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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알렉산드라 넵스키 수도원에 있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무덤. |
도스토예프스키가 25살 때 쓴 중편소설 「가난한 사람들」은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다. 가난하고 볼품없는 중년의 하급관리 마까르와, 고아 신세로 갖은 고난을 겪으며 부유하고 탐욕스런 지주와 마음에도 없는 결혼하는 가엾은 처녀 바르바라가 주고받은 편지들로 이뤄진 서간체 소설 「가난한 사람들」은 그의 데뷔작이자 출세작이다.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섬세하고도 간절한 묘사에 감격한 당대의 유명 평론가 벨린스키가 그를 와락 껴안으며 "이 소설을 정말 당신이 썼단 말이오!" 하고 말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러시아 문단의 기대를 한몸에 받은 도스토예프스키는 2년 뒤 또 다른 러브스토리 「백야」를, 다음해엔 「첫사랑」을 발표한다. 모두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성경과 만남'이라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도스토예프스키는 '세계 소설문학사의 최고봉'이라는 별칭을 얻지 못하고 연애소설을 쓰는 평범한 작가에 머물렀을 것이다.
▲ 베로프가 그린 도스토예프스키 초상. |
#자유에 대한 갈망이 빼앗아간 8년 세월
역사학자 E. H. 카가 쓴 「도스토예프스키 Dostoevsky 1821~1881」란 책이 있다. 이 책에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이상주의적 생각을 갖고 있던 독서토론회 '페트라셰프스키'에 가입한 것이 죄가 돼, 총살형 선고를 받아 사형 집행장에 끌려갔다 황제 특사로 감형돼 8년 형을 받는 과정이 상세하게 나온다.
투옥된 것은 1849년, 28살 때로 「첫사랑」을 발표한 직후였다. 당국은 페트라셰프스키 회원들을 사형시킬 의도는 애당초 없었고, 이들처럼 작당해 책 읽고 토론하는 모임을 갖지 말라는 경고를 전 러시아에 하려는 의도였다. 유죄판결을 받은 23명 중 사형수가 된 20명을 집총한 병사들 앞에 서 있게 한 뒤, 황제의 은전으로 갑작스레 감형해 시베리아 유형지로 보낸다는 것이 시나리오였다.
페트라셰프스키 회원 사건으로 독서토론회 같은 단체를 만들어 자유주의 사상을 흠모했다가는 죽음 일보 직전까지 간다는 사실이 러시아 전역에 퍼졌다. 사람들은 '자유'와 '해방'에 대해서 입도 뻥긋하지 못하게 됐다. 카는 전기에서 도스토예프스키가 이 일에 대해 이렇게 썼다고 한다.
"강도에 의해 죽게 될 사람, 이를테면 밤에 숲속에서 그의 목이 잘리게 될 사람도 마지막 순간까지 죽음을 면할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그러나 사형의 경우, 마지막 희망은 사라지고 명확성만이 남는다. 명확한 선고가 있고 도망칠 수 없다는 확신으로 온통 두렵기만 한 고통이 깃든다. 이보다 더 큰 고통이란 세상에 없다. 미치지 않고 이 고통을 이길 수 있는 인간이 있다고 누가 말했던가. 이처럼 상상할 수 없고 아주 쓸모가 없는 굴욕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사형 선고가 낭독되고 이 고통을 맛보게 한 뒤 '자, 너는 사면되었다'고 말하는 자가 있다. 그렇게 당해본 자는 아마 알 것이다. 이러한 고통, 이러한 공포에 대해서 그리스도는 말했다. '인간을 그렇게 취급한다는 것은 위법이다'라고."
#성경을 손에 쥐고 읽고 또 읽다
조사받는 과정에서 8개월 동안 독방에 감금됐던 도스토예프스키는 목숨을 건지기는 했지만 사형집행이 정지된 날부터 4년 동안 발목에 족쇄를 차고 살아가게 된다.
시베리아 유형지로 끌려가는 도중 후 토블스크란 도시에서 6일간 머무는데 도스토예프스키는 중간 기착지인 이곳에서 인생 전환을 이룬 하나의 사건을 겪는다. 이 사건은 사형 선고와 집행 직전의 감형보다 더 극적인 일이었다. 24년 전에 일어난 사건인 데카브리스트 난(12월의 난, 나폴레옹 시대에 자유사상을 접한 귀족출신 청년 장교들이 농노제 폐지와 전제 군주제를 반대하며 일으킨 반란)의 생존자들이 그때까지도 형을 살고 있었는데, 그들의 부인이 이곳에 와서 남편 뒷바라지를 하고 있었다. 이 여인들은 동토요 오지인 시베리아로 떠나는 죄수들에게 돈과 음식과 옷가지를 선물하면서 책도 한 권씩 주었다. 바로 성경이었다. 죄수들이 소지할 수 있는 유일한 책인 성경을 받은 일행은 사흘을 더 여행한 뒤 옴스크의 감옥에서 4년을 살게 된다.
