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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먼저, 살아있는 여성을 희생시키는 것에 결사반대할 공동체가 필요했다. 주체적인 여성인 제주도 해녀를 극적으로 만났다. 그 때부터 해녀에 대한 책과 영상, 역사적 자료들을 찾고 해녀문화와 공동체적 삶에 몰입했다. ‘제주 해녀문화’는 특별한 잠수장비 없이 바다 속에 들어가 해산물을 캐는 ‘물질’ 문화, 해녀들의 안녕을 빌고, 공동체 의식을 키우는 ‘잠수굿’, 배 위에서 부르는 노동요 ‘해녀 노래’, 어머니에서 딸로, 시어머니에서 며느리로 세대 간 전승되는 ‘여성의 역할’, 제주지역 공동체의 정체성 등이 포함된 복합적 개념이다. 2016년 11월 30일 제주 섬 특유의 해녀문화가 오랜 노력 끝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등재가 확정되었고, ‘제주 해녀문화’는 한국의 열아홉 번째 인류무형문화유산이 됐다. 많은 해녀들이 70대에서 90대 초반으로 15년이면 해녀문화가 사라질 것을 예상하여 인류문화유산으로서의 보존 가치를 높이 평가한 것이 유네스코의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등재에 대한 주요 결정 배경이다.
반드시 해녀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자극받은 작품이 있다. 같이 옛이야기를 쓰던 지인이 추천해준 중국계 미국인 베스트셀러 작가, 리사 시의 「해녀들의 섬」. 2019년에 출간한 「The Island of Sea Women」은 숙련된 해녀에서 무당들과 여신들에 이르기까지 여자들의 섬인 제주에 깊은 존경과 경의를 표한 소설이다, 한국인 아니 제주출신 작가라도 손대기 어려운 540쪽의 방대한 분량으로 제주 해녀 삶의 중심부에서 구석구석까지 담았다. 특히 한국현대사에서 한국전쟁 다음으로 인명피해가 극심했던 비극적 사건이자 미군정기인 1947년 제주도에서 발생한 4·3사건을 다뤘다. 미국인 작가가 제주 해녀의 시각으로 4.3사건을 절절히 그려낸 것에 충격을 받았다. 작은 부분이나마 한국 여성으로서 강인한 제주 해녀의 생태적 공동체를 조명할 책임을 느꼈다.리사 시의 책에서는 심방 좌씨의 의상과 기도문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실제적 도움을 받은 두 번째 책은 고희영 감독의 「물숨」이다. 영등굿을 설명하는 부분을 차용했다. 어멍과 경순 아즈망의 단짝 설정은 상군 김운자 해녀 이야기에서, 첫째인 강백을 용왕님의 딸로 별칭한 것은 바다의 포클레인 김연희 해녀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옛이야기가 풀어지지 않을 때, 「물숨」을 통해 이야기를 풀 단서를 발견하고 힘을 얻었다. 고희영 감독님께 특별한 감사를 전한다.
옛이야기다 보니 천년 동안 독자적인 국가 형태로 존속했고, 백제, 중국, 일본 등과도 활발히 국제 무역을 한 제주도의 고대 왕국인 탐라국을 시대배경으로 잡았다. 아쉽게도 탐라국 자료가 많지 않아 많은 부분 제주도 자료와 상상에 의존했다. 그럼에도 “옛날 아주 오랜 옛날에”로 시작하지 않은 이유는 천년왕국인 ‘탐라국’의 배경을 가진 독립 국가 제주도의 정체성을 알리고 싶었다. 옛이야기에서는 배경이 탐라국이라 전통적으로 제주에서 해녀(海女)보다 더 많이 쓰던 잠녀(潛女)로 표현했다.
탐라국에서도 어떤 마을이 해녀의 삶을 잘 보여줄까 고심이 많았다. 정말 우연하게 제주박물관 온라인 강의를 들었는데, 말미에 해녀관련 유물이 종달리에서 처음 나왔다는 직원의 말에 귀가 번쩍했다. 이 때부터 ‘종달리’와 신비한 인연이 시작됐다. 종달리는 통달함을 마쳤다는 뜻과 중국 황제와의 슬픈 유래까지 있어 옛이야기의 공간으로 흥미로운 마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