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키친
소설의 주인공은 "나" 이다. "나"는 얼마전에 함께살던 할머니를 여의고, 이제는 마치 버려진 강아지처럼 혼자 남겨진 존재....
소설의 서두는 이렇게 시작된다.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부엌이다"..... 어째서 부엌이어야만 할까 ? 자신의 방도 아니고 거실이나 창고가 아닌 부엌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가 된 이유는 도대체 뭘까....?
부엌은 열린 공간이다. 그리고 새로운 힘을 얻게하는 창조의 공간이다. 주인공은 허탈한 목소리로 이렇게 중얼거린다. "나와 부엌이 남는다. 나 혼자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아주 조금 그나마 나은 사상이라고 생각한다... "
제목인 "키친" 은, 부엌만이 지닌 재생의 의미를 담고있다. 그것은 새로운 힘을 얻어 다시 인생을 시작하려는 모든이들에게 던지는 작가의 메시지가 부엌이라는, 한정되어있으나 어디에나 있는 공간으로부터 출발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말해, 작가는 이제 곧 주인공이 자신의 고통을 딛고 일어설 것임을 소설의 제목을 통해 은연중 독자들에게 알리고 있는 것이다. 소설은, 죽음과 죽음뒤에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있지만, "키친" 의 이야기가 밝게 여겨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살아 남겨진 사람들의 사랑이야기.... 사랑은 늘 새로운 힘이 되고, 행동의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소설 "키친" 에는 세가지 소설이 엮어져 있다. 먼저, 주인격인 "키친" 과, "키친" 의 뒷 이야기, 2부라고 할수있는 "만월", 그리고 전혀 다른 이야기인 "달빛 그림자" 가 마치 하나의 이야기인양 엮어져 있다.
"키친" 과 "만월" 의 주인공은 사쿠라이 미카게라는 젊은 아가씨이다. 부모님은 어려서 돌아가셨고,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손에서 자라오다 얼마전에 할머니를 잃어 고아가 된 아가씨다. 그런 그녀가 우연히 알게된 (할머니의 친구랄수 있는...) 청년의 집으로 들어가서 살게된 이야기는 조금은 황당하다. 하
지만 마치 -길잃은 강아지를 주워들은- 것처럼 들어가 살게된 집이지만, 미카게는 그 집의 부엌을 좋아하게되고, 다나베 유이치라는 청년을 좋아하게 된다.
다나베 유이치와 함께살고있는 가족은 엄마 뿐이다. 그런데 그 엄마라는 인물은 사실 그의 아버지이다. 다나베를 낳은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그의 아버지가 성 전환 수술을 한것.... 그녀 (혹은 그)는 게이바를 운영하고 있으며 다나베와 미카게의 보호자가 된다. "키친"의 이야기는 미카게가 다나베의 집에 들어가 살게되는 이야기를 하고있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그것 뿐이다. 하지만 줄거리보다 "키친"에서 눈에 띄이는 것은 미카게의 마음이 서서히 움직이는 모습이다. 마치 연못속에서 커다란 잉어가 천천히 지나가듯이 말이다.. 그녀의 마음이 서서히 슬픔으로 물드는 모습, 혼자라는 사실에 두려워 하는 모습, 그리고 성전환 수술을 통해 여자가 될수밖엔 없었던 (개인적으로 모든 사람들은 나름의 이유를 통해 행동하게 된다. 아무리 무모한 행동이라고 여겨지는 행동도 사실 개인으로 볼때에는 유성이 떨어지는 것 만큼이나 복잡한 원인과 이유가 있는 법이다...) 에리코씨의 슬픔과 그녀의 이야기가 소설의 형태를 잡고있는 것이다.
두번째 이야기 "만월" 은 에리코씨가 낯선 남자에게 살해당하는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이번에는 다나베가 고아가 된것이다. 다나베는 슬픔을 참지못하고 도망치듯이 도쿄를 떠난다. 미카게는 이미 다나베의 집을 나와서 혼자 독립한 상태였다.
에리코씨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전해들은 미카게는 망설인다. 과연 다나베와 자신의 관계는 무엇이었을까 ? 단순한 룸메이트..(루프 메이트 ?) 였을까 ? 어떤 의미로는 서로를 누구보다도 더 많이 이해하고 알고있는 관계가 아니었을까 ? 연인보다도.... 이런 고민에 싸이게 된 것이다. 미카게는 다나베를 찾아가서 예전처럼 함께 지낸다. 이번에는 고통을 위로해주는 입장에 서서, 지난번과는 정 반대의 입장에서 다나베를 만난 것이다.
미카게는 망설인다. 아직 채 할머니의 죽음이 가져다준 그림자를 벗기도 전에, 에리코씨의 죽음을통해 가지게된 슬픔을 받아들일 용기가 나질 않는 것이다. 아니, 다나베를 사랑하고 있다고 자신에게 솔직할수가 없었던 것이다.
