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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인문학상
⦁ 이명년
전북 여산 출생
한국방송통신대학 국어국문학과
- echlmn@hanmail.net
☞ 당선소감
정말 기쁘다는 표현을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부끄럽습니다.
지나온 세월 속에 내 가슴에 쌓여 온, 혹은 묻어 둔 이야기들을 한 자 한 자 글로 새기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부터 가족, 그리고 집 주변에서 일어나는 소박한 일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야기들을 가족과 이웃에게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한 땀 한 땀 서툴게 적어 나간 것이 오늘의 기쁨을 얻게 되었습니다.
수필창작은 여전히 출발점에서 서성이고 있는데 큰 기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동안 창작에 늘 칭찬과 격려를 주셨던 문우님들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더욱 정진할 것을 약속합니다.
⦁ 전월득
충남 부여 출생
서예가
☞ 당선소감
신인문학상 소식에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칠십이란 나이가 무색하도록 소녀같이 기뻤습니다.
제아무리 열심히 한들 무뎌진 감성이 흡족한 글귀를 생산하지 못하고 한계에 부딪힐 때 좌절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뜻밖의 소식에 글 쓰는 용기를 얻게 됩니다.
우선, 제 글을 추천해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더 열심히 하라는 채찍으로 알고 기꺼이 상을 받겠습니다. 또한, 아무것도 모르는 저를 한밭문학회에 이끌어주신 김남신 회장님께도 감사드립니다. 함께하는 ‘상상의 힘’ 문학동인 여러분,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우리 가족 모두와 이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 추천사
장마가 시작 되었다. 코로나와 더불어 이우삼열(二雨三熱)이란 신조어가 어둑한 구름을 부르는 듯하다. 생활 속 거리두기 상황에도 왕성한 창작활동을 지속하고 계신 두 분께 신인문학상을 드릴 수 있음을 기쁘게 생각한다. 신인이란 용어보다는 ‘늦깎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듯싶다.
이명년 님의 수필「내 마음의 보물」,「상추씨 한 줌」,「소일거리에서 얻은 작은 경험」을, 전월득 님의 수필「날개옷을 지으며」,「롱코트와 자존심」,「큰 언니」를 한밭문학회 신인문학상작품으로 추천한다.
두 분은 동시대를 살아오신 분들로 공통의 가치관과 종교관을 지니신 분이라 생각한다. 진실한 기독교 신앙심을 바탕으로 두 분이 갖고 계신 가족애는 아마도 우리 선배 세대들이 지니고 계신 보편적 정서를 대변하는 듯하다.
이명년 님의 수필은 전통적인 유교사상을 바탕으로 한 가족애에 기저를 두고 있다. 수필「내 마음의 보물」은 밭일을 하는데 필요한 신발을 우연찮게 얻어 내 마음의 보물이 되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나무를 가꾸는 자연애와 소박함, 그리고 검소함이 반영되어 있는 수필이라 할 것이다.
그 밖에 수필「상추씨 한 줌」,「소일거리에서 얻은 작은 경험」,「갈마가지나무」,「주인이 버린 집」,「바보교육」등에서도 가족애와 자연애, 그리고 자기반성과 사회비판 의식 등이 내재되어 있다.
전월득 님의 수필 또한 아버지와 어머니를 정점으로 한 가족애와 유년시절의 추억을 작품의 주된 정서로 하고 있다.
수필「날개옷을 지으며」는 수의를 ‘날개옷’이라는 용어로 치환하면서 망자에게 드리는 자신의 마지막 선물이라는 고운 심성을 보여주고 있다.
수필「롱코트와 자존심」,「큰 언니」,「눈 속의 여인」,「책 읽는 여인」또한 일상의 경험을 토대로 가족애를 보여주고 있는 작품들이다.
시대가 흐름에 따라 우리 민족이 지니고 있던 가족애와 결 고운 심성 등, 전통 문화가 약화되거나 사라지고 있다.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계신 두 분이 잃어가고 있는 우리 민족 특유의 정서를 고운 빛깔의 언어로 계속 보여주실 것을 기대한다.
두 분의 신인문학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 문학평론가(이대영·이완형·김택중)
내 마음의 보물
이 명 년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보물은 금, 은, 보화 같은 귀하고 값진 물건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요즘, 밭을 조금 일구어 야채를 가꾸면서 느끼는 것이 보물이란 내가 꼭 필요로 하는 것이며, 날마다 내 몸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집 근처에 봄이 왔다는 소식은 길마가지나무와 수선화가 먼저 알려왔다. 며칠이 지나자 홍매, 청매화가 피었고, 매실꽃이 지기도 전에 앵두와 체리, 보리수가 뒤질세라 따라 피었다. 자고 일어나면 우뚝 자라 눈앞에 펼쳐진 형형색색의 모습에 푹 빠져, 모든 꽃들을 바라보기도 바쁘다. 그런 와중에도 나와 함께 날마다 전쟁을 벌이는 무리들이 있다. 그 전쟁은 마당에 잔디를 심고부터 시작되었다. 잔디뿌리 사이 빈틈을 비집고 나오는 잡초는 이쪽을 뽑으면 저쪽에 나와 있고, 다 뽑고 뒤돌아보면 또 보인다. 잡초는 번식력이 좋아서인지 날마다 있는 힘을 다해 샅샅이 뒤져 제거해도 여전히 뒤돌아보면 또 있다. 잡초의 씨앗은 사람 눈에 띠지 않도록 먼지 같이 생긴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서인지 아무 곳이든 제 몸 들어갈 틈만 있으면 그곳에서 발아를 한다. 이젠 다 뽑았다 싶었는데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나 여기 있다’고 뽐내며 잔디 사이사이에 빼곡히 솟아 있다.
