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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短篇小說 – 2 )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上善若水).
- (동구리 김 영 철) -
20년 전 내가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할 당시 서울에서 제법 크다는 학교에 재직 중일 때의 일이다. 그 때는 초등학교가 아니라 국민학교 시절이니 요즘 말로 말하면 정말 원시 시대인 셈이다.
학교 형편을 원시 시대로 표현한 것은 요즈음의 학교와 비교해서 한 말이다. 돌이켜 보면 그 당시의 학교란 게 정말 형편없는 원시 시대 같다고 표현할 만했다.
요즘의 아이들은 청소를 하는가, 눈물을 짜대며 연기를 피우는 난로를 피우는가? 덥다고해 선풍기를 돌리는가? 귀찮게 도시락을 싸 들고 다니는가? 모든 것이 다 해결돼 있는 이러저러한 편안 세상을 만나 그 때의 사정을 헤아려 20년 전 당시와 비교하면 정말 원시시대와 같은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아이들 뿐이 아니다. 오늘의 학교 아이들 가르치는 교사들 근무여건을 비교해 봐도 그렇다. 20년 전 당시 한 학급의 수용 아동이 많게는 80명, 최소 기본 60명인데. 오늘의 학교 한 학급의 수용 아동수가 서울의 경우 20명 내외이고 시골은 학교 전교생이 서울의 한 학급인원수 보다 적은 학교에 농어촌 마을을 순회하는 스쿨버스가 있어 동쪽 마을에서 두 명. 남쪽에서 한 명 오다가 큰마을에서 네명...이렇게 태워 와서 하루 일과가 끝나면 대 여섯명의 아이들을 싣고 마을 앞에까지 데려다 주는 호화판 학교에서 공부하는 오늘과 그 옛날을 비교하면 실로 격세지금이라도 한참 먼 옛날의 얘기다. 이런 격세지감의 얘기를 하면 요즘 이런 작품의 글을 읽을 청손년들은 실감이 나지 않을 게다.
20년 전 당시 학교에서 한 학년이 끝나 학년 말이 되면 공연히 바쁜 때이다. 반 아이들을 1등부터 차례로 꼴찌까지 70 여 명의 석차를 매겨 12개 반에 골고루 배치 해야하는 일감이다. 그 일 뿐이 아니라 교사들은 근무연수 4년 주기가 차면 또 사방으로 흩어져가는 인사이동이 벌어져 이래저래 바쁜 시기이다.
내가 맡은 5학년 7반의 아이들을 성적순으로 석차를 내 일람표를 만들고 있다. 그 때 복도에 나가 놀던 아이들이 뭔가에 쫓겨 우르르 교실로 몰려들며 아우성이었다. 내가 담임한 옆의 옆 5학년 5반의 명물 강필숙이 우리반 복도로 지나가니, 얼마나 명물이면 사내아이들 조차 아이들 말대로 땡(5땡)반의 깡필숙이 나타나면 슬금슬금 피하고 있으니 참으로 뉴스감이 아닐 수 없다. 이쯤 되면 지금 강필숙에 대해 설명하지 않아도 가히 짐작이 갈 게다. 필숙을 무서워 하는 아이들 말로는 얼마나 파워가 세면 강필숙을 깡필숙이라할까? 그래서 보통 저희들끼리 부를 때엔 ‘얘 얘, 깡이 온다 깡!’ 하면 다 알고 숨부터 죽인다. 필숙이에 대해 이 정도의 정평이 나 있다면 그 아이의 위력을 가히 짐작하리라.
웬만큼 대가 세고 덩치큰 사내 아이들이라 해서 대들어 맞장뜰라 치면, 힘으로야 남자가 이길 수도 있겠지만, 힘으로 제압당해 물러날 깡이 아니다.
그날은 사내 녀석의 힘에 의해 레슬링을 하다 쓰러졌지만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다. 깡을 무서워 하는데는 그녀만이 갖고 있는 독기 때문이다.
한번은 선배 6학년에서 힘깨나 쓰는 선배 똥가리 별명의 사내 녀석과 어찌 어찌하여 맞대결이 이루어져 전교 아이들이 지켜 보는 가운데 운동장 서관 입구에서 격투가 벌어지고 있다.
