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장부 족집게 압수수색
"李회장 독주 막으려는 친척과 해고 직원들이 제보 가능성"
검찰이 재계 40위권의 태광그룹을 전격 압수수색한 지난 13일. 검찰은 서울 장충동 태광그룹 본사와 함께 부산 동구의 고려상호저축은행 본점에도 들이닥쳤다. 부산까지 검찰이 압수수색을 하자 태광 고위관계자들이 상당히 당황했다고 한다. 태광그룹의 전(前) 직원은 "거긴 회사의 중요 장부가 있는 곳"이라고 했다.검찰의 '족집게식 압수수색'에 대해 업계에선 태광그룹의 속사정을 잘 알고 있는 전·현직 직원 중 누군가 검찰을 돕고 있다고 해석했다. 지난해 초에도 태광그룹을 내사했다가 내부 종결했던 검찰이 이번에 속전속결로 압수수색에 나선 것은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 내부 고발자와 관련, 2000년대 중반 이후 해고당한 직원이라는 설과 함께 이호진 회장의 그룹 내 경영권 독주를 견제하려는 일가친척의 측근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해고당한 직원들 검찰에 투서
이호진 회장의 최측근 그룹은 두 분류로 나뉜다. 창업자이자 아버지인 고(故) 이임용 회장 시절부터 태광맨으로 살아온 이른바 '개국 공신'들과 1990년대 후반 이 회장이 태광산업 사장에 오른 이후 형성된 이 회장의 측근 임원들이다. 측근 임원들은 이 회장과 같은 또래다. 본래 개국 공신 라인들은 이 회장의 어머니 이선애씨와 더 가까워, 이 회장은 처음에 이들을 견제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두 그룹이 충돌했고, 이 회장은 '귀에 거슬리는 조언'을 하는 젊은 임원들을 밀어내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아버지를 모셔온 60대 임원들이 전권을 장악했다. 40대의 젊은 임원과 부장급들은 회사를 떠났다. 일부 하도급 업체들도 갑작스러운 계약 해지를 당하기도 했다. 이들 중 누군가가 내부 고발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 태광그룹 관계자는 "실제로 태광그룹의 전직 직원이라며 검찰 등에 투서를 보낸 경우가 꽤 있었다"고 말했다.
◆일가친척들 간 경영권 분쟁 가능성도 있어
이 회장은 90년대 후반, 3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태광산업 사장을 맡았지만, 어머니(이선애)와 큰형(이식진), 조카(이원준) 등과의 경영권 분쟁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어야 했다.
10년 전 태광산업의 지분율을 보면 이런 상황이 그대로 드러난다. 당시 이선애씨가 이사장으로 있는 일주학원과 이식진, 다른 일가친척들의 지분을 합치면 25.58%로 이 회장 지분(15.14%) 보다 훨씬 많다. 하지만 이 회장은 2004년 티시스(당시 태광시스템즈)와 티알엠(태광리얼코)을 세운 뒤 계열사들의 물량을 몰아주는 방식으로 성장시켰다. 이 회장과 그의 아들 현준군이 100% 지분을 가진 티시스와 티알엠은 곧바로 태광산업 지분 인수에 나서 각각 4.51%, 4.63%를 확보했다. 현재 이 회장측 지분은 24.28%로, 어머니와 외삼촌 이기화 전 회장 등 일가친척의 지분을 모두 합친 것(18.61%)보다 더 많아졌다. 업계 관계자는 "이 같은 이 회장의 독주에 불만을 품은 다른 일가친척 편을 드는 임직원이 검찰에 내부 정보를 넘겼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 나온다"고 했다.
이번에 검찰이 칼을 빼든 데는 소액주주들의 반발도 한몫했다. 지난해 초 당시 태광산업 감사위원장을 맡았던 전성철 변호사는 "태광그룹 내부 비리가 있어 이를 확인할 때까지 감사보고서에 서명하지 않겠다"며 그룹 경영진과 맞섰다. 최근에는 태광산업의 소수 주주 모임인 사모펀드 서울인베스트먼트가 태광그룹의 편법 상속·증여 의혹을 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