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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가족 24명의 8박 9일 유럽탐방기
2009년 새해를 맞는 기분이 남다르다. 5년 전 어느 날, 친구들과의 의기투합으로 진행된 해외여행이 실현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면밀하게 준비되어 온 이번 여행은 돌발적인 세계금융위기를 맞아 성사의 기로에 처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20년차 교직생활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고, 자녀들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겠다는 여행의 목적이 확고해지면서 추진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여행 일정이 확정되면서 장기간 해외체류에 따른 건강관리를 위해 체력단련도 하고, 관련서적과 영화를 보면서 사전 배경지식을 쌓기도 하였다. 여행을 준비하는 내내 즐거움의 연속이었다.
야심 찬 해외여행으로 새해 첫날부터 바쁘다. 내일아침 일찍 출발해야 하기 때문에 미리 준비물을 챙겨 놓아야 했다. 빠트린 물건이 없는지, 미처 챙기지 못한 것이 있는지? 잠자리에 들었으나 머릿속에는 온갖 상념들로 어지럽다. 잠을 뒤척이며 몇 번이나 눈을 떴다. 이렇게 밤을 꼬박 지새웠다.
드디어 1월 2일 아침 06시 40분! 집을 나선다. 출발장소인 도청민원실 앞으로 07시까지 모여야 한다. 서두른다고 했는데 5분 늦게 도착했다. 다른 가족들이 이미 도착해서 우리를 기다렸다. 간단히 인원파악 및 준비물을 확인한 후 출발했다.
아침식사를 위해 정안휴게소에 잠시 정차했다. 아침식사로 쇠고기국밥을 선택했다. 외국에서 당분간 쌀구경하지 못할 것 같아 떠나기 전에 한 끼라도 더 챙겨먹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곧바로 후회했다. 국밥이 너무 느끼하다. 시골어머님의 손맛을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뜨내기손님을 상대한다고 조미료로 맛을 냈나보다. 그러나 이런 투정도 해외여행 중에 현지 식을 먹으면서 얼마나 부질없는 일이었는지 경험한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인천공항을 향해 출발했다. 어젯밤 뜬 눈으로 밤을 새웠는데도 피곤하지 않다. 이런 것이 사랑하는 가족, 따뜻한 친구와 함께 하는 기쁨이 아니겠는가?
버스 안에서 전일관광 사장님으로부터 이번 여행과 관련해서 시차적응, 장시간 기내활동, 여권관리, 자녀들 용돈관리, 여행 중에 발생할지 모르는 돌발 상황 등에 대해 몇 가지 주의사항을 전달받았다.
그러는 사이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10시 50분 가방을 화물로 먼저 부쳤다. 이어 마일리지 카드를 발급하고, 쇼핑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공항 출국수속이 오래 걸릴 줄 알고 전주에서 일찍 출발했는데, 출국장과 면세점이 한산하다. 경기가 좋지 않다는 것이 실감난다. 마음이 조금 무겁고 왠지 모를 미안함도 든다.
오후 1시 30분.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비행기에 오른다. 기분이 묘하다. 기내좌석이 가족 배려가 되지 않아 생이별이다. 괜한 걱정과 두려움이 밀려온다. 안내방송이 나온다. 동체가 서서히 이동 중이다. 이륙의 공포! 하지만 국내비행 기술을 믿는다. 소음이 증가하고, 귀가 멍멍하다. 동체가 기우뚱기우뚱 거린다. 날씨는 맑다. 잠시 후 서해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섬들이 보인다. 서해 공해상으로 나와 북쪽 비행노선으로 진입하고 있다. 남북이 통일되어 직선항로 가면 얼마나 좋을까? 잠시나마 남북분단의 아픔이 느껴진다.
이륙 한 시간 후, 비행고도 5,100m, 비행속도 715㎞/h, 목적지까지 남은 거리 9,273㎞, 비행경로 ‘서울-북경-울란바토르-바이칼호-이르부츠크-우랄산맥-상트페테르부르크-발트해-코펜하겐-브뤼셀-파리’가 표시된다. 중국 북경 상공에서 15시 30분 기내점심으로 비빔밥과 미역국을 먹었다. 제법 맛이 있다.
자리가 불편하다. 허리도 아프다. 11시간을 이런 상태로 비행한다고 생각하니 걱정이 앞선다. 시차적응을 위해 기내에서 깨어있으려니 따분하다. 모두들 뭔가를 하고 있다. 이럴 때 순식간에 공간이동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괜한 생각을 해본다. 기내 개인 좌석에 설치된 스크린으로 ‘놈놈놈, 신기전’영화를 본다.
17시 10분 바이칼호를 지나고 있다. 우리 한민족의 근원지라는 이야기가 있기에 눈여겨 보여 진다. 날씨가 맑아 푸른 창공 사이로 바이칼호가 눈에 들어오고 푸른 물이 손에 잡힐 듯하다. 20시 30분 우랄산맥을 넘고 있다. 이렇게 쉽게 높은 산맥을 넘을 수 있는데 사람들은 왜 목숨을 걸고 등반을 할까? 또 한번 어리석은 물음을 던져 본다.
22시 00분 해물요리로 저녁식사를 했다. 지금은 러시아 상공을 통과 중이다.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사이를 통과하고 있다. 저녁노을이 붉게 빛난다. 노을이 계속된다. 비행고도 11,614m, 비행속도 852㎞/h, 목적지까지 2,453㎞, 맞바람속도 59㎞/h, 도착예정시각 17:00(남은 시간 3시간)이다. 몸이 점점 더 피곤하다. 눈이 아프다. 하지만 기내에서 바라보는 바깥 날씨가 환하고 너무 맑아 기분은 상쾌하다. 여행의 또 하나 변수는 날씨인데, 왠지 느낌이 좋다. 23시(현지시각 15시) 발트해 상공을 지나고 있다.
