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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한 사람이 되시렵니까?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롬 5:12~21)
오늘 본문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임하였다는 말로 시작이 됩니다.
12절을 다시 봅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
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이 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아담입니다.
아담은 어떤 죄를 지었습니까?
순종하지 아니하는 죄, 불순종의 죄를 지었습니다.
19절 앞부분에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허셨습니다.
화면에 떠있는 창세기 2장 16절과 17절의 말씀을 그저 눈으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아담은 이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아담 한 사람의 범죄가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게 하는 참 좋지 않은 결과, 끔찍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반대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셨습니다.
그래서 인류를 구원하는 큰 일을 이루셨습니다.
본문 가운데 19절 후반부는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19절을 읽다가, ‘가만있자, 이거,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었느니라’ 과거형을 써야 맞지 않나?‘ 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미래형을 썼지?‘하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다른 한글번역성경이나 영어 번역도 분명히 미래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할 때는 아직 복음이 널리 전해지지 않아서였을까?‘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로마서는 기원후 57년 경, 그러니까 1966년 전 쯤에 고린도에서 기록되었습니다.
한참 생각하다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의인이 되었지만 앞으로 지금 예수를 믿지 않고 있는 사람들, 북한동포들, 중국인들, 힌두교인들, 이슬람권 사람들도 의인이 되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뜻일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해 일선에서 힘쓰고 있는 선교사들에 대한 감사를 새롭게 했습니다.
성경에서 한 사람의 범죄가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 사례를 많이 찾을 수 있습니다.
좋은 본보기가 여호수아서 7장에 나오는 아간입니다.
가나안 정복 전쟁은 첫 성 여리고를 정복하는 것으로 시작이 됩니다.
여리고는 크고 강한 성이었습니다.
여리고성을 정복할 때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엿새 동안을 돌라고 하셨습니다.
일곱째 날에는 일곱 번 돌고 제사장들은 양각 나팔을 길게 불라고 하셨습니다.
그 나팔 소리가 들릴 때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릴 것이라고 했습니다(수 6:3∼5)
이해하기 어려운 명령, 순종하기 어려운 명령입니다.
여호수아는 어느 부분이 약하니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격하면 쉽게 정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그런 말씀을 기대했을지도 모릅니다.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이지만 여호수아는 순종했습니다.
순종하지 아니하는 죄를 범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성벽이 무너져 내렸습니다(수 6:20)
그렇습니다.
여러분 내 판단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이것이 하나님의 명령, 하나님의 인도라는 확신이 있으면 순종해야 합니다.
그럴 때 놀라운 복을 받게 됩니다.
원하는 일이 이루어집니다.
큰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각자의 삶을 돌아보세요.
그런 일을 많이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리고 성 다음에 정복해야 하는 성은 아이 성입니다.
아이 성, 작은 성이었습니다.
정탐꾼들이 정탐을 하고 돌아와서 백성을 다 올라가게 하지 말고 이삼천 명만 올라가서 아이를 치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보고를 했습니다.
여호수아가 그 말을 듣고 삼천 명쯤 보냈습니다.
그런데 크게 패해서 전사자들이 많이 생기고, 쫓기고, 백성들의 사기가 뚝 떨어져 버렸습니다
여호수아서 7장 5절을 보면 백성의 마음이 녹아 물같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아간 한 사람의 범죄 때문이었습니다.
아간은 전리품 가운데 귀한 것들을 훔쳐 장막 땅 속에 묻었지요.
한 사람의 범죄가 이렇게 무섭습니다.
신약에서는 시도행전 19장에 나오는 데메드리오라는 사람을 들 수 있습니다.
데메드리오는 에베소의 은장색(銀匠色)이었습니다.
은으로 아데미 신상 모형을 만들어 돈을 버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종교를 이용해서 돈을 버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요.
바울이 에베소에서 전도를 합니다.
바울의 에베소 전도에 대해 사도행전 19장 20절은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은 신이 아니라고 가르쳤습니다(행 19:27)
데메드리오는 이거 안되겠다 하고서 사람들을 부추겼습니다.
우리가 아데미 신상 모형을 만들어 적지 않은 벌이를 하고 있는데 바울 때문에 우리의 영업이 천하여지고 아데미의 신전도 무시 당하게 되고 그의 위엄도 떨어질 것 같다고 선동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그 선동에 따라서 소동을 일으켰습니다.
사도행전 19장 29절을 보면 온 시내가 요란하여졌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소요 후에 바울은 에베소를 떠납니다.
