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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길 떠나는 이 행수 ⑬
이 대 영
밤새도록 눈이 내렸다. 아니, 퍼붓고 또 퍼부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 행수의 죽음을 깨끗하게 덮어주는 하늘의 배려라고 했다. 또 어떤 이는 그의 상여 길을 막으려는 하늘의 심술이라고도 했다. 저승사자가 아침에 데려간 것은 이 행수가 선행을 많이 해 그의 부음을 널리 알리기 위함이라 했고, 가족이 당황하지 않고 장례 절차를 하게 하려는 그의 마지막 노력이라고도 했다.
동네에서는 오랜만에 큰 행사가 치러지고 있었다. 기와집 양 씨의 죽음 이후 마을에서의 큰 장례였다. 강 씨는 서울 병원에서 운명하여 매장 당일, 운구차로 마을로 모셔왔기에 마을 공터에 포장을 치고 조문객을 받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 행수는 마을 이장은 물론 공수원 육동의 대행수 역할을 한 인물이었기에, 그의 부음은 공주와 청양, 부여 읍내까지 전해졌다. 갓바위 이 씨는 조부에게 배운 한자 실력을 발휘하여 부고를 작성했고, 삼거리 주막 박 씨 아들은 자전거를 타고 각 마을로 부고장을 뭉텅이로 날랐다. 아랫집 남 서방은 ‘성님이 죽었다’며 연신 눈물을 훔치며 허드렛일을 했다. 광재를 중심으로 황 서방과 안 서방은 돼지를 잡아 우물에서 해체작업을 했으며, 동네 아이들은 그 근처에서 돼지 오줌보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허 대장은 집 뒤에 있는 대나무로 상장목을 만들어 상주들에게 하나씩 건넸다. 그리고는 긴 공치사 끝에 소주 두 병과 소금을 얻어 우물로 달려갔다. 삼거리 박 서방은 볏단을 추려 상주들이 사용할 짚신과 베개를 만들었다. 마을 아낙들은 제수를 마련하고 문상객 맞을 준비를 해나갔다. 그러는 사이 황 서방댁은 대문 앞에 사자상을 준비했다. 그는 교자상 위에 물과 밥 세 그릇을 차려놓고 망인을 저승까지 잘 인도해 달라며 여러 번 머리를 조아렸다.
공주 상포사 주인 염 씨가 트럭을 몰고 나타나자, 남자들은 일손을 멈추고 그를 따라 안방으로 들어갔다. 염 씨는 동행한 사환과 상주에게 예를 표한 뒤, 병풍을 치우고 사자에게 큰절부터 올렸다. 그의 나이는 오십을 넘겼지만, 워낙 키가 작아 열댓 살 남짓한 사환보다도 몸이 작았다. 그는 계룡 사람으로 젊었을 때는 시골에서 개나 닭 등 가축을 사서 읍내 식당에 납품하는 일을 했다. 그러던 중 산성시장에서 보신탕집을 하는 여사장의 중매로 아내를 만나 결혼을 했다. 염 씨의 처는 우체국 근처의 중국집에서 주방일을 거들던 장기면 출생이었다. 그 역시 가난한 농부의 딸로 입 하나를 덜고자 초등학교 졸업 후 읍내로 나와 식당 일을 하고 있었다. 염 씨가 다부진 체격을 지녔다면, 그의 아내는 눈이 크고 키가 커서 손님에게 인기가 있었다. 그녀의 눈을 본 사람들은 마치, 노루 눈과 같이 맑고 예쁘다고 했다. 보신탕집 여사장은 자신에게 늘 살갑게 대하는 그녀를 좋아했고, 생활력이 강해 보이는 염 씨와 짝을 맺어준 것이었다. 비둘기들의 애정행각을 차마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푸른 봄날이었다.
중학동 근처에 신혼살림을 차린 염 씨는 세상 모든 것을 얻은 듯했다. 단칸방이었지만 저녁에 들어와 아내와 함께 하는 시간은 남부럽지 않은 행복한 시간이었다. 주인집을 포함하여 세 가구가 하나의 화장실을 사용해야 하는 불편은 있었지만, 밤마다 사람들이 자신의 방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은 좋았다. 가을 추수와 더불어 잔칫집이 늘어나자 개나 닭들도 잘 팔려 수입도 늘어났다. 특히, 애경사 때 청양과 예산, 부여를 비롯한 서해안 사람들은 손님에게 개장국을 접대하는 것을 예의라고 생각하여 염 씨의 수입은 꾸준히 늘었다. 그러나 행복은 그의 생애를 온전히 이어주지 못했다.
겨울 초입, 일을 일찍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정육점 앞에 서 있는 아내를 만났다. 왠지, 삼겹살이 먹고 싶다며 웃음 짓는 아내와 집에 돌아온 염 씨는 기분 좋게 소주 한 병을 마셨다. 다소 거칠게 부는 바람에 창틀이 요란하게 흔들리는 밤이었다. 부부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배 호의 ‘안개 낀 장춘당공원’을 들으며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잠이 들었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 염 씨는 병실에 누워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옆에는 시골서 올라온 그의 여동생이 병실 간이침대에 앉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동생은 아침에 혼절해 있는 부부를 안집 주인이 발견하여 그를 병원으로 데려왔다고 했다. 갈라진 방바닥 틈으로 스며든 연탄가스가 화를 부른 것이었다. 안주인이 늦게까지 인기척이 없자 방문을 열었을 때, 두 사람은 모두 의식이 없었다고 했다. 임시방편으로 동침이 국물을 입에 흘려 넣고 몸을 흔들었지만, 그의 아내는 결국 깨어나지 못했다. 염 씨는 아내를 화장하여 금강에 뿌린 후부터는 가축을 살생하는 일을 그만두었다. 개나 닭의 선한 눈을 보면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고심 끝에 생각한 것이 장의사 일이었다. 지역마다 지관은 더러 있었지만, 공주 읍내에는 내놓을 만한 염쟁이가 없었다. 또한, 몇 개 되지 않는 상포사 물건들은 부르는 게 값이었고, 장례식장에서 상주들이 주머니에 찔러주는 사례비도 적지 않으리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래서 천안까지 올라가 무급으로 상포사 일을 도우며 배운 끝에 산성시장 입구에 점포를 마련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시신에 대한 두려움도 점차 사라졌다. 다만, 그의 여동생의 말처럼 망자들을 자주 보아서인지 눈이 점점 노란색으로 변해가는 느낌도 있었다. 그의 어머니에게 정말 자신의 눈이 노랗게 변해가느냐고 물으면, 그의 어머니는 한결같이 “원래 사람의 눈깔은 노리끼리한 것이다!”라고 말해 그를 웃게 했다.