잠시 잠이 들었나보다. 기장의 안내 방송에 눈을 떴다. 00:14(16:14) 프랑스 국경을 넘고 30분이면 목적지 파리공항에 도착한다고 한다. 금새 파리 시내가 내려다보인다. 지선이의 눈이 빛난다. 셔터를 누른다. 공항 불빛이 보인다.‘낭만과 예술의 도시’라는 안내 방송이 나온다. 현지시각 17시 샤를 드골 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지구 반대편으로 훌쩍 넘어오다니, 문명의 이기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림과 사진 속 파리를 연상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공항 일처리가 더디다. 공항 서비스와 규모가 우리 인천공항과 비교된다. 거리는 지저분하고 바닥은 껌이 많다. 이곳에서 괜한 애국심이 발동한다.
현지 이종호 가이드를 만났다. 눈이 초롱초롱하고 긴머리가 잘 어울리고, 세련된 말솜씨가 내 맘을 사로잡는다. 18시면 이른 저녁시간인데 이곳은 벌써 깜깜하다. 예정에 없던 파리야경을 구경한다는 소리에 모두들 환호성이다. 파리의 상징, 에펠탑을 보러 18:10분 공항을 출발하여 이동하고 있다. 기대치 않았던 순간의 묘미, 현지 일정 변경으로 야간 투어를 하고 있다.
이동 중에 프랑스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있었다. 면적은 55만㎢, 한반도의 2.5배, 패션· 낭만· 예술의 도시, 파리는 105㎢, 9*12km의 크기의 작은 도시. 면적의 70-80%가 평야로 주요 산업은 밀, 와인, 치즈 등 농산품이며, 중공업도 발달했다고 한다.
19시 가이드 안내에 따라 에펠탑이 정면으로 보이는 샤이어 궁전 앞에서 내렸다. 잠시 뒤 우리는 세느강의 강바람을 맞으며 눈앞에 펼쳐진 장엄한 에펠탑 불빛 쇼를 볼 수 있었다. 이곳도 경제난으로 불빛 쇼가 10분에서 5분으로 단축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에펠탑 불빛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한 후 에펠탑에 직접 오르기 위해 다시 이동했다.
20시 에펠탑 승강기 앞이다. 멀리서 바라보는 불빛의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바로 밑은 커다란 쇳덩이가 엉성하게 얽혀있다. 동서남북 네 기둥이 위압적이면서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괜히 기가 죽는다. 이것이 파리의 힘이란 말인가?
밤공기가 쌀쌀하다. 우리들은 잠시 후 300m 에펠탑 위에서 바라볼 파리야경을 기대하며 추위도 잊고 있다. 추위 속에서 30분 기다렸는데, 단 몇 분 만에 올라간다. 조금은 허탈하다. 그러나 잠시 후 파리야경이 휘황찬란하게 펼쳐지면서 추위 속 기다림은 환호성으로 바뀌었다. 화려한 불빛, 높은 에펠탑에 짓눌린 듯한 가냘픈 건물들, 전통의 독특한 색깔, 파리 시내가 아담하고, 고풍스럽다. 역사와 전통, 그들에게서 느껴진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내려온다. 내려오는 길에 일행 중 한 명이 무리에서 이탈했다. 30분 정도의 시간이었지만 당황스러웠다. 낯선 외국인을 위해 비상시에 2,3층, 꼭대기를 연결하는 이동수단이나 통신방법이 갖춰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 자살방지용 창살이 흉물스럽게 느껴졌다. 아름답게 자살하려는 사람들이 이곳을 자살 장소로 택하기 때문이란다. 무려 270명이 자살했다니, 설치할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젯밤 시차적응 때문인지 새벽에 잠을 설쳤다. 이국에서 맞는 아침이라 설레고 들뜬다. 어제 프랑스의 밤풍경을 봤지만 환한 대낮에 맞는 파리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기대된다. 기분도 상쾌하다. 아침공기는 쌀쌀하지만 모두들 입가에 웃음이 가득하다.
루브르 박물관으로 가는 길에 삼성로고가 선명하다. 국내에서는 각종 비리로 대기업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많은데, 외국에서는 국위선양을 하고 국가브랜드 가치를 높이며, 코리아의 이미지 개선에도 일조한다니 다시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버스 속에서 프랑스 말을 몇 마디를 배웠다.
아침(해가 떠 있는 동안) : 봉슈르
저녁인사 : 봉수아
감사합니다 : 맥시
미안합니다 : 빠거든(파리똥이라고 해도 통한다는 가이드 우스갯소리)
다시 만나길 기원합니다 : 어후바(우리말의 ‘어부바’와 비슷하다.)
세느강 주변 건물은 150년 이상 된 건물로 석회암, 응회암으로 구성되었으며, 오스만제국 때 재정비한 이후 파리 시내 재건축 규제로 더 이상 재건축이 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조금 낡아 보였다.
루브르 박물관으로 가는 길에 영국황태자비 다이애나가 사고 난 지하보도를 지나고 있다. 루브르 박물관(프랑스어: Le musée du Louvre)은 프랑스 파리의 중심가에 있는 박물관으로 소장품의 수와 질 면에서 ‘대영박물관, 바티칸박물관’과 더불어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힌다. 현재 건물은 루브르궁을 개조한 것으로,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루브르 박물관 광장에 있는 유리 피라미드는 1989년 프랑스 혁명 200주년 기념 때 중국계 미국인 I.M.페이가 제작한 건물이다. 그런데 뭔가 생뚱맞게 보였다. 또 하나 이상한 점은 박물관 바로 옆으로 대형버스가 다닌다는 것이다. 다른 유적지도 방문객 접근이 용이하였다. 우리와는 사뭇 다른 면이었다.
루브르 박물관에는 3만 5천여 점이 소장되어 있으며, 소장품 중에는 루브르박물관의 3대 작품 밀로의 비너스상, 사모트라섬의 니케, 다빈치의 모나리자 등을 포함하여 나폴레옹 대관식, 가나의 혼인 잔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사비니 여인들의 중재 등이 있다.
