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이사야 28-30장 부분입니다.
28장 1-13절은 에브라임의 술 취한 지도자들을 향한 예언자의 저주입니다. 북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는 향락의 메카가 되었고 그들이 쌓아놓은 재물은 그들을 교만하게 만들었습니다. ‘기름진 골짜기’(28:1)로 상징되는 물질적 풍요가 그들의 영적 시야를 가렸습니다. 28:7절은 ‘제사장들과 예언자들도 독주로 말미암아 옆걸음치며 포도주에 빠지며 독주로 말미암아 비틀거리며 환상을 잘못 풀며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실수를 하였다’라고 기록합니다.
이사야가 이렇게 풍자 섞인 직격탄을 날렸지만(7-8절), 그들은 술에 취한 채 주절거리며 빈정대면서 거부 반응을 보였고, 이사야의 설교가 매우 단조롭고 투박해 초등학생 수준도 안된다고 평가합니다(9-10절).
그러자 예언자 이사야는 자신이 전하는 메시지에 고집스럽게 반대하며 빈정대는 말투로 우습게 여기는 종교 지도자들과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너희들에게 더듬는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말씀하실 것이다.”(11절) 독일성서공회는 이를 ‘하나님은 정복자들의 혀짤배기소리로, 너희들이 못 알아듣는 외국어로 말씀하실 것이다’라고 해설했습니다. 즉, 외국어를 사용하는 민족(앗 시리아)이 쳐들어와 마치 어린애들 다루듯이 함부로 다룰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14절에서 이사야는 오만방자한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전하지만, 예루살렘의 지체 높으신 분들은 ‘죽고 사는 일이 자기들 마음대로 된다(15절)’면서 이사야가 전하는 말씀에 조롱 섞인 어투로 빈정거렸습니다. 이처럼, 예루살렘은 제동장치가 고장난 자동차처럼 멸망으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거하는 나라와 도시가 견고한 반석 위에 세워지기를 바라시며 당황하거나 황망하지 않게 될 기초 돌(곧 정의와 공의)이 필요하다고 하십니다(16-17절). 그러면서 이 기초 돌, 곧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무시하고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는 자들은 ‘우박과 폭우가 너희 피난처, 즉 거짓과 기만이라는 피난처에 숨어 있는 너희를 덮칠 것이고, 전무후무한 재앙에 짓밟힘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17-22절). 신약성경은 이 기초 돌에 관련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영원한 반석이며 초석이고 모퉁잇돌이며 머릿돌이시라고 말씀합니다. 사28:16절을 인용해 바울은(롬9:33, 10:11) 예수님을 시온의 기초석이라 했고, 베드로 역시 ‘보배로운 산 돌’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영원한 피난처이자 반석이고 구원자이심을 찬양합니다.
23-29절은 이사야가 밭농사 비유를 통해 어리석은 유다의 지도자들과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계획의 기묘함과 그 지혜의 광대함’에 대해 설파합니다. 이것은 재앙이 몰려오는데도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고 스스로 기만하는 어리석은 자들(28:14)에 대한 강도 높은 우회적 비판입니다. 시온의 백성들은 하나님이 시온에 놓으신 돌, 곧 시온의 초석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세찬 바람이 불고 폭풍우가 닥쳐와도 반석 위에 세운 집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루살렘을 보호하고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예루살렘을 지키고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을 믿는 자는 절대 흔들리지 않습니다(28:16).