그 날은 아이들은 물론 지나가던 선생님들 까지 속으로 깡이 오늘 제발 좀 맞좀 봤으면 하는 기대를 갖고 멀찌기서 지켜보고 있던 차다. 격투는 제법 챔피언 답게 멋지게 벌어져 오늘은 어인 일인지 만인이 바라는대로 6학년 똥가리 선배가 배웠다는 태권도 실력으로 좌우 발차기로 툭툭 치더니 발차기 맛을 본 깡이 보기 좋게 앞으로 퍽 쓰러져 KO로 끝나고 모여들었던 아이들은 물론 선생님들 조차 속으로 고소하게 여기고 있던 차다. 그러나 1차 격투에서 패한 필숙은 그것으로 항복한 게 아니다.
종이 울려 공부가 시작되어 아이들은 흩어져 갔지만 필숙은 자기 교실로 들어가지도 않고 6학년 선배 똥가리가 가는 교실로 따라가 어느반 녀석인가를 알아보고 돌아갔다.
그런데 이 깡의 끈기가 지금 또 발동이 걸린 것이다. 하학하고 아이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자 그는 자기 레슬링 상대 선수 똥가리가 나오길 기다려 그가 나오자 뒤따라 가는 것이다. 자기반에 두고 온 책가방이랑 책상위에 펴놓았던 교과서를 챙겨갈 생각도 않고 6학년 똥가리를 따라 가며 그 때부터 제2차전을 펼치는 것이다.
필숙은 상대 똥가리에게 바짝 붙어 가면서 계속 치근덕거리는 것이다. 자꾸 귀찮게 구니 사내녁석이 필숙을 돌아보며 막 화를 내자 전투 핑계가 잘 되었다는 듯 필숙은 맨바닥에 뒹굴면서도 제 2차전을 치를 각오를 단단히 하고 치근덕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서로 으르렁대다 보니 어느덧 갈림길 시멘 벽돌공장 마당까지 다다랐다. 사내 아이이도 각오가 되었던 차 너 정말 귀찮게 굴거냐? 이제 좋은 말로 할 때 돌아가. 까불면 너 이제 죽어. 이렇게 큰 소리를 치는 아이는 이 학교에서 이 녀석말고 있어본 적이 없었다. 필숙은 잘 되었다고 속으로 각오를 다지며 그래 해 볼래? 낮에 학교에서는 1차 내가 졌지만 너 같은 놈은 오늘 죽을 줄 알아. 이렇게 약을 올리니 사내녀석 역시 기가 죽지 않아 그래 어디 해 볼래? 하더니 태권도 도장에 다닌다는 이 녀석이 먼저 태권도 돌려치기로 몸을 한바퀴돌려 됫발차기로 필숙의 뒤통수를 퍽 하고 올려 차자 아무리 센 필숙이도 힘없이 앞으로 억 하고 꺼꾸러지고 밀았다.
둘러섰던 아이들은 속으로 잘 한다고 박수를 치고 싶었으나 필숙의 눈에 찍히는 날엔 혼날 것을 두려워 그냥 속으로 고소해하며 응원을 보내고 있다. 그것으로 끝난게 아니다. 쓰러져 있던 필숙이 몸을 일으키다가 잽사게 사내아이 가랑이를 잡더니 번적들어 쓰러뜨리니 그 녀석도 이때만은 필숙에게 단단히 당해 역습을 받고 말았다.
필숙은 이때다 싶어 그 아이 가랑이를 잡고 시멘 벽돌 공장 마당을 질질 끌며 돌고 있는게 아닌가? 그녀가 얼마나 센지 사내녀석은 일어날 수조차 없이 거꾸로 끌려다니고 있다. 머리와 등허리가 까지고 말이 아니었다. 사내녀석은 하도 아파 그만, 그만 항복, 항복하고 아무리 소리쳐도 멈추지 않고 벽돌공장 벽돌쌓는 마당을 빙빙 돌더니 이제 멈추는 가 싶더니 곁에 있던 깨진 반토막 벽돌을 집어들어 머리통을 내리치려고 번쩍 들때 둘서서 구경하던 아이들이 이러다가 정말 살인사건이 나겠다 싶어 한꺼번에 말리려고 대들어 필숙을 떼밀자 벽돌을 내동댕이 치면서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그 때 누가 먼저였는지. 이제 됐어 그만해. 하면서 필숙을 달래니 그녀도 이쯤이면 내 실력을 너희들 알겠지... 하는 표정으로 돌아보더니 현장을 떠났다. 필숙의 힘이 얼마나 세었던지 정말 사내 아이가 녹초가 되었다. 그녀는 키도 크고 체격도 탄탄하고 힘도 세어 전학년 과목 성적이 좋아야 [양] 아니면 그 외 모두가 [가] 인데 유일하게 체육과목 하나만 [미]를 받은 것만 보아도 필숙의 파워를 알만했다.