‘비너스 상’의 뒷모습은 아름답기보다는 풍만해 보였다. 천천히 오른쪽으로 돌며 앞모습을 보는 순간, 미술에 문외한인 나조차도 균형과 조화에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발견에 얽힌 이야기, 제작연대, 미의 기준, 잘린 팔의 상상 등에 관한 가이드의 안내조차도 사족에 불과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모나리자’에서는 신비스러움마저 느껴졌다. 의미심장한 미소와 눈썹이 없는 이마가 눈에 띄었다. 가이드는 이 명화의 실존 모델로 피렌체의 부유 상인 ‘지오콘도’의 아내라는 논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모트라섬의 니케상’은 1863년 사모트라섬에서 100여 개의 파편으로 조각난 것을 가져와 복원한 승리의 여신상으로 비너스상과 함께 그리스 헬레니즘 조각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미적인 소양이 부족하여 아름다운 작품들을 제대로 느낄 수 없는 것과 다음 일정관계로 차분하게 감상할 수 없는 점이 아쉬울 뿐이었다. 박물관 견학을 마친 우리는 광장에서 단체 기념촬영을 한 후 점심 장소로 이동했다.
12시 파리에서의 점심은 달팽이 요리와 쇠고기, 삶은 감자로 차려졌다. 조금 싱겁고 거북스런 달팽이 요리였지만 현지식도 여행과정이라 생각이 되어 맛을 보았다. 친구들은 프랑스 와인을 곁들여 한층 멋을 내고 있다. 술을 못하는 나는 친구들이 부러울 뿐이었다. 파리 교민 15,000명에 한국식당은 100개라고 한다. 중국식당 4,000개, 일본식당 700개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숫자지만 점점 확대되리라 믿는다.
점심 후에는 샹제리제 거리를 거쳐 개선문으로 향했다. 나폴레옹 1세가 군대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하여 1806년에 세운 파리의 에투알 개선문이다. 개선문 앞에서 잠시 멋진 승자의 포즈를 취한 후 샹제리제 거리를 걸었다. 거리 양쪽으로 루비통 본점을 비롯한 수많은 상점들이 들어서 있었다.
값비싼 물건 구경 마음껏 하고 순교자의 언덕으로 불리는 몽마르뜨 언덕에 올랐다. 멀리 언덕위로 보이는 사크르쾨르 성당이 위엄 있게 보인다. 언덕에 오르자 우리 눈에 거리의 예술인이 눈에 띈다. 예술가는 춥고 배고프다는 것을 내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매서운 추위 속에서 자신의 예술 세계에 심취해 있는 그들의 모습이 조금은 안쓰럽기까지 하였다.
몽마르뜨 언덕위에 자리 잡고 있는 사크르쾨르 성당에서 나는 프랑스의 어제와 오늘을 보았다. 성당 안에서 조용히 기도하는 프랑스인의 엄숙함과 고요함, 그리고 성당 밖 계단에 즉흥적으로 펼쳐진 거리 공연에서 프랑스인들의 열정과 자유. 성당 안팎의 색다른 문화 속에는 조화가 엿보였고, 프랑스의 저력이 보였다.
파리의 마지막 일정으로 세느강 유람선에 올랐다. 홍세화님이 오랜 프랑스 망명생활을 접고 귀국 후에 우리나라와 프랑스 문화를 비교하며 쓴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를 생각하며 유람선에 올랐다. 저녁놀이 지는 선상에서 우리는 엥발리드,레지옹도뇌르,국립미술학교,노트르담,센스궁, 에펠탑 등을 눈에 담으며 아쉬운 파리 일정을 마무리하였다. 세느강은 여전히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저녁 6시 한국식 권식당에서 갈비탕과 잡채, 김치, 무조림 등으로 저녁식사를 하였다. 이국에서 한국 맛으로 여행의 피로를 풀기에 부족함이 없는 맛이었다.
여행의 또 하나 즐거움은 거리 뒷골목 풍경과 여흥으로 듣는 이야기들이었다. 잠시 파리룩에서 쇼핑을 하는 사이 나는 아들과 함께 대로 옆 뒷골목을 다녔다. 낯선 이국땅이라 두려움도 있었지만 아들의 호기심을 풀어주기 위해 몇 군데를 누비고 다녔다. 자칫했으면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 시위대에 갇혀 고생할 뻔 했지만 남다른 재미가 있었다.
그곳에서 목격한 것은 골목마다 자전거들이 즐비하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가이드로부터 들었는데 파리시내 교통 혼잡을 막기 위한 차없는 도시 정책 ‘파리 벨리브’즉, 공공임대자전거 사업이라 소개하였다. 그래서 어디서든지 자전거를 30분은 무료이용 가능하며, 그 이상은 유료로 하는 시스템이었다. 우리도 한번쯤 도입해봄직한 정책이라 생각되었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밤이 아쉬웠는지 어젯밤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몇 번을 뒤척거렸다. 우리는 TGV를 타고 스위스로 이동하기 위해 새벽 5시에 기상하였다. 우리가 탈 TGV는 1981년부터 운행되었고, 우리나라에도 경부선에 도입된 기종이다. 시속 300km/h 이상으로 스위스까지 3시간 30분 이내 주파하는 초고속열차이다.
쌀쌀한 파리의 기온 때문에 옷깃을 여민 채, 아침 7시에 파리 리용역에서 TGV에 탑승하였다. 열차는 프랑스 남쪽지역을 통과하여 스위스로 이동했다. 열차를 타는 내내 소박하고 아담하며 평화스런 프랑스의 전원을 만끽할 수 있었다. 유럽의 대평원을 가르고 있었다.
09시 05분 중간 기착지에서 잠시 정차했다. 이제부터는 넓은 평원을 지나 알프스 눈덮힌 산 옆을 지나고 있다.
11시 제네바에 도착했다. 국경이라고 보기에는 작은 건물, 그 안에 간이 출입문을 통과하면 스위스이다. 사람들의 넘나듦이 수월해 보인다. 여권을 보이는 것으로 국경임을 짐작하게 한다.
