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징표를 읽기
교회의 사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계속하는 것이다(사목헌장 3항). 교회 그 본연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교회는 모든 세대를 통하여 그 시대의 특징을 탐구하고 복음의 빛으로 그것을 해명해 줄 의무를 지닌다”(사목헌장 4항)는 사목헌장의 선언은 그리스도교 역사 안에서 세상과 교회의 관계에 대한 분명한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 교회가 자신이 속한 시대의 징표를 읽어야 하는 일은 단순히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어떤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 속에 있는 교회가 반드시 해야 할 의무’임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사목헌장의 이 선언은 정치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교회의 관심과 참여에 대한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
사목헌장의 내용은 공의회가 개최되던 시기의 교회가 자기 당대의 징표를 읽어낸 것을 담고 있다. 사목헌장의 전반부는 인간 본성에 대한 교회의 이해를 포함한다. 포괄적 의미의 그리스도교 인간학의 일반적 원칙들을 제시한다. 사목헌장은 하느님 모상으로서의 인간 존엄성을 다시 한 번 천명하고 그 존엄성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서의 무신론과 무신론적 경향의 공산주의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다(1장). 인간 삶의 공동체성은 성경적 가르침임을, 현대사회 안에 만연된 개인주의의 풍조를 뛰어넘어 공동선의 추구와 사회적 연대의 지향이 그리스도교 사회 정의임을 밝히고 있다(2장). 인간의 활동들은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우주론적 차원을 지니는 것이며(3장), 교회는 인간 개인과 공동체와 인간 활동 전 차원에서 하느님 나라 실현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4장) 사목헌장은 강조한다. 사목헌장의 후반부는 그 시대가 직면한 몇 가지 긴급 과제들을 혼인과 가정(1장), 문화(2장), 경제(3장), 정치(4장), 국제 관계(5장) 라는 범주로 나누어 다루고 있다.
사목헌장은 ‘기쁨과 희망, 슬픔과 번뇌’(사목헌장 1항)라는 단어들로 당대의 시대를 읽어내면서 문헌을 시작하고 있다. 사목헌장은 사회의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측면 모두를 통찰하고 있다. 사목헌장은 당대에 점증하고 있던 민족과 인종, 계층과 계급 간의 이데올로기적 간극이 인류 공동체의 일치를 방해하고 있다는 부정적 현상들에 대해 언급한다. 하지만 사목헌장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당대의 개발주의가 이루어낸 인류의 성취와 진보에 대해 희망적 전망을 더 많이 드러낸다. 따라서 사목헌장에 담겨진 교회의 세상읽기가 그 당대의 사회적 동향에 대해 다소 낙관적인 전망을 담고 있다고 오늘날 흔히 비판되고 있다. 또한 사목헌장의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해 역시 너무 낙관적이어서 죄의 실재들에 대한 통찰이 부족하다고 오늘날 많이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사목헌장에 담겨진, 인류 진보에 대한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비전과 그러한 희망들을 왜곡하고 방해하는 사회 안의 부정적 현실에 대한 분명한 인식은 교회의 사회적 사명이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즉, 현실을 냉철하게 분석하는 일 그리고 동시에 희망적 비전을 제시하는 일, 바로 그 일이 교회의 사회적 사명임을 사목헌장은 분명하게 선포하고 있다.
어떤 방식의 징표 읽기?
사목헌장이 제시하는 ‘시대의 징표 읽기’는 오늘의 교회에도 여전히 깊은 영감과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시대의 징표들에 대해 공감과 감응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으로 그리고 대화적 방식으로 접근하려는 태도는, 공의회 이후의 교회가 자기 시대를 어떤 방식으로 읽을 것인가에 대한 분명한 지표를 제시하고 있다.
사목헌장의 시대의 징표 읽기는 현대 세계 안의 교회 사명에 대한 신학적이고 인간학적인 이해의 바탕 속에 이루어졌다. 사회에 대한 사회학적 관찰과 분석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본성에 대한 신학적 인간학의 통찰과 교회의 사명에 대한 성경적 이해를 토대로 시대의 징표 읽기를 시도하고 있다. 또한 사목헌장의 시대의 징표 읽기는 신학적이고 추상적인 일반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 현상들에 대한 구체적 분석과 읽기를 포함하고 있다. 사목헌장 후반부의 사회적 긴급과제에 대한 설명이 그 대표적 예이다.
시대의 징표들 안에는 부정적 의미를 내포한 ‘경고적인 것’(signs as warnings)들도 있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것’(sings as pointers)들도 있다. 물론 공의회는 주로 후자의 의미를 강조했다. 공의회가 언급했던 시대의 징표들은 여전히 오늘날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를 들어, 빈부격차를 초래하는 정의롭지 못한 세계 경제 질서, 유럽 중심의 교회에서 라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아시아교회의 성장을 통한 세계교회로의 변화, 확산되어 가는 문화와 종교의 다양성에 대한 공의회의 지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공의회가 개최되었던 1960년대의 세계와 2010년대의 세계는 또 다른 급격한 변화를 맞고 있다. 생태 환경의 위기와 경제적 세계화를 통한 신자유주의적 질서 체제가 심각한 도전으로 등장하고 있다. 공의회 이후 교회의 사회문헌들은 이런 변화를 반영하는 시대 읽기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사목헌장이 제시한 통합적이고 대화적인 방식의 시대의 징표 읽기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 “교회는 모든 세대를 통하여 그 시대의 특징을 탐구하고 복음의 빛으로 그것을 해명해 줄 의무를 지닌다”고 선언하는 사목헌장은 정치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교회의 관심과 참여에 대한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있다. 사진은 7일 열린 주교회의 정평위 정기회의에서 각종 사회 현안에 대한 교회 입장을 논의하는 모습.