데메드리오 때문에 에베소가 혼란에 빠졌습니다.
바울의 에베소 전도가 방해를 받았습니다.
성지순례를 할 때 에베소를 들렸습니다.
그 소동이 일어난 연극장의 폐허가 남아 있는데 거기에 가만히 서서 그 광경을 눈앞에 그려보았습니다.
군중이 소동을 일으키고 있고 은장색 데메드리오가 한구석에서 음흉하게 웃으며 그 소동을 지켜보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한 사람 때문에 교회가 어려움을 겪는 일을 간혹 보게 됩니다.
‘나는 간혹 보지 않고 많이 보았어요!’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나 그 사람 보기 싫어서 그 교회 안 나가!’하는 소리가 듣는 일도 있습니다.
우리는 보기 싫은 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나, 그 사람을 보니까 예수 믿는다는 것이 좋은 일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겠어! 나도 더 열심히 교회생활 해야 하겠어!“ 이런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한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여러분,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힘쓰시기 바랍니다.
15절부터는 또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5장 12절에서 21절까지에는 “아담과 그리스도”라는 소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둘로 나누어서 12절부터 14절까지에는 “아담 안에서 온 인류의 타락”,
15절부터 21절까지에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온 인류의 구원”이라는 제목을 붙인 주석도 있습니다.
15절 뒷부분을 봅니다.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이 부분이 공동번역성서에는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덕분으로 많은 사람이 풍성한 은총을 거저 받았습니다”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 선물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구원입니다.
영생입니다.
변화된 삶, 소망이 넘치는 삶, 기쁨의 삶, 온전한 평화가 깃들어 있는 삶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구원과 영생을 선물로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선물인 소망과 가쁨과 평화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본보기들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그런 본보기들이 모여 있는 모델하우스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는 큰일을 한, ‘한 사람’의 이야기를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선 노아를 들 수 있습니다.
창세 시대에 사람의 죄악이 가득하고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생각이 항상 악했습니다(창 6:5).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였고,.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하였습니다(창 6:11∼12).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땅과 함께 멸하려고 하셨습니다(창 6:13)
홍수를 일으켜서 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으리라
그런 가운데에서 노아 한 사람이 의인으로, 당대에 완전한 자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았습니다(창 6:9).
그 노아 한 사람을 통해 그의 가족이 홍수에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가득하고 번성하게 되었습니다(창 9:7).
아브라함 한 사람의 순종을 통해 믿음의 역사가 기록되게 되었습니다.
요셉 한 사람을 통해 이스라엘 족속은 무서운 기근에서 살아남을 수가 있었습니다.
신약에서는 저는 로마로 호송되고 있는 바울을 들고 싶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었습니다.
황제 재판을 받기 위해 로마로 호송됩니다.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가는데 그 배에는 이백칠십육 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이 배가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났습니다.
배가 바람에 밀려 쫓겨가게 되었습니다.
짐을 바다에 풀어버리고 배의 기구들도 바다에 내버렸습니다.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않고 큰 풍랑은 그대로 있습니다.
사도행전 27장 20절을 보면 이 때의 형편을 두고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열나흘, 그러니까 두 주간을 절망상태 가운데서 지냈습니다(행 28:33).
이 이야기는 사도행전 27장에 기록되어 있는데 어떻게 그렇게 자세하게, 생생하게 실감나게 기록할 수 있는지 감탄이 나옵니다.
사도행전은 누가가 기록했는데 누가는 의사이고, 역사가이고, 문필가라고 말합니다.
그와 동시에 누가는 명 기자였습니다.
그때 바울이 어떻게 했습니까?
사람들에게 안심하라고, 우리는 반드시 한 섬에 걸릴 것이라고 격려했습니다.
음식을 먹게 했습니다.
그 배에는 백부장도 있었고 선장도 있었고, 선주도 있었는데 그 배를 실제로 이끈 것은 바울이었습니다.,
그때 바울은 죄수의 신분이었습니다.
나설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죄수이기 이전에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로부터 “너와 함께 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행 27:24)는 말씀을 들은 사람이었습니다.
교회는 “내가 이 나라를, 이 시대를, 이 지역사회를 너희에게 맡겼다”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바울이 없었더라면 그 배에 탄 사람들은 살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바울의 격려와 구체적인 지시를 통해 그들은 멜리데 섬에 상륙하여 구조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성도는 집안을, 나가서는 가문을 믿음으로 이끄는 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제게 아주 가깝게 지나는 친구 목사님이 있습니다.
강화도 옆에 교동도라는 섬이 있습니다.