와 – 겁난다. 이 기집애 정말 살인사건 나겠어? 하면서 친구들이 똥가리의 옷을 털어주며 하는 말이다.
그러나 필숙이의 특기는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다. 다음날 자기반 공부는 제쳐 놓고 6학년 똥가리를 찾아 그의 교실 창 너머로 자기 적수 녀석을 뚫어지게 쏘아보며 공부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담임교사가 아무리 나와서 말리고 야단치며 쫓아도 막무가내다. 필숙이라면 전교가 다 아는 명물이라 6학년 담임도 더 이상 뭐라고 야단을 칠수도 없어 그냥 내버려두는 수밖에 없었다. 자기반 담임 선새님 역시 수업 중인데 들어오던 말던 개의치 않고 내버려 두고 있다.
특히 필숙은 이미 작년에 사내 아이도 아닌 계집아이로서는 드물게 소년원(소년 범죄자 수용시설)에 다녀온 전력이 있는 불량 아동이다. 소년원에 다녀 오고도 툭하면 이 삼일씩 결석하고 지나다 보면 파풀소에서 아이를 찾아가라고 연락이 오곤 했다. 이유는 물어보나 마다다. 이런 일이 다반사여서 나도 놀라지 않고 평상시처럼 대하고 지내고 있다.
이런 필숙이가 지금까지 보았던 폭력으로서의 불량뿐이 아니라 약한 아이들 금품을 빼앗기도 하고 수퍼마켓에서 사탕아나 과자를 훔치다 걸리기도 해 손버릇이 나빠 노상 문제를 일으키고 친구들이 옷을 벗어놓고 체육하러 나가면 언제 들어왔던지 미리 알아둔 번호 열쇠를 열고 슬그머니 들어와 친구들의 호주머니와 가방을 뒤져 금품을 귀신같이 훔쳐나가 밖에 울타리 새에 감추어두었다가 챙겨기곤 하하여 많은 아이들의 눈에 들키기도 하여 혼이 난 경우가 한 두번이 아니어서 소년원 신세를 지기도 했던 것이다.
소년원에 입소하면 학교에서는 한 시름놓고 조용히 지내다보면 어느새 수용기간이 끝나 되돌아와서는 또 골치를 썩이곤 했다.
이처럼 전교가 다 아는 문제아를 맡겠다고 나서는 선생님은 없다. 그러나 학년말이면 너나없이 반편성에따라 이리저리 같은 반 친구들이 헤어져 12개 반으로 흩어져갔다. 새학기가 되면 새로 부임하는 선생님들이 오고 학년 담임 배치가 끝나면 동학년회의가 시작되어 선생님들끼리 그룹이 되어 1년동안 가족같이 지내게된다. 나는 고학년을 이미 맡았던 관계로 요번에는 좀 편한 저학년을 희망했었지만 어떻게 된 노릇인지 더 높은 6학년에 배정되었다. 이렇게 학년 초 선생님들조차 학년 배치 발표를 하게 되면 여기저기서 불평불만이 쏟아지게 마련이다. 그러다가 하루 이틀 지나면 도로 가라앉아 정상 수업이 시작되곤 했다.
그날 우리 6학년 담임을 맡은 열 두분 선생님은 학년주임(지금은 학년부장) 선생님을 중심으로 동학년회의가 진행되어 서로 통성명을 나누며 즐거운 한 해가 되자고 다짐을 하게 된다. 이어서 지난 학년말 석차별로 나누어 섞어 놓은 12개 반 아이들 배정일람표를 내 놓고 누가 1반을 맡느냐, 12반을 맏느냐를 가리기 위해 대부분의 학교에서 하는대로 제비뽑기를 한다.
이윽고 제비 뽑기에 의해 각자 맡은 일라표를 받아 죽 내리 훑어보며 마음속으로 기도 했다. 오...주여 주님의 뜻대로 하옵소서. 이왕이면 이 독배갸 지나가가 하옵소서....아멘! 하고 나 한테 배정돼 온 반 배정일람표를 죽 내리 훑었다. 이렇게 기도하며 성적 일람표의 맨 마지막 이름을 보니...
