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제주도를 옛부터 삼다도(三多島)라 함은 주지의 사실이다.
말할 것도 없이 바람, 돌, 여자가 유난히 많다는 말이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과 함께 그 많다는 것 중에서 이제는 '여자'를 넣기는 조금 그렇다. 그럼 재미삼아 돌과 바람을 비교하면 어떨까. 물론 그 둘의 위세는 아직도 여전하다. 그럼에도 굳이 하나만 고르라면 글쎄...
그건 아마도 바로 '돌'이 아닐까. 물론 그건 그렇게 비교로서 단순 우위를 논할 것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안다. 그냥 자신의 느낌이 그렇다는 말이다.
최근 제주에 있는 성곽을 탐방하기 위해 소위 '제주 한달살기'란 걸 했다. 비록 한달 동안이지만 제주엔 돌이 참으로 많다는 걸 새삼 느꼈다. 물론 더불어서 바람 역시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기실 그 바람을 마음으로서 느낀건 사실상 한달 중 10여 일쯤 될까. 거기에 비해 '돌'은 제주에 있었던 한달 내내 '아, 돌이 정말 많다' 라는 느낌을 지운 적이 없다. 물론 이 비교도 순전히 주관적인 것임도 잘 안다. 그렇지만 제주는 산, 바다, 도로, 밭, 동네, 집, 골목, 해변을 가리지 않고 눈이 가는 어느 곳이건 '돌' 이었다. 정말이지 도로를 비롯한 골목길은 물론, 담장, 밭, 해변 등등 에서 가히 탐라(제주도)는 돌의 나라라 할만했다.
왜구 노략의 역사는 참으로 길다.
우리나라 남해안을 중심으로 서해안, 그리고 멀게는 중국, 동남아에까지 그들 노략질의 영역은 길고도 멀다. 물론 그 중 우리나라가 그 폐해의 중심에 있었음은 새삼 말할 나위도없다. 특히 고려 말엽에서부터 조선초기까지 그 역사는 참으로 징하기도 했다. 그런데 당시 왜구의 침략이라하면 주로 남해안, 서해안을 중심으로한 해변 고을로 알고 있지만 사실상 제주를 빼놓아서는 안된다. 그나마 본토 해안 노략질에 대해선 때때로 정부차원의 관군의 편성으로 이런저런 소탕작전을 펼쳐지기도 했지만, 육지에서 한참이나 먼 이곳 제주에서는 그나마도 그림의 떡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들이닥치는 왜구의 침략과 노략질.... 그건 오로지 제주의 백성이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그래서 성(城)쌓는 일이 시작됐다. 바로 왜구의 노략질을 막는 첫 작업이었다. 거기에 삼별초 정부의 대몽항쟁까지 곁들여 제주는 가히 전 해안을 성곽으로 도배를 하다시피 한 역사적 사실이다. 그게 가능했던 것도 물론 돌 때문이다.
그렇게 제주는 '돌'의 나라(?)였다. 그 옛날 한라산의 화산폭발과 이어지는 수백개의 기생화산으로부터 쏟아져 나온 어마어마한 쇄설물이 모두 고만고만한 돌들이 되었다. 돌로 온 천지가 뒤덮인 탐라의 제주였다. 그래서 집을 짓거나 밭을 만들려해도 최우선적으로 돌부터 들어내야 했고, 그리고 들어낸 그 돌들은 들어낸 족족 담장을 만들거나 밭이나 무덤의 경계석으로 쌓아졌다. 이 모든 것이 어떻게보면 축성작업의 기원이라 할만도 했다. 육지에서의 축성작업 처럼 깨고 부수고 다듬고 나르고 할 필요도 없었다. 그냥 주변에 널려진 돌로 담쌓듯 하는 작업은 바로 빠르고도 노련한 축성기술로 이어졌다. 그렇게 해서 해안 해안절벽과 포구 등의 지역을 제외한 해변가는 거의 섬(제주도) 한바퀴 를 돌리다시피 한 길고긴 장성(長城)이 만들어졌으니, 이른바 '환해장성(環海長城)'이다.
그리고 그뿐만이 아니다.
해변가의 환해장성은 우선 일차적으로 적으로부터의 감시와 침략을 막는 방패역활이지만, 그 뒤에서 이를 감시 관리할 군데군데의 지휘통제소가 있어야 했다. 바로 진(鎭)의 구축이다. 그래서 총 둘레 1km 남짓의 9개 진(鎭)이 만들어졌다. 물론 이 진의 성곽 역시 주변에 널려진 돌을 주워다 쌓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걸로 끝이 아니다. 다음에는 바로 연대(煙臺)의 축성이다.
연대(煙臺)는 환해장성과 아홉개의 진성(鎭城) 사이에서 적의 동태를 감시하는 동시에 해안의 경계를 맡는 시설이다. 즉 각 연대별로 이어지는 봉수와 성곽에서의 망대의 역할과 같은 감시를 담당하는 일종의 작은 성곽이 수백개가 만들어졌다. 세월과 함께 다 무너지고 사라졌지만 지금 남아 있는 것만해도 20여곳이 넘는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이를 통치할 각 관아의 읍성이 축성됐다. 이른바 제주읍성, 대정읍성, 정의읍성 등 3개 읍성이 바로 그것이다. 거기에 더해 대몽항쟁의 상징인 항두리성(城), 그리고 일제 이후 혼란기 시절의 비극적인 4.3 사태 당시, 공산 무장대와 경찰 사이에서 자신과 마을을 지켜내기 위한 각 마을의 성(城)까지... 가히 제주는 '돌의 나라' '성곽의 나라'였다.
그러나 이제 세월과 함께 성들은 하나둘씩 무너지고 없어 졌다. 방어의 시대, 항거의 시대가 지나가니 성곽은 그저 불편한 장애물일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어느 누구의 간섭없이 개인과 공공의 이름으로 마구 해체되고 훼손, 방치되었다. 그렇게 백여년...
하지만 보리고개를 넘긴 8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일기 시작한 '우리 것 찾기' ... 그 쓸모없이 버림받던 옛 것들이 언제부터인가 '문화재' '기념물' 이란 이름으로 대접(?)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더불어 기적처럼 남아 있는 몇몇의 제주 성곽도 서서히 살아나기 시작했다.
발굴 복원이란 이름으로 20여개의 환해장성과 9개의 진성들, 그리고 30 여개의 연대들이 속속 복원을 통해 새 얼굴로 자리 매김을 하고 있다. 급작스런 복원으로 옛 성곽의 재현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이런 제 얼굴을 찾아가는 작업은 그저 소중하기만 하다.
성곽의 나라 제주도...
곳곳에 숨어 있는 제주도의 성곽들...
앞으로 지속되는 복원작업을 통해 진정한 자신의 얼굴을 어떻게 보여줄지 주목과 더불어 크게 기대된다.
첫댓글 제주를 신들의 나라라는 이름으로 자주불렀는데 돌의 나라!란 이름도 또한 그렇구나!란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