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불사의 밤은 내가 중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즐겨 부르는 노래입니다. 아무리 불러도 싫증이 나지 않고 부를 수록 가슴을 파고드는 애절함으로 늘 어머니 얼굴을 떠 올리게 하는 동화 같은 가곡입니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은 하늘만 돈짝 만하게 빠꼼히 올려다 보여 ‘단지 증골’이라는 촌스러운 이름으로 불리운 동네였지만, 그 산초 향 짙고 산동백 노랗게 피며 머루 다래 주렁주렁 열리던 산골 동네, 내가 나고 자란 충남 예산군 대술면 방산리를 한시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고향 집 앞 작은 산 고개를 넘으면 조그만 절이 하나 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칠월 칠석이나 사월 초파일이 되면 이 절에 가족의 건강을 빌고 액운을 몰아내는 기도를 올리시고자 하얗게 안개가 깔린 새벽길을 이슬을 털어내며 걸음을 재촉하곤 하셨습니다. 이 절에는 나와 중고등학교 동창이며 같은 종씨인 친구가 살고 있었습니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이 친구 덕에 방학 때는 며칠씩 묵어가며 밤을 새워 문학 토론도 하고 좋아하는 읍내의 여고생 얘기를 하며 새벽까지 혼자서 울어대는 풍경소리에 잠 못 이룬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나나 친구나 어려서 누구나 한번 쯤 빠져드는 문학 소년이었던 것입니다. 일종의 건방진 나르시즘이었지요.
‘성불사의 밤’을 지으신 노산 이은상 선생님은 우리가 잘 아는 가고파, 고향생각, 오륙도 등 수많은 옥고를 내어 놓으신 시조계의 대가이십니다. 나는 어려서 시조가 무언지도 몰랐지만 성불사의 밤과 ‘어제 온 고기배가 고향으로 간다하기.....’로 시작되는 고향 생각 같은 노래를 특히 즐겨 불렀습니다. 지금도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할 적에는 꼭 이 두 노래를 세트로 부릅니다. 때로는 피아니시모로 때로는 안단테로 때로는 알레그로로.... 그러면 마음이 차분해 지고 애들 마음처럼 즐겁습니다.
나는 정년 후에 시조 전문지인 계간 ‘현대시조’에 ‘억새’로 신인 문학상을 받아 등단한 시조시인입니다. 당시 등단의 길을 열어 주신 ‘현대시조’ 발행인 선정주 시인께서 “이다음 빈소 신주에 학생부군 대신 시인 아무개로 쓰면 얼마나 그럴듯합니까?”라던 웃으개 말이 지금도 늘 귀에 맴돕니다. 2005년에 등단했으니 시조를 써 온 지도 어언 10년이 되었습니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시를 좋아했던 내가 진즉 ‘성불사의 밤’과 ‘고향 생각’ 같은 시조 가사말의 노래를 즐겨 불렀다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혹시 시조시인이 되라고 점괘를 주신 토정 이지함 할아버지의 묵시록은 아니었을까요?! 토정비결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토정할아버지는 나의 16대 방계 할아버지이십니다. 선비 집안의 후손이니 글 솜씨를 조금은 보태주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왜 나는 시조로 된 노래를 어려서부터 좋아했을까요? 그건 노랫말도 좋지만 그 노래를 부르면 나도 모르게 저절로 어깨가 들썩여 지고 신명이 나기 때문이었습니다. 3.4 3.4조의 운율에 맞춰 시조 한 수를 읊어보십시오. 그러면 그대로 아름다운 한 곡의 음악이 됨을 느끼실 것입니다. 시조는 그래서 정형시이자 전통적 국민문학이며 흥의 문학이라 불리웁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 바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아리랑이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읽어서 입에 착 달라붙는 가락이 시조입니다. 우리 민족은 흥과 신명의 민족입니다. 흥만 돋우어 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우리 민족입니다. 사물노래패 소리를 들으면 그렇게 신이 날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세계 10대 경제대국이 된 것도 ‘잘 살아 보세’라는 잠재적 신명의 민족성이 불같이 일어났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시조가 민족의 저력을 부활시키는 엑기스임을 빨리 자각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시조는 3장 6구 12 음보 45자 내외의 글로 만들어진 민족시로 고려시대에 시작하여 오늘에 이른 700년의 민족문화 유산입니다. 정몽주의 ‘이 몸이 죽고 죽어..’나 황진이의 ‘동짓달 기나긴 밤을..’, 이은상의 ‘내 고향 남쪽 바다..’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것이 소중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민족시인 시조가 왜 외연으로 자꾸 밀려 날까요? 민족의 얼과 혼이 살아 숨 쉬는 전통문화가 왜 기를 피지 못하나요?
