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100년 넘게 조림하고 세금내고 매장지로 쓰며 관리해오던
쑥골 문중 산은 남원 시청에 넘어갔다.
쑥골에 살지도 않는 먼 집안 친척이 자기 조상 이름으로 되어 있다는 이유로
단독 상속받아 이번에 미래 남원 공원에 포함되면서 남원 시청에 팔아먹은 것이다.
지금까지 허락도 받지 않고 도지도 안 내고 썼다나 뭐라나 씨불여 댔다고 한다.
항의하러 갔더니 공돈이 생겼다고 미소를 지었다.
대체할 조상 옮길 땅을 살 의향은 없느냐는 요구에
슬그머니 또 하나의 땅 문서를 내밀었다.
두 집안 두 사람 명의로 되어 있어 팔아먹지 못한
구례 산동 산을 특별조치법으로 찾아 처분하자는 말이었다.
5대조 할머니가 계시는 예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불충하게도 소유권에 대해서는 몰랐던 새로운 땅이었다.
불현 듯 내 머리를 때렸다.
뺏겨서 갈 곳 없는 조상들을 모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산에 산소 쓸 자리가 있습니까?” 하니
“뭐 산 날(산 등성이나 산자락 비탈)에 쓰시던가”라고 말했다.
바로 재용이, 상수와 함께 그 산으로 향했다.
가서 보니 그런대로 괜찮아 보였으나 그 사람들이
7대 8대 웃대 조상들을 옮겨 놓아 그 아래로 협소하게 들어가야 했다.
조재용 회장이 이곳저곳 다니며 견적을 내고 알아보고 노력한 끝에
협소하나마 쓸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고
총무 조상수가 특별조치법등을 알아보고 추진한 끝에
땅 절반이 우리한테 오게 되었다.
우리는 나머지 반도 구입하려고 노력한 끝에
그 산을 온전히 쑥공 종회로 옮겨 올 수 있었다.
협소한 자리는 웃대 조상묘를 위로 옮겨 넓게 확보하게 되었다.
우공이산 (愚公移山), 愚: 어리석을 우 公: 사람 공 移: 옮길 이 山: 뫼 산
우공이산을 한자어 그대로 해석하면 '어리석은 사람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
산을 옮기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처럼 보이지만
한 가지 일을 끝까지 밀고 나가면 언젠가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의미의 사자성어다.
결론적으로 우공이산이 된 듯하다.
2006년 카페대문에서 말했던 25세 기자영자 때부터 관리해왔던 남원 산은 뺏겼지만,
그래도 꾸준히 벌초하고 관리해 왔더니 이번에 구례에 새 자리를 마련하고
한 자리에 모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새롭게 구례 시대가 열렸다.
천라지망(天羅地網), 한자 뜻을 풀이해보면 天(하늘 천),羅(그믈 라),地(땅 지),網(그물 망)의
4개 한자로 구성되어 '하늘과 땅에 그물이 쳐져 있다'는 의미다.
천망회회 소이불루(天網恢恢 疎而不漏)
하늘의 그물은 크고 넓어 엉성해 보이지만 놓치는 법이 없다고 했던가?
조상님의 음덕으로 부끄럽지 않게 조상들을 모실 수 있게 됐다.
땅 뺏긴 것이 뭔 대수냐! 이렇게 조상을 모실 수 있게 되었고
다시는 그런 일을 겪지 않게 단속하면 될 일이었다.
나머지는 하늘에 맡기고.
문제는 묘지 이장 때, 22대 할아버지 덕규(81세)1788~1869(戊寅~己巳)
앞에 있었던 상석을 옮길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앞에서 상술한대로 골짜기에 밀려나 있던 상석을 묘 이장과 함께 옮기느냐 마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묘 터가 바뀌었으니 당연히 옮겨서 제자리에 놓아야 한다고 주장하였지만
모두들 극구 반대하였다.
이장 때 구경꾼 중 누군가가 할아버지가 밀어버린 것을
왜 가져오느냐고 한 그 말을 믿고 그걸 왜 가져오느냐는 것이었다.
우리 아버지는 모셔오고
상석을 그곳에 옮기면 구례 산동 묘를 망하게 하려는 것 아이냐는
말에는 할 말을 잃고 나라도 가져와야 하겠다고 결심했다.
공원으로 변할 그곳에 굴러다닐 할아버지 묘 상석을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었다.
나라도 수습하겠다고 하자 그렇게 하라고 결론이 났다.
나는 2024년 가을 작물 때문에 길로는 갈 수 없어
포클레인을 끌고 산을 올라가 두 개의 골짜기를 넘고 산을 넘어 그곳에 가서 상석을 가져오게 되었다.
그 터에 석물을 쓸 수 없어 옛터에 남은 유일한 유물이었다.
거기에는
通政大夫折衝將軍龍驤衛副護軍趙公德奎之墓
라는 명문이 선명하였다.
통정대부通政大夫; 조선 시대, 문관의 정삼품 당상관(堂上官)의 품계.
통훈대부(通訓大夫)의 위이며, 1865(고종 2)년부터 종친, 의빈의 품계와 같이 쓰였다.
절충장군折衝將軍; 조선 시대, 정삼품(正三品) 당상관(堂上官)의 무관 품계.
어모장군(禦侮將軍)의 위이다.
용양위부호군龍驤衛副護軍은 종4품 무관직으로
조선시대 경상우도병마절도사 정기룡鄭起龍와 의병장 홍의장군 곽재우 郭再祐가 받았던 품계이다.
용양위龍驤衛는 조선시대 중앙 군사조직인 5위의 하나로 좌위(左衛)라고도 한다.
부호군副護軍은 조선 시대,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에 속한 종사품 벼슬이다.
정미丁未년 10월 12일로 되어 있어
상석은 1907년 종손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백년이 조금 넘었다.
묘지가 정리되는대로 새로이 석물을 마련하여
상석에 대한 설명을 붙여 후손들에게 남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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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이장 후 구례에서 처음으로 맞이한 시제, 축문이다.
다시 새로운 해를 맞이하였습니다.
올해는 특히 조상의 음덕으로 새명절에서 구례 산동으로 묘를 이전하여
새롭게 조성된 묘에서 인사드리게 되었습니다.
종중 산도 정리하였고
뫼를 옮겨 일신하였습니다.
이렇게 기쁜 자리에
새로운 마음으로 삼가 맑은 술과 정성스런 음식으로
공손히 절을 드리오니 흠향하시옵소서.
두루 살피시어 자손들 만사형통하게 도와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