염 씨 일을 돕고 있는 사환은 6.25 전쟁 중에 부모를 잃었다. 마땅히 의탁할 곳이 없던 그를 먼 친척이 계룡산 갑사 팔상전 내에 있는 계룡 풍덕원에 맡겼다. 그곳에서 자라 공주에서 중학교를 마친 사환은 학승의 주선으로 상포사에서 일을 시작했다고 했다. 상가에서 대접을 받으며 밥과 고기를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생각이 시신에 대한 두려움보다 앞섰다. 오랜 고아원 생활에서 느낀 배고픔이 망자를 대하는 두려움을 제압한 것이다. 처음에는 염 씨가 수시를 할 때, 한발 물러서서 끈이나 솜 등을 건네주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입 안에 생마늘 두 알을 물고 자신이 직접 염을 진행하기도 했다. 오늘은 출발 전에, 염 씨가 오래전부터 이 행수와 친분이 있어 자신이 직접 시신을 거두겠다는 말에 홀가분하게 출발한 상태였다.
두 사람이 절을 올리는 사이, 남자들 틈에서 눈을 굴리던 남 서방댁과 양 서방댁이 웃음을 참으려 손을 입으로 가져갔다. 공교롭게도 염 씨의 오른발과 사환의 왼발에 신겨진 양말 한 짝씩이 구멍이 나,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결국 마당으로 물러 나와 서로 어깨를 치며 깔깔거렸다.
염 씨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바로 수시에 들어갔다. 그는 먼저 사환에게 건네받은 솜으로 망자의 코와 귀를 막았다. 그리고는 손과 발을 주무르며 곧게 펴나갔다. 어깨를 운동시키듯 돌리기도 하고, 팔과 다리 관절 부분을 곧게 펴는 작업을 하는 행동이 마치, 외과 의사가 환자의 몸을 교정하듯 자연스럽게 일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고 있는 사람은 남 서방과 지관 강 씨 노인이었다. 아낙들은 근처에 얼씬도 못 하고 앞마당에서 부엌으로, 그리고 뒷마당으로 분주하게 옮겨 다니고 있었다.
염 씨는 사환에게서 한지를 건네받아 망자의 발치 아래에 펴고, 다리 복상씨부터 감싸 올린 후 매듭을 한지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는 장매로 발목 부분을 한 번 묶은 후, 그대로 발바닥으로 끈을 돌렸다. 그리고는 양발 사이로 끈을 끼워 넘겨 고정했다. 이어 장매를 무릎 밑으로 넣어 올려 두 바퀴를 돌린 후, 한 가닥을 묶음 안쪽으로 밀어 올려 아래에 발목을 묶은 끈에 연결했다. 손과 다리가 한지 끈으로 일자로 연결되자 감탄이라도 하듯 남 서방의 입에서 ‘아 하!’ 소리가 흘러나왔다. 염 씨가 사환에게 눈길을 주자, 사환도 망자의 반대편으로 가서 작업을 거들었다. 절반으로 접은 한지로 손목을 길게 싼 후 손가락 부분을 싼 뒤 우측 손을 아래로, 왼손을 위로 가지런히 포갰다. 이어 장매를 엉덩이 아래로 넣어 올려 단단히 묶었다. 작업은 머리 부분으로 옮겨졌다. 사환이 시신의 머리를 들어 올리자 염 씨는 안쪽에 탈지면과 바깥쪽에 염지를 접혀 넣은 한지를 이용하여 왼쪽으로 얼굴을 먼저 감싼 뒤 오른쪽으로 덮었다. 그런 후, 마치 약봉지를 접듯 얼굴을 덮은 한지로 머리를 단정하게 마무리했다. 염 씨는 한지 베개를 받친 머리와 가슴이 일직선이 되어야 함을 교육하기라도 하듯, 사환을 향해 손으로 시신의 수평을 잡아주는 동작을 했다. 그런 후 얼굴에 고깔을 씌우고 입이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턱받이, 일명 함영이라는 것을 지긋이 괴고 끈을 돌려 마무리했다. 그런 다음 침목 세 개를 시신 옆에 일정한 간격으로 놓은 다음, 소나무로 제작한 시상판을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장매를 어깨와 팔꿈치·허벅지 부분, 단매를 발목 부분 시상판 밑에 놓고 위에서부터 매집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시포를 시신 위에 덮어 좌우를 당기며 여몄다. 그런 후 염 씨와 사환은 나란히 고개를 숙여 망자에게 예를 표했다. 그들을 지켜보던 사람들도 모두 고개를 숙였다. 수시를 끝낸 두 사람은 뒷마당에 있는 우물로 가서 손을 씻었다. 윗집 양 서방댁은 부엌에서 데운 물을 양동이에 담아와 이들에게 주며 덕담을 건넸다. 그러는 사이 마을 창고로 갔던 사람들이 장례에 쓰일 물건들을 지게에 지고 돌아왔다. 그리고 제일 먼저 안마당에 지주대를 세워 차양막을 치자 그제야 상갓집 같았다. 도장골로 참나무를 베러 간 사람들이 돌아오자, 바깥마당에 모닥불이 지펴졌다. 친구를 잃은 양 서방은 겨울 냉기를 가득 품은 나무들 사이로 삭정이와 마른 짚을 밀어 넣고 성냥불을 그었다. 그러자 나무들은 마른기침을 내며 연기를 피워 올렸다. 마당에 온기가 퍼지자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경황 중에도 사리원댁은 나무를 베어 온 사람들을 위해 방금 배달된 막걸리와 지짐을 대접했다. 오전에 천지를 질식시킬 듯 내리던 눈발도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돼지를 손질하던 사람들도 돌아와 펄펄 끓고 있는 무쇠솥에 고기를 밀어 넣었다. 광재는 황 서방 댁에게 고기 내장을 따로 건네며 얼큰하게 술국을 끓여달라고 부탁했다. 황 서방도 마누라가 입에 넣어주는 고기를 받아먹고 뻐드렁니 사이로 입김을 토해내며 사람들 사이로 들어왔다.
안방에서는 일곱 살 손자에게 상복을 입힐 것인가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결국, 사리원댁의 의견을 좇아 상복을 입히지 않고 자유롭게 두기로 했다. 염 씨가 대나무로 만든 자로 상주마다 몸 치수를 재고, 사환이 이를 종이에 받아 적는 작업이 끝나자 자리가 정리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의정부에 사는 큰딸과 사위가 도착하자 제청에 또 한 번의 통곡이 이어졌다. 옥분이 마당에 들어서며 목놓아 우는 소리가 뒷산에 막혀 이내 튕겨 나왔다.
