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넷플릭스에서 <카모메식당>을 봤다.
따듯한 온기에 끌렸는지, 아님 따듯함이 그리웠는지 <카모메식당>과 만났다.
https://youtu.be/vN1SAymmIM8[미리보기!]카모메식당Kamome Diner(2006)
<카모메식당(2006 일본 개봉)>은 핀란드 헬싱키의 길모퉁이에 새로 개업한 일본식당(카모메는 일본어로 갈매기란 뜻) 이름이다. 슬로우 컨텐츠로 만든 나영석PD 작품인 윤식당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야무진 일본인 여성 사치에(고바야시 사토미)가 경영하는 조그만 일식당의 대표 메뉴는 일본 주먹밥인 오니기리다.
첫 손님을 간절히 기다리지만 한 달째 방문객이 없다. 그래도 꿋꿋이 매일 아침 미소를 띤 채 컵의 물기를 닦으며 손님을 기다린다. 그러던 어느 날 일본만화 매니아인 토미가 첫 손님으로 찾아와선 대뜸 ‘갓챠맨(독수리 오형제)’의 주제가를 묻는다. 첫 손님이 반가운 사치에는 커피를 무료로 제공하고 가물가물 기억나지 않는 '갓챠맨'의 주제가를 계속 떠올린다. 그러다 우연히 서점에서 가사를 정확히 기억하는 미도리를 만난다.
미도리(가타기리 하이리)는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어 눈을 감은 채 세계지도에서 손가락으로 찍은 곳이 핀란드여서 핀란드에 무작정 왔다는 조금은 괴짜같은 인물이다. 핀란드 도착 후 비행장에서 자신의 짐을 분실해 속상해하는 마사코(모타이 마사코)가 식당을 찾아오고 사치에는 진심으로 그를 위로한다. 이제 카모메식당은 음식을 사고 파는 식당만이 아닌 근심을 안고 찾아왔다 풀고 나가는 해우소(解憂所)가 된다. (다음영화 참고)
음식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삶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이자 사람 사이의 연결과 연대의 이야기다.
일본 영화를 많이 접해보지 못한 나에게 <카모메식당>은 인생이 그리 대단한 게 아니라는 것, 특별한 인생이 있는 게 아니라 다들 그만그만 외로움과 고통, 슬픔을 안고 살아간다는 것을 잔잔히 보여준 영화다. 자신이 나고 자란 일본이 아닌 낯선 나라 핀란드에서 일식당을 과감히 열고 도전하는 인생의 용기와 여유도 만났다. 무엇보다 사람이 선물이 되는, 아니 사람을 선물로 만들고 가꿔가는 사치에와 미도리, 마사코의 관계 철학이 작품 전체에 숭고하게 흐른다.
진심으로 음식과 관계를 만들어가는 사치에와 그런 그녀 곁으로 다가온 미도리와 마사코. 동네 사람 몇은 식당 창문으로 사치에를 여러 번 관찰한다. 어느 날, 갓 구운 시나몬 베이커리의 구수한 냄새에 못이겨 작고 소박한 카모메식당 안으로 발을 들인다. 이 때부터 동네 사람들과의 인연이 시작되고, 그들의 슬프고 외로운 사연들도 이 곳에 도달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커피향과 진한 시나몬 향, 연어구이의 향이 배어나오는 것 같아 군침을 삼켰다. 이상하게 영화는, 영화 속 음식이야기는 자국중심주의와 역사적 관계를 초월해 인류 보편의 문화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카모메식당>을 통해 일본과 일본영화, 일본감독을 더 알고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드니 말이다.
갑자기 이 맛깔스럽고 사랑스런 영화를 만든 감독이 궁금해졌다.
주인공은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 그는 소년들의 성장을 그린 작품 <요시노 이발관>으로 데뷔, <사랑은 5.7.5!>에서는 고교생의 청춘을 그렸다. <카모메식당>은 촬영감독을 비롯해 많은 핀란드와 일본인 스태프가 참여, 마치 영화 속 세계의 연장선에 서 있는 듯 즐겁고 느긋하게 촬영했다고 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카모메식당>이라는 새로운 영상세계가 탄생했다.
주인공 사치에를 연기한 고바야시 사토미는 주로 TV 드라마를 중심으로 활동해 온 매력적인 배우다. 그는 소박한 여유와 진실한 미소, 따듯한 인간미로 영화 전체에 스며들며 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사치에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캐릭터인 미도리(가타기리 하이리)와 미도리와 부딪힐 것 같은 마사코(모타이 마사코)의 신기한 조합도 관람 포인트다.
오롯이 자신으로, 자신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고 관계를 맺는 사치에의 비법은 "단지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사실 직장인은 사치에처럼 살 수 없다. 자기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도 돈욕심, 사업욕심을 가지곤 절대 실천할 수 없다.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으려면, 우선 과감한 결단과 용기가 필요하다! 순간 순간 자신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살려는 중심이 단단히 서있어야 한다. 이런 자만이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고 '우아한 여유'를 부릴 자격이 있다.
배우 고바야시 사토미가 나오는 또 다른 작품도 봤다.《카모메 식당》의 저자 무레 요코의 소설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을 TV 드라마(2013)로 만들었다.
출판사에서 일하던 아키코는 죽은 엄마의 식당을 처분하려다 빵과 수프만 파는 자신만의 작은 가게를 개업한다. 아키코는 어느 날 우연히 만난 길고양이를 식구로 들이고, 심사숙고해 뽑은 직원인 시마와 친구처럼 관계하고, 세심하게 필요를 채워주지만 가끔 꼰대처럼 구는 이웃 해피카페 주인 마마(모타이 마사코, 정말 반가웠다. 카모메식당 이후 여기서도 함께 출연했군^^)와도 서로 배려하고 돕는 관계로 만든다.
죽은 엄마의 가까운 지인들과도 마음을 나누고, 근처 절의 스님과도 진심을 주고받는다. 그리고 가게에 찾아오는 손님들과도 진솔한 관계를 맺어간다. 자신이 사는 동네와 동네 사람들, 일과 맺어진 사람, 심지어 동물과도 어떻게 연결하고, 손을 내밀고 맞잡는지를 보여준다. 나이, 직업과 상관없이 친구가 되고, 친구를 만드는 소중한 경험을 영상에 고스란히 담았다.
마지막으로, <빵과 스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의 아키코의 고백을 마음에 새겨본다.
"지금까지 제 자신이 저를 구속했다는 걸 깨달았어요. 저는 너무 착실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불량해지려고 합니다. 제가 자유로워야 새로운 시간이 시작된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제 방식대로 가게를 꾸려 나가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