도스토예프스키가 독서토론회에 가입하지 않았더라면 시베리아로 끌려가는 일도, 성경을 숙독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노름빚을 갚으려 소설을 쓰다
시베리아 유형지에서 성경만 수십 번 읽는 동안 그의 인생관과 세계관에 큰 변화가 온다. 그 덕에 그는 고통을 통해 영성을 얻고, 하느님께 대한 경배와 이웃에 대한 사랑을 동시에 행해야 구원이 이뤄진다는 그리스도 가르침을 문학적으로 구현하게 된다.
시베리아에서 군복무를 할 때 도스토예프스키는 술주정뱅이의 아내인 마리아라는 여인을 만나 사랑하게 됐다. 술주정뱅이가 죽자 아들까지 있던 마리아와 결혼하는데, 그녀는 폐결핵에 걸려 자리보전을 한다. 그 무렵 그는 사면 복권돼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게 됐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유럽 어디를 가나 도박을 했고, 빚을 지면 형에게 돈을 부쳐달라고 애원하는 편지를 썼다. 빚을 갚으려고 소설을 쓰다 간질이 오면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지는 망나니 삶의 나날이었다. 사랑하던 여인에게 버림받고 다시 두 여인을 사랑했으나 차이고 만다. 세 여성 모두 처음에는 유명한 소설가라는 말에 도스토예프스키에게 관심을 기울이다 상습 도박꾼에다 간질병 환자임을 알고는 떠나가는 식이었다.
생활은 엉망이었지만 노름빚을 갚기 위해 「죽음의 집의 기록」(1862), 「지하 생활자의 수기」(1864), 「죄와 벌」(1866), 「백치」(1868) 등을 써나갔다. 작품의 주제는 궁극적으로 타락한 자의 신성 획득이었다. 죄를 짓고 반드시 뉘우쳐야 한다는 것을 작품으로 설파했으니 어찌 보면 자기구원의 방법이 소설쓰기였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 그리스도
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길고 가장 중요한 작품이 1879년부터 1월부터 다음해 11월까지 연재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다. 카라마조프가의 둘째 아들 이반이 동생 알료사에게 얘기해주는 식으로 전개되는 '대심문관'편은 「백치」의 주인공 미시뀐 공작의 간질발작 장면과 함께 도스토예프스키 문학의 백미이다.
이반은 16세기 때 지상으로 내려와 기적을 행하는 예수를 옥에 가둬놓고, 아흔 살의 수도승 대심문관이 예수를 심문하는 장면을 설명해주며 그리스도교 본질에 대해 묻는다. 우리는 눈앞에 안 보이는 신을 사랑해야 하나, 헐벗은 이웃을 사랑해야 하나…. 도스토예프스키 전기를 쓴 또 한 사람인 콘스탄틴 모출스키는 소설의 이 부분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이웃에 대한 사랑은 타락한 인간의 본성이 아니라 신의 본성이다. 인류를 사랑하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세상 구원을 위해 자신의 아들을 내놓은 신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그리스도는 구원자, 구세주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유일한 해방자였다. 대심문관은 어두운 생각과 불타는 열정으로 감옥에 갇힌 그리스도를 폭로한다. 그리스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폭로에 입맞춤으로 대답한다. 그는 굳이 자신을 정당화할 필요가 없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 그분의 존재 자체로 그의 적의 주장은 위력을 잃고 만다."
타락한 삶 가운데서도 구원의 빛을 찾으려 했던 자신의 인생역정을 문학으로 잘 승화시켰음을 모출스키는 밝히고 있다.
#사랑의 승리
도스토예프스키는 마흔다섯살 때 악덕 출판업자에게 돈을 빌리면서 장편소설을 정해진 날까지 못 주면 위약금과 함께 앞으로 9년 동안 쓰는 작품의 저작권을 넘긴다는 내용에 서명한다. 그때 급히 구한 속기사 안나는 스무 살이었다. 쓸 시간이 없어 구술하면 받아 적는 식으로 소설을 완성시켜 나갔다. 안나는 천재작가의 위대한 소설에 감동해 그를 내심 사랑하게 된다. 도스토예프스키도 자기를 위해 헌신적으로 일해 준 어린 처녀를 사랑해 새로운 소설의 줄거리를 말하는 수법으로 사랑을 고백한다.
"이렇게 험한 생을 살아온 사람의 사랑 고백에 그녀는 '네'라고 답했을까요?" 안나는 벅찬 가슴으로 이렇게 답했다. "나라면 '당신을 사랑합니다. 내 생명이 다하도록 당신을 사랑하겠습니다'하고 대답할 겁니다." 청혼이었고 결혼 승낙
이었다.
두 사람의 결혼은 도스토예프스키 생애 최대의 도박이었는데 희한하게도 그때 완성한 소설 제목이 '도박자'였다. 이 도박은 노름꾼 소설가를 구해준다. 안나는 어떠한 고난과 가난 속에서도 남편이 소설을 쓰게 뒷바라지해 결국 인류에게 구원의 빛을 전하는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완성케 했다. 소설을 탈고한 3개월 뒤에 그는 아내가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둔다.
이 소설의 첫 페이지는 헌정사다. "안나 그리고 리예브나 도스토예프스카야에게 바친다." 그는 생애 최후의 소설을 아내에게 바쳤다. 두 번째 페이지에는 요한복음 12장 24절이 나온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그는 또 생애 최고의 소설을 그리스도에게 바쳤다.
이승하(프란치스코, 중앙대 문예창작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