나이를 먹고 몸이 늙으니 할 일이 적어지고 몸과 마음도 한가해졌다. 문득 정원이 있는 집에서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료한 시간을 메우는 데는 화초 몇 포기라도 가꾸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남편을 천국으로 보낸 뒤, 그 꿈이 생각지도 않게 아들을 통해 이루어졌다. “엄마는 가꾸는 것을 좋아하셔서 집은 작아도 텃밭이 있어야 한다.”며 아파트를 팔고 일반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그리고 정원 한 편에 조그만 텃밭을 마련했다
이젠 내 생활 패턴이 실내에서 실외로 완전히 바뀌었다. 매일 풀을 뽑고, 야채도 조금씩 가꾼다. 하찮은 일 같았는데도 아침부터 해가 기울 때까지 바깥에서 하루를 마무리 하는 날이 많아졌다. 자연스럽게 예전에 필요로 했던 것은 별로 쓸모가 없어졌다. 아끼고 소중이 했던 몸 장식품도 하나둘 자식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은 좋고 아름다운 옷이 아니고 간단한 옷, 편하고 흙이 잘 닦이는 신발과 같은 것들이다. 슬리퍼를 신고 밭일을 하면 순식간에 양말은 엉망이 된다. 그래서 고무신이라도 하나 구입해서 신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즈음, 집 앞길 건너편 쓰레기 수거함 앞에 파란색 남자운동화 한 켤래가 버려져있는 것을 발견했다. 한두 번 신었는지 깨끗한 새 운동화였다. 혹시 발에 맞으면 밭일을 할 때 신으면 괜찮을 것 같아 신어 보았다. 발바닥이 조금 두툼하며 푹신한 것이 아주 편하고 마음에 들어 집에 가져왔다. 그리고 3년을 요긴하게 신었다. 운동화를 신고 일할 때마다 ‘왜 이렇게 좋은 신발을 버렸을까? 버린 사람은 물론 쓸모가 없어졌든지 젊은 취향에 색상이 맞지 않아서였을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나와의 인연을 맺은 그 운동화는 이제는 낡아 버려 더 신을 수 없게 되었다.
당장 밭일을 할 때 신어야 할 신발이 또 필요했다. 그래서 편하게 신을 수 있는 운동화를 구입하러 현관을 나섰다. 그런데 뜻밖에도 쓰레기 수거함 앞에 은색으로 반짝이는 것이 눈에 띠었다. 다가가보니 누가 한두 번 신었는지 새 운동화를 내 놓은 것이었다. 나는 너무 놀랍고 반가워 얼른 운동화를 집어 그 자리에서 신어보았다. 내 발에 맞춤 같이 꼭 맞고 아주 편했다. ‘이웃에 억대가 넘는 스포츠카를 모는 젊은 멋쟁이가 여러 명 있어서일까?’ 조금 궁금하면서도 당장 필요로 하는 것을 손쉽게 얻은 내 마음은 마냥 기뻤다. 신발을 사러가는 수고도 덜면서 친구와 한 끼 밥이라도 같이 먹을 수 있는 돈도 절약되었다. 운동화 색상이 은빛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 3년 전에 주워 신었던 운동화보다 훨씬 예쁘다. 앞으로 짧아도 3년은 신을 듯하다. 그리고 이 무거운 몸을 평안하게 온종일 지탱해줄 것이다. 또한, 운동화는 내 마음의 보물로 서서히 자리매김 하게 될 것이다.
날개옷을 지으며
전 월 득
사람은 누구나 어머니의 모체를 떠나 탯줄을 끊고 세상에 태어난다. 그 순간부터 인생이란 긴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내가 원했던 원치 안했던, 인생이라는 거대한 바다를 항해하면서 그 누구는 잔잔한 물결처럼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지만, 또 다른 누구에게는 필사적으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일어서야만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다.
한 치 앞을 모르고 살아가는 인생길에서 불자는 고요한 사찰에 찾아가 하루에도 수백 번씩 합장을 하고 불공을 드리며 가족들의 안위를 염원하게 된다. 또한 기독교인라면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날마다 기도에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가장 존엄해야 될 우리 인생의 본질은 한 번 왔다가 간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노후가 되면 서서히 본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게 된다.
