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기록들은 ‘문명’이 저지른 음험한 욕망들을 숨기지 않고 판화로 각인해 놓았다. 이런 ‘정복하는 글쓰기’ 문화의 흔적은 16세기 네덜란드 판화가들의 그림에서 쉽게 볼 수 있다. 1575년 얀 반 데르 스트레트는 아메리코 베스푸치가 아메리카를 발견하는 장면을 스냅사진처럼 그렸고, 테오도르 갈레가 이를 판화로 만들었다. 이 판화의 아래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아메리쿠스가 아메리카를 재발견하다. 그가 그녀를 불렀더니, 그 후 항상 깨어 있더라.”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더니 꽃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호명하는 유럽은 정복자 남성이고, 그늘에서 잠자고 있던 아메리카는 정복당하는 나체의 여성이다. 야만은 여기서 풍만한 여성성과 결합한다. 표제어부터가 페미니스트들의 비난을 살 만하다.
아메리코 베스푸치는 스페인 군주의 깃발이 감긴 십자가 지팡이를 오른손에 쥐고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신앙과 권력을 상징하리라.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이제 내가 너를 소유하겠노라”. 왼손에 있는 천체관측의는 야만에게 뻐기는 문명의 대표적 상징이다. 뒤편의 타고 온 갤리온 선은 서구의 탐험 정신을 표상할 것이다. 오른쪽에는 아메리카의 자연 속에 뛰노는 경이로운 동물들과 식물들이 ‘자연’스럽게 그려져 있다. 해먹 위의 풍만한 몸체를 지닌 벌거벗은 여인이 아메리카이다. 낮잠에서 깨어난 듯한 표정으로 베스푸치를 바라본다. 소실점 주변에는 식인종의 식사 장면이 사실주의적으로 그려져 있다. 맛있는 부위라고 생각되는 다리와 엉덩이를 잘라 구워먹는 모습이다. 식인 장면을 원근법적으로 처리해 배경으로 작게 그려 놓았지만, 보는 사람들의 시야 중심에 위치한다. 얼마나 자신들의 의도를 교묘하게 표현했는가.
정복은 정복자들만의 프로젝트가 아니었다. 글쓰는 자, 지도 제작자, 시각예술 종사자 모두가 참여한 거대 프로젝트였다. 16세기 유럽은 아메리카를 매개로 근대적 담론의 뼈대를 완성했다. 유럽과 인디언, 문화와 자연, 자아와 타자, 남성과 여성 같은 이분법적 스테레오타입은 ‘아메리카의 발견’을 통해서 강화되었다. 그것은 상징적인 폭력을 매개한 타자화에 다름 아니었다. ‘쓰려는 의지’는 ‘쓰인 몸체’와의 연속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제국주의적, 식민주의적 글쓰기는 19세기가 아니라, 이미 16세기에 시작되었던 것이다.
미셸 드 세르토는 이 판화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첫 장면이다.… 정복자는 타자의 몸을 기록할 것이고, 거기서 자신의 역사를 추적하리라. 그는 그녀에게 자신의 노력과 환상을 투사하여 역사화된 몸체-문장(紋章)-를 만들리라…. 권력 담론으로 몸을 식민화한 작업이 이제 진정 시작되었다. 이게 바로 ‘정복하는 글쓰기’이리라. 이런 글쓰기는 신세계를 마치 서구의 욕망이 기록될, 텅 빈, ‘야만적’ 페이지처럼 이용할 것이다.” 헤겔도, 로크도 모두 ‘정복하는’ 전통에 충실한 글장이들이다.
1974년 제1차 남미 인디오대회에서 한 참가자는 이렇게 연설했다. “오늘, 이 각성의 시간에 우리는 우리 자신의 역사가가 되어야만 합니다.” 스스로 자신의 역사를 자신의 눈으로, 손으로 쓴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제 모두가 알고 있다./ 정복하는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