‘아, 아뿔싸! 오늘의 내 기도가 이렇게 빗나갈 수가!’
나는 이미 각오하고 있었던 터라 크게 놀라진 않았으나 이왕이면 이번엔 좀 면했으면 하고 통상적인 기도를 마친 후 안심하고 있었는데 하느님은 어찌 제 기도에 응답 하지 않았을까? 나는 속으로 옛날 자조적인 푸념 말마따나 케세라세라(될대로 되어라) 하고 담담히 받아들이고 다른 이의 표정을 재미있다는 듯 살폈다.
어쩌면 모두가 교육자적인 양심은 팽개치고 이기적인 맘으로 ‘제발 폭탄 돌리기’게임할 때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전입교사를 제외한 작년에 함께 했던 동료교사들은 한결같이 안도하는 눈빛을 감지할 수 있었다. 어떤 이는 아이들 처럼 대 놓고 반 편성 일람표를 흔들며 좋아하는 시늉을 하는 이도 있었다
한참 일람표를 훑어보고난 6학년 담임 맡은 동학년 교사들은 비로서 그제야 필숙이가 어느반에 꽂혔는가가 궁금해 서로 남의 반 일람표에 눈길을 돌리며 거기 있어? 어디야? 하며 아무것도 모르는 금년에 전입한 교사를 제외한 모두는 그것이 궁금했다. 뭘 그리 살펴? 봐! 여기있어! 하면서 내 일람표를 펴 보였더니, 아니 선생님은 어쩜 표정 하나 없이 그리도 담담하셔? 이렇게 속으로는 다행이라 안도하면서 겉으로는 위로 하는 척 말 한마디를 던졌다. 나는 이미 ‘케세라세라!’ 하면서 받아들일 각오가 돼 있었던 터라, 이것도 다 내 복이야 하곤 입을 닫고 말았다.
그렇게 해서 학년초 나는 그들을 위해 나 혼자 독배를 마시고 새학기가 시작되었다. 아이들과 첫대면때 새교실로 입실하여 내 이름 석자를 큼지막하게 써 놓고 아이들 눈을 바라보았다. 작년에 함께 했던 아이들은 내가 교실로 들어서면서부터 싱글싱글하면서 기쁨을 감추지 못해 했으나 다른 애들과는 담담히 맞이해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필숙은 남자애들보다 키가 훌쩍 큰 체격이라 스스로 창가의 맨 끝에 담담히 앉아 있었다. 작년에도 필숙에 대해서는 교육당국이나 학교에서 조차 포기하고 그럭저럭 끌고 나가면서 제발 사고만 없기를 바라는 것이 학교나 담임교사의 교육지도 방침이었다.
필숙에 대해서는 문제학생이라 나는 학년 초 생활지도차 1차 가정방문을 했다. 필숙의 부모는 필숙이3 학년때 교통사고로 양친이 모두 세상뜨고 할머니가 키우고 있었다. 할머니역시 혼자서 손녀딸 하나 키우며 참으로 어려운 살림을 꾸려나가고 있었다. 정부에서 나오는 기초생계지원금이라 해서 2인 가족에게 지급하는 것으로는 겨우 입에 풀칠을 하며 할머니가 콩나물, 도라지 등을 함지에 담아 지하철 통로 길가에 앉아 몇 푼을 벌어 근근히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이런 결손가정에서 사는 필숙이 나오나 들어오나 외톨이일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내 팽개친 교육 외의 아동으로 그렇게 만난 필숙은 나를 봐주기라도 하듯 특별한 말썽을 일으키지 않고 여느 때와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보란 듯이 문제가 터졌다. 체육을 마치고 들어오니 필통에 넣어둔 당시로서는 꽤 큰 돈 1만원 권이 없어졌다고 닌리를 쳐댔다. 운동화 사라고 아빠가 주신돈이 없어졌다고 아이는 엎드려 울고 있었다. 돈 잃어버린 아이는 호주머니와 가방 색상속을 아무리 뒤져도 돈은 나오지 앟았다. 심지어 신발주머니 속까지 훑었지만 끝내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그날은 공부가 끝나 아이들이 다 하학하고 그날이 마침 월말이라 출석 통계를 내려고 출석부를 열었더니 출석부 갈피 새에 웬 쪽지가 들어있어 무심이 들고보니 누가 썼는지 연필 글씨로 ‘ 선생님 청소도구함을 열어보세요. ’이렇게 본인 이름도 없이 한 줄로 씌어있었다.
