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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 12:9~10(298) 나의 약함을 자랑하리라 2021.3.7.
캐나다 20대 총리를 지낸 장 크레티앙 (Jean Chrétien, 1934~)의 이야기입니다. 사진을 보세요. 우리나라의 대통령과 같은 직책인 캐나다를 이끌고 가는 총리를 지낸 분이지만, 이 분의 별명이 ‘시골 호박’입니다. 그 정도로 이 분은 소탈한 성품을 가진 분입니다.
그런데 이 분은 본래 가난한 집안 출신의 흙수저 출신입니다. 19형제 중에 18번째 아들로 태어났는데, 이 마저도 다 살아남지 못하고 크레티앙이 성인이 되었을 때에 살아남은 형제는 8명 뿐이었습니다. 그만큼 가난하고 힘든 유년시절을 보내게 됩니다. 게다가 사진에 보는 것처럼 크레티앙은 심각한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안면근육 마비로 한쪽 귀가 들리지 않습니다. 입이 비뚤어져 발음이 어눌한 선천적 이중 장애마저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1993년 총리가 된 후에, 탁월한 정치적 리드와 캐나다 백성들의 두터운 신임을 얻어 총리를 3번이나 연임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안면 근육마비로 인해 부자연스러운 얼굴 모습과 언어 장애로 인하여 정치적 정적들에게 놀림감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것은 크레티앙이 가진 가장 큰 약점이라고 평가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크레티앙은 자신의 약한 것을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선거유세를 할 때에 항상 이런 말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안면근육마비로 인하여 한쪽 귀가 들리지 않는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발음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언어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오랜 시간 고통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더 고통스러운 것은 언어장애 때문에 저의 생각과 의지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할까봐 걱정입니다. 그러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제 말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어눌한 발음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저의 생각과 의지를 잘 들어 주셨으면 합니다.”
그는 언어장애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자신 있게 사람들 앞에 내세웠습니다. 한번은 상대방 정치인이 그를 공격하였습니다. “캐나다 나라의 대표자인 총리에게 언어장애가 있다는 것은 치명적인 약점이 아닙니까?” 그때 크레티앙은 어눌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너무나 유명한 말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말은 잘하지 못하지만 거짓말은 절대로 안 합니다.”
1963년 29세 젊은 나이에 하원의원에 당선된 이후 40년 정치를 하면서 총리의 자리까지 올라간 크레티앙이었습니다. 자신의 약점인 장애를 감추지 않고 솔직하게 드러내었고, 숨기며 거짓말하기 보다는 진실함으로 국민들에게 다가 섰기에 폭넓은 지지와 사랑을 받았습니다.
크레티앙은 ‘남들이 모두 말하는 자신의 약점은 약점이 아니었기에 자신은 포기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약점 때문에 인생이 망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약점 때문에 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부정적인 생각이 인생을 망치게 됩니다. 오히려 약점을 통해 더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모두는 다들 약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크고 작은 약점이 있습니다. 남들은 우습게 생각하는 것이지만, 나에게는 심각한 약점으로 남아 있는 것들도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약한 것들 때문에 여러분들의 인생이 흔들리지 마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바울은 약한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자랑하라고 본문은 역설합니다. 바울은 본문 9절을 통해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이전에 스데반 집사를 죽이는데 앞장 섰고, 여러 기독교인들을 잡아 처단하는데 선봉장이 되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울에게는 부끄러운 약점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예수님께서는 그런 자신의 모든 약점을 묻어 두시고, 자신을 선택하여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복음증거자로, 그리고 선지자와 사역자로 세우셨다고 고백합니다. 바울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랑거리 떄문에 선택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약하고 미련한 것을 선택하였다고 고백합니다. 우리 또한 하나님께서 나의 연약함을 들어 사용하시리라 믿습니다.
우리 다 함께 ‘약한 나로 강하게’찬양을 하나님에게 드리기를 소망합니다. “약한 나로 강하게 가난한 날 부하게 눈먼 날 볼 수 있게. 주 내게 행하셨네. 약한 나로 강하게 가난한 날 부하게 눈먼 날 볼 수 있게 주 내게 행하셨네. 호산나 호산나 죽임 당한 어린양 호산나 호산나 예수 다시 사셨네. 호산나 호산나 죽임 당한 어린양 호산나 호산나 예수 다시 사셨네”
이 찬양의 가사가 여러분 모두에게 적용되는 은혜의 말씀이 되길 소망합니다. 강한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연약함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당대 최고의 가정에서 출생하였고, 당대 최고의 학문을 공부하였던 바울이 자신의 연약함과 여러 약한 것들을 자랑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 때문입니까?