일정에 차질이 생겨 레만호수와 영국공원에서 자유시간을 갖고 있다. 호숫가에는 한가롭게 오리가 보이고 유람선이 떠있다. 부의 상징인 보트도 정박해 있다. 영국공원 나무에 조명을 한 것이 특이하다. 호수와 공원을 거닐고 싶으나 날씨가 추워 모두 버스 안에 있다. 여기서도 지선이의 호기심은 또 발동했다. 스위스 거리가 궁금한가보다. 나는 함께 길을 나섰다. 꽃시계 바로 앞에 Rolex 시계 본점 건물이 있고 휴일이라 안을 볼 수 없었지만 길가 창문에 진열된 고급 시계를 구경할 수 있었다.
거리는 한산하다. 거의 모든 가게가 철시되었다. 그러나 맥도널드는 문을 열었고 어김없이 파리에서와 마찬가지로 화장실은 공짜다. 다른 유료 화장실은 사람의 기본 욕구까지 돈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조금 씁쓸하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유럽에서 맥도널드는 성업이라는 국내기사를 접했는데 실감이 난다.
12시에 낯익은‘서울’이란 간판을 내건 식당에서 육개장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유럽 어디서나 한국의 맛을 찾을 수 있어 다행이다.
점심을 먹고 오후 1시에 인터라켄으로 향했다. 쌀쌀한 날씨이지만 구름사이로 간혹 햇빛이 보인다. 알프스 산맥을 넘는 길이다. 눈의 천국답게 하얀 설산이 아름답다.
끝없이 펼쳐지는 햐얀 눈 속 동화나라의 모습이다. 인터라켄 106km 이정표가 보인다. 스위스의 아름다운 ‘베른’시를 요들송을 부르며 통과하고 있다.
두 시간 달려와 오토그릴 휴게소에서 어른들은 카푸치노, 홍차를 마시고, 아이들은 눈싸움하며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전주를 출발하여 정안휴게소에서 아침 식사로 쇠고기 국밥을 먹으며 투정거렸던 것이 생각난다. 유럽의 고속도로 휴게소는 하나같이 작고 낡아 보인다. 그리고 우리나라 구멍가게나 잡화상과 흡사하다는 느낌이 든다. Thun 호수 쪽으로 이동에 앞서 우연히 이곳 휴게소에 들린 유럽아이들과 우리 일행 아이들이 다정하게 사진촬영을 하였다. 어학연수차 유럽에 온 듯한 착각이 든다. 날씨가 점점 맑아지고 있다. 햐얀 눈 위로 눈부신 햇빛이 내리쬐고 있다. 맑은 햇살 사이로 무지개도 떴다. 여행길에 행운이 깃들고 있는 듯하다.
15시 50분 애쉬 파크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를 보고 지선이는 이런 경치를 배경으로 이런 통나무집에서 사는 것이 꿈이란다. 이날 오후 우리는 새벽 5시 파리를 출발한 덕을 톡톡히 누렸다. 예정보다 일찍 도착한 행운 때문에 우리는 알프스 하얀 설원 위 초자연 슬로프에서 멋지게 몸을 뒹구는 묘미를 즐겼다. 비록 준비해간 장비가 없어 종이 상자를 썰매 삼았지만 재미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다. 그리고 외국인의 친절한 썰매 대여도 우리의 맘을 흐뭇하게 하였다.
이곳 유럽의 겨울 해가 짧아 오랜 시간 즐길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눈썰매를 마칠 해질녘 즈음 하나둘씩 켜지는 민가 불빛은 또 하나의 장관이었다. 크리스마스카드 속 동화세계를 눈앞의 현실로 옮겨 놓은 듯한 환상적인 분위기였다.
뜻하지 않은 애쉬마을에서의 눈썰매는 여행 일정 속에서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우리들이 어린 시절 뒷동산에 비닐포대로 눈밭을 누비던 추억이 되살아났다. 알프스 지역 여행의 필수 준비품목으로 비닐포대 준비하라고 당부해야겠다는 우스갯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이들이 눈 속에 파묻혀 신발과 옷이 젖었다. 감기 걱정으로 아쉽게 서둘러 숙소로 내려왔다. 따뜻한 물로 몸을 씻고, 아이들의 젖은 옷을 말리다보니 피곤함이 밀려와 눈이 감긴다.
저녁 7시 30분 숙소 1층에 마련된 작은 식당에서 현지 식단으로 저녁을 먹었다. 아름다운 경치와 즐거운 눈썰매 놀이, 여기에 친절한 숙소 직원 미셸의 미소 때문에 어느 때보다 저녁식사가 맛이 있다.
저녁 식사 후에는 동규형이 골든벨을 진행하여 아이들을 즐겁게 만들었다. 오늘은 이모저모로 즐거움이 넘치는 하루였다.
어제의 즐거움이 채 가시기도 전에 아침 일찍 기상했다. 여행 4일째, 오늘이 이번 일정 중에서 가장 힘든 하루가 될 듯하다. 해발 3,400m미터 융프라우 요흐에 오른다. 어둠 짙은 새벽 영하 7도의 추위에 숙소를 출발하여 인터라켄 동역으로 이동했다. 잠시 언어적 장벽으로 가이드와 만나는 장소가 바뀌는 바람에 열차 시간에 겨우 맞춰 탈 수 있었다.
기차를 타고 출발하여 Lauter brunnem에서 산악열차로 갈아탔다. 날씨가 너무 좋다. 가시거리가 확보되어 융프라우가 한 눈에 들어온다. 융프라우는 젊은 여성, 성모마리아를 뜻한다는데 우리 일행 중에 덕을 쌓은 사람이 있나보다. 우리를 지켜주고 안내하는 신이 있지 않고서야 이렇게 날씨가 좋을 수가 …….
열차를 타고 두 시간쯤 지나 2차 터널 정점인 아이스 미어(Eismeer 3,160m)에 도착했다. 창밖으로 얼음바다가 펼쳐져 장관을 이루고 있다. 잠시 정차 한 후 마지막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10시 10분 융프라우요흐에 도착했다. 눈부신 날씨와 수려한 자연경관, 그야말로 찬사가 절로 나온다. 대자연의 아름다움이 눈앞에 드리워졌다. 3천미터 정상의 차가운 날씨도 우리의 벅찬 마음을 누를 수는 없었다. 정상 아래에 마련된 얼음 동굴을 보았다. 하산하는 기차 시간에 맞춰 나는 지선이와 또 한번의 탈선길을 택했다. 15분 남은 시간 동안 고산증도 잊은 채 최정상 스핑크스에 다녀왔다. 가장 정상에서 융프라우를 내려다본 것이다. 아참! 융프라우 정상에서 신라면의 인기는 짱이었다.