반 아이들이 다 하학하고 아무도 없을 때 쪽지 글 대로 청소함 안팎을 살펴 만원권 지폐 한 장을 찾아냈다. 그 때까지 내가 교실을 비우지 않고 책상에 앉아 잡무처리를 하고 있어 돈을 꺼내 갈 틈이 없어 내가 먼저 챙길 수가 있었다. 아마도 필숙이 훔쳐낸 후 숨기는 것을 본 아이가 가만히 청소함에 숨기는 것을 보고 몰래 쪽지 편지를 써 넣은 모양이다.
내가 없을 때 출석부 속에 넣어두었던 덕에 잃어버린 만 원권을 찾아냈다. 아마도 필숙인 교실이 비었을 때를 노려 빼내 가려던 차 선생님이 먼저 챙겨내니 기회를 놓치고 만 것이다. 다음날 아침, 어제 잃어버린 돈을 너희들이 다 하교 하고 교실에 떨어진 것을 내가 찾았다. 고 말하며 임자 아이에게 전했다, 아마도 필숙으로서는 선생님이 곧이 곧대로 청소함에 숨긴 것을 찾아냈다는 말을 하지 않아 안도 했으리라.
아무것도 모르는 세월은 빨라 벌써 2 학기의 마지막 겨울방학을 앞둔 12월 첫주가 다가 왔다. 이제 이 방학이 끝나고 2월만 지나면 이 아이들과 이별이다. 아이들과 헤어지는 서운 함보다 필숙이를 졸업시켜 떠나 보낸다는 홀가분한 기쁨이 더 앞섰다는 것이 솔직한 내 심정이다. 이렇게 위기의 남은 시간을 보낼 즈음 또 문제가 터졌다. 남자녀석 치고는 다부지게 생겼지만 좀체 말이 없는 창수가 필숙을 잘 못 건드려 둘이 맞 붙어 싸움이 벌어져 창수도 사내의 오기로 호기있게 맞붙어 일약 격투가 벌어졌다. 그러나 창수는 덩치큰 필숙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필숙이 있는 힘을 다해 떼미는 힘에 쓰려지는 순간 창수녀석을 발길로 한방먹이니 정통으로 콧등을 가격 당해 창수는 바로 코피가 터지면서 억! 하더니 쓰려졌다. 그는 정말 정통으로 안면을 얻어맞고 코피를 흘리며 축 늘어졌다. 그제야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들며 코를 움켜쥔 친구를 일으켰더니 너무도 억울하게 당한 복수심으로 피묻은 주먹을 불끝쥐고 필숙에게 돌진하니 피묻은 창수와 맞붙기 싫어 필숙이 이리저리 피하자 그날의 격투는 코피 터진 녀석이 판정패로 끝났다. 그러나 그걸로 끝난게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들이 다 하교하고 내가 교무실로 종례하러 갈 즈음 집에 갔던 창수가 콧등에 하야 거즈와 반창고를 붙인 채 엄마를 앞세워 교실로 들어섰다. 창수의 어머니는 교실로 들어서기 바쁘게 속사포로 쏟아냈다
아니 계집아이가 얼마나 세면 우리 창수를 이렇게 떡을 만들어 놓았지요? 그래 ,선생님은 반 아이들이 전쟁을 치르는데 뭘 하고 계셨어요? 아이가 이렇게 얼굴이 묵사발이 되도록... 이를 어떻게 할 거요? 하면서 퍼부어댔다. 나는 당황해 자초지정의 사과를 할 틈을 주지고 않고 연속으로 퍼붓는 것이다. 교실 한쪽 구석에 무릎 꿇고 앉아 벌 받는 필숙이도 속으로 내가 너무 심했나? 하면서 미안스러워 더욱 고개를 떨구고 듣고 앉았다. 그렇게 마구 떠들어대는 창수 엄마를 말릴 틈이 없어 다 쏟아내기를 기다려 어이구 창수 어머니 고정하세요. 겨우 이 한마디를 내 뱉고 조용한 어조로 어머님. 정말 미안합니다. 다 담임인 저의 잘 못입니다. 아이들이 많다보니 일일이 다 살필 새 없이 이미 이렇게 벌어지고 보니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나는 그제서야 벌 받고 있는 필숙이를 불러 앞에 세우고 어머니 고정하시고 잘 이해해 주십시오. 바로 이 애하고 창수와 맞붙어 일어난 아이들 싸움입니다. 이 애도 잘못을 시인하고 여태 집에도 못 가고 이렇게 벌을 받고 있답니다. 용서하십시오., 너 필숙아! 창수 어머니께 잘 못했다고 어서 빌어! 다행이 필숙이 반성하는 태도로 고개를 숙여 인사하며 들릴 듯 말 듯 잘못했습니다. 하는 옹알이 같은 소리를 했다. 창수 모녀가 돌아가자 곧 퇴근 종례 차임벨이 울렸다. 필숙이를 좀 더 타이를 시간도 없어 너 제 자리에 가서 다시 반성하고 있어. 내가 돌아올 때 까지...