1. 자족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9 상반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하신지라.”
이 말씀을 쉽게 풀이하면 이런 내용입니다. “주님이 나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에게 주는 은혜는 너에게 충분한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주는 능력으로 너의 약한 부분이 온전하게 되기 때문이다”
여기의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는 원어로 ‘아르케이 소이 헤 카리스’입니다. 이 말은 주님의 은혜가 나에게 가장 효과적절하게 만족스러운 결과를 만들어 낸다는 말입니다. 성도들 가끔 하나님이 주신 응답을 시큰둥하게 받아 들일 때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응답이 내가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내가 가진 결과를 먼저 판단하기 이전에,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응답은 반드시 내가 원하는 모양으로만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내가 원하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으로 약한 나의 연약함을 온전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원하는 것을 받지 못하였다고 해서 실망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항상 나를 온전하게 하신다는 것을 항상 믿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인이 된 것과 사도가 된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했다고 고백합니다. 은혜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인식했으며,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자신을 끊을 수 없다고 확신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궁극적인 사랑인 것을 믿었기에,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응답되지 않아도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바울은 강조합니다.
나는 약한 것이 하나도 없어서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 없다고 말하는 자가, 정말로 불쌍하고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바울은 오히려 약한 것이 은혜임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진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약한 것들에 대해 자랑했습니다. 약하기 때문에 더 은혜가 더 필요한 법입니다. 자신이 약하다고 생각하는 성도는 하나님의 도움을 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도자 무디(Dwight Lyman Moody)가 집회를 마치자 한 흑인 소녀가 와서 말합니다. “목사님, 저는 글을 배우지 못해 성경을 읽지도 못합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너무 가난하기에 저는 가진 것이 없어요. 그래도 주님이 저를 기뻐 받아 주실까요?”무디 목사님이 소녀의 말을 듣고 하나님은 모든 것을 그대로 받으신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소녀는 고백합니다. “주님, 내 모습 이대로 받아 주세요.”
이 모습을 지켜보던 엘리자 헤밀턴 (Eliza H. Hamilton) 여사가 감동을 받고 찬송시를 적습니다. 그리고 그 찬송시를 읽었던 아이라 데이빗 생키(Ira David Sankey) 그 자리에서 곡을 만듭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노래가 바로 찬송 214장입니다. “나 주의 도움 받고자 주 예수님께 빕니다. 그 구원 허락하시사 날 받아 주소서.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아 주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아 주소서.”
이 찬송이 불려질 때마다 약한 사람들이 힘을 얻었습니다. 절망 가운데 있던 사람들이 용기를 얻었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가진 연약한 모습 그대로 나를 받으시는 분입니다. 가식이 들어가지 않고 거짓이 없는 진실한 믿음의 모습을 원합니다.
9절 하반절 보세요.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예수님께서 자신 연약함 모습 그대로 사랑하신다는 말에 크게 기뻐합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연약함이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운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내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약한 것을 자랑한다고 말합니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약점과 약함은 결단코 자랑거리가 아닙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의 약함을 자랑한다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왜 자랑할까요? 그것은 내가 연약한 것이 많을수록, 그 연약함을 통해서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부분을 보세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문다’고 말합니다. 여기의 ‘머물게’는 원어로 ‘에피스케노세’인데 ‘장막을 치다’라는 뜻입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광야의 성막 안에 항상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능력이 자신의 약한 데에 항상 머물면서 보오나해 주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약할 때마다 주님을 찾았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빌립보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여기서 죽을 정도로 모진 매를 맞고 피범벅으로 쓰러져 있을 때도, 하나님의 능력을 구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맛보게 됩니다. 유라굴로 광풍을 만나 배가 깨어지고 난파당하여 죽음이 코 앞에 온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능력만을 의지하였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눈으로 보게 됩니다.
바울은 항상 자신이 연약한 상태에 처해진 것을 감사하였습니다. 자신이 연약하게 되면, 그 연약함을 긍휼히 보시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은혜로 보살펴 주신다는 것을 몸소 깨달은 자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약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을 더 신뢰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약함을 인정하고 기도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머무르게 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나의 약함을 통해 하나님의 강함이 임하게 됩니다.
10절,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함이라.”
상반절에 보면, 바울이 기뻐하며 그리스도를 위하여 즐겁게 받아들이는 5가지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1)자신의 연약함을 기뻐한다고 말합니다.