하산하는 열차 속에서는 기압차로 인해 모두들 잠들어 있다. 1차 환승지역 Kleine Scheidegs(2,061Km)에서 모두 눈을 떴다. 왼편 산정상에서 스키타고 내려오는 모습이 환상적이다. 오른쪽에는 110도 이상의 아이거 북벽이 아찔하게 전개되어 있다. 어지러울 지경이다. 2차 환승지역 Grindel wald(1,034km)에서 기차로 갈아타고 점심 장소로 이동했다.
점심은 오후2시‘아시아’라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중국식당이었다. 메뉴는 갈비탕으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여행처음부터 끝까지 아무 사고 없이 잘 마무리되어야 하는데 오늘 일행 중에 가장 큰 형님이 동행에서 이탈되어 홀로 남겨지는 작은 실수가 있었다. 점심 후에 합류한다고 하는데, 직접 만나기 전까지는 안심이 되지 않는다. 점심을 먹지만 속이 편치 않다. 다행히 동규형의 치밀하고 차분한 대처 때문에 위기를 모면했지만 아찔한 순간이었다.
점심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하는 동안에 동규형이 도착했다. 사실 우리는 별다른 차질없이 다음 여행 일정을 함께 하게 되어 감사할 따름인데, 머나먼 이국땅에서 잠깐 미아가 된 동규형은 우리에게 미안해서 머쓱해한다. 오늘은 스위스의 멋진 자연경관과 동규형의 작은 에피소드가 있어 이야기가 넘치는 하루를 보낸다.
우리는 다음 여행지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로 이동한다. 스위스 인터라켄을 출발하여 지구상에서 작은 나라 리히텐슈타인을 거쳐 목적지인 인스부르크에 도착하는 일정이다. 길고 긴 여정 속에 다행스럽게도 주변경관이 수려하여 마음은 풍요롭다. 고속도로 왼편으로 호수와 강도 보이고, 멀리는 아름다운 알프스 산자락이 아직도 끝없이 우리를 따르고 있다.
세 시간이 넘는 버스 이동 끝에 멀리 점점이 불빛이 보이고 작은 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리히텐슈타인이라는 도시국가라고 하였다. 휴게소 2층에 올라가 한 눈에 들어오는 작은 도시국가를 멀찍이서 바라보며 우리의 유럽여행 일정 속에 탐방국 하나를 더 추가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장장 7시간의 장거리 여행 끝에 오스트리아 티롤지방의 주도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8시. 우리는 호텔식당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고 인스부르크 야경투어에 돌입했다. 영하 7도, 여기에 바람까지 불어 체감기온은 더 추웠다. 그러나 우리는 탐방의 목적달성을 위해 고집스럽게도 바보스럽지만 야간 일정을 소화했다.
추위 속에 우리는 12C-14C 중세에 건축된 예수에텐 성당 앞에 서있다. 지금은 신학, 철학 대학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중세의 건물에서 철학을 배운다니 공부는 저절로 되지 않을까? 왕궁도 눈앞에 보인다. 꼭대기에 독수리 형상이 특이해 보인다. 그리고 노벨상을 네 번 탄 기념으로 제작된 책모양의 분수가 옆에 있다. 우리 일행들은 자녀의 지적성숙을 기원하며 기념분수를 어루만져 본다. 다음으로 마리아 테레지아 성당 앞을 거닐고 있다. 16명의 자녀를 생산하였다는 여왕의 이야기가 솔깃하다. 버스 안에서 민우는 16마리를 낳았다고 하여 한바탕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던 대상이다. 이어서 성야곱 대성당, 마리아 앙뜨메티, 그리고 지금은 아파트로 쓰인다는 황금지붕 등을 둘러보았다.
이곳 저녁 날씨가 너무 추워 더 이상 탐방할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주도 안에 이렇게 많은 유적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는 것과 잘 보존된 모습들이 참으로 부러웠다. 하나의 도시를 고전과 현대로 구분하여 성안 구도시 권은 중세풍으로 잘 보존되고, 성밖은 현대식으로 개발하여 화려하고 세련되어 보였다. 파리 샹제리제 거리 이상으로 화려했고, 계획도시로 잘 정비된 모습들이 깨끗해 보였다.
늦은 시각 우리는 호텔로 들어와 여장을 풀고, 생일을 맞은 한별 엄마 박순라님을 위해 간단히 생일 축하를 한 후 깊은 잠을 청한다.
어제는 아름다운 융프라우 자연 경관으로 눈이 즐거웠고, 중세 인스부르크의 많은 이야깃거리로 귀가 풍요로웠다. 덕분에 기차-산악열차-버스로 이어지는 기나 긴 여정과 살을 에는 듯한 추위의 피로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하루였다.
1월 6일 오늘은 또 어떤 탐방길이 우리를 반길지? 아침에 호텔 엘리베이터에 잠깐 갇히는 소동이 있었다. 손을 이용하여 강제적으로 출입문을 뜯고 탈출하여 별다른 일은 없었지만 황당한 사건이 될 뻔 했다.
오늘도 아침은 변함없이 길다란 고속도를 따라 이동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고속도로에서 우리와 동행하는 자연은 인강과 이탈리아 돌로미티 지방의 바윗산이다. 출발할 때 오스트리아 인강이 우리를 배웅하더니 잠시 후에는 이탈리아에 입성하자 거대한 바위들이 우리를 반기고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 베로나, 가로수 우산잣나무, 바그너의 ‘결혼행진곡’ 등 이탈리아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베네치아에 도착했다. 파스타, 생선 등 현지식으로 점심을 했다. 특이하게도 빵이 매우 짜다. 이곳은 지중해가 가까워 여름이면 덥고 땀을 많이 흘리기에 염분 섭취를 위한 것이란다.