그러고 종례에 참석해 그날의 행사 반성과 내일의 기획등을 발표하고 직원 종례는 끝났다. 다들 퇴근하는 직원들과 함께 교무실을 나온 나는 다시 내 반으로 향했다. 해가 짧아 벌써 어둑하니 땅거미가 내린 교실문을 드드륵 열고 들어섰더니 필숙은 그 때까지 꿇어 앉아 있다가 내 눈과 마주치자 다시 고개를 떨구고 앉았다 필숙아, 이리 와! 이렇게 불러놓고 나는 심호흡을 하며 생각했다.
아 ~ 이 아이를 어떻게 한담? 이제 방학이 끝나면 내 앞을 떠난다. 난 필숙을 1년 동안 맡았으면서 뭘 가르치고 어떻게 선도했나? 아 불쌍한 이 필숙을 내 곁을 떠나면 또 누가 맡아 선도하나? 이렇게 자책하면서 다가온 필숙의 어깨를 잡아 끌어당겨 내 품에 꼭 품으며 하느님, 저는 이렇게 무능한 교육자입니다. 이 아이 하나를 바로 잡지도 못하고 사랑을 쏟아 선도하지도 못해 어떻게 해야할지 지금도 도무지 방향을 잡을 길이 없습니다. 1년동안 이 아이에게 내린 것은 야단치고 벌주고 한 것 밖에 없습니다. 이제 한달 후면 내 품을 떠나는 필숙에게 축복을 내려주옵소서. 이렇게 마음속으로 회개하며 필숙을 다시 힘주어 꼭 껴안으며 나와 키가 맞먹는 필숙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다시금 따듯이 포옹했다. 그리고 껴안은 필숙의 등을 토닥이며 진정 회개하는 맘으로 쓰다듬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필숙은 어깨를 들먹거리며 훌쩍훌쩍 울고 있는게 아닌가? 아... 나는, 나도 모르게 깜짝 놀라 필숙의 얼굴을 들고 마주 바라보며 그의 눈물을 닦기 시작했다
이윽고 팔을 풀고 필숙의 손을 잡은 나는 교실의 앞뒤를 살핀뒤 번호 열쇠로 문을 잠그고 둘이 함게 교문을 나섰다. 12월의 한 가운데 동짇달의 해는 짧아 거리에는 벌써 여기저기 꽃이 피고 네온은 야단스레 반짝이는 거리를 손잡고 걷는 두 사제는 생각지 않게 흐뭇한 기분에 사로잡혀있다.
나는 걷다가 김이 무럭무럭 뿜어내는 순대국집 문을 열고 필숙을 앞세워 들어섰다. 싸늘한 날씨로 얼었던 몸이 뜨뜻하니 녹는 기분이다. 둘은 뜨거운 순대국으로 몸을 녹이고 마주보며 미소를 흘렸다. 필숙아 많이 먹어. 한 그릇 더 줄까? 나는 주모를 불러 순대와 머리고기를 한접시 시켰다. 필숙의 국에 순대고기를 듬뿍 집어 넣었다.
나로로서는 하찮은 순대국이지만 필숙에게는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어본 기억이 없다. 양친이 살아계셨을 때도 가세가 어려워 외식은 먼 나라의 얘기지 이렇게 밖에 나가 맛있는 고기와 순대를 먹어본 적이 없어 새삼 꿈만 같았다.