2)능욕(凌辱) - 남을 업신여기고 욕보인다는 뜻으로 아주 험한 말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때문에 불신자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하고 욕을 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성도는 예수님 때문에 능욕 당하는 것을 두려워해서 안 됩니다. 도리어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3)궁핍(窮乏)-궁핍은 가난하고 구차한 모습입니다. 게을러 일하지 않아서 주어지는 가난함이 아닙니다. 여기의 궁핍은 그리스도 때문에 가진 물질을 빼앗겨서 겪게 되는 가난함입니다.
4)박해(迫害),5)곤고(困苦) - 이것은 모두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때문에 받게 되는 핍박과 어려움을 설명하는 말입니다.
5가지 중에서 처음의 연약함을 제외하면, 나머지 네 가지(능욕, 궁핍, 박해, 곤고) 모두가 외부로부터 임하는 박해와 어려움과 핍박의 모습입니다. 성도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받게 되는 능욕, 궁핍, 박해, 곤고는 결단코 쉽게 생각할 수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지금 대한민국은 교회와 기독교인들에 대하여 부정적인 시각이 많이 존재하고 있지만, 직접적으로 교회와 성도들의 재산을 강탈하고, 그리고 성도들에 대하여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한국교회와 교인들이 현재 겪는 위기를 두고 이렇게 평가를 하고 싶습니다. “한국교회의 위기는 외부로부터 임하는 박해와 어려움 때문이 아니라, 내부로부터 발생하는 풍요로움 때문이다. 한국교회 교인이 가진 이 풍요로움이 한국교회 교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지 않을 단계까지 만들어 버렸다”
10절에서 바울은 철저하게 자신의 무너지고 연약한 모습을 하나님 앞에서 고백합니다.
자신의 무너지고 연약함이 부끄러움이 아님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함이라(For when I am weak, then I am strong)”라고 담대히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강해 보여야 다른 사람이 자신을 우습게보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허세를 부립니다. 부자인 것처럼, 많이 배운 것처럼, 남들보다 자신이 특별한 것처럼 거들먹거립니다. 이런 허풍과 허세는 사람들에게 통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에게는 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성도가 하나님 앞에서 어깨를 추켜세우고, 거들먹거리면서 허세 부리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다 가지고 있다고 고개를 드는 자 보다는, 겸손하게 허리를 숙이고 하나님에게 나아와 기도하는 성도를 더 사랑하십니다. 바울이 바로 이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능력은 내가 연약할 때에 나를 통해서 나타납니다. 이 사실을 깨닫는 성도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고난과 어려움을 겪으면서 연약해 질 때에, 나를 도우시고 이끌어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가장 강하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나의 연약함과 실패를 통해서 하나님의 강함과 인도하심을 믿음으로 깨닫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김동호 목사님의 간증이야기입니다. “교통사고로 여섯 식구가 죽을 뻔한 사고를 당한 적이 있었다. 1/100초를 빨리 갔어도 죽었고, 1/100초를 늦게 갔어도 죽었을 사고였다. 사고조사를 하였던 경찰도 혀를 내두를 만큼,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여섯 식구가 다치지 않고 살아남았다. 나는 그것을 절대로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치밀하신 역사로, 우리 가족과 사고를 낸 사람까지 능력으로 보호해 주셨다고 확신한다.
나는 자신의 무능함과 무지함을 안다. 그러기 때문에 인생을 내 마음대로 산다면 처음에는 좋아 보일는지 모르지만 결국 사망과 실패와 고통이 끊이지 않을 것을 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새 대가리라고 천박하게 놀리는 하찮아 보이는 새들까지 때와 시간을 가르쳐 주시고, 날아가야 할 방향을 일러주시며 또 목적지까지 날아갈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자신의 연약함속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깨닫고 고백하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모두는 약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약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결단코 약한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는 자는 조만간에 강한 자로 다시 서게 될 수 있습니다. 약한 사람이 강해지는 비결은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뿐입니다. 철저히 하나님을 의지하여 약함 가운데서도 강한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나의 약한 것으로 인해 부끄러워하거나 비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의 연약함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게 되니 도리어 기뻐하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3월입니다. 모진 겨울의 추위도 완전히 한 풀 꺾여 버린 시기입니다. 따사로운 봄볕과 함께 하는 3월의 모든 시간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모든 시간이 되길 축원 드립니다. 본문에 등장한 바울의 아름다운 신앙고백이 여러분 모두의 입술의 고백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