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주님의 이름으로 김세중 박춘규 선교사 가정이 제자세움과 해외 선교 회원님들께 인사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2012년 4월 18일 마닐라에 소재한 교회로 그 곳 담임 목사님의 건강이 좋지 않다고 하여 지인의 소개로 갑자기 선교를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목사님 가정과 함께 생활하며 현지 사역과 홈스테이를 배우면서 약 삼개월간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건강이 좋지 않으시던 목사님의 건강은 호전되었으며 미국에서 20여년을 생활하신 다른 목사님이 교회에 오시게 되어 더 이상 호의적인 대우를 받지 못하게 되었으며 결국은 쫓겨나다시피 나오게 되었습니다.
가진것 없고 갈 곳 없던 저희는 기도 중에 김영규 선교사님이 떠올라 바기오로 향하였습니다.
바기오 지역의 상황과 김선교사님의 선교에 관한 견해를 들으면서 약 2주간을 머물게 되었습니다. 김영규 선교사님께서는 저희가 그 곳에 머물러 동역하기를 원하셨으나 아내 박춘규사모의 건강이 좋지 않은 상황이었고 저의 사역의 방향과는 다른 것 같아서 바기오에서 두시간 정도 떨어진 바왕이라는 곳으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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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왕에서 연세가 67세 되신 선교사님 부부가 사시는 곳 옆에 월세방을 얻어 저희의 사역지를 놓고 기도하고 있던중 선교사님의 교회로 스무 명정도의 학생들이 3박4일 일정으로 오게 되어서 건강이 좋지 않으신 사모님을 도와서 저희가 모든 식사 준비를 맡아서 하게 되었습니다. 바왕은 산페르난도와 가까운곳이라 유준수 선교사님과도 만남을 갖게 되었으며 노선교사님(김인식선교사)과 유준수 선교사님과는 지금껏 계속 협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일 후에 하나님께서 한국의 어떤 여목사님을 통하여 200만원을 주셔서 해발 1300m 이상인 바기오 캠프 7이라는 곳에서 자그마한 집을 월세 40만원에 얻어 2012년 9월에 개척사역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바왕에서 올라올 때 약 일주일 정도 아무것도 먹지 못하던 아내는 호흡 곤란이 자주 오면서 힘들어 하고 있던 중이어서 두려운 마음으로 첫발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아내는 4년전 갑작스런 새벽 복통으로 아파하였고 그 때 제가 아내의 배를 만져보니 위의 모양을 따라 위가 이미 돌덩어리처럼 굳어져 있었습니다.아내는 음식의 양이 점점 줄어들고 설사하고 구토하고 온 몸의 통증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저는 아내와 함께 신학교를 다니면서 하금식 목사님의 예전교회에서 전도사로 사역하던 중이었는데 이러한 상황을 목사님께 말씀드리고 아내는 운영하던 미용실을 문을 닫고,저는 식사와 병간호 등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하기가 어려워 전주에서 부모님 계시는 여수로 이사하였습니다.
7,8월의 무더위 속에서 아내는 내복을 두겹으로 입고 겨울 옷을 모두 걸쳐 입고 코트를 입은 채로도 추워서 힘들어 하였습니다.
시체같은 아내를 차에 앉히고 밤마다 인적없는 산으로 향하였으며 아버님 1톤 트럭 뒤에 비닐을 치고 그 안에 스티로폴을 깔고 아내는 누운채로 우리는 기도하였습니다.
월요일과 화요일 목요일과 금요일은 전북 개혁 신학 연구원으로 여수에서 전주까지 아내와 함께 트럭으로 1년 2개월 정도를 다녔으며 그러던 중 하나님의 은혜로 아내의 몸에서 가는 돌덩어리같은 것들이 소변으로 지속적으로 나와서 생사의 위기는 조금 넘기게 되었습니다.
신학교를 다니는 동안 아내는 책상에 엎드려 있을 때가 많았으며 얼굴에는 늘 죽음의 그림자가 덮여져 있었습니다.
열 대여섯개 되는 계단을 내려오려면 삼사분이나 걸려야 내려올 수 있었던 아내는 그 몸으로 제가 가고자 하는 곳으로 늘 동행하여 주었습니다
여수에 있는 동안은 작은 개척교회인 여수 옥토교회에서 중고등부를 맡아서 사역하였으며 아내가 조금 호전 되자 2010년 4월에 전주로 다시 이사하였고 익산 동명교회 류현옥 목사님 교회에서 2010년 5월 부터 중고등부를 맡아서 사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행복했던 사역의 순간이었습니다. 학생들이 점점 하나가 되어지면서 활기를 띠어가는 모습을 보는 일은 기쁘기 그지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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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해에 신학교를 졸업하게 되면서 저희 부부는 서울 개신대학원에서 목회 심화과정을 다니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아내의 건강과 경제 문제로 서울에서 익산까지 사역을 다니기가 어려울 듯하여 2010년 12월 익산 동명교회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주일 오전 예배 시간에 부족한 저희를 사랑하여 주셔서 많은 성도님들과 학생들이 저희의 떠남을 아쉬워하여 우셨습니다.
도로에서까지 우는 학생들을 뒤로하고 저희는 서울로 공부하러 갈 준비를 하였습니다.