미카게도 역시 여행을 떠난다. 그녀가 일하고있는 직장에서 그녀에게 출장에 동행해 줄것을 의뢰해 왔던 것.... 그녀는 생각할 여지도 없이 승락을 하고 여행을 떠난다. 여행지에서 그녀는 배고픔을 경험하고, 그 배고픔을 순식간에 사라지게 만들어준 음식점을 발견한다. 공교롭게도 다나베 역시 여행지의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서 고생하고 있었던 것... 미카게는 음식을 포장해서 무작정 다나베가 묵고있는 호텔로 향한다.
"키친"이라는 단어의 의미와, 음식물이 주는 소생의 의미는 동일하다. 미카게는 어렵사리 포장한 도시락을 다나베에게 건네주고... 그리고 그는 묵묵히 그것을 먹는다.
이야기는 그것이 전부이다. 이후, 다나베는 동경으로 돌아오고, 미카게의 출장도 하루면 모두 끝나게 되었다. 둘은 전화를 통해 이야기한다. "(다나베) 좋아, 내일 역으로 마중 나갈테니까, 사서 (새우하고 생선회) 손에 들고와. 몇시에 도착한다구 ?" ....
"달빛 이야기"는, 얼마전에 교통사고로 사망한 애인을 생각하는 사츠키의 이야기이다. 그녀는 조그만 고양이 방울이 인연이되어 알게된 히토시를 오랫동안 사귀었고, 사랑하고 있었다. 히토시와는 "모든 낮과 밤, 모든 사건... 첫키스, 말다툼, 개이고 비 오고 눈 오는 날들"을 함께 했던 것이다.
히토시의 죽음은 그녀를 혼란에 빠트린다. 그래서 그녀는 그런 혼란을 잊고자 아침마다 조깅을 하고, 서시히 말라가고 있었다. 조깅을 하는 코스인 강가에서 우라라 라는 신비한 여성을 만난것은 아주 우연한 일이었다. (생각해 보면 바나나씨의 이야기는 우연으로 지탱되는것 같은데... 그런 우연이 전혀 어
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니... 이상한 일..)
우라라는 그녀에게 백년에 한번 일어날만한 중요한 일을 보여준다고 이야기한다. 마치 영화 <고스트>에서 나온 영매 처럼....
히토시에게는 히토시를 꼭 닮은 동생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히라기 이다. 히라기 역시 형을 잃던날 애인을 동시에 잃었다. 그녀의 애인이었던 귀여운 소녀, 유미코가 형과 함께 차에 타고있었던 것이다. 그도 사츠키와 마찬가지로 커다란 슬픔에 싸여있으며, 그런 고통을 잊고자 유미코가 입던 세일러복을..(치마) 입고다닌다.
사츠키와 히라기는 남겨진 사람들이다. 마치 의자뺏기 놀이에서 앉을 의자가 없는, 놀이에 진 사람들처럼 조금은 민망하고 쓸쓸한 표정으로 삶을 이어나가는 사람들이다.
드디어 우라라가 굉장한 일이라고 표현한 일이 일어나는 날, 사츠키는 우라라를 처음만났던 강가로 간다. 그곳에서 그녀는 마치 비틀린 차원과 같은 현상을 경험하게되고, 히토시를 만나게 된다. (동시에 히라기도 유미코의 모습을 보는데, 유미코는 벽장에 걸려있던 그녀의 세일러복을 가져간다...)
소설의 마지막 귀절은 이렇게 적혀있다. "히토시...저 어린시절의 흔적만이, 항상 당신 곁에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몇번이나 몇번이나, 손을 흔들어주어서, 고마워요..."
요시모토 바나나씨가 바라보는 죽음과. 죽음 이후에 남겨진 사람들에 관한 시각은 따스하고도 다정하다. 절대의 고통속에서도 결코 자신이나 타인을 파멸시키지 않는, 아니 서로의 고통을 꺼내보임으로써 --먼 옛날 아메리카의 어느 부족들이 서로를 알아보기 위해서 사용했다는 표식처럼-- 고통의 무게를 줄여나가는 모습은 아름답다못해 숭고한 인상까지 남겨준다...
말의 아름다움이 느껴진다는 것은, 말과 단어들이 가진 배합이 거칠고 촌스럽지 않고, 자연스러우며 새로울때 하는 말이다. 요시모토 바나나씨의 글을 읽으면서 새삼스럽게 소설을 읽는 기쁨이 되살아났다. 그녀의 표현대로 "마음으로 조금씩 빛과 바람이 통하여, 기뻤다"....는 것이다.
행복한 글 읽기...
죽음은 분명 하나의 끔찍한 슬픔이지만, 우리는 모두 그 슬픔을 벗어날수 있는 용기와 힘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인생을 사랑하는 마음과 절대로 이대로 끝낼수는 없다는 생에대한 믿음이다..... 그리고.. 슬픔을 잊게해줄 바로 "당신" 이 곁에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