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빛을 비추는 자의 삶
본문: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됫박)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등잔대)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태복음 5:14-16)
찬송: 235- 달고 오묘한 그 말씀, 344-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기도: 김미숙 전도사님
날짜: 2003. 10. 20(월) pm 7:30분 사랑의 복지선교회
내용:
얼마 전 미국의 한 리서치기관에서 직장인을 대상으로 윤리의식 리서치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첫째로, 사무실의 물품, 즉 펜이나 페이퍼와 같은 사무용품을 집에 가져간 적이 있습니까? 라는 질문에 집에 가져간 적이 있다는 응답자가 80%였습니다. 그 가운데 비기독교인이 43%, 기독교인이 37% 였습니다. 둘째로, 직장에서 사적인 장거리 전화를 사용하십니까? 라는 질문에 40%가 "예"라고 대답했으며 비기독교인이 23%, 기독교인이 17%였습니다. 셋째로, 아프다고 거짓말을 하고 결근한 적이 있습니까? 라는 질문에 64%가 "예"라고 대답했으며 비기독교인이 37%, 기독교인이 27%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력서에 과장하여 기록한 적이 있습니까? 라는 질문에 20%가 "예"라고 대답했으며 비기독교인이 12%, 기독교인이 8% 였습니다.
여러분들이 보시기에 어떻습니까?
기독교인들이 윤리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비기독교인들에 비해 윤리적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세 번째 질문이외에는 4-7% 밖에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이 리서치는 미국의 상황입니다. 만일 우리나라에서 이 리서치를 하였다면 어떤 데이터가 나오겠습니까?
여러분들이 볼 때에 우리 기독교인들의 삶이 어떻다고 보십니까? 세상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습니까? 아니면 지탄을 받습니까?
인도의 간디라 하면 세계적으로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이분이 하신 말씀 가운데 기독교인들에게 도전이 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나는 예수를 존경한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존경하지 않는다."
이것은 무슨 말입니까? 타종교인으로서의 간디, 민중운동가로서의 간디, 학자로서의 간디의 눈으로 볼 때, 적어도 예수님 앞에 고개를 숙일 정도로 예수의 삶은 존경할 만한 삶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뒤를 돌아서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한심하다는 것입니다.
지난해 TV에서 조계종에서 승려들끼리 각목을 휘두르며 싸우는 모습을 다들 보셨을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 그들의 모습 속에서 자비하신 부처님의 모습이 보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기독교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며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가운데 빛을 비추는 삶은 어떠한 삶입니까?
첫째, 성령님과 동행 하는 삶.
본문에 등불이 나옵니다. 성령님과 성도와의 관계가 바로 등불의 관계, 즉 불과 기름의 관계입니다. 등잔에 기름이 없으면 어떻게 됩니까? 불이 꺼집니다. 등잔에 늘 기름이 차 있을 때 불이 꺼지지 않고 계속 피듯이 우리도 말씀의 기름, 기도의 기름, 찬양의 기름이 떨어지면 성령의 불이 약해집니다. 그러다가 결국 성령을 소멸해 버립니다. 꺼진 불을 다시 피울려면 힘들 듯이 한번 소멸한 성령을 회복하려면 여간 어렵고 힘든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전서 5:19에 "성령을 소멸치 말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말씀이 넘치고, 기도가 넘치고, 찬양이 넘치면 성령이 충만해 집니다. 성령이 충만해 지면 은혜가 넘치게 되면 예수님의 모습이 비쳐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 충만한 삶, 성령과 동행하는 삶이 빛을 비추는 자의 삶인 것입니다.
둘째, 착한 행실을 하는 삶
야고보서 2:14에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믿음이 좋고 성령이 충만하다 할지라도 심지어 성경에 나오는 모든 능력과 은사를 가지고 있을 지로도 행함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야고보서 2:17에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모태신앙이고 교회의 중직을 맡고 심지어 목회자일지라도 행함이 없다면 그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예전에 제가 다녔던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교회에 신체장애를 가지고 어렵게 사는 형제가 있었습니다. 더욱이 IMF가 닥치면서 그 형제는 생활이 더 힘들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알게된 교회의 청년들이 폐품들을 모아 팔아서 그 형제를 도와주었습니다. 그리고 인천의 명화원에 방문을 하며 열심히 봉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부목사님께 그 형제의 어려운 상황을 말씀드리고 교회 차원에서 도움을 주기를 건의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청년부 예배시간에 그 목사님은 설교 가운데 "교회는 자선 단체나 구제 단체가 아닙니다"라고 하면서 청년들의 활동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상황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여러 청년들이 교회를 떠났습니다. 심지어 천주교로 옮긴 청년도 있었습니다.
반면에 교회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강화에 기도원을 지었습니다. 지금은 시골에 지교회를 세우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성전을 짓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성전을 허물고 그 위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의 모습들을 보면 예수님이 세우신 교회를 허물고 그 위에 다시 성전을 짓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아픕니다.
교회세습의 문제, 성직 매매의 문제 등등 이미 예수님께서 내어버리셨던 것, 중세교회가 버렸던 것을 요즘 교회가 다시 그것을 취하려고 합니다. 개가 토한 것을 도로 먹듯, 돼지가 다시 더러운 곳에 눕듯이 교회가 점점 세상에서 빛을 잃어버리는 듯 합니다.
성도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예전에 국민일보 칼럼에서 본 기억이 납니다. 그 가운데 "교인들은 교회 안에서 교외 예기를 많이 하고, 교외에서는 교회 예기를 많이 한다" 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와서 쭉 읽었습니다.
성도들이 교회 안에서 대화를 나누는 내용들을 분석해 보니까 믿음과 신앙에 관계된 내용보다 세상 적인 내용이 훨씬 많다라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 남을 헐뜯고 비판하는 내용이 가장 많았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세상 속에서 기독교인들이 모여서 하는 말 중에 교회를 비판하고 목사님과 성도를 비판하는 내용이 많다라는 것입니다.
다른 면에는 비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중에 가장 많은 대답이 "기독교인들이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몸소 실천하시며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그러한 삶을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당시에 제자들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고대교회에는 제자들을 통해 하나님을 보았으며, 초대교회에 접어들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오늘날 세상에는 아직도 예수님을 믿지 않으며 하나님을 모르는 무수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들은 누구를 통해 하나님을 볼 수 있겠습니다. 바로 여러분과 저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빛을 비추는 그리스도의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삶을 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