수명이 짧아진 겨울 해가 미궐산으로 몸을 숨기자 사위는 금방 어둑해졌다. 곳곳에 호야 등이 걸리고 집안 곳곳에서 음식을 탐하는 소리가 들렸다. 동네 아이들은 엄마 주변을 맴돌았고, 아낙들은 내 자식 남의 자식 안 가리고 먹을 것을 나눠주었다. 동네 개와 고양이도 기름 냄새에 취해 꼬리를 흔들며 비틀거렸다. 안마당에는 멍석이 깔리고, 얼큰한 육개장이 술상에 차려졌다. 호상은 아니었지만 부잣집에서 맞이하는 풍족한 밤이 시작되고 있었다.
염 씨가 차를 몰고 마을을 빠져나가자 사환이 모닥불 근처로 다가왔다. 서촌에 사는 권 서방이 자리를 내주며 그를 반겼다. 남 서방이 막걸리 한 사발을 권하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단숨에 들이켰다. 이미 안마당에서도 전작이 있어, 불빛에 달아오른 그의 얼굴은 홍시를 닮아가고 있었다. 안마당에 있던 황 서방과 광재가 모닥불로 다가오자 자리는 더욱 흥성해졌다. 허 대장이 모닥불에 나무를 던져넣자 불꽃이 하늘로 솟구쳤다. 그들은 불 주위로 볏단을 가져와 둥글게 자리를 만든 후 술자리를 이어갔다. 입담 좋은 광재가 사환에게 술을 권하며 “젊은 사람이 상가 일을 잘한다.”며 말을 건넸다. 그리고는 이제부터 ‘동생’이라고 부르겠다며 친근감을 표했다.
“염 사장 말로는 자네에게 신통력이 있다는 디, 그것이 사실인겨?”
“사실이냐구유? 아이고! 아저씨도, 제가 무슨 신통력이 있대유?”
“아니, 그럼 구신을 본다는 디 그게 신통력이 아니고 뭐리야?”
“워얼래? 아저씨, 누가 그런 소릴 해유?”
“어얼래! 염 사장이 그러던디! 그럼 염 사장이 그짓말을 한 거여?”
사환은 ‘씨익’ 웃으며 광재에게 술 한잔을 건넸다. 옆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사환에게 쏠렸다.
“히히! 난 또 누구라고, 우리 사장님 재미나는 사람인 거 다 아시잖아유!”
시답잖게 지나치려는 사환에게 남 서방이 재차 다그쳤다.
“뭐어여? 나도 들은 것 같은 디! 분명 염 사장이 동상이 구신을 본다고 했다구!”
“사람 사는 시상에 구신이 어딨대유! 구신이?
남 서방의 말을 강하게 부정하던 사환이 주위의 반응을 살폈다. 그리고는 탱자나무로 머리를 돌리자 사람들의 머리도 그를 따라갔다. 사람들의 행동이 재미있는지, 그는 다시 도장골 방향으로 손가락을 가리켰다. 사람들의 머리가 도장골로 향했다. 그러는 사람들을 보고 사환은 ‘씨익’ 웃었다. 귀신 이야기로 화제가 옮겨지자, 주변에 있던 아이들도 어른들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다.
“아이고 환장하겄네! 도대체 구신이 있는 거여, 읎는 거여?”
광재의 재촉에 사환은 재미있다는 듯 큰소리로 내뱉었다.
“구신은 없구유! 귀신은 있슈!”
그러자 다가오던 남 서방댁이 “추운데 뜨거운 찌개 좀 먹어 보세유!”라며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촌스럽게 구신이 뭐래유? 구신이? 귀신이라면 몰라도!”
남 서방 댁의 한 마디에 분위기는 더욱 달아올랐다. 그도 귀신 이야기가 궁금했는지 아들에게 볏단을 가져오라고 시켜 자리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는 방귀를 오지게 뀌어대자, 아이들이 코를 막으며 멀리 달아났다. 마누라에게 “장소를 분간하지 못한다”며 핀잔하던 남 서방이 다시 화제를 이어갔다.
“장례식장에서 말이여, 시신을 목욕시킬 때 눈도 뜨고 가끔은 팔도 들어 올린다는 디, 그것이 사실이여?”
“아이구, 아저씨도! 죽은 사람이 어뜨케 눈을 뜨고 팔을 올린대유?”
“그럼 뭐여?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난다는 것이여 뭐여?”
남서방은 시큰둥한 사환의 반응에 역정까지 냈다.
“저는 유, 경력이 짧아서 잘 모르구유? 냄새가 지독하게 나는 시신이 있긴 있어유, 뭐냐 하면, 농약을 먹었다든지, 여름에 죽은 지 오래되었다든가, 사고로 죽었다든가 그런 경우가 해당되구유. 그럴 때는유, 우리 사장님도 독한 소주를 한 고뿌 마시거나, 입에 생마늘을 물고 염하는 걸 보긴 봤서유.”
“이 사람이! 그건 지나가는 개도 아는 사실 아녀! 좀 재미나는 것 읎어?”
특이한 이야기를 바라던 광재가 다그치듯 사환을 바라봤다.
“그려, 광재 말이 마져! 근디, 자네 처녀 시신 염해본 적 있는가?”
“워째 그런 걸 묻는대유? 심히 불경스럽게시리!”
황 서방이 장난기 섞인 소리로 묻자, 남 서방댁이 이야기가 야하게 전개되는 것을 경계했다.
”우리 사장님 안 계실 때, 딱 한 번 해봤는디유. 경찰서에서 뜬금없이 반죽동 봉황산으로 급히 오라길래 어쩌유? 사장님이 안 계셔서 갈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지유! 경찰이 병원 밖에서 우릴 부르는 건 백 프로 사고 아니겄슈? 그런 데는 절대 가지 말라고 사장님이 일러줬거든유. 근디 다짜고짜로, 당장 달려오지 않으면 읍내에서 장사 다 할 줄 알라고 승질을 부리는 거에유! 그래, 어쩐대유? 마지못해 자전거를 타고 느릿느릿 가봤지유! 느리게 가면 혹시, 성질 급한 놈이 달려와서 먼저 일을 처리할 수도 있잖아유. 산 밑에 가보니 구급차와 경찰차, 그리고 국과수라는 글씨가 써진 봉고차가 있었슈. 그래, 어쩐대유? 빠짝 쫄았지유! 담배를 피우던 몇몇 사람이 늦게 온 나를 보고 꿍시렁거리대유. 그래, 어째유? 모르는 척하구 안면이 있는 경찰을 따라 산 위로 올라갔지유. 얼마 가지 않아, 장갑에 마스크를 쓴 사람 둘이 내려오대유. 아마 과학수사대였겄지유. 그리고 쪼금 더 올라가닌께 경찰 서너 명이 서 있었슈. 이파리 계급장 두 개 단 사람이 인상을 박박 쓰며 나보고 손으로 한쪽을 가리키는 거예유.“
“쯔쯔! 목매달았구만! 츠녀가?”
“좀 가만 있어봐유! 어째 자꾸 초를 친대유!”
오 서방의 말에 언제 합류했는지, 허 대장댁이 이야기를 다그쳤다.