흥이 살아나야 숨어 있는 민족의 저력이 표면화 됩니다. 맛과 멋이 있는 우리 전통문화 시조를 외면하면 선조님들이 슬퍼합니다. 400년 역사의 일본 하이쿠는 하이쿠 작가만도 4백-5백만명에 달함은 물론 확실한 문학 장르의 하나로 세계화에 성공했는데 우리 시조는 700년의 역사를 가진 정형시임에도 불구하고 시조시인이 고작 1,500여명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세계화 진입에도 실패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문화관광부에서 선정한 100대 민족문화상징에도 시조는 없습니다. 사실여부는 확인할 수 없으나 일설에는 도서올림픽이라 할 수 있는 '2005년 프랑크푸르트국제도서전'에서 주빈 국으로 선정되어 시조를 세계에 널리 알릴 절호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책 100권'에 고우영의 만화 일지매도 있는데 시조는 없었고 영어로 번역된 대표작에도 시조는 없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한국문학을 소개할 문인 62명에 시조시인은 단 한 명을 없었다니 이러고도 시조700년을 외칠 수 있는지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뿐만 아니라 신춘문예에서 시조를 빼는 신문사가 늘어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전통의 맛을 살리고 멋을 일으켜야 한 나라의 문화가 발전합니다. 시조가 부흥하려면 교과서 에서 시조를 획기적으로 늘리고 우대하는 등 교육부가 먼저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합니다. 여기에 일간지와 tv 등 대중 매체가 지면과 시간을 과감하게 확대해서 민족시를 키워 나가야 합니다. 지금도 몇몇 신문사가 시조난을 두고 시조창달에 앞장서고 있지만 모든 언론이 앞장서면 시조의 대중와에 요원의 불꽃이 일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회장단이 발을 벗고 나서야 합니다. 교육부와 언론사를 꾸준히 방문하여 활발한 로비를 하여야 합니다. 한 발 더 나아가 일본 하이쿠에 대적할 세계적인 문학 장르로 키우기 위해서는 대통령께서 직접 힘을 보태셔야 합니다. 지(知)적인 선비문화가 무(武)적인 사무라이문화에 지는 것은 고려+조선 1000년 역사의 자부심이 결코 허락하지 않습니다. 당돌하게 호소 드립니다. 매년 국회에서 발표하는 연두교서에서 시조 한 수로 시작의 운을 떼어 주십시오. 대통령께서는 작년 어느 날 경제관계장관회를 주재하시면서 양사언의 시조 ‘태산이 높다 하되...’를 인용하셨습니다. 얼마나 빠르게 가슴에 와 닿는 호소였습니까? 그러시면 됩니다. 일본은 년초에 천황이 발표하는 하이쿠가 총리가 발표하는 년두교서 보다도 더 많은 관심과 인기를 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시조를 창달하기 위해서는 일본 천황처럼 대통령께서 보다 많은 사랑과 관심을 보여주시면 됩니다. 시조로 연두교서의 첫말을 시작하는 관례가 정례화 되면 온 국민이 관심을 보일 것이며 한 발 더 나아가 세계가 주목할 것입니다. 그러시면 됩니다. 전통문화 유산인 시조를 찬란하게 꽃피운 대통령으로 기억되게 하여 주십시요. 시조가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도록 그 길을 열고 닦아 주십시오.
