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소리 - 부전시장
(부전시장)
부전시장에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오후 햇살 바른 할머니의 반평 상점 터에 쑥,
냉이, 미나리, 시금치와 함께 봄이 온다. 몽땅 팔아야 오 만원 남짓, 할머니의 주머니
가 푸짐해 진다. 단골에게 덤이 더 주어진다. 세상일에 넉넉하다. 내일은 손주 녀석의
용돈이 푸짐하다.
할머니 상점에는 ‘달래 천원’ ‘파 천원’이라고 네모난 종이를 세로로 세워 두고 있다.
‘청사포생미역’도 천원어치 판다. 때때로 깎아 달라 실랑이를 한다. 세월만큼이나 주름
깊은 할머니는 덤으로 검정 비닐봉지에 한줌 더 담는다. 봄을 담는 할머니나 봄을 사가
는 아주머니 얼굴에 봄볕이 내린다.
가끔 둘러보는 부전시장 골목길은 어렵다. 이 골목 같고 저 골목 같다. 수육골목에 가
면 수육 냄새가 나고 생선 골목은 생선 냄새가 난다. 약재상 골목은 한약 냄새가 난다.
한 집 건너 닥지닥지 붙은 골목이라도 나름대로 번지가 있다. 물건을 보고 주머니를 센
다. 아주머니 얼굴도 흘깃 본다. 부전시장 골목길은 눈이 바쁘고 마음이 바쁘다.
부전시장에 사고파는 사람이 많게 된 까닭은 부전역이 있기 때문. 1932년에 문을 연
부전역은 동해남부선의 종착역이다. 동해안의 갯마을 송정, 기장, 일광에서 갓 건져 올
린 싱싱한 해산물이나 나물을 가득 담아 기차를 타고 온다. 발 느린 통일호는 ‘달맞이
고개’ 길이 트일 때까지 부산으로 오는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1965년 건축한 구 부전역)
기차가 도착하면 바쁘다. 시끌벅적하다. 오백원을 두고 실랑이를 하고 덤이 오고 간
다. 한참 북새통을 치고 나면 새벽 일찍 먹은 배가 고프다. 선지국밥이나 시래기 국밥,
보리밥집에서 끼니를 때운다. 시장 군데군데 식당이 많은 이유이다. 다시 집으로 갈
기차를 기다린다. 구포쪽으로 저녁 석양이 붉다.
부전시장은 1974년 지금의 건물을 짓기까지 대개는 가건물의 좌판이나 노점이다. 대
형할인점이 생기기 전에는 사람에 떠밀려 다닐 정도로 활기찼다. 억척스러운 아주머
니는 아들과 딸을 키우고 대학에 보낸다. 무릎과 팔이 아파도 내색할 시간조차 없다.
진통제 한 알이면 참는다. 이제 할머니가 되어 병원갈 시간이 더 많다.
사람으로 북새통이었던 부전시장 역시 대형할인점에 상권이 밀린다. 주차장 부족, 원
스텝 구매 등이 이유이다. 편하게 길들여진 습관 때문에 발길을 돌린다. 최근에 건물
리모델링, 주차장 확보, 천장 아케이드 설치, 상품권 발행으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을
하고 있다. 옛 명성을 찾고 있다. 가끔 가는 시장에서 자주 가는 시장으로 바뀌어 간다.
(부전시장 -쑥)
일상에 지칠 때나 게으를 때 가끔 부전시장에 간다. 부전시장은 생미역처럼 싱싱하
다. 팔딱팔딱 뛰는 갓 잡은 생선이다. 겨울바람이 얼은 귓가를 스치는 새벽부터 치열하
게 사는 억척스러운 사람을 만난다. 내 마음도 부전시장이 된다. 부전시장에 봄이 오는
소리는 시끌벅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