“아저씨는 눈치가 백단이어유! 허 씨 아줌마 술 좀 한 잔 줘봐유!”
“이 사람 이거! 이야기꾼 다되었네! 다뎠어!”
“염 사장이 순둥이를 다 배려놓은 거 같어! 작년까지만 혀도 엄청 순진했는디 말이여!”
황 서방의 말을 받아 그의 아내가 한 수 더 거들었다.
“그래, 어쩌겄슈? 옆에 있는 사다리를 밟고 나무에 올라갔지유. 근디 그게 혼자선 못하는 일이잖아유. 한 사람이 밑에서 시신을 받쳐줘야 목줄을 풀 수 있는 거잖아유. 근디 아무도 도와주질 않는 거예유. 경찰은 지들이 하기 싫으니께, 저 아래에 있던 구급대원을 불러 겨우 땅으로 내릴 수 있었슈. 얼핏 처자의 얼굴을 보니 스물 갓 넘었을까 싶대유! 들것에 시신이 먼저 내려가고 나도 내려가려는디 거참 신기하대유? 아, 발이 안 떨어지는거예유?”
“증말? 발이 증말 안 떨어지더란 말이지?”
“오매! 얼마나 한이 매쳤으면 총각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안놔줬을까나 이!”
“바지가 아니라 붕알이겄지?”
남 서방 댁과 황 서방댁이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탄식을 했다.
“아이구! 아줌씨들, 그걸 증말이라고 믿어유? 뻥이어유, 뻥!”
사환의 말에 이야기를 듣던 사람들의 웃음이 ‘뻥’ 소리를 내며 하늘로 퍼졌다.
“사실은 말이유. 염습이 끝난 날 밤부터가 문제였슈. 꿈속에 자꾸 산발을 한 여자가 나타나 나보고 자기를 책임지라구 하는 거예유? 겁도 낳지만 환장하겄대유! 워째 내게 그러냐고 묻지 않았겄슈? 그랬더니 태어나서 자기의 아랫두리를 처음 본 것이 나니께 책임을 지라는 거예유! 어쩌유? 환장할 일 아니유?”
그러자 광재가 갑자기 관심을 보이며 사환에게 다가갔다.
“동상! 자네가 염하면서 뭔 짓한 거 아니여? 거시기를 건드린 거 아니냔 말이지?”
“이 양반이 큰일 날 소릴하네! 이 총각이 그럴 사람이대유?”
남 서방댁의 반문에 광재는 웃자고 하는 소리라며 한 발짝 물러났다.
“염하는데 거시기면 어떻고 저시기면 어떠태유! 우리 사장님이 윗도리를 씻고 내가 아랫도리를 씻은 건 맞는디유. 조금이라도 지가 딴 맴을 먹구 염을 하면은유, 천벌을 받아유! 천벌을!”
다소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사환은 말을 이어갔다.
“하던 얘긴께 계속 이어갈께유. 잠이 들었다가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눈을 뜨면 천정에 처녀가 나타나 자꾸 말을 거는 거예유! 자기가 좋아하던 남자가 있었는데 딴 여자랑 눈이 맞아 자기를 버려서 목을 맸다는 거예유. 그러면서 그 남자도 안 본 데를 내가 봤다고 책임지라는 거예유. 미치고 환장할 일 아니어유? 우리 사장님에게 몇 번이나 말씀드려도 나보고 책임지면 될 거 아니냐며 웃기만 하시는 거예유. 그러니 더 환장할 일 아니어유?”
“아이고! 남모르는 고민이 있었구먼! 그래 지금은 괜찮은 겨?”
황 서방이 진심이라는 듯 얼굴을 찌푸리며 말을 건네자 사환이 말을 받았다.
“지금은 괜찮아유! 지가 어렸을 때 절에서 컸잖아유. 그래 큰 스님을 찾아가 사정을 말씀드렸지유. 그랬더니 스님이 한참을 생각하시다가 이렇게 말씀하시대유.”
“그 처녀가 너에게 빙의를 하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구나. 아마도 네가 염습은 잘해 준 거 같구나. 사람은 죽으면 모든 것이 없어져 버리고 끝이라고 생각하지만, 생전에 지은 업에 따라 환생하여 영가로 떠돌게 되지. 아마 너에게 나타나는 영가는 세상에 한이 많아 아직도 이승을 떠돌고 있는 것이니,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을 씻어내는 관욕의식을 봉행하고 축원을 올려야겠다. 육신이란 참으로 허망한 것인데 뭔 미련과 집착이 남아 있다고 떠나지를 못하는지... 아마 영가에게 무상법문(無常法門)을 설(設)하면 무언가를 깨닫고 저승으로 가게 될 게다. 생야일편부운기(生也一片浮雲起) 사야일편부운멸(死也一片浮雲滅)인 것을! 옴 마니 반메 훔!”
“가만 봉게, 이 총각 총기가 상당하구먼? 스님이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외우는 것 좀 보게나! 나는 옴 마니밖에 몰라?”
“야! 오백이! 자네가 옴 마니를 안다구? 그게 뭔 뜻이냐?”
권 서방이 아는 체를 하며 끼어들자, 광재가 핀잔 조로 옴 마니의 뜻을 대라고 다그쳤다. 그가 머뭇거리는 틈을 놓치지 않고, 황 서방댁이 옴 마니는 “우리 오마니!”라고 받아쳐 웃음을 자아냈다. 사환은 목욕재계 후, 스님 곁에서 처자를 위한 천도재를 올린 뒤에야 그를 보낼 수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는 처녀 시신을 염습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했다. 마을 사람들이 웃고 즐기는 사이, 이 행수는 안방에 시신으로 누워 그들에게 흥성한 시간을 제공하고 있었다.
둘째 날 아침은 염 사장이 가져온 상복을 입느라 분주하게 시작되었다. 차가운 영하의 기온이었지만 날씨는 청명했다. 남자들은 두건 위에 굴건을 올리고 수질로 머리를 감쌌다. 여자들 또한 포건에 수질을 하고 요절을 했다. 염 사장은 남자들이, 한 서방댁은 여자들이 상복을 입는 것을 도왔다. 그리고 염 사장은 왼팔에 찬 상주들의 완장을 오른쪽으로 차라고 일렀다. 더불어 석 줄 완장은 상주인 큰아들이, 두 줄은 나머지 아들, 한 줄은 사위, 그리고 무 줄은 손자 및 형제들과 방계 존비속이 착용하게 했다.
