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고 부산을 출발, 서포 신흥에 두시 경에 도착했다. 미리 뽑아둔 양파 모종을 아이들 외숙모로부터 건네받았다. 주면서 흰색 양파가 아니라 전부 자색 양파라고 말했다. 편은 흰색 양파를 더 많이 심고 싶은데 전부 자색이라면 이를 어쩌나 하고 걱정했다. 보통 요리에는 흰색 양파가 더 어울리는데 가격은 적색 양파가 더 높기는 하다고 했다. 나는 색깔에 따른 양파의 차이를 잘 알지 못하고 있다. 이 기회에 양파에 대해 공부를 해보려고 한다.
신흥서 동매리 까지, 평소 가는 길을 따라 가지 않고 진교마을 한가운데를 거쳐서 고개를 넘어 고전면사무소 통과한 후 하동 읍 직전에 도착하는 길을 택했다. 1003번 국도던가. 국도 같지는 않았다. 아마 지방도일 것이다.
여러 번 길을 잘못 들어 헤맸다. 자동차에 네비게이터를 설치하면 모르는 길을 따라 갈 때 헤맬 일이 없다고 하는데 그래도 네비게이터는 설치하지 않기로 했다. 시골길은 헤매는 그 자체가 재미이고 여행의 주요한 한 과정이다. 지난번에도 이 길을 시행착오를 반복, 간일이 있는데 그때 경험이 아직 내면화되지 못했던 것이다. 이번엔 길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trial and error method(시행착오법)이다.
동매리 마을에 도착해서도 늘 다니던 길로 가지 않고 이장집 앞을 지나는 길을 택했다. 마을을 통과할 때 택할 수 있는 길이 세 갈래 있다. 마을 한 가운데, 즉 마을회관을 지나 곧 바로 올라가는 길이 그 하나고, 마을 입구에서 좌회전, 덕기로 가는 길을 가다가 곧 바로 우회전하여 올라가는 길이 그 두 번째 길이다. 마을로 들어가서는 계속 직진 하여 이장 집 바로 위, 박남준 시인의 집 바로 아래에서 좌회전 하여 올라가는 길이 세 번째 길이다. 주로 택하는 길은 두 번째 길인데 이번엔 세 번째 길을 택해서 올라갔다.
이장집 앞에서 좌회전 하니 길에는 말리기 위해 널어놓은 벼들이 차도를 온통 점령하고 있었다. 농로가 그리 넓지 않은지라 비켜서 지나갈 수가 없었다. 널어놓은 벼 위로 차를 몰 고 지나길 수밖에 없었다. 농부의 흘린 땀을 생각해서 최대한 속력을 줄여 천천히, 아주 천천히 지나갔다. 그래도 미안했다. 어떻게 땀 흘려 수확한 알곡인데, 차바퀴로 인해 으깨어지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도 일었다. 길의 이런 풍경은 만추 이 때가 만추 이 때가 지나면 볼 수 없는 풍경이다. 말리기 위해 널어놓은 벼가 또 하나의 길을 이루는 이런 풍경은 우리가 만추 그 깊은 곳으로 들어와 있음을 알려주는 서정적 상징이다. 말하자면 나락이 만들어 내는 이런 길은 귀한 ‘만추의 정경, 만추의 길’이다.
하지만 지나치고 나서 인 마음의 갈등은 컸다. 수확을 끝내고 수매를 앞둔 농촌에서는 도로와 인도 등 벼 나락을 말릴 곳만 있으면 어디에든 말리는 것이 요즘의 풍경이라는 걸 이해하면서도, 나락을 말릴 다른 장소가 따로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벼를 잘 말리겠다는 일념 하나로 커브길이나 심지어 한 개 차선을 아예 막고 길가에 말리는 일로 인해 받은 방해는 결코 작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락이 널린 길을 차 몰고 지나는 일은 여간 조심스러운 일이 아니다. 중앙선을 침범하거나 급브레이크를 밟을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중앙선이 있는 길은 그래도 좀 낫다. 문제는 중앙선이 없는 농로의 경우이다. 차바퀴가 나락 위로 지나갈 수 밖에 없는데 이 경우 말리는 나락이 짓뭉개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 길은 갈까말까를 망설이게 하는 ‘갈등의 길’이 되고, 지나칠 수밖에 없어서 지나치고는 나락이 으깨어지지나 않았을까를 걱정하는 ‘번뇌의 길’이 된다.
나락을 한창 말려야 하는 요즈음, 운전자도 조심해야겠지만 최소한 차로 변 전체를 거의 다 차지하는 벼 말리기는 삼가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땀 흘려 수확하고 제값 받기 위해 노력하는 농민들의 처지를 생각해보면 백번 이해가 안가는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운전자에게는 운전자의 입장이 있는 것이 아닌가.