그해 학년도 저물어 방학도 끝나고 졸업식을 앞두고 있다. 그 때 당시에는 중 고등하교는 학교 서열 파괴 정책으로 무시험 추첨으로 배정될 시기었다. 필숙이는 집 가까운 B중각교에 배정되었다. 이제 내일 모래 졸업식을 마치면 일 년 동안 내곁에 머물렀던 제자 아이들은 다 배정받은 중학교로 떠난다. 이 아이들을 떠나 보낼 생각을 하니 지난 일년동안 정들었던 모든 추억이 한꺼번에 떠 올라 공연히 내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다. 특히 말썽꾸러기로 전교 모든 선생님이 기피하는 필숙이와는 생전에 무슨 인연으로 한해 동안 정이들었는지 다시금 생각하면 정말 감사할 뿐이다. 지난 겨울 방학 전 창수와의 격투가 끝나고 함께 손잡고 나가면서 이루어진 우리 둘 사이의 변화를 다시금 생각하면 정말 뜻하지 않은 기적이 내린 셈이다. 실로 하느님의 축복이었다고 감사했다. 그날 이후 짧은 기간이지만 필숙의 변화를 본 여러 선생님들의 찬사는 한결같이 아니 선생님은 무슨 재주로 그 돌덩이 같은 필숙을 녹여냈어요? 이런 찬사의 말을 듣는데는 내가 잘한 것보다 바로 필숙의 인성 변화를 느낀 학교 선생님들의 찬사다.
생전 필숙이의 인사를 받아본 적이 없는 다른 반 선생님들, 필숙의 공손해진 생활태도, 급우들과의 화합으로 말썽을 빚지 않는 모범된 생활태도 등 필숙이의 변화는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불과 한겨울 방학을 마치고 시작된 2월의 한 보름 동안의 필숙의 학교 생활은 실로 모범생만이 할 수 있는 반듯한 모범 생활이었다.
아...나도 놀랐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필숙의 생활 태도가 변한 것은 단순한 순대국 한그릇 만의 고마움이 아닌 것같다. 나도 정말 놀랐다. 창수와 크게 다툰 날 정말 나는 너무너무 놀라 어떻게 벌을 주느냐가 고민하던 때 어머니가 들이 닥치고 어떻게 그 순간을 넘겼는지를 지금도 확실한 생각이 떠 오르지 않는다.
창수 어머니가 떠나고 종례까지 마치고 어둑한 교실로 들어섰을 때 정말 정답이 없었다. 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묘한 방법이 없어 무조껀 끌어안고 다독이는 수밖에 없어 그렇게 껴안고 시간을 보냈던 것뿐이다. 그 때 그 결과가 필숙의 눈물로 보답이 왔던 것이다. 아 그렇다. 연전에 서울교육원 교원연수 때 들은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上善若水)’가 떠 올라 결과야 어찌 되었건 무조건 내가 베풀어야 겠다는 생각으로 필숙을 진심으로 내 품에 품었던 것이 정답이 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필숙의 변화의 정답은 그것 밖에 없었다. 상선약수(上善若水)! - 정말 오묘한 뜻을 함축하고 있는 중국의 학자 노자 철학의 핵심이다.
사실 이 교훈은 –일찍이 중국의 학자 노자(老子)는 물의 성질에 찬사를 아끼지 않고 삶의 지표로 삼을 것을 주장했다. 노자는 「가장 좋은 선은 물과 같다(上善若水)」고 하여 물 흐르듯 하는 삶을 권유했다. 물 흐르듯이 살아간다는 것은 곧 부드러운 삶이다. 이 세상에 물처럼 부드럽고 약한 게 없지만 단단하고 강한 것을 이기는 데는 물만큼 강한 것이 없다고 본 것이다.