지금은 강화도와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데요 이 목사님은 교동도 출신으로 강화도에서 목회하다가 은퇴했습니다.
이 분이 몇 번 제게 “우리 할아버지 한 분 때문에 우리 박씨 집안이 예수 믿고 구원을 받게 되었어. 우리 집안에 목사와 장로와 권사를 합하면 60여 명이 되는데 우리 할아버지 한 분 때문에 그렇게 되었어. 내가 목사가 된 것도 우리 할아버지 덕분이야”라고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박동엽이라는 분인데 교동도에서 만호(萬戶)라는 벼슬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교동도 앞바다, 고동도 들어가는 다리 왼쪽에 쌍여라는 암초가 있습니다.
1865년 지금으로부터 158년 전의 일인데 어느날 보니까 서양배 한 척이 그 암초에 걸려 있었다고 합니다.
박동엽 만호는 가서 그 배를 도와주었습니다.
수리를 해 주고 식량과 물을 주어서 무사히 돌아가게 했습니다.
그 배에 누가 타고 있었나 하면 토마스 선교사가 타고 있었습니다.
토마스 목사는 1866년 9월에 제네럴셔만호라는 배를 타고 평양으로 들어오려다가 목숨을 잃은 분입니다.
’한국 개신교 최초의 순교자‘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분은 원래 서울로 들어오려고 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배를 탔다는 것입니다.
토마스 목사가 서울로 오려다가 강화 앞바다에서 좌초를 당했다는 기록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랬을 가능성은 있는 일이라고들 말하고 있습니다.
토마스 선교사를 만난 일이 계기가 되어 박동엽 만호는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 후손들도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박동엽 만호 한 사람을 통해 그 집안이 복음회되었습니다.
박동엽 만호의 손자 가운데 박두성(朴斗星)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이 한글점자를 만들었습니다.
이분이 만든 한글점자를 ’훈맹정음(訓盲正音)‘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 분을 ’시각장애인들의 세종대왕‘이라고 부릅니다.
빅두성 선생은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여러 책을 점자로 만들었습니다.
점자로 책을 만드는 것을 점역(點譯)이라고 합니다.
박두성 선생은 신약성서도 점역했습니다.
박두성 선생은 여러 기록에 감리교회 장로님이었던 것으로 나옵니다.
저는 주일에 교회에 올 때 삼각지 전철역을 이용합니다.
매일 사무실에 오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삼각지역 5번 출구 왼쪽에 점자 지하철 노선도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지하철 노선도, 참 복잡하지요.
그걸 점자로 만들려면 쉽지가 않았을 텐데 삼각지에 국립맹학교 용산캠퍼스가 있기 때문에 거기 있는 것 같습니다.
다른 데서는 점자 지하철 노선도를 보지 못했습니다.
점자 지하철노선도, 시각장애인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보면서 ’한 사람이 예수를 믿은 열매가 이런 곳에까지 미치는구나!‘ 하는 생각을 가져 봅니다.
성도 여러분, 가문에서, 일터에서, 지역사회에서, 모임에서 좋은 영향을 많이 미치는 한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질문하실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목사님, 아담이나 그리스도는 잘 알려진 한 사람 아닙니까? 아담은 인류의 조상이고, 그리스도는 구세주이고, 그리고 목사님이 말씀하신 노아나 바울은 위대한 성경인물이고요, 아간이나 데메드리오는 좋지 않은 경우이기는 하지만 역시 성경에 기록되어 잘 알려져있는 인물이고요, 여러분과 저도 한 사람이라고 하셨는데 저는 알려지지 않은 한 사람, 무명의 한 사람이 아닙니까? 경우가 다르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성도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모두 중요한 한 사람입니다.
‘나는 무명의 인물이야. 보잘 것 없는 사람이야. 내가 맡은 일은 아주 작고 보잘 것 없어.!’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 일 하기 싫다‘하는 생각이 뒤따르게 됩니다.
그런 생각 버려야 합니다.
성경에 달란트의 비유가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에게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 두 달란트 받은 자는 그것을 가지고 장사하여 그만큼 남겼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어떻게 했습니까?
땅을 팔고 감추어 두었습니다.
주인이 돌아왔을 때 다섯 달란트 받은 종과 두 달란트 받은 종은 칭찬을 많이 들었습니다.
한 달란트를 받아 묻어 두었던 종은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겼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왜 그렇게 했을까?
이것은 그저 막연한 상상입니다만 다른 종에게는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를 주면서 자기에는 한 달란트만 주니까 불만을 품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도 열심히 일했다면 칭찬을 받았을 것은 확실합니다.
