기도 아라리 가락을 닮았다.
투박하고 애처롭게 두메산골 사람들의 삶을 담아내던 정선아리랑은 오랜 세월을 두고 자연스럽게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져갔다. 산을 넘고 물길을 따라 곳곳으로 흘러가 그곳의 문화적인 특성이 더해져 또 다른 이름의 아리랑을 낳았다. 출가한 남녀, 소리꾼, 장돌뱅이, 화전민 등등 사람의 발길은 정선아리랑을 자연스럽게 확산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특히 정선 뗏목의 이동은 정선아리랑을 한강 주변 곳곳에 울려 퍼지게 했다. 정선 아우라지를 출발해 서울의 광나루와 마포나루에 이르는데 보름 남짓 걸리는 한강은 정선아리랑이 흘러가는 거대한 물줄기였다. “황새여울 된꼬까리 떼 무사히 지났으니 만지산 전산옥이야 술상차려 놓게”라는 가사가 생겨날 정도로 이름난 영월읍 거운리의 만지 전산옥이 머물던 주막에서부터 영월 덕포, 단양 꽃거리, 제천 청풍, 충주의 목계 달천, 여주의 이포, 양평의 양수리, 팔당 광나루 뚝섬 서빙고 노량진 마포 등지는 밤만 되면 정선아리랑이 울려 퍼지던 곳이었다. 한 때는 정선에서 내려오는 뗏목의 수가 얼마나 많았는지 먼발치에 뗏목의 모습이라도 보이면 객주 여자들은 언제 배웠는지 정선아리랑을 불러대며 유혹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뗏목은 강변 사람들의 삶을 윤택하게 했고 그 생활경제권 속으로 드나들던 사람들의 몸은 정선아리랑에 쉽게 젖어 들었다. 한반도를 동서로 가르는 남한강을 수놓았던 떼꾼과 나루를 중심으로 형성된 경제권은 정선아리랑이 우리나라 수많은 아리랑과 민요에 영향을 준 주인공이요 터전이 되었다. 우리나라 아리랑의 뿌리가 되는 정선아리랑은 이제 정선에 머문 소리만은 아니다. 북으로는 중국 흑룡강성 까지 뻗어가 ‘정선아리랑’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지거나, 그 곳의 아리랑에 접합되고 접목되어 ‘아리랑련곡’ 등의 기반이 되었고, 남으로는 구미 등지까지 뻗어 ‘구미아리랑’에 그대로 반영되기도 했다. 정선아리랑은 아리랑에서만 아니라 동해안 별신굿에서도 해학적이고 질펀한 가사로 등장해 관객들의 배를 움켜지게 한다. 정선아리랑은 이제 정선을 넘어서 한국인이 머문 공간이면 그 구성지고 애잔하면서도 해학적인 정서로 인해 쉽게 젖어드는 소리로 사랑을 받고 있다.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스스로 넘어 가기에도 벅찰 만큼 느껴지던 고개를 넘기 위해 시름겨워 부르던 정선아리랑은 어느덧 아리랑 아리랑 고개를 잘도 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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