다시 말해 ‘가장 부드러운 것이 가장 강하다’ 는 뜻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무른 물이 바위를 쪼개고 물로 다이아몬드 같은 강한것도 자르고 강철을 매끈하게 잘라내는 물칼이 있다는 것을 알리라. -
아. 그렇다. 내가 뭐 얼마나 장한 일을 했다고 상선약수의 진리를 필숙에게 적용 한 것은 아니어도 필숙이 특별한 인위적인 작용없이 이 지음 180도 생활태도가 바뀐 것은 나도 알수 없지만 굳이 이유를 댄다면 상선약수처럼 부드럽게 접근한, 그간의 나도 모르게 적용된 베품의 결과가 아닐까? 졸업하는 학년까지 따져 국민학교 6년동안 단 한번도 담임이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따뜻한 말한마디를 들어보지 못하고 노상 강하게 윽박지르는 체벌을 받으며 6년을 보낸 필숙으로서는 최근의 나의 무심한 부드러움(水)이 필숙의 굳은 마음(石)을 녹이게 한 것이 아닌가 싶다. 다시 말해 노자의 상선약수처럼 부드러움이 깡의 마음을 이긴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드디어 졸업식도 끝났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이별의 노래가 퍼지자 예전같이 울음바다가 되지는 않았지만 여기 저기서 숙연하게 고개를 숙이고 앉아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도 콧등이 시큰함을 느꼈다. 그러면서 필숙이 쪽을 바라보니 의외로 얌전히 고개를 숙이고 처연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필숙의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이제 겨우 제 철이 들려는데 내 곁은 떠나면 어디 가서 정착할까? 멀리 타향으로 떠나보내는 부모의 심정으로...
다들 부모님들이나 가족들의 축하 꽃다발을 받고 기념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 하는 모습을 뒤로한 채 나는 내 교실로 들어와 아이들이 앉았던 책상을 1분단부터 차례로 훑고 마음의 작별을 고하고 있을 때 필숙이 들어섰다. 필숙은 곧장 내게로 다가 오더니 곧바로 내 품에 안겼다. 그리고 고개를 내 품에 박곤 한참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내가 입을 떼기도 전에 필숙이 먼저 입을 열었다. 선생님. 정말 고마워요. 꼭 우리 엄마 같아요. 이렇게 한마디 하고는 다시 고개를 내 품에 박더니 흐느끼는 느낌이 났다. 나는 얘가 고개를 들때까지 기다려주었다. 한참 만에 눈두덩이 불그레하니 상기된 채 나를 한참 쳐다보고 섰다. 나는 얼른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아. 필숙아 잘 했어. 6년동안 고생하고 이제 새사람이 되어 새 출발하는 너의 앞길에 행운히 함께 하며 크게 성공할 거야. 필숙이도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 귀를 알아채고 만면에 기쁨을 감추지 못해 했다. 나는 얼른 핸드백을 열어 당시로서는 가장 큰 지전 만원권 한 장을 꺼내 필숙이 손에 억지로 쥐어 주었더니 한사코 빼려고 해서 다시 힘주어 꼭 쥐어주었다. 그제서야 필숙이 고개를 숙이면서 감사합니다.하고 받아들였다.
이정도도 한달 전에는 기대하지 못했던 필숙의 변화이다. 아...나도 놀랐다. 한달 새 그렇게 돌덩이 갔던 필숙이 마음이 상선약수의 부드러운 물로 유연하게 변하다니...?
우린 그동안 멀쩡한 필숙이를 공연히 범죄자처럼 경원시하며 멀리 하지 않았던가? 학교의 모든 선생님과 주변의 친구들이 그를 따돌리며 차가운 눈초리로 소년원에 다녀온 전과자처럼 대하면서 필숙이로 하며금 안으로 자꾸자꾸 깡으로 만들어 주지 않았나 하고 자책했다.. 과연 선견지명을 타고 난 노자의 말마따나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만 오늘이다. 과연 상선약수는 세상의 가장 선은 물이다. 암, 물이지...!
필숙이 중학교에 가서는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고 정상적인 아이들과 섞여 공부를 잘 한다는 소식을 가끔 전해 듣고 있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신록의 계절 5월이 오고 5월 15일 스승의 날 오후 교복을 단정히 차려 입어 번듯한 여중학생 필숙이 교실로 들어섰다.
아 어쩜! 오래전 헤어졌다 만난 내 피붙이 보다 더 반가운 필숙이가 스승의 날을 축하 한다면서 빨간 생화 카네이션 한송이를 쑥 내밀며 생글생글 웃고 있다. 아, 어쩜 이리도 예쁠까? 정말 TV에서 가끔 보았던 학원 드러마의 예쁜 여학생 탤런트 보다 더 예쁜 필숙이다. 내가 그 동안 보아왔던 불량 필숙이 아니다. 정말 이렇게 예쁜 필숙이 나타날 줄이야. 그렇게 속을 썩이던 필숙이가 스승의 은혜를 축하해 오다니! 아 ~ 고맙구나. 네가 변하니 온세상이 환하게 변한 것 같구나! 필숙아! 아. 필숙아! 넌 반드시 하늘의 축복을 받을 게다! (끝) ......2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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