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 슬리만과 록커들
스키니 열풍을 몰고 온 장본인인 에디 슬리만(Hedi Silmane)은 8년간 디올 옴므, 5년간 생 로랑의 수석 디자이너로 활동했다. 튀니지와 이탈리아 출신의 부모를 둔 그는 1968년 파리에서 태어나서 11살 때 사진에 관심을 가졌고 16살이 되자 옷을 짓기 시작했다. 한때 기자가 되기 위한 공부를 했으나 곧 루이뷔통 모노그램 캔버스 프로젝트의 조수로 채용되면서 패션의 길로 들어섰다. 그 프로젝트를 통해 그는 헬무트 랭, 아이작 미즈라히, 비비안 웨스트우드 등의 거물 디자이너들을 접할 수 있었다. 1996년 슬리만은 입생로랑의 남성 기성복 수석 디자이너를 맡으면서 2000년 ‘스키니’로 대표되는 슬리만식 실루엣을 발표한다. 그 후 디올 옴므로 옮기면서 외국인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미국 패션 디자이너 협회(CFDA)에서 수여하는 상을 받으며 국제적 조명을 받게 된다.
‘스키니’는 기존의 남성상을 획기적으로 뒤집었다는 평을 받으며 강한 호불호로 갈렸다. 근육이 많은 마초적 실루엣에 대해서 슬리만은 ‘개구리’ 같은 남성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슬리만은 잘생겼지만 매력 없는 사람보다, 못생겼지만 자석처럼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사람을 선호했다. 그가 유행시킨 눈빛과 포즈는 하나의 패션 시그니처가 되었다. 주눅이 든 듯 보이지만 강렬하고 반항적인 눈빛은 내성적이지만 좋아하는 것에 대한 극도의 열정을 지닌 예민한 감수성을 내비친다. 휘어진 마른 몸은 섬세한 예술에 대한 갈구와 심미안을 나타내는 듯하다. 그는 자신의 마른 몸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으나 그것을 패션으로 승화시켰다. 샤넬의 수석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가 슬리만의 디올 옴므를 입기 위해 체중을 무려 40kg이나 뺀 일화는 유명하다. 평론계와 대중의 찬반논쟁을 불식시키듯 디올 옴므는 거의 두 배에 가까운 매출 신장을 이룩했다.
슬리만의 주요 아카이브는 록밴드들이다. 그의 생로랑 컬렉션 컨셉은 남성복은 록커, 여성복은 록커의 여자친구였다. 그는 1950년대 이후로 패션은 주로 록의 영향 하에 있어왔다고 보고 록시크(rock chic)에 대해 연구했다. 또한 실제 록커들을 런웨이에 모델로 세우기도 했다. 그는 1996년부터 ‘록 다이어리’(Rock Diaries)라는 사진 블로그를 운영 중이다. 그만큼 음악은 슬리만의 패션 세계에 있어서 중추적 역할을 한다. 그의 울트라 스키니 룩은 사실상 이미 과거부터 현재까지도 수많은 록밴드들이 자기정체성을 담아 표현해오고 있는 패션코드이다. 슬리만의 생로랑 컬렉션은 언뜻 보면 스트리트 패션 그 자체를 런웨이에 퍼올린 듯한 평범한 느낌을 주지만, 지속적으로 관찰해보면 그가 그 친숙함 안에서 자유로움, 주관, 매력의 요소들을 정교한 비율 속에 담아 구현했음을 알 수 있다. 자켓과 스커트의 길이, 부츠의 길이, 스웨터 안의 체크셔츠와 면티셔츠가 어떤 비율로 레이어링되어야 하는지와 그 안의 목걸이들의 굵기와 높낮이의 배치, 대조적 질감을 지닌 가죽 자켓과 쉬폰 원피스의 길이감의 조화가 만들어내는 머리부터 발끝까지의 완벽한 비율 배치를 보고 있노라면 그 예리함과 정확성에 놀라게 된다. 정장이 아닌 캐주얼 의상에서 그런 황금비율을 찾아간다는 것이 대단하다.
그는 데이빗 보위, 리버틴즈(잉글랜드 록밴드), 다프트 펑크(프랑스 전자음악 듀오), 프란츠 페르디난드(스코틀랜드 록밴드), 더 킬즈(영미 연합 인디 록밴드), 믹 재거, 베크(미국 얼터너티브 록가수), 잭 화이트(미국 싱어송라이터), 피닉스(프랑스 인디 팝밴드), 레이크스(잉글랜드 인디 록밴드), 레이저라이트(잉글랜드 인디 록밴드)와 같은 뮤지션들을 위한 투어 의상을 만들었다. 특히 레이저라이트, 레디메이드 FC(프랑스 전자음악가), 디즈 뉴 퓨리탄스(잉글랜드 아트록밴드), 다프트 펑크는 슬리만의 디올 옴므 쇼를 위해 특별히 음악을 작곡하기도 했다.
슬리만의 생로랑 뮤직 프로젝트는 입생로랑이 1971년 믹 재거와 록큰롤식 결혼식을 올렸던 비앙카 재거의 웨딩 드레스를 제작했던 에피소드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되었다. 슬리만은 사진작가이기도 하기 때문에 광고캠페인 사진 작업에 대단한 심혈을 기울이는데, 특히 코트니 러브와 마릴린 맨슨을 주인공으로 한 캠페인 사진들이 인상적이다. 두 사람 모두 아이콘화된 록커들이다. 코트니 러브가 웨딩 베일을 쓴 채 담배를 피는 모습이나 모조왕관과 모피를 입고 치장에 걸맞지 않게 바닥을 기고 있는 모습에서 록시크의 정수를 느낄 수 있다. 그 유명한 그로테스크 화장을 하고 정면을 바라보는 마릴린 맨슨의 사진은 록시크를 의인화한 고전 초상화를 보는 듯하다. 슬리만은 기존사회질서에 저항하는 청년정신을 록에서 찾고, 음악과 패션을 통합하는 작업을 통해 그 자유정신을 비주얼 아이콘으로 창출해냈다. 엘리트주의와 대중성의 경계도 무화시켰다. 스키니는 기성세대로부터 미움 받는 룩이다. ‘꿋꿋하게 미움 받겠다. 사회에 희석되지 않겠다’라는 록음악의 자유정신을 친숙하지만 날카로운 미감과 비례미로 재해석하여 고급패션계의 전면에 내세운 슬리만은, 예술가들의 화합이 얼마나 문화를 풍성하고 생동감 넘치게 만드는지 그 예를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