’오, 너는 다른 종보다 적게 주었는데 불평하지 않고 열심히 일했구나!‘ 하시면서 더 많은 상을 주셨을지도 모릅니다.
자기가 맡은 작은 일에 최선을 다 하는 한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가 건전하고 강한 힘을 가진 공동체입니다.
그런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인 교회가 사회로부터 인정을 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교회입니다..
용산교회, 그런 교회가 되기 바랍니다.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습니다.
질그릇이 불평하지 않고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될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2장 20절과 21절의 말씀입니다.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고린도후서 4장 7절에 보배를 가진 질그릇이 나옵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용산교회는 보배를 가진 질그릇과 같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인 교회가 되기 바랍니다.
우리는 맡고 있는 작은 일을 최선을 다해서 정성스럽게 감당하는 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전에 중학교 1학년 국어교과서에 ”현이의 연극“이라는 수필이 실려 있었습니다.
어느 문학강습회에서 수필 강의를 맡은 강사가 ’이 것이 좋은 수필의 본보기입니다. 수필은 이렇게 써야합니다‘하면서 ”현이의 연극“을 소개하는 것을 본 일이 있습니다.
”현이의 연극“ 내용을 기억하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딸이 예술제의 연극에 출연하게 되었다면서 연습을 하느라고 늦게 옵니다.
휴일에 연습하러 학교에 가기도 합니다.
예술제날 엄마가 가 보았습니다.
”숲 속의 대장간“이라는 연극인데 토끼도 나오고, 동네 여인도 나오고, 대장간집 주인도 나옵니다.
딸이 어디에 있나 찾아보았더니 무대배경인 숲속의 풀잎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양손에 풀잎 모양 그림판을 들고 가끔 흔드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엄마는 처음에는 좀 실망을 했다가 딸이 작은 역할을 그렇게 충실하게 하고, 엄마가 보아주리라는 확신 때문에 최선을 다 하는 것을 보면서 감동을 받습니다.
이 수필은 ”현이는 엄마 때문에 그토록 열연했음에 틀림이 없다“라는 문장으로 끝이 납니다.
우리는 내가 맡은 일이 풀잎과 같은 것이라도, 아니 풀잎보다도 작은 것이라도 하나님 때문에 최선을 다 하는 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찬송가 597장의 가사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줍니다.
이전에 주님을 내가 몰라 영광의 주님을 비방했다
지극한 그 은혜 내게 넘쳐 날 불러 주시니 고마워라
나 받은 달라트 얼마런가 나 힘써 그것을 남기어서
갑절로 주님께 바치오면 충성된 종이라 상 주시리
천하고 무능한 나에게도 귀중한 직분을 맡기셨다
그 은혜 고맙고 고마워라 이 생명 바쳐서 충성하리
나 하는 일들이 하도 적어 큰 열매 눈앞에 안뵈어도
주님께 죽도록 충성하면 생명의 면류관 얻으리라
우리가 이렇게 믿으며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은 기뻐하실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를 칭찬하실 것입니다.
큰 상급을 주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한 사람”이라는 말이 유난히 자주 나옵니다.
12절, 15절에 두 번, 16절에도 두 번, 17절, 19절에 두 번, 여덟 번 나옵니다.
제가 정밀하게 확인해 보지는 못했지만 성경 전체에서 “한 사람”이라는 단어는 로마서 5장에만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 한 사람은 아담, 그리고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저는 많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한 사람을 ’아담형 한 사람‘,
많은 사람을 구원과 영생으로 안내하고 소망과 기쁨과 평화를 주는 한 사람을 ’그리스도형 한 사람‘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며 묻고 싶습니다.
어떤 한 사람이 되시겠습니까?
한 분도 빠짐없이 그리스도형 한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내게 맡겨주신 작은 일을 감사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 해 나가는 한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와 같이 하여 한 분도 빠짐없이 생명의 면류관을 받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순종의 모범을 보이심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게 하신 주님,
저희가 예수님이 보여주신 모범을 본받고, 예수님이 걸으신 길을 다르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용산교회는 그런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인 신앙공동체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날 세상에는 많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아담과 같은 사람들이 정치계를 비롯해서 사회 각 분야에, 주변에,많이 있습니다.
휩쓸리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다른 사람 어찌든지 주님을 따라가는 발걸음에 흔들림이 없게 하여 주옵소서.
부족한 나를 그리스도를 따르는 한 사람으로 불러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 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