오늘 이곳은 1월 6일 성요한 데이, 아이들을 위한 휴일, 마녀 할머니가 사탕 주는 날로 휴일이었다. 낭만의 베네치아는 1800년 20개주, 6개의 자연섬, 118개의 인공 섬, 자유의 다리 3.8km, 인구 6만 5천명으로 이루어졌으며, 수상버스, 곤돌라, 수상택시 등이 교통수단이다. 우리는 수상버스를 타고 베네치아로 들어갔다.
물위에 이런 도시를 만들다니? 참으로 의아스럽고 신기하였다. 우리는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산마르코 광장, 두칼레 궁전, 탄식의 다리, 리알토 다리 등을 구경하고 자유시간을 가졌다.
여행 7일째, 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어제까지는 날씨가 우리를 도와주었는데……. 남은 일정에 차질이 생길까 염려스럽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랬듯이 결국 천기는 우리를 저버리지 않으리라 믿는다.
우리 시골 할아버지 같은 인자하신 모습의‘부르노’, 여행 내내 안전하게 버스를 운전하여 우리의 여행길이 편안하다. 어느 새 여행 동무가 되어버렸다. 우리는 아침 빗속을 내달려 남쪽 피레네 산맥을 넘고 있다. 그는 문예부흥, 르네상스의 본고장인 피렌체로 우리를 인도하려나 보다.
피렌체로 가는 길에 조용필의 노랫소리가 정감있게 귓가에 스친다. 현지 한인 식당에서 한 차례씩 한국음식을 먹지만 계속되는 강행군에 체력이 고갈상태다. 역시 우리 몸에는 흰쌀밥과 김치가 보약인 듯싶다. 소진된 원기를 북돋는데 감칠맛 나는 우리 노랫소리가 한 몫을 한다.
출발 때부터 내리던 비가 잦아들지 않고 진눈깨비로 변했다. 오늘 일정은 피렌체 시내를 거닐며, 이곳 저곳에 산재되어 있는 문화를 탐방해야 하는데 걱정이다. 모르겠다. 걱정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그러는 사이에 임원균 친구가 버스 안에서 일일 선생님 역할을 한다. 그는 말없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위엄이 있어 보이는 친구다. 치밀한 성격답게 선물까지 미리 준비해왔다. 그것도 아이들에게 골고루 선택할 수 있도록 종류를 다양하게 하는 배려까지 하였다. 어제까지 탐방하면서 꼭 알아야 할 것들 중심으로 잘 진행하고 있다. 그의 새로운 면도 보게 되었다. 차분하고 내성적인 줄만 알았는데, 오늘 보니 유머와 재치까지 겸비한 옹골찬 친구의 진가가 보인다. 친구에 대한 새로운 발견, 이것 또한 여행의 유익함이 아니겠는가? 재밌고 알찬 친구의 버스 속 퀴즈 덕분에 날씨 걱정도 잠시 잊고 있었다.
오전 11시 피렌체에 도착했다. 활달하고 자신감 넘치는 가이드 김미란 씨가 우리를 반긴다. 비는 그치지 않았다. 다행히 빗방울이 가늘어져 탐방하는데 큰 지장은 없을 듯하다. 우산을 받고 비오는 중세 피렌체 거리를 걷는 것도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중세인들은 이런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고 그 속에서 정사를 논했지만, 오늘 우리가 받고 있는 우산은 사용하지 않았겠지?
난 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잠시 고등학교 시절 세계사 수업교실에 온 듯한 착각에 빠져든다. 르네상스, 문예부흥, 그리스로마, 중세의 신본주의, 근세 인본주의(휴머니즘), 합리주의, 종교개혁, 비잔틴 양식, 고딕양식 등 - 그 당시 흑백 사진과 선생님의 일방적인 설명들이 새록새록 기억 속에 돋아난다. 가이드의 해박한 지식과 특유의 말솜씨, 그림에서 보았던 중세 건축들로 잠깐 옛날의 상념에 젖는다.
빗속을 뚫고 먼 길을 달려 처음 도착한 곳은 두오모 성당이다. 두오모 성당에 대한 첫인상은 화려하고 웅장함이랄까? 하나님 앞에 다가서고자 하는 욕망을 하늘 높이 치솟는 성당의 첨탑으로 표현해야만 했을까 하는 어린 석은 나의 물음은 잠시 뒤로 미뤄놓는다.
두오모의 뜻은 ‘대성당’이란 의미이다. 곳곳마다 두오모라는 동명 성당이름이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 우리 방식대로 하면 역전앞과 같은 잘못된 표현이라고 할까? 이 성당은‘꽃의 성모 교회’라고도 불린다. 르네상스 양식의 상징적인 성당이며, 높이 106m의 커다란 둥근 지붕 큐폴라는 최후의 심판을 주제로 한 것으로 유명한데 우리는 내부에 들어가지 못해 아쉬웠다. 여행 전 인터넷 배경지식으로 두오모 성당에 가면 꼭 계단을 걸어 옥상에 올라가야 한다고 들었는데……. 영화“냉정과 열정사이”에서 첫 장면에서 준세와 아오이가 10년 뒤 아오이 서른 살 생일인 5월 25일에 만나기로 약속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곳은 연인들의 장소다. 그들의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장소다.”라는 영화 자막이 떠오른다. 아쉽게도 여행 다음 일정 때문에 지금은 옥상에 올라갈 수는 없지만 우리 아이들은 꼭 다시 한번 이곳을 찾아 옥상도 오르고, 고대미술 복원사 청년 준세처럼 자전거타며 피렌체 도시를 누비길 기원해 본다.
두오모 옆에 팔각형 건물, 반짝반짝 빛나는 거대한 문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산 조반디 세례당의 동쪽문으로 구약성경 내용을 묘사한 황동문이다. 조각가 로렌쪼 기베르띠의 작품으로 미켈란젤로가 '천국의 문'이라고 절찬할 만큼 뛰어난 작품이다.