운전자와 농민 모두에게 위험이 노출되는 도로변 벼 말리기를 최소화시킬 수 있는 대안은 없는 것일까. 수확 철 농촌에서 각종 수확물을 말리는 것을 감안하여 안전운행에 신경을 쓰면서 악양 길로 접어들지만 꼭 지나가야할 좁은 길에 나락의 길이 찻길을 거의 다 차지하면서 넓게 펼쳐져 있는 길 앞에 오면 그 길은 내게 ‘만추의 정경, 만추의 길’이면서 동시에 ‘갈등의 길, 번뇌의 길’이 된다.
번뇌와 서정을 동시에 안고 농막에 도착했다. 바로 옷을 갈아입고 양파 모종을 심었다. 오늘의 주된 일은 양파심기이기 때문이다. 便은 호미 들고 심고 나는 물뿌리개 들고 물을 주었다. 이내 해가 형제봉에 걸렸다. 서둘러 물을 주고 나는 밤을 굽기 위해 화덕에 불을 붙였다. (06년 10월 26일 금요일 이야기) (글 속의 농로는 사진의 길보다 훤씬 더 좁은 길. 사진의 길은 악양 들판 한 가운데, 비교적 넓은 길. 악양 들판 다랑논들은 수확을 거의 다 끝냈음. 이제 빈 들판)
첫댓글 DW입니다..세상이 참 넓지 않습니다..^^
kei SH님, 반갑습니다. / <율리시즈의 시선>을 이번에 내려갈 땐 가지고 내려갑니다. 앙겔로폴러스 감독에 대한 자료도 유심히 읽어 봤습니다. DVD나 CD를 가지고 내려가지만 막상 내려가면 그것 볼 시간이 없어서 번번히 보지 못했습니다. 이번엔 꼭 보고 올라올라고 합니다. <내가 마지막 본 파리>도 가지고 갑니다.
안녕하세요? 아직은 수색의 월츠님으로 부르고 싶습니다. 블로그에서눈 못뵙고 여기 오니 뵙네요. 갈등과 번뇌의 저 길을 지나서 양파를 심으러 가셨군요. 크나 작으나 같은 농부의 맘으로 생각이 많으신 님을 보니 여전히 반갑습니다. 은은한 색소폰 연주가 아주아주 좋습니다. 지난번 무설재 들리면서 수색의 월츠님 생각도 했습니다.
친정아버지의 병원비 등에 사용한 카드 빚을 갚기 위해 새마을금고를 털려다 붙들린 30대 여자 강도의 기사가 하루 종일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조금만 외면하면 아무 일도 없이 잘 돌아가는게 세상일이고 조금만 눈을 주면 가슴이 아파 차마 더 쳐다 보지 못할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는게 우리네들 군상의 인생살이인 것 같습니다. / 라일락님, 이렇게 조우하네요. 조우하면 동행해야 하는데 블로그를 일방적으로 닫았네요. <로드필로 로드필로>는 내가 포기할 수 없는 이름인지라 아주 닫지는 못할 겁니다. / 라일락님, 이리 조우하니까 눈물겹게 반갑네요. 위 DW님도.
우리 동네 집 앞 마늘밭은 가뭄에 말라 싹을 올리지 못해서 이틀을 우리집에서 물을 받아 뿌리던데 양파는 어떤지요. 나도 농사를, 아니 싹을 틔우고 싶다는 충동입니다. 악양뜰 농삿꾼의 모습을 상상하니 말입니다.
마늘이 그렇데요. 마늘이 물을 많이 필요로 한다는군요. 심은 마늘밭에 물을 뿌린 후 지난 번 비를 맞은 밭은 안 나던 마늟 순을 올렸습니다. 마늘과 양파를 심었습니다. 겨울에 자라는 모습을 구경하려고요. 달묵님, 동물사랑의 일부분을 식물재배(사랑)에로 조금 할애하심이...
도로에 벼 말리는것 옳은 말씀입니다.. 운전자나 농부 모두가 배려하고 조심해야지요. 근데 수확이 끝난 논바닥이 까맣게 된것은 어인 이유인가요?
저도 알아볼 참입니다. 왜 저 논만 저리 새카만지, 토양개선을 위해 무슨 가루를 뿌린 건지 그걸 알아볼 참입니다. 그 때 사람이 없어서 못 알아봤거든요. / 곧 저런 풍경도 사라지겠지만, 유달리 나락 널어 둔 길이 많은 악양갈 때 여간 신경 쓰이는게 아닙니다. 연세 많이 든 분들이 나락 옆 길 거의 가운데 앉아서 일하기도 하거든요. 또 온통 점령당한 길은 불가피하게 그 위를 지나야 하는데 그 또한 못할 짓 하는것 같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