지관인 강 씨는 남자들과 함께 갓바위로 향했다. 장지를 선산인 도장골로 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갓바위 밭에 묘를 써달라는 망자의 유지를 따르기로 의견이 모아졌다. 맨 앞에는 박 서방이 길잡이로 나서고, 그 뒤에 지관이 섰다. 그리고 삽과 곡괭이, 가래를 어깨에 얹은 남자들이 뒤를 따랐다. 오 서방은 지게에서 바소쿠리를 내리고 술과 찬으로 가득 찬 고무 다라를 얹고 맨 뒤에 섰다. 처음부터 오 서방이 지게를 지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이 행수의 큰아들이 사용하던 지게의 밀삐가 끊어져 못쓰게 되자, 남 서방이 지게를 가져왔다. 그러나 황 서방이 완강히 그것을 사용하기를 거부했다. 며칠 전에 남 서방이 똥통을 지게에 지고 나르는 것을 보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결국은 황 서방이 그가 쓰던 지게를 가져오고, 오 서방이 그 지게를 지기로 한 것이었다.
남자들 대부분이 장지로 떠나자 상가는 다소 한산해졌다. 오전에는 유구에 사는 이 회장이 다녀가며 두툼한 조의금 봉투를 사리원댁에게 건넸다. 그리고 이어서 의당에 사는 이 행수의 여동생이 큰아들을 대동하고 조문을 왔다. 병풍 아래서 오빠를 부르며 대성통곡하던 그는 큰며느리가 진정하기를 청하자 조카들에게 다가가 어깨를 다독였다. 점심 먹을 시간이 되자 읍내와 인근 면내 사람들이 몰려 상을 제대로 차릴 수가 없었다. 조문객 대부분은 누런 봉투를 가져왔으나 형편이 녹록하지 않은 사람들은 짚으로 만든 달걀 꾸러미를 부끄러운 듯 내밀기도 했다. 아이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양은 그릇에 육개장을 가득 채워 먹기에 바빴으며, 앞에서 쳐다보고 있는 개들에게 살점 없는 뼈를 던져주는 재미도 즐겼다. 뒤늦게 장지에서 마을 사람들이 돌아오자 안마당과 뒷마당은 물론, 바깥마당까지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러자 이웃집 황 서방댁의 제안으로 그의 집 방 두 개를 빌려 조문객을 맞기로 했다. 이웃하고 있는 담이 얕아 상을 넘겨받는 데는 전혀 문제 될 게 없었다. 흙담은 평상시에도 두 집이 음식을 주고받던 통로이기도 했다.
발인이 이튿날 9시로 정해지자 광재를 중심으로 저녁에 빈 상여놀이를 하자는 문제로 의견이 분분했다. 남 서방과 황 서방은 호상도 아니고 병상인데 놀이를 하지 말자고 했다. 이에 반해 광재와 삼거리 박 서방, 그리고 이 행수 친구인 양 서방은 적극 찬성했다. 이 행수가 평소 흥이 있고, 명색이 공수원 육동의 대행수인데 먼 길 떠나가기 전에 장터를 한번 둘러보고 싶지 않겠느냐는 주장이었다. 난상토론 끝에 상여놀이는 결국 사리원댁과 아들에게 의견을 묻기로 했다. 화려한 입담을 자랑하는 광재와 양 서방이 앞에 나섰다. “상여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법은 없는 것이니 친구가 즐겨 다녔던 장터를 한 번 둘러봐야 하지 않겠냐”는 양 서방의 말은 설득력이 있었다. 그 결과, 마을 사람들이 좋다면 저녁에 상여놀이를 해도 좋다는 상주들의 허락을 얻어냈다. 이제는 상여가 필요했다.
상엿집은 갓바위에서 모덕사로 넘어가는 고개 좌측에 있었다. 예전부터 상여를 보관할 창고가 필요 하자 육동 반장들이 모여 회의를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상여가 가지는 혐오성 때문에 반장마다 상여를 자기 마을에 유치하는 것을 찬성하는 이는 없었다. 결국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상엿집을 짓기로 하되 장터 아랫마을은 사마산 근처에, 윗마을은 미궐산 근처에 터를 잡아 사흘 후에 만나기로 했다. 그러나 반곡이나 용신동 사람들 누구도 이를 찬성할 사람은 없었다. 차라리 장터 한복판에 상엿집을 짓자는 억지 주장까지 나왔다. 결국에는 면서기까지 증인으로 불러내어 장터에서 반장 전원이 심지 뽑기로 장소를 정하기로 했다. 난상토론 끝에 장터와 벌뜸은 장소가 마뜩잖다는 이유로 대상에서 제외했다. 다만, 두 동네는 대보름 척사대회가 열릴 때마다 매년 쌀 한 가마니씩을 추렴해 내놓는 것으로 했다.
공수원 장날, 장터 한복판에 긴 탁자가 하나 놓이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면 서기가 찬성과 반대 표시를 한 종이를 접어 빈 종이상자에 넣을 때 새말, 신영골, 용신동, 범덕골 반장의 마음은 비장했다. 그리고 마치 희생양이 되지 않으려는 듯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아낙네도 있었다. 면서기는 네 장의 종이에 불가와 환영이라는 글자를 써서 사람들에게 보이고는 빈 종이상자에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반장 네 명에게 종이 한 장씩을 집어 탁자 위에 올려놓고 뒤로 물러서게 했다. 그리고는 면서기가 보는 앞에서 장터와 반곡 반장이 종이를 펼치게 했다. 그 결과 용신동 반장이 집은 종이에 선명하게도 ‘환영’이라 적혀 있었다. 용신동 이 반장으로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삼세번을 주장했지만 통할 리 만무했다. 억지도 부리고 화도 냈지만 통하지 않자, 그는 장터와 반곡 반장을 번갈아 쳐다보며 다른 장소를 찾아보자고 읍소했다. 반곡 주민들 또한 결사반대를 외치며 장터가 떠들썩해졌다. 다른 마을 사람들은 만세를 외치고 이제는 끝났다며 제 볼일을 보러 흩어졌다. 그러자 난감해진 면서기가 새말과 용신동의 중간지점으로 인가와 떨어진 곳을 물색해보기를 제안했다. 그 결과 정해진 곳이 바로 현재의 상여 터였다. 밑질 것이 없는 다른 반장들도 면서기의 제안이 합리적이라며 힘을 보탰다. 새말 주민들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반대했지만, 이 행수의 만류로 겨우 진정되었다. 그리고는 면서기와 반장들은 장터에서 생선과 과일을 사 들고 갓바위 이 서방 집으로 달려갔다. 땅 주인인 이 서방의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예상대로 이 서방은 웬 날벼락이냐며 완강히 반대했다. 그러나 그의 노모가 공수원 육동 사람들이 원하는 일이니, 청을 허하자고 아들을 설득해 겨우 일이 마무리되었다. 대신, 1년에 쌀 한 가마를 주어야 하며, 밭을 매매할 시에는 상엿집을 철거해준다는 조건부 승인이었다. 또한 이장이 열쇠를 철저히 관리하기로 하고, 제반 사항은 문서로 남기기로 했다.