아울러 시조단에 한 말씀 드립니다. 시조의 생활화를 위해서는 시조시인 스스로 시조작품 발표를 통한 외형 확장에 적극 나서야 합니다. 지면이 부족하다는 핑계를 대서는 안 됩니다. 지금은 SNS 등 온라인상에도 문학작품을 발표할 공간이 많습니다. 온라인 카페는 물론 페이스북, 트위터 그리고 개인 불로그 등을 통해 얼마든지 공간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온라인에 들어가 보면 어느 카페에나 문학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난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시인들이 작품을 발표하지만 시조시인은 눈을 씻고 봐도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온라인 공간에 눈을 돌리는 시조시인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시조시인협회에서도 온라인카페(http:/cafe.daum.net/hangooksijo)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많은 시조시인들이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지만 이미 지면으로 발표한 작품들을 소개, 추천하는 데 그치고 신작을 발표하는 시조시인들은 몇 사람에 불과합니다. 시조시인협회 카페를 더욱 활성화하여 주실 것을 당부드립니다. 지금 젊은 문학도들은 pc와 스마트폰에 친숙하여 시조시인협회 대변지인 계간 ‘시조미학’에 시조의 대중화를 선도할 수 있는 획기적인 계획을 열심히 광고한다면 성공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인은 물론이고 중견 시인들도 시조시인협회 카페에 솔선하여 작품을 발표해야 합니다. 그리고 신인들이 발표한 작품 중 좋은 시조를 선정하여 ‘시조의 날‘에 시상하는 등의 인센티브를 주면 시조시인들의 저변을 확대하고 발표지면을 늘리는 획기적인 방법이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이 카페는 시조를 공부하고 관심있는 분들을 위하여 이미 문호를 개방하였습니다. 시조시인협회카페에 ’온라인 시조문학상‘을 제정하여 시상한다면 카페의 활성화는 물론 시조인구의 저변확대 등 좋은 성과를 볼 것으로 기대하며 회장단의 진지한 검토를 당부드립니다.
아울러서 시조단에 별도로 무슨 무슨회를 만들어 편가르기 하는 행위는 없애주셨으면 합니다. 한국시조시인협회가 있는데 또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방계조직을 만들어 분파를 조성하는 일은 반드시 지양돼야 합니다. 한국시조시인협회가 글 잘쓰는 사람들의 모임과 글 잘못쓰는 사람들로 갈려져 있는 듯한 끼리끼리문화를 공공연히 노출시키는 것은 이 좁은 시조단의 발전을 위해서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우열반을 나누는 논리 때문에 모르는 사람들은 시조단이 몇 개 분파로 나뉘어져 있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시조시인협회는 하나여야 합니다. 협회가 있는 이상 협회카페가 시조시인들의 공동 토론광장이자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협회를 넘어서는 소왕국을 조직하여 뜻을 같이하는 문인들끼리 별도의 모임을 만드는 진영의 논리, 분파현상은 반드시 지양돼야 합니다. 특히 뜻을 같이하지 않는다 하여 미운오리새끼 취급하며 논의에 참여하지 못하게 문을 걸어 잠그는 유아독선적 행태는 반드시 시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어느 카페에 글을 실렸더니 사전 경고나 양해나 설명도 없이 회원자격을 일방적으로 박탈하는 활동중지를 시켰습니다. 같은 문인에게 보내는 이 오만한 교만 앞에 인격을 가진 한 시조시인으로서 깊은 모욕감에 치미는 분노를 달랠 수 없습니다. 글은 인격을 나타내는 자존심입니다. 도망가는 적군도 뒤에서 화살을 쏘는 행위는 가장 비겁한 행동이라고 했습니다. 사형수에게도 최후 변론의 기회는 줍니다. 영문도 모른채 카페 밖으로 내던져진 초라한 내 모습을 보며 내던져버린 권력자의 몰상식한 행동에 가벼운 조소마저 느낍니다. 필자도 작지만 ' 현대시조'라는 카페를 도맡아 운영하는 운영자입니다. 자존심을 떡먹듯 짓밟은 그 카페지기는 사과하기 바랍니다.
어느 중견 시조시인께서 "시조문학의 발전 없이는 인문학의 발전도 없다"고 시의적절한 표현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자기 것을 외면하고 남의 것에만 눈길을 줘서는 과거의 찬란한 문화 역사가 승계될 수 없음을 잘 압니다. 시조가 대중화되는 "시조 르네상스운동"이 "국민운동"으로 승화되어야 합니다. ‘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여’라는 광고 카피를 다시 듣고 싶습니다. '시조를 부탁해'라고 전 국민에게 과감히 호소합니다.(2015.10.5 2017.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