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개미
변 재 열*
불개미
쌓아야 산다.
고대 성주를 닮아서 일까?
쌓는 만큼 안전하기에 벌판
토성빌딩만 고집하고
열대우림스콜
변덕스런 날씨에도
너털웃음 날리며 산다.
아무리 덥다한들
투덜대지 아니하고
아무리 춥다한들
호들갑떨지 아니하는 어린 것들
로드맵은 없어도
제 갈 길 분명한
불개미의 하루
아무리 빠른 걸음에도
혈흔으로 싸우지 않고
아무리 늘보걸음에도
포기할 줄 모르는 미물
무너진 평등의 흙살에
자유의 깃발을 꽂은 교훈
그곳 시공을 함께한 우리
마을마다 오늘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벽 화
담장 벽화가
부동자세를 취한다.
바람으로 도를 닦던
소나무, 대나무들도
아이들 꽁무니 쫓던
강아지, 병아리들도
환쟁이 손놀림에
바람을 멎게 하고
숨소리조차 욱조이며
풍경과 대칭하고 있다.
바람으로
흔들림을 안
소나무, 대나무들
아이가 놀러 와도
부동을 고집하며
꼼짝달싹 않는
강아지, 병아리들
담장 벽화 앞에 선
우리
생명의 바람을 노래하면서
벽화의 고향을 찾아 나서고 있다.
* 충남 공주 출생, ≪현대문학≫(1981)에 시로 등단, 시집으로 겨울바다, 보이지 않는 江, 멀리서 가까이서,
바람꽃 향기, 빈 잔의 메아리, 만리포 바람소리, 진홍빛 꽃잎, 『가슴 비우기 혹은 채우기』, 충남도문화상,
대전문학상, 한성기문학상 황조근정훈장 수상, 현재 대전시인협회장, 대전지방검찰청 형사조정위원, 국제 PEN클럽 한국본부 남북
교류위원, bjyoul@hanmail.net
천 둥
김 명 동*
갈갈이 찢기는
벼락에게 호통을 친다
검은 하늘은
요동치며 눈물을 뿌린다
바람난 사내의 가슴은
가지 끝에 걸려
사시나무가 되고
버릴 수 없는
첫사랑 추억을 죽여 보는데
뜨거운 모래밭에
혀를 묻어도
버릴 수 없는 기억은
자꾸만 세월 따라 새살을 돋운다
가수의 욕망
춤을 추어라
보이지 않는 어둠속에서
칼날을 휘두르는
빛의 요동
가장 넓은 가슴으로
뜨거워해라
상처 받지 않으려는
네 마음을 안다
식지 않은 열정
그것을 무대 위에 올려놓고
살아 있음을 토해 내거라
지 진
흔들림 뒤에
부서지는 파멸
찢기는 아픔 속에
진동 하는 미련
퉁겨져 날아가는
조각들에게 굳은 언약
흔들리는 땅보다
더 요동치면 된다
불꽃처럼 퉁겨져 재가 되어도
내 영혼 속에 고통은 숨을 죽이고
비밀을 지킨다
* 경북 상주 출생, 시집 어느 바보의 작은 가슴(1990), 고향은 저만치(1992), 꿈속에 별 달(1993), 그대를 사랑하는
이유(2002), 그리움의 마당에는 당신이 주인입니다(2006), 동구문화상, 예총회장상, 인터넷문학상 등 수상, 현 글빛문학회장,
전 대전동구문학회장, kimydo812@hanmail.net
조약돌 사랑
김 근 수*
나는 당신의
순수한 별이 좋았어요
달 밝은 밤,
온 하늘을 비추는 달빛에도
당신은
당신대로 찬란히 빛났어요.
수줍은 향기
스며오는 밤에
온 하늘을 찾아보았어요.
아~ 당신이 없는 밤
외로이 돌아오는 길
버드나무 가지에 걸린
당신을 보았어요.
샘 길 이슬처럼 신비롭고
아침처럼 화사한 당신
별꽃 피는 언덕에서
달콤한 향기는 영원히
내 가슴에 조약돌이 되어 있어요.
소년의 이야기
꿈 길 달려와
꽃구름 걸린 앞산 자락에 앉아
석류알처럼 수많은
옛 이야기 들여다봅니다.
지금도
소년의 가슴에 꿈이 내리고
부드럽게 숙성 된 와인처럼
지고한 음색을 불러봅니다.
삶의 걸음마다
풋풋했던 꿈은 살며시
스며드는 물안개처럼
분홍빛 내 가슴에
지금도 순수로 충만합니다.
* 계간 ≪문학세상≫ 신인상, 시집 유천동 블루스(2008), 금강축제 금강문학상, 한국농촌문학상 대상,
powerg@choi.com, www.gp1004.com
허 기
김 혜 경*
아침 신문을 가지러 나가다
현관에 널부러져 있는 구두에서
곤한 잠에 빠져 있는
그의 입을 본다
몇 년을 끌려 다닌 구두는
잠을 자는 동안에도
내쳐 입이 벌어진 상태다
구겨져 웅크린 발이 찍은
시간의 흔적
결의를 다지며 묶은 벌잇줄
돌려놓은 구두에
습관처럼 합체가 되면
한 쪽으로 기울어진 뒷굽으로도
끌고 온 길을 잘 되짚어 간다
구두의 허기를 위해
나의 아침이 분주해진다
말라간다는 것
식어버린 꽃들이
서걱서걱 들어오고 있다
벌레에게 속 살을 내준
무화과가 비어가고 있다
태양이 핥고 간 웅덩이에
무늬를 찍고 있는 바람
말라간다는 건
존재에서 멀어진다는 것
서툰 헤어짐에
꼬들꼬들 주름잡힌 미련
헛발질에
쩍 갈라지는 하늘
* 경북 대구 출생, ≪상상의 힘≫(2009) 신인상, lovekim1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