상엿집을 짓는 날에는 돼지를 한 마리 잡고 솥을 걸었다. 두 칸짜리 집을 짓는데 공수원 육동이 떠들썩했다. 최 보살까지 불러 제상에 돼지머리와 떡시루, 그리고 동동주까지 올려 예를 갖추고 제를 올렸다. 일꾼들은 대들보를 굵직한 소나무로 세우고, 흙돌담을 튼튼하게 쌓은 후, 그 위에 널빤지를 세로로 붙여 통풍이 잘되게 했다. 거기에 검은 기와를 올려, 어찌 보면 공수원 육동에서 가장 말끔한 집이 지어졌다. 그러나 세월의 무게로 벽에 금이 가고, 온갖 씨앗이 기와 틈으로 파고들어 뿌리를 내리자 이제는 흉가나 다를 바 없었다.
상엿집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하얀 눈으로 덮여 있었다. 가을에 무성하게 자라던 쑥부쟁이가 눈 속에 엉켜 있어 앞으로 나가는 것이 녹록지 않았다. 상엿집이 생긴 이후부터 밤은 물론 낮에도 이곳 주변을 지나가는 사람이 드물었다. 심지어 읍내나 장터에서 일을 보고 나분동이나 덕바위로 가던 사람들도 모두 용신동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간혹 나무꾼이 모덕사로 넘어가는 고개에 이르러서는 누군가가 쌓아놓은 돌탑에 돌을 던지고 절을 한 후 지나갔다. 그래서인지 고개 입구에는 수호신처럼 돌들이 수북이 쌓여 행인들에게 위안을 주었다.
앞서가던 서촌 오 서방이 ‘에헴’ 소리를 내며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냈다. 마을 사람들은 그와 다소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었다. 이곳에 오면 선뜻 문을 열려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상엿집 진입로에 이르면 항상 문을 열 사람을 가위바위보로 정해 앞세우곤 했다. 미꾸라지라는 별명을 가진 오 서방도 이날의 운수를 피해가진 못했다. 그는 상엿집 문 앞에 서서 두 손을 모으고 재배한 후 마른기침을 날렸다. 귀신이 놀라지 않게 사람이 왔음을 알리는 일종의 의식이었다. 권 서방이 문 앞에서 멈칫거리자 뒤에 있던 황 서방은 “드럽게 겁이 많다!”며 핀잔을 줬다. 열쇠 구멍에 키를 넣으려던 권 서방이 행동을 멈추고 뒤로 다시 물러나 황 서방에게 다가왔다. 그러더니 말없이 열쇠를 그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두 사람이 옥신각신하는 것을 보다 못한 남 서방이 열쇠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는 두어 발짝 다가가더니 다시 돌아와 광재의 손에 열쇠를 건넸다. 그러자 또 한 번 웃음이 터지고 모든 이들의 긴장이 풀어지는 듯했다. “그래도 광재는 부처님의 기도발을 입으로도 처먹고 아랫도리로도 받아먹어 제일 세다!”는 황 서방의 말에 모두가 옳은 말이라며 손뼉을 쳤다. 이에 광재도 기분이 좋은지 머리를 긁적이며 앞으로 나섰다. 뒤늦게 말뜻을 알아들은 안 서방이 너털웃음을 짓자, 사람들은 그를 ‘바보’라고 놀렸다. 그리고는 그를 광재 앞으로 밀치자 상엿집 문이 부서지는 소리를 냈다. 그러자 안 서방은 기겁하며 양손을 모았다. 그리고는 문에다가 자신의 잘못을 빌었다. 사람들의 웃음이 겨울바람을 헤치며 날아올랐다.
상엿집 문을 열자 을씨년스럽던 외벽 풍경과는 다르게 상여며 물품들이 잘 정돈되어 있었다. 그러나 빛바랜 단청이나 용, 봉황, 연꽃무늬 등의 색상은 다소 혐오감을 느끼게 했다. 벽에 걸린 장강과 단강 또한 숱한 시신을 나르기에 지쳤는지 벽에 착 달라붙어 요지부동이었다. 권 서방은 “어째 으스스 하다!”며 엄살을 부렸다. “이걸 어떻게 들구 가냐!”는 자조 섞인 오 서방의 말에, 광재가 “모든 물건을 다 가져가는 것은 아닐세”라며 무게 있는 어조로 답했다. 염 사장이 오후 늦게 꽃상여를 차에 실어 올 것이기에 몇 가지 물건만 챙겨가면 될 일이었다. 광재와 남 서방은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두 사람이 상엿집에 오기에는 부담이 돼 다른 사람들을 몰고 온 것이었다. 황 서방이 서너 개의 상자를 들추더니 작은 궤짝에서 만장을 꺼냈다. 작년에 새로 산 것이라 새거나 다름없었다. 남 서방은 담력을 키워야 한다며 이 행수 아들 친구들에게 가위바위보를 시켜서 진 사람은 장강과 단강을 한 번씩 만져보게 했다. 진 쪽은 나무를 만지며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엄살을 부렸다. 광재는 그곳을 떠나기 전, 상엿집 문을 닫고 절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의 행동과는 무관하게 일행은 벌써 논두렁을 벗어나 한길로 줄행랑을 치고 있었다.
이 행수의 집 바깥마당에는 이미 꽃상여와 함께 요령잡이도 도착해 있었다. 요령잡이는 강 씨의 초청으로 봉현에서 온 선소리꾼 출신이었다. 그는 6.25 전란 후부터 송암리와 봉현리 일대에서 상여가 나갈 때에 소리꾼 역할을 하고 있었다. 워낙 청이 맑고 구슬퍼 앞으로 세상이 좋아지면 그는 틀림없이 인간문화재가 될 거라고 칭찬이 자자했다.
일행이 상엿집에서 돌아왔을 때, 이미 입관식은 끝나 있었다. 관은 향나무를 쓰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무덤에 관을 묻을 것도 아닌데, 그럴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이 많아 소나무 관을 사용하기로 했다. 대신, 제일 두꺼운 한 치 오 푼짜리를 사용하기로 했다. 주위가 정리되자 상갓집에서 돌아온 일행들은 또 생색을 내며 차양 아래에 술상을 폈다. 참견하기 좋아하는 황 서방이 또 관에 대해 아는 체를 했다.
“마른나무를 썼는지, 생나무를 썼는지 모르겠네?”
“야 이놈아! 마른 나무건 생나무건 네 놈이 뭔 참견이여?”
“야아! 너는 나만 보면 못 잡아 먹어서 환장을 하냐 이놈아? 말도 못하냐! 말도?”
“이미 입관이 끝났는디, 말은 뭔 말이여 이놈아?”
“잘난 네놈에게 하나만 물어보자! 관은 마른 나무가 났냐? 생나무가 났냐?”