서울로 공부하러 가면서 집은 구할 형편이 되지 못하여, 집 없이 이스타나 차의 의자를 들어 내고 바닥을 평평하게 깔고 씽크대를 만들고 짐을 싣고 다니면서 차안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그렇게 심화 과정을 공부하던 중 2011년 5월 다락방의 영입으로 교단이 분열되면서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할 지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공부는 마치고 보라는 분과 개신원에서 나와야 한다는 분들 모두의 의견을 듣고 고심하다가 당시 이단으로 규정되어 있던 다락방이 영입되었는데 먼 훗날에 지금의 상황을 바라보면 어떨까 생각했더니 나오는 것이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개신대학원에서 한학기 공부하던 중 나오게 되었습니다.
목사 안수도 받지 못한 상황에서 2012년 4월 마닐라로 향하게 되었고 같은 해 9월에 바기오 camp 7 에서 개척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아내는 이 곳 바기오에 와서 건강이 날로 호전되어 졌습니다. 몸이 굳어 올라가지 않던 팔도 많이 올라가게 되고 점점 더 좋아지고 있습니다.
조금만 움직이면 다리가 부어서 며칠씩 고생하던 것도 부기가 점점 빠져내려가서 발목까지는 좋아졌고 발등만 남아 있는 상황입니다.
이제 저희는 이 곳에서 먼저 미용과 웨딩을 통한 사역을 하려고 합니다.
아내는 25년 이상 미용실을 경영했으며 서울에서 연예인들 가족과 대학 교수들을 주 고객으로 하는 미용실을 운영했습니다.
이 곳 필리핀은 외모에 대한 관심은 많지만 펌 약이 좋지 않고 기술이 떨어지며 비용이 현지인들입장에서는 비싼 편입니다.
또한 가난한 사람들은 결혼식을 하기가 어려워 우리나라 동사무소로 볼 수 있는 바랑가이 홀을 빌려서 결혼식을 하기도 하는데 바랑가이 홀이 워낙 좁고 좋은 여건이 아닌데다 웨딩 드레스도 입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입는다 하여도 드레스도 자신의 신체 크기와 상관 없이 한 두 벌 있는 것 중에서 골라서 입고 결혼식을 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현실에 맞추어 저희는 타 교회 안에 있는 어느 정도 훈련되고 교회를 섬기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자매들을 모아서(이는 다른 선교사님들도 원하고 있습니다) 합숙시키며 오전에는 말씀과 기도의 시간으로 보내고 오후에는 미용을 가르치려고 합니다.
이곳은 일자리가 많지 않기 때문에 교회에 좋은 자매들이 있어도 할 일이 없어 쉬고 있는 자매들이 많습니다
어느 정도 가르친 후에는 어려운 동네에 위치한 교회 웨딩을 도우면서 실습시키고 일주일에 한 두 번 정도는 빈민촌에 위치한 교회 근처에서 지역 교회를 위한 미용 봉사를 하게 하면서 훈련시키고 지역 교회를 돕고자 합니다.
잘 훈련된 자매들이 나오면 자매가 다니는 교회 근처에 작고 아담한 필리핀인을 위한 미용실을 차려서 이들로 하여금 생활이 자립될 수 있도록 하고, 교회에 십일조 하여 교회의 자립을 돕고, 미용 요금을 낮추어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여 지역 선교를 위한 장소가 되게 하며 이를 통하여 그 교회의 더 많은 자매들이 그 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려 합니다.
만일 미용실에서 수익이 남으면 그 자매들이 속한 교회의 선교를 위한 행사에도 후원을 하고자 합니다. 또한 그곳에서 생기는 소득의 십일조를 그 지역의 선교사님 교회에 내는 것도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나중에는 그 교회에 미용실을 인계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자립을 위하여 다른 선교사님들이 함께 수고할 이유가 여기에 더 있습니다.
제일 처음 시작한 미용실의 운영이 정상적으로 되면 바기오 뿐만 아니라 외곽 도시들에서도 많은 학생들을 모집하여 점점 더 많은 교회의 자립을 도울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또한 이 많은 학생들이 실습 기간 중 필리핀 오지 지역도 방문하여 미용 선교를 하도록 할 생각입니다.
필리핀 사람들이 필리핀 지역의 복음화를 위해 일할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이를 위한 법적 준비사항들을 확인 하고 있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모이고 필리핀 지역 내에서 인지도가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기술학교나 다른 교육사업으로도 확대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용을 위하여서는 미용용품과 웨딩을 위한 중고 드레스가 필요합니다. 또한 학생들을 훈련시킬 장소가 필요합니다.
부족한 저희가 이일을 이루어 나갈 수 있도록 많은 기도부탁드립니다.
존경하는 전북 개혁 신학 연구원 교수님들께 .
교수님들의 제자 김세중 박춘규 선교사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만국에 명성과 영광이 있도록 일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 주시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필리핀 바기오 camp 7에서 김세중 박춘규 선교사 드림
주소: 85, kalinga pelota court road, camp 7, Baguio.
전화: 070-4641-8414(한국070), 0927-472-8414(필리핀 현지전화, 국제 전화시 001-63을 앞에 더하시면 됩니다)
후원 계좌: 539-11511-26801씨티은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