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0장은 돌라, 야일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는 내용입니다. 앞장에서 아비멜렉이 자기 형제 칠십 명을 모두 바위에서 죽이고 자신이 왕이 되어 악을 행하였습니다. 그로인해 하나님께서는 아비멜렉을 여인이 던진 맷돌에 맞아 죽게 하심으로 그의 악행을 갚으셨습니다.
그 후 돌라가 사사가 되었는데 그는 잇사갈 사람이었고 에브라임 산지 사밀에 거주하였습니다(1). 그리고 길르앗 사람 야일이 사사가 되었는데 그 아들 30명이 어린 나귀를 탔습니다(4). 잇사갈 출신 돌라와 길르앗 사람 야일이 사사가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미약한 지파 가운데서 사사로 세우셨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또한 야일의 아들들이 어린 나귀를 탔다는 것은 겸손함을 의미합니다. 이는 장차 메시아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출신과 겸손에 관해 예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습니다. 베들레헴은 당시 미약한 마을이었습니다. 미가 선지자가 예언하기를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 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자가 네게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미5:2)고 하였습니다. 또한 이사야 선지자는 장차 메시아가 이새의 아들을 통해 나사렛에서 자랄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곧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사11;1)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싹’이 히브리어로 ‘네체르’라고 하는데 곧 나사렛(네체르)과 발음이 같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 보면 빌립에 나다나엘에게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 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요1:45)고 하자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요1:45)고 반문하였습니다. 또한 야일의 30명 아들들이 나귀를 탔다고 하였는데 이는 겸손을 의미합니다. 장차 메시아가 겸손한 모습으로 오실 것을 예표합니다.
선지자 스가랴는 메시아에 관해 예언하기를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슥9:9)고 하였습니다. 그 말씀대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나귀 새끼를 타셨습니다(마21:5).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출신을 따지지 않으십니다.
돌라는 잇사갈 출신으로 에브라임 선지에 거하였던 사람이었고, 야일은 길르앗 사람이었습니다. 모두 당시 미약한 시골 출신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사사가 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오늘날 부르심도 동일합니다. 사도바울은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고전1:26)고 하였습니다. 이는 아무 육체라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심입니다(고전1:29).
둘째, 겸손해야 합니다.
야일의 30명 아들들이 어린 나귀를 탔다는 것은 겸손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고 하였고, 사도바울은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2:5)고 하였습니다. 곧 겸손한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셋째, 우리가 부르짖을 때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또 시돈 사람과 아멜렉 사람과 마온 사람이 너희를 압제할 때에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므로 내가 너희를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였거늘”(12)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연약하여 때로 어긋난 길로 갈 수 있지만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고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십니다. 항상 주님께 회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