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현실(집회서 34,1-8)
율리아나 단장님 고운 용모, 청아한 목소리, 거기다 아름다운 천주 신앙을 품은 분이다. 부자동네라고 소문난 강남 00 본당에서 일 할 때, 꾸리아 단장이셨기에 조금 가까워 질 수 있었다. 대모를 구할 일이 있었다. 내가 담당하는 예비자들의 세례가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연만한 연세, 가난한 독거 노인으로 대모를 부탁할 분이 마땅치가 않았다. 그러다 이분께 부탁했다. 예비 대녀보다 더 어린 나이, 생활 형편 미모 여러 가지 인간적 조건들이 안 맞는다고(?) 여겼지만, 뜻밖에 흔쾌히 ‘아멘’해 주셨다. (좋은 믿음을 가진 분들이 많았을 텐데 내 인간적 선입견였을 것이다) 멋있는 말은 감동을 주지만 아름다운 표양은 불을 붙이는 법이다. 그 계기로 가끔 자매님의 아름다운 신앙을 엿볼 수 있었는데 귀감이 되곤 했다. 시간이 흘러 본당을 떠나 눈에서 멀어지니 친교도 소원해졌다. 그런데 제자 할머니가 나를 찾는다는 연락이 닿아 만남을 약속하고, 이왕에 대모님인 단장님께도 전화를 드렸다. 나이 든 사람들의 뻔한 통화 내용...건강은 어떠신지를 여쭈니. “하하하 수녀님. 내가 폐암이래요.” 하셨다. 정말 깜짝 놀랐다. 폐암이라고 하셔서 놀랐고, 허랑방탕하게 웃으면서 말씀하셔서 놀랐다. 나는 호탕하게 웃으며 자신이 암이라고 전하는 분을 처음 보았다. 이 체험은 내 신앙과 인생에 깊은 자국을 남겼다. 자매님께 또 다른 시련이 있었다. 아들이 결혼하더니 이혼하여 아픈 몸으로 어린 손자를 키우고 있다고 했다. 처음엔 힘들었지만 갈수록 정이 들고 손자 양육으로 세월 가는 줄 모르게 바쁘고 기쁘게 산다고 하셨다. 손자는 나이보다 조숙하고 영민하고 무엇보다 신앙심이 깊어 이제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하느님 대전으로 인도하고 있다고 했다. 본당 매일 새벽 미사 복사를 꺼리니 본인이 거룩한 책임감으로 도맡아 하는 바람에. 이야기를 들으며 여러모로 엄마보다 할머니 엄마 품에 자라는 것이 손자에겐 어쩌면 다행이겠다 싶었다. 그리고 하느님도 생각이 있으시면 손자 양육 중인 할머니의 병을 호전시키고 지켜 주시리라고 여겨졌다. 역시 그분은 수년째 병도 잘 관리하고 계시다. 기적이다. 아마도 자매님의 아름다운 신앙과 삶에 내려진 기적일 것이다. 세월이 또 휙 지나고 며칠 전에 전화를 드렸다. 손주는 잘 자라고 있고, 본인도 팔십에 육박해가는 나이로 여전히 손자 바라기로 아주 바쁘게 살고 있다고 하셨다.
안부를 주고받은 그날 밤에 나는 꿈을 꾸었다. 나는 병원에 있었고 무슨 검사를 받고선 막 담당 의사에게 설명을 들으려는 자세로 앉아 있었다. 의사 선생은 영문으로 기록된 결과지 보고 있었다. 한줄기 불안감이 스쳤다. ‘왜 글씨가 많은 거야, 별일 아니려면 간단해야 하는데.’ 버릇처럼 성호경을 한번 바치니 의사 선생이 말했다 “폐암 초기네요” ‘헉. 놀랐다.뭐라고?. 어쩌지?’ 작년부터 부쩍 공동체 많은 회원들이 투병 생활중이다. 가까운 가족 친척 지인 친구들마져 하느님께로 떠나고 있기에 병과 죽음에 대해 이래저래 많은 생각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내 나이 80 이후에 암이 발생하면 살 만큼 살았으니 갈 준비를 씩씩하게 하리라고 평소 생각했다. 꿈에서 나는 내 나이를 계산하고 있었다. 당황한 채 나이를 계산해 보고 있었다. 70이 넘은 나이로 오류가 나왔다. 가까스로 제정신을 차려 본 나이를 찾았다. ‘나이가 어쩌라고...그리고 뭔 계산?’ 좀 웃겼다.의사의 말에 평정심이 흔들리긴 했지만 울고불고 저승에 떨어진 듯 캄캄해하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깨고 나니 꿈이었고 좀 찝찝했다. ’뭐지 이 꿈? 그리고 천만다행. 오늘 지금 아직 살아 있어 천만다행이고 또 비록 꿈 속이었지만, 그리 요동치지 않아 나의 하느님께 크게 많이 죄송하지 않아 천만 다행이다. 그럼에도 율리아나 단장님의 그 신앙고백과는 아직도 먼 거리를 유지하는 내 믿음과 신앙이 한 점 부끄럽다. 생생한 현실에서도 그분처럼 행동하는 생각과 말과 행동이 일치되는 신앙은 언제쯤 가능할지.
주님: 꿈에서나 현실에서나 제 믿음과 사랑과 희망이 진실하고 일치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