몇 년 전, 믿음이 신실하신 권사님께서 고희를 지내고 나니 마음이 허전하다며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때를 대비하여 하얀 한복을 입고 갈 수 있도록 인견수의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셨다. 그동안 남편의 오랜 병간호를 하면서 바느질로 생계를 유지해왔지만, 수의를 만든다는 생각은 꿈에도 해본 적이 없었다. 남편의 수의조차도 한 번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없다. 너무나 뜻밖의 청이라 거절 하였는데, 약 3년이 지나도록 포기하지 않고 번번이 부탁을 하시는 것이었다. 오랜 망설임 끝에 생각해보니, 나도 교회를 다니며 권사임직을 맡고 있는 입장에서 그 또한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행복하게 살다가 마지막 이별하는 날, 내가 만든 고운 수의를 입고 하늘나라에 평안히 가신다면 그 또한 보람된 일이라고 생각을 한 것이다. 마침내 수의를 만들기로 결정하고 여기저기 수소문하여 좋은 원단도 구입하고 전문점에 가서 견본도 살펴보았다. 그런 후에, 한복에 두루마기까지 차근차근 정성을 다하여 만들어 본 것이다.
일반인들이 평상시에 입고 외출하는 의상도 만들어보았으니 좀 다르기는 해도 무난히 만들 수 있었다. 관례복이니 이것저것 부수적인 소품들이 다양하였다. 겹겹이 만들어 손질하고 다림질하여 가지런히 한복 박스에 담아 놓으니 가볍고 깔끔하여 기존 중국산 누런 삼베 제품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고운 핏으로 단정함에 뿌듯하고 흐뭇한 생각이 들었다. 반면 10년 전 남편께 만들어 입혀드리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않고 반신반의 하며 머뭇거린 것이 잘못 되고 짧은 생각이었다. 색깔이나 모양새가 값비싼 명주와 비슷하고 고급스러워 지혜로우신 손님들이 앞 다투어 좋아하며 빠르게 입소문을 타고 주문량이 늘어났다.
세월 따라 사람들의 취향이나 의식도 바뀌어 가고 있다. 십 수 년 전부터 우리나라의 장례문화도 매장에서 화장장으로 급속도로 바뀌어감으로 이제는 고인을 위한 관례복도 가볍고 깨끗하고 저렴한 제품을 선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된 것 같다. 특히 올해는 4년에 한 번 돌아오는 윤년이다. 예전 조상님들 때부터 내려오는 풍습에 의하여 윤달 드는 해에 수의를 준비해놓으면 더 장수하고 후손들에게도 좋다는 말이 있다. 그 좋다는 말이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마지막 입고 갈 옷 한 벌 마련하면서도 후손들의 안위까지 생각하는 갸륵한 정성이 아닌가 싶다. 예전에는 연로하신 부모님이 계시면 자녀들이 솔선하여 준비하는 경향이었다면, 요즘엔 당사자 본인들이 자식 눈치 안보며 직접 준비하는 분들이 많아졌다. 가끔 전해 듣는 이야기지만 평소 부모가 살아계실 때는 자주 찾아오지도 않던 불효자가 어느 날 갑자기 부모 잃은 상주가 되면 마지막 입고 가는 수의만큼은 값비싼 최고품을 입혀드리자고 형제들과 아웅다웅 불협화음을 일으킨다고 한다. 안타깝고 웃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기에 현명하고 지엄하신 현대 어르신들은 실리를 택하여 저렴하고 깨끗한 순 우리 식물성 섬유인 인견수의를 좋아하시는 것 같다.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메마른 나목들은 두꺼운 외피를 벗고 강한 생명력으로 새움을 틔우고 부드러운 꽃을 피워 새로운 향기를 불어 넣는다. 자연의 섭리는 참으로 오묘하고 경이로운 것이다. 하지만 만물의 영장이라 일컫는 우리 인생들은 제아무리 과학이 발전하고 수명이 길어진다 하여도 하나뿐인 생명을 마음과 뜻대로 부지하지 못하고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들이다. 이 세상에 잠깐 쉬어가는 삶이 영화롭고 행복하였다면 다음 생은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더욱 풍요롭고 아름다운 날들이 지속되길 바라고 싶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허물, 부와 명예, 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빈손으로 갈지라도 이 세상 이별하는 날 마지막으로 예복 한 벌은 꼭 갖추어 입어야 되는 관례가 있다. 그러므로 내가 만든 수의는 사랑하는 가족들이 고인에게 드리는 마지막 선물이기도 한 것이다. 처음에는 수의라는 말이 어색하고 섬뜩한 느낌마저 들었는데, 이제는 애착을 가지고 만들다보니 오히려 보람을 느끼며 내 건강이 따라 줄 때까지 정성껏 만들 예정이다.
숭고한 삶을 마감하고 하얀 날개옷을 두르고 평안한 마음으로 하늘을 나는 고인들의 명복을 빌면서, 나는 한 땀 한 땀 바늘을 이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