화려하고 웅장한 두오모 성당을 뒤로 하고 단테의 생가를 둘러본다. 두오모 성당에서 시뇨리아 광장으로 들어가는 좁은 골목길에 단테의 초라한 생가가 있다. 이곳이 단테의 생가라는 증거는 벽에 붙어있는 단테의 토르소가 전부이다. 그의 유명세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다. 또한 생전에 미사에 참가했다는 작은 성당이 바로 옆에 있다.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도 성당이름이 가물가물하다. 나 역시도 두오모 성당은 뚜렷하게 기억하면서 단테가 다닌 초라한 성당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내면보다는 화려한 외모에 길들여진 우리의 자화상이 아닌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단테의 영원한 연인 베아트리체의 집도 있다는데, 그 여인을 마음속에 품고 좁은 골목길을 빠져 나온다.
수세기 동안 피렌체의 정치·사회적 중심지를 자처했다는 시뇨리아 광장에 서 있다. 종교개혁자였던 사보나롤라가 화형에 처해진 곳이라는 표지판을 밟고 향락과 타락에 저항하며 청빈한 삶을 살다간 그를 생각하며, 나의 삶을 되돌아본다.
이곳에는 많은 조각품들이 있었다. 다비드 상은 아쉽게 수리중이어서 볼 수 없었지만 피렌체를 일으킨 메디치의 동상, 넵툰의 분수, 메두사의 목을 벤 페르세우스의 청동상, 잠볼로냐의 ‘사비뉴 여인의 강탈’등 다른 조각들을 보는 것으로도 충분했다. 그 옛날 열띤 토론 장소가 이제는 고대와 르네상스의 조각이 있는 야외 미술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시뇨리아 광장에서 좁은 골목길을 따라 내려오면 흰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산타 크로체 성당(교회당)을 만난다. 고딕 성당으로 규모는 두오모 성당보다 작지만 아담한 건물이다.
이번 탐방길에 계속되는 의문 한 가지는 종교의 진실성이다. 종교란 무엇일까? 종교지도자는 어떤 존재인가? 겉으로 드러난 웅장하고 위압적인 양식, 내부의 화려한 장식의 성당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한다. 이런 규모의 건축을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과 돈이 필요했을 텐데, 이런 것을 치장하는 것보다는 가난하고 소외받는 소시민들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 아니었을까?
웅장한 두오모 성당과 단테가 다녔다는 이름모를 작은 성당의 아련한 기억 때문에 나의 고민은 더욱 복잡하고 깊어만 간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점심은 정통스파게티가 나왔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여행의 필수품으로 고추장, 김치 등을 챙기곤 한다. 한국맛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여행길에 음식향수에 젖어 간혹 여행에 지장을 받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나 역시 몇 번의 해외여행에서 겪었던 상황이다. 그런데 다른 문화를 섭렵하는 과정 속에는 그곳의 음식 문화 체험도 엄연히 속하는 것이 아닐까? 그곳의 향과 맛을 느껴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사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지금 한국맛이 그립다. 아무튼 오늘 모처럼 정통 현지식 상차림이 되었다. 지선이가 여행 중에 꼭 먹고 싶어 했던 이탈리안 스파게티가 먹거리로 놓여졌다. 다른 일행들은 입맛을 쩝쩝하는데 지선이는 제대로 스파게티 맛을 느끼며 주위 아랑곳없이 후르륵거리고 있다. 특히 영화배우 같은 현지 종업원의 깔끔한 외모와 상냥한 미소, 친절한 매너가 음식 맛을 더욱 돋운다.
점심 후에는 가죽제품가게에 들렀다. 고가의 가죽제품이 눈에 띈다. 한국에서 가죽점퍼 차림으로 다니는 사람을 앞으로는 다시 봐야겠다. 가격이 우리 한 달 월급이상이다. 지웅이는 할머니 가죽지갑을 고른다. 지금까지 키워준 할머니를 생각하는 맘이 대견스럽다.
잠시 비가 멎는다. 우리는 미켈란젤로 언덕에 올라 피렌체거리를 내려다본다. 언덕 한가운데 다비드상이 자리잡고, 멀리 피렌체가 눈에 들어온다. 온통 도시색깔이 붉은 색이다.
‘냉정과 열정사이’장면처럼 고공 크레인이나 두오모 성당 지붕 큐폴라에서 바라보는 것은 아니지만 이곳에서 바라보는 피렌체 거리도 과히 환상적이다. 꽃의 도시로 소개하던 피렌체, 봄과 여름이 아니라 꽃구경을 못할 줄 알았는데, 도시 전체가 붉은 색의 꽃 그대로였다. 겨울 탐방이라 꽃을 볼 수는 없었지만 꽃보다 더 아름다운 역사와 문화를 보고 간다. 우리는 피렌체 꽃을 배경으로 가족사진을 담는 것으로 피렌체 탐방을 마무리 하였다.
피렌체의 문화와 역사를 버스 안에서 정리하는 사이 저녁식사 장소인 초원의 집에 도착했다. 된장찌개와 제육볶음, 상추쌈까지 한국식단이 차려져 있다. 식사 후에는 화려한 쉐라톤 호텔에 여장을 풀고 로비에서 와인 한 잔과 담소로 하루를 정리하였다. 내일 맞이할 유럽탐방의 하이라이트 로마를 먼저 꿈속에서 만나보련다.
폼페이, 소렌토, 나폴리! 오늘은 여행사 사장님의 특별 배려에 의해 급조된 일정이다. 모두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유럽탐방 일정이라 기쁨과 감사의 빛이 역력하다. 들뜬 마음에 아침 일찍 기상하여 기원전 폼페이로 가기 위해 부산하다.
어제까지 내리던 비도 멈추고 행운이 따른다. 버스로 두 시간 쯤 달려가다 보니 왼편으로 베수비오 화산이 보이고, 오른편으로 지중해가 보인다. 온도는 섭씨 10도. 탐방하기에 안성맞춤이다.