해석을 둘러싼 논쟁
교회와 사회의 관계에 있어서 공의회, 특히 사목헌장이 주로 취했던 방식은 대화였다. 하지만 사목헌장의 이러한 입장과 태도에 대한 심각한 논쟁은 공의회의 시기부터 지금까지 교회 안에 있어 왔다. 해방 신학과 종교 간 대화의 문제를 둘러싼 교회 안의 논쟁이 그 대표적 예다. 사회적 현실에 대한 관심과 참여라는 사목헌장의 내용들을 적극적인 방식으로 수용하고 해석했던 신학적 흐름이 해방신학이었다. 남미 주교단의 메델린 문헌과 푸에블라 문헌은 사목헌장에 대한 지역 교회의 능동적 해석의 일환이었다. 또한 공의회 이후 교회 안에서 활발해졌던 종교 간 대화와 에큐메니칼 운동 역시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사목헌장의 인정과 대화적 태도에 기인했다.
사실 사목헌장에 드러난 공의회의 입장과 태도를, 현대 세계의 변화에 대해 저항하고 방어적이었던 보수적 전통 교회의 입장과 태도와의 단절과 극복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하는 경향이 많았다. 하지만 사목헌장에 대한 이러한 자유주의적이고 진보주의적 해석에 대해 비판하는 흐름이 최근의 교회 안에 또한 자리 잡고 있다. 베네딕토 16세 현 교황과 일군의 신학자들은 사목헌장을 보수주의와 진보주의라는 이데올로기의 범주로 해석하려는 경향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즉, 사목헌장에 대한 종래의 해석들이 ‘단절과 불연속의 해석학’(hermeneutics of rupture and discontinuity)이라는 관점에서 이루어졌다고 비판한다. 이들에 의하면,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은 넓은 의미의 교회 전통의 연속성 안에서 이뤄지는 개혁과 쇄신으로 이해돼야 한다는 것이다. 즉, 사목헌장 안에 내재되어 있는 해석학은 단절과 불연속의 해석학이 아니라 2000년에 걸친 가톨릭교회의 사상과 지혜의 전통과의 연속성 안에서 이루어진 ‘개혁의 해석학’(hermeneutics of reform)이라는 것이다.
반면에, 사목헌장에 대해 진보주의적 해석을 하는 신학자들은 사목헌장의 약점이 하느님 나라에 대한 성경적 상징보다는 교회의 기능에 대한 성찰을 더 많이 강조했다는 점이라고 주장한다. 하느님 나라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에 더 많은 무게를 두었다면 사목헌장이 보다 더 분명하게 어떤 비전을 제시할 수 있었을 거라고 이들은 아쉬워한다. 그래서 이들에게 사목헌장은 반쯤 실현된 혁명이다.
대화(dialogue) 또는 선포(proclamation)
사목헌장의 수용과 해석을 둘러싼 교회 안의 논쟁 속에는 교회와 사회의 관계에 있어서 교회가 대화의 방식을 선택해야 하는지 아니면 선포의 방식을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한 신학적 갈등이 담겨 있다. 신학의 역사를 보면, 교회와 사회의 관계를 바라보는 방식에 관한 서로 대조되는 두 개의 신학적 스타일이 항상 있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적 접근 방식과 토미스트적 접근 방식이 바로 그 두 전통이다.
아우구스티누스적 접근 방식을 택하는 신학자들은 죄와 은총, 이성과 신앙 사이에는 매개될 수 없는 날카로운 간격이 있다고 주장한다. 문화와 정치와 사회의 영역들은 그것들이 초월적인 영역을 지향하고 그 초월적인 영역에 포섭될 때만 가치를 지닌다고 이들은 믿는다. 반면에 토미스트적 접근 방식을 택하는 신학자들은 자연은 죄와 은총과는 구분되는 어떤 창조된 자율성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죄는 자연을 어긋나게 하고 은총은 자연을 치유하고 완성한다고 이들은 믿는다. 이들에 의하면, 자연 그 자체로 죄가 아니며 은총은 자연의 중요성을 파괴하거나 배제하지 않는다. 조금 단순하게 말하면, 아우구스티누스적 입장은 사회와 문화에 대해 조금 부정적 태도를 취하며, 토미스트적 입장은 사회와 문화에 대해 다소 긍정적 태도를 보인다. 아우구스티누스적 입장에 따르면 세상은 교회의 선포 대상임이 강조되며, 토미스트적 입장에 따르면 세상은 교회의 대화 대상이 될 수 있음이 강조된다. 물론 두 입장 모두 일방적 대화와 일방적 선포만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두 입장 모두 대화와 선포 양자를 포함한다. 하지만, 그 강조점이 대화 쪽에 있는지 아니면 선포 쪽에 있는지에 따라 세상에 대한 교회의 입장과 태도는 분명 그 뉘앙스를 달리한다.
사목헌장은 선포라는 교회 본연의 입장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세상과 교회의 관계에 있어서 대화의 방식을 흔연히 수용한 용기 있는 전환이었다고 볼 수 있다.
나가는 말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개최된 지 50년이 지났다. 이 사목공의회의 정점 중의 하나인 사목헌장의 정신과 영향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세상을 향한 교회의 대화와 선포로서의 사목헌장은 미래를 향한 예언자적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사목헌장은 교회의 역사 안에서 교회의 사회교리 가르침에 대한 가장 중요한 공헌의 하나로 남을 것이다.
정희완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 정희완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