29장 1절의 ‘아리엘’은 예루살렘을 시적으로 표현한 이름인데, ‘제단의 화로’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여기서는 아시리아의 침공으로 전쟁의 도가니에 빠질 모습, 곧 불타는 제단의 모습(사29:2-4절)을 연상시킵니다. 유다가 멸망하는데, 주어는 하나님이십니다(2절, ‘내가 아리엘을 괴롭게 하리니’). 그리고 멸망을 초래한 죄는 교만, 곧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모든 인간적 힘들과 세력들(앗 시리아와 애굽 등)을 의지한 것, 그래서 하나님이 그 의지했던 것을 심판의 막대기로 삼아 유다를 괴롭게 하셨습니다. 때문에 역사의 주인은 앗 시리아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29:5-8절은 이 사실을 극적으로 그려내 줍니다. 그러나 유다는 영적 기관이 망가졌기 때문에 여전히 하나님의 계획을 깨닫지 못하고 고집을 부리며 완고하게 저항을 합니다(9-10절). 영적 기관이 망가진 것은 ‘영혼 없는 신앙생활’을 할 때, 곧 종교적 형식주의에 깊이 빠져 있을 때입니다(13절,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15-24절은 하나님의 기이한 계획입니다. 설교자 이사야를 통해 하나님의 계획은 사람의 계획과 전혀 다르다고 말씀하십니다. 곧 심판의 순기능을 통해서 기적적으로 회복시키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30장 1-17절은 앗 수르의 공격에 대해서 유다가 하나님과 애굽을 앞에 놓고 저울질하다가 애굽 쪽으로 기울어지는 모습입니다. 하나님 대신에 애굽에 기댄 것에 대해 하나님께서 헛수고라고 하십니다. 7절에서 애굽은 큰소리만 쳤지 아무런 도움도 못 주는 허풍쟁이요, 무능하고 무력하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놓고 무시하며 싫어했습니다(10절). 그런 유다를 하나님은 분명히 박살 내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14-17절). 그런 가운데서도 진정한 구원을 갈망하고 바라는 자들에게 구원의 비밀을 알려주십니다(15절,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곧 마음을 돌이키는 것, 회개입니다. 그리고 잠잠히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는 것입니다). 18절은 하나님을 기다리는 자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씀을 합니다. 하나님의 오심을 갈망하고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삶의 풍요를 맛보게 하십니다. 또한 그 날에는 상처가 치료되고 눈물이 씻기고 노래가 회복된다고 하십니다(23-26절). 또한, 세상의 모든 권력과 우상들이 엎드리게 될 것입니다(30-33절).
살면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 가운데서 우리가 의지하고 신뢰해야 할 분은 창조주이시며 구원자이신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심을 믿습니다. 이 하나님과 지금 동행하며 오심을 소망하는 행복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첫댓글 유다가 앗수르의 공격앞에 위기의식을 느끼긴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이 아니라 힘있어 보이는 또다른 나라를 의지합니다. 하지만 앗수르의 공격보다 더 큰 일은, 선지자들에게 귀기울이지 않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더 이상 말씀을 베풀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실 기이한 일은 더 이상 세상의 지혜자들에게 이해되지 않습니다.(30:1-2, 29:9-14)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기다리시며 당신이 정하신 그 때에 은혜와 긍휼을 베푸시며 정의를 이루십니다. 말씀에 주의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자는 복을 받습니다. 지금 풍요롭고 평안하다고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던 자들은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먹을 때에야 말씀에 귀기울이게 될 것입니다.(30:18-22)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나 좋을대로 하는 것은 내 판단이 옳다 생각하는 교만한 자요, 당장 자신을 즐겁게 하는 것에 몰입하는 술에 빠진 자와 같습니다. 그 길을 가는 자는 제사장과 선지자라 할지라도 어리석고 더러움이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광대한 지혜에서 나오는 기묘한 섭리가 언제,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하며 믿음위에 바로 세우는 기다림의 가치를 생각해봅니다.(28:1,7-8,23-29)
아멘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완벽한 '네비게이션'이자 인도자가 되심을 믿습니다.
주님을 믿고 따라가며, 또한 주의 역사 하심을 인내하며 기다리는 자에게 '행복'의 길을 열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은혜를 베풀기 위하여 기다리시고 긍휼을 베풀기 위해 일어나시는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믿습니다.
귀를 열어 주의 말씀을 들을수 있게 해주시고 마음을 열어 들은바를 행할수 있게 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정의와 공의가 삶 가운데 펼쳐지기를 기원합니다.
또한, 예수님의 긍휼이 항상 우리의 인생을 덮으사 말씀을 갈급하고, 순복하여 가정과 직장과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나라가 펼쳐지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님의 성실하심과 진실하심을 새겨봅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어가심에 자기부인함을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아멘입니다. 주의 성실과 진실하심이 '우리의 삶'에도 그대로 흐르는 역사가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주의 말씀에 저 또한 완전히 죽어지는 은혜의 역사가 있기를 소망하며, '자기 부인'을 통해서 영육이 강건하며~
주의 평강이 넘치는 역사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30:18
무릇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나님의 오심을 갈망하고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삶의 풍요를 맛보게 하십니다 아멘
아멘입니다. '간절히 기다리는 자'에게 폭포수 같은 삶의 풍요가 있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진정으로 구원을 갈망하고 바라는 자들에게 소망이 있음을 보며, 상황에 따라 좌면우고하지 말고 십자가의 길일지라도 정도를 걷는 삶을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아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