폼페이는 AD79년 8월 24일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여 매몰된 후 역사의 베일에 가려진 채 1700년 동안7~8미터 화산 잿더미 속에 말없이 파묻혀 있었다. 어느 날 수도원 뜰, 우물 작업을 하던 인부의 곡괭이에 걸린 쇠붙이가 계기가 되어 마침내 세상에 그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화산재에서 벗겨진 2000년 전의 생생한 도시를 보고 나니, 시공간이 혼란스럽다. 맑은 날씨 속에서 폼페이를 둘러보는 동안 놀라움을 연발했다. 로마 귀족들의 휴양도시이자 환락의 도시였다는 문헌 기록이 사실인 듯 했다. 일정을 마치자 거짓말처럼 빗방울이 한 두 방울씩 떨어진다.
점심은 피자와 스파게티, 해물튀김이다. 점심을 먹는 동안 이탈리아 특유의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어 한껏 흥이 났다.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소렌토의 비오는 경치를 멀리서 구경하였다. ‘돌아오라 소렌토로’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우중의 소렌토는 지중해와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뒤이은 나폴리는 여행 중에 본 도시 중에서 가장 실망스런 도시였다. 세계3대 미항이란 말이 무색하였다. 250만 명의 가난한 도시, 도로 포장 상태도 불량, 교통질서도 문란, 건물도 허름했다. 무슨 이유로 이곳을 아름다운 항구라고 하는지 의문시 되었다.‘로마’로 돌아오는 길에 영화‘로마의 휴일’을 보며 나폴리의 실망스러움을 위로하였다.
유럽여행 8일째. 오늘은 유럽탐방의 하이라이트 이탈리아 로마 입성하는 날이다. 우리는 어젯밤 어둠 속에서 로마의 찬란한 역사를 목격했다. 밝은 아침에 나타날 로마는 또 어떤 모습일까 자못 궁금해진다. 유럽탐방 마지막 날이라는 아쉬움 속에 밤을 지새웠다. 동행했던 24명이 단 한 명도 아프지 않고 끝까지 탐방을 함께 하여 너무도 기쁘고 감사할 따름이다. 귀국하여 따뜻한 가정의 품에 안기는 순간까지 무사안녕하길 기원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먼저 아침 일찍 바티칸시국으로 향했다. 가이드는 박물관 앞에 관광객이 줄지어 기다리고, 박물관 안은 인산인해로 일행을 놓이는 경우가 있다는 염려를 하며, 만약에 이런 일이 발생할 경우 만날 장소를 꼭 숙지하도록 신신당부까지 했다.
교황님이 계시는 곳으로 간다니 카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마음을 정갈히 하고 옷매무새를 가다듬는다. 왠지 숙연해진다. 9시 성벽을 지나 박물관 입구에 도착했다. 우려와 달리 한산하다. 간단히 출입국 수속을 하고 박물관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 안에도 사람이 많지 않다. 가이드 맡고 이런 일은 처음이란다. 세계 경제의 불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짐작 가는 대목이다.
바티칸 박물관 정원 앞에서 박물관에 관한 상세한 설명을 들었다. 정원에 있는 조각상, 박물관에 있는 수많은 그림들. 니체는 시스틴 성당의 ‘천지창조를 보지 않고 인간의 한계를 말하지 말라.’라고 하였다고 했다. 무엇을 마음속에 담아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다. 욕심껏 담을 수 없어 바티칸성당 광장 앞에서 박물관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하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점심은 중국 Chinese에서 중국식으로 점심을 먹었다. 몇 년 전 중국여행을 할 때 먹었던 본토 중국음식보다 훨씬 입맛에 맞았다.
오후 일정은 진실의 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뒤이은 대전차 경기장을 보면서는 ‘벤허’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황제의 궁 앞에 펼쳐진 웅장한 대전차 경기장의 위용은 당당해 보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콜로세움에 우리는 기가 꺾이고 말았다. 콜로세움의 거대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우리는 콜로세움을 한바퀴 둘러보면서 거대함을 몸소 체험하였다. 지선이의 인터넷 사전탐방으로 우리는 콜로세움 포토존에서 한 장에 꽉 찬 웅장한 콜로세움을 온전히 담아 올 수 있었다. 그리고 로마 정치의 한 중앙인 포로 로마노에서 가이드로부터 로마의 역사를 한 수 전수받았다. 비록 포로 로마노의 건물은 쓰러져 나뒹굴고 있었지만 로마의 정신은 아직도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고, 우리의 여행길은 점점 종착역에 도달하고 있었다. 어제 저녁 찾았던 트레비 분수를 다시 찾아 질라토 아이스크림을 먹고, 스페인 광장에서 유럽여행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이조식당에서 된장찌개로 유럽 여행의 맛을 음미해 보았다. 우리는 다시 찾겠다는 먼 기약을 하며 레오나르드 다빈치 공항으로 향했다. 역시 공항은 한산했다. 덕분에 귀국길에는 편안히 좌석을 침대삼아 올 수 있었다.
장시간 비행 끝에 16:50 서해 앞바다에 진입했다. 구름 위를 날고 있다. 구름사이로 한반도가 얼핏얼핏 보인다. 민가와 강도 보인다. 기계음 소리와 함께 급강하하고 있다. 속이 울렁거린다. 동체가 흔들린다. 영종대교가 보이고, 군데군데 정박해있는 배들도 보인다. 17:08도착 고국 땅에 닿았다. 날개가 접히고 서서히 계류장으로 이동 중이다. 하늘은 맑고 우리공기가 시원하게 느껴진다. 우리 몸에는 우리 것이 최고여!
인천공항의 위용이 자랑스럽다. 공항직원들의 일처리와 친절, 이미지도 유럽 선진국에 비해 손색이 없다. 함께 여행했던 동규형은 공항에서 먼저 이별했다. 공항을 출발한 우리는 화성휴게소에서 김치와 라면을 먹으며 우리맛을 되찾았다. 휴게소의 친숙한 분위기도 역시 우리 것이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장장 8박 9일의 유럽여행이 마무리 될 시간이다. 24명의 보배로운 탐험가들이 아무 탈 없이 여행을 마칠 수 있어 감사할 뿐이다. 이번 여행의 소중한 기억들을 가슴깊이 새기며 일상생활의 활력소가 되고, 자기 발전의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는 벌써 다음 여행을 꿈꾼다.
첫댓글 와, 다시 그 유럽의 현장으로 가 있는 듯한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좋다. 다시 가 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