옥신각신하다 남 서방은 황 서방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주춤했다.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남 서방에게 와닿자 그는 뜸을 들이며 술주전자를 찾았다. 주변 사람들 누군가가 대화에 끼어들기를 원했지만 아무도 그를 도와주는 이는 없었다.
“그야! 마른나무가 좋지, 생나무가 좋겄냐?”
“이런 무식한 놈! 처녀도 쌩 짜가 좋고, 고기도 쌩 짜가 좋은디, 관도 쌩 짜가 안 좋겄냐 이놈아?”
“처녀는 쌩 짜가 좋다는 말은 틀림없는디!”
두 사람의 대화에 광재가 끼어들자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그리고 갓바위 이 서방이 “광재가 일 년 만에 옳은 말을 했다”며 황 서방을 거들자 남 서방의 이마가 구겨졌다. 염 사장과 사환이 뒷마당 우물에서 손을 씻고 나타나자 남 서방이 이들을 불러세웠다. 그러자 염 사장은 사환을 사람들 쪽으로 밀치며 손사래를 치고 바깥마당으로 나갔다. 광재는 사환이 가까이 오자 “성님 얼굴을 한 번 더 봤어야 했는디, 더는 못 보게 됐다”며 “왜 우리가 없을 때 입관을 했느냐”고 투덜거렸다. 입관 후 제를 마치고 나오는 상주들은 얼마나 울었는지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다. 옥분은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졌고, 사리원댁은 호흡 곤란으로 정신을 잃어 주위 사람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방금, 황 서방과의 말싸움에서 밀린 것이 분한지 남 서방이 다가오는 사환에게 말을 걸었다.
“자네! 하나만 물어봄세! 말린 나무 관이 좋은가? 생 나무관이 좋은가?”
“왜유? 아저씨 들어갈 관 준비하게유?”
거침없는 사환의 대답에 모두가 웃었다. 지나가던 권 서방댁이 “내일 싸고 가벼운 관으로 가져오라”고 주문하자 사람들이 박장대소했다.
“야아, 남 서방! 다들 쌩 짜가 좋다는디, 왜 자꾸 물어쌓냐?”
“가만있어 봐! 이놈아! 쥐뿔도 모르는 놈이! 나도 다 들은 게 있어서 그러는겨 이놈아!”
두 사람의 언성이 높아지자 사환은 설명하겠다며 두 사람을 진정시켰다.
“관은 유? 오동나무와 소나무, 향나무를 젤 많이 쓰는디유, 아저씨들도 아시다싶이 동네 어디에 관을 만들만한 오동나무나 향나무가 읍잖아유. 즉어도 오동은 10년, 향나무는 70년이 넘어야하는디 그런 나무가 어디있슈? 그러다보니 소나무가 젤 만만한 거 아니겄슈? 그리구 관 두께는 반 치, 한 치, 한 치 반, 두 치짜리가 있구유. 관은 1단과 2단짜리가 있슈. 1단 관은 흔히 우리가 쓰는 완전 사각모양이구유, 2단 관은 상단 양쪽 모서리에 각을 주어 관 위에 지붕을 얹은 것으로 쬐끔 고급져 보여유. 왜 있잖아유? 예전에 대통령이 죽었을 때 썼던 관 말이어유.”
사람들은 사환의 설명에 귀를 쫑긋거리면서도 연신 술상에서 음식을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아저씨들이 아까 말씀하셨던 생나무 관과 마른나무 관은 도찐개찐이어유. 우선 생 관은 나무 냄새가 좋아유. 소나무나 향나무 냄새가 나지 않겄어유? 근디 그게 땅으로 들어가면 어떻겄슈. 잘 안 썪어유. 근디 마른나무 관은 어쩌유, 잘 썼겄지유? 시신을 관 속에 넣어 묻는 전라도나 경상도는 좋은 관이 필요하지만, 사실, 충청도야 매장지에 가면 관뚜껑 홀랑 열어 시체만 땅에 묻는디 좋은 관이 뭔 필요있겄슈. 완전 개폼잡는 거지! 그래두 행세깨나 하는 남쪽지방 양반들은 좋은 관을 쓸만두 해유. 나중에 묘를 이장할 때 관이 온전하면 기분이 좋지 않겄어유? 지 생각이 어뗘유?”
자신의 말이 온전히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한 남 서방은 사환을 만물박사라고 칭찬했다. 사람들이 화제를 돌리기도 전에 바깥마당에 있던 요령잽이의 외침이 들려왔다. 모두 바깥마당으로 나오라는 것이었다.
마당에 놓인 꽃상여는 화려하기 이를 데 없었다. 오 서방은 이런 상여라면 저승길 문턱에서 괄시받지 않을 거라며 칭송했다. 이에 황 서방은 혼이 가는 것이지 상여가 저승길까지 가느냐며 핀잔을 줬다. 요령잽이는 장터에서 방앗간을 하는 김 씨에게 상여 멜 사람을 선발하라고 주문했다. 김 씨는 선소리꾼이 다른 상가와 일이 겹칠 때, 그 대신 요령잽이를 하곤 했다. 한 서방 큰아들은 만장을 걸기 위해 집 뒤에 있는 대나무를 베어와 다듬었다. 오 서방은 밤길을 밝히기 위해 석유와 깡통을 준비하고, 곳간을 뒤져 횃불을 가져왔다. 염 사장과 요령잽이, 그리고 김 씨는 장강과 단강을 광목으로 단단히 묶고, 단강 사이에 4개의 횡목을 설치했다. 그런 후 관을 놓을 자리에 대나무를 쪼개 사각으로 접어 만든 대체를 광목으로 단단히 묶었다. 다른 동네에서는 대체 대신 새끼를 사용하지만, 허 대장이 대체를 만들어 와서 사용하게 된 것이다. 염 사장과 사환은 능숙하게 장강의 양 끝에 고정한 횡강의 양옆에 천을 야무지게 묶었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횡목을 끼우고, 그 사이에 사람이 들어가 어깨에 멜 수 있도록 조절했다. 이제, 그 위에 꽃상여만 얹으면 될 일이었다.
날이 어둑해지자 황 서방은 양 씨 큰아들을 시켜 볏단과 장작을 가져와 불을 놓게 했다. 상여놀이는 방앗간 김 씨가 요령잽이를 하고, 마을 사람들이 상여를 메기로 했다. 내일 상여는 어차피 육동계 회원들이 담당할 몫이었기에 경험 많은 그들이 발을 맞출 필요도 없었다. 육동계는 용봉리에 살거나 혹은 타지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장남들이 부모상을 치르기 위해 결성한 상조회였다. 상조회 회원들은 아무리 먼 지역에서 살더라도 참석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신의를 저버린 사람이 되어 인심을 잃고 회원에서 탈퇴 당했다.
사환이 수건과 목장갑을 가지고 나타나자, 마을 사람들이 서로 하나만 달라고 야단이었다. 그러자 염 사장이 모든 이들에게 고루 나누어주라는 사리원댁의 전언이 있었다고 하자, 모두 장작불 근처로 돌아갔다.
술에 취한 양 씨는 이 행수의 둘째 아들을 붙잡고 “죽은 친구를 위해 내가 상여놀이 요령잽이를 하고 싶은데 모두가 말린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이 행수가 누워 있는 병풍을 바라보며 “친구야! 내가 잘못됐냐? 잘못됐어! 자네 저승길 가기 전에 내가 길 안내를 한다는 데 내가 잘못됐냐?”라며 울먹였다. 그를 뜯어말려 집으로 돌려보낸 이는 삼거리 주막의 박 씨였다. “성님 맘을 내가 왜 모르겄슈? 젊은 애들이 멘다고 나두 상여꾼에 안 끼워주는디, 어쩔 수 읎는 일이잖유!”하며 다독인 것이 효과가 있었다. 광재는 이 행수의 둘째 아들에게서 열두 켤레의 장갑과 수건을 받아 상여꾼에게 돌렸다. 요령잽이와 여덟 명의 상여꾼, 그리고 명정을 든 서 서방의 큰아들, 그리고 만장을 든 자신의 것이었다. 사람들이 상여꾼을 서로 하려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그들에게 주는 수건과 목장갑 때문이었다. 그리고 도랑이나 다리를 건널 때는 상여를 멈추고 상주에게 절을 시킨 후 돈을 받아, 후에 서로 나눠 가지거나 술값으로 쓰는 재미가 있었다. 그런데 이것도 요령잽이가 누구냐에 따라 경우가 달랐다. 동대리에서는 요령잽이가 상주에게 받은 돈을 모두 돌려주고, 자기 몫으로 목욕비만 받았다. 또한, 방흥리에서는 받은 돈을 모두 동네 자금으로 사용하기도 했고, 송암리에서는 소리꾼이 절반을 갖고 나머지는 상여꾼이 나눠 가지는 것이 관례였다. 봉현에서 오는 김 씨는 주로 지관인 강 씨를 통해 연락을 받고 일을 다녔다. 그런 이유로 그에게 소개비를 주어야 하는 관계로 십만 원을 가져간다고 했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상여꾼과 가족에게 절반씩 나눠주곤 했다. 그것이 자신의 이미지를 관리하는 방법이기도 했고, 상주들과의 다툼도 줄일 수 있었다. 실제로 송암리에서는 상주에게 돈을 지나치게 요구해 싸움이 일어나곤 했다.
오 서방은 깡통에 기름을 붓고 목화솜을 흠씬 적신 후 불을 붙였다. 아이들이 네 개의 횃불을 들어 올리자 사위가 환해졌다. 개들도 횃불 주변을 돌며 짖어댔다. 상여는 여덟 명이 앞 수부와 뒤 수부로 나누어 자리를 잡았다. 남 서방과 황 서방은 앞 수부의 선두에 자리를 잡았다. 두 사람은 키가 맞지 않아 남 서방이 뒤로 가야 했지만, 한사코 그는 앞 수부를 고집했다. 돈을 챙기려는 속셈이었다. 두 사람은 이미 단강과 앙장을 연결한 밧줄에 여러 개의 줄을 묶어 놓았다. 광목으로 꼰 새끼였다. 다소 혐오감을 주는 짚으로 꼰 새끼보다 훨씬 고급스러웠다. 상여꾼들은 횡목을 잡고 어깨끈을 조정하느라 한동안 부산을 떨었다. 이윽고 방앗간 김 씨의 요령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상여꾼들이 “어허! 어허! 어허! 어허!”를 외치며 일제히 상여를 메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순간, 상여가 왼쪽으로 갸우뚱하는 것을 김 씨가 장강을 받쳐 수평을 잡았다. 동작이 굼뜬데다가 키가 작은 남 서방이 균형을 잃은 데 원인이 있었다. 뒤쪽에서 권 서방의 구시렁대는 소리가 났다. 상여꾼이 자리를 잡는 사이, 요령잽이 김 씨는 양 씨 큰아들에게 이 행수의 둘째 아들과 사위를 불러오게 했다.
만장을 든 광재가 선두에 서고, 이어 장터 박 씨의 큰아들이 명정을 들고 대기했다. 낮에 조금씩 내리던 눈은 멈췄지만, 날씨는 매서웠다. 김 씨의 선창에 맞춰 상여꾼의 후창이 이어졌다.
어~허 어허어에 어허 어이 어허~에~
어~허 어허어에 어허 어이 어허~에~
후창은 상여꾼뿐만 아니라 바깥마당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따라 했다. 특히 아이들은 신나라고 목청을 높였다.
가세가세 어서가세 북망산천이 저기로세
어허 어허어에 어허 어이 어허에
하직이네 하직이요 정든 동네 하직이요
어허 어허어에 어허 어이 어허에
저승길을 가자해도 발길 무거워 못가겄네
어허 어허어에 못가겄네 못가겄네
만장과 영정이 하늘로 솟구치고, 사위와 아들이 앞장섰음에도 상여는 전진하지 않았다. 상여꾼들은 ‘못가겄네, 못가겄네“를 반복하며 제자리걸음을 이어갔다. 이를 눈치챈 사위가 속주머니에서 준비한 봉투를 꺼내 요령잽이에게 건넸다. 김 씨는 익숙한 듯 봉투를 받아 새끼줄 사이에 끼워 넣었다. 이어 아들도 바지에서 봉투를 꺼내 직접 줄에 끼웠다. 뒤 수부에 있던 안 씨가 잘한다며 상주를 격려했다.
요령소리에 맞춰 제자리걸음을 하던 소리꾼들이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허 어허어에 어허 어이 어허에
어허 어허어에 어허 어이 어허에
이행수가 간다하니 어서 빨리 떠나보세
어허 어허어에 어허 어이 어허에
마당을 출발한 상여는 이 행수가 전에 살던 집 근처에서 잠시 멈추었다. 그러자 우물가에 있는 호두나무에서 검은 새가 날아올랐다. 올빼미 같기도 했고, 큰 날갯짓이 수리부엉이도 같았다. 뒤에서 상여를 멘 안 서방은 이 행수의 혼이 날아오르는 것이라 했다.
이 행수의 큰손자는 밖에서 나는 떠들썩한 소리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건넌방에 앉아 필통을 열고, 고무와 연필을 살피고 있었다. 그의 고모가 머리를 쓰다듬자, 큰손자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우리 할아버지가 공부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래요!”
사리원댁 또한, 손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손은 이 행수의 마음이 담긴 것이기도 했다. 상여는 장마당을 향하여 천천히 미끄러져 내려갔다. 이별을 위해서는 항상 예행 연습이 필요한 법이었다. 이 행수도, 상여를 멘 산 사람들도 죽음에 더 익숙해지기 위해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