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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15:12-19(282) 다시 사신 예수님 2024. 3. 31
부활의 아침을 맞이하여 부활하신 주님의 축복이 우리 덕민 교회 성도님들의 가정에, 내가 일하는 직장과 사업에, 우리의 사회에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영이 소생하고, 우리의 가정이 다시 살고, 우리의 사회가 다시 일어나는 부활의 기쁨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어떤 사람이 도둑질한 혐의로 잡혀왔습니다. 검사는“당신이 물건을 훔치는 것을 보았다는 증인이 최소한 4명은 된다”라고 말합니다. 그 때 절도 피의자는 “그럴지도 모릅니다. 제가 물건을 훔치는 것을 본 증인이 4명이라면, 저는 제가 물건을 훔치는 것을 보지 못했다는 증인을 적어도 100명은 데려올 수 있습니다.”라고 응수합니다.
재판장이 어떻게 판결을 내렸을까요. 절도현장을 목격했다는 4명의 증인이 목격하지 못했다는 100명의 증인을 이깁니다. 숫자로는 4:100으로 비교가 안 되는 숫자이지만, 재판장은 그 절도를 목격한 4명의 말을 믿고 ‘그 사람이 절도한 것이 맞다’고 처벌을 내립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증거와 증인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를 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고 체험한 사람들은 아주 적은 소수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모습은 어떤 모습인가요? 소수의 무리이지만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따라가는 자를 의롭다고 인정을 합니다. 반면 불신에 사로잡혀 주님의 부활을 부정하는 자들에게는 상응하는 심판이 주어지는 것이 하나님이 정한 법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부활 예배를 드리는 우리 가운데 주님의 부활을 직접 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이후로 2천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부정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하였습니다. 하지만 부활의 소식은 멈추지 않고 지금도 확산되어 나갑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이 가진 능력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사두개인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두개인들 중에는 예수님께서 사람을 살리는 이적을 본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분명히 사두개인 중에는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40일 동안 이 땅에 계실 때에 만나 본 자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두개인들은 끝까지 예수님의 부활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진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만나 보았다고 해서 예수님의 부활을 다 믿는 것은 아니다”는 점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예수님을 만나면 당연히 예수님의 부활을 인정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부활은 논리로, 과학으로 증명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현대의 사두개인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들은 여전히 예수님의 부활을 인정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자신의 이성을 믿고, 과학을 의지하면서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죽었다는 것을 알고 조치를 취한 유대인 종교집단과 로마 군인들이 벌인 일들을 보십시오. 죽어서 이미 싸늘하게 식어버린 예수님의 시체를 무덤 안에 넣고서는, 로마 군인들은 시체를 도적질해 가지 못하도록 돌문으로 굳게 닫아버립니다. 그리고 무덤을 함부로 열지 못하도록 무덤입구에 인봉을 합니다. 이것뿐 아닙니다. 행여나 누가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가지 못하도록, 용맹무쌍한 로마 군인들이 무덤입구에서 보초를 섰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막았지만 주님은 부활하게 됩니다.
토마스 아놀드는 “그리스도의 부활은 인류 역사상 가장 잘 입증된 사실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만큼 여러 가지의 모습으로 드러나고, 또한 부활을 지지하는 사람이 끊이지 아니하고 나타난 것도 유사 이래로 없는 역사적 사건입니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부활의 증인을 떠 올려 보세요. 막달라 마리아와 여인들이 맨 먼저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했습니다. 베드로와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예수님의 부활을 보았습니다. 2층 다락의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고, 도마와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보았습니다. 그 후에 갈릴리 해변의 제자들에게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나중에는 500명의 제자들이 일시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심지어 한참이나 시간이 흐른 뒤인 다메섹 도상의 사울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이렇게 부활하셔서 부활을 증거 하신 예수님께서 오늘 부활주일을 맞이하여 우리에게도 부활의 기쁨을 내려 주실 줄을 확신합니다. 주님이 나를 부르시는 그 날까지 부활신앙을 흔들리지 않게 간직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1. 부활은 헛된 소망이 아닙니다.
14절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으면 예수님을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고, 부활을 믿는 우리의 믿음 또한 헛것이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부활은 진짜 있었던 것이기에 우리가 주님을 믿는 믿음이 헛된 것이 되지 않습니다. 부활신앙은 참된 것이 됩니다.
제자들과 십자가의 관계를 보세요. 죽음을 상징하는 십자가는 그들을 두렵게 만들었습니다. 겁쟁이가 되게 합니다. 그래서 그들을 모두 도망쳐 버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 제자들의 모습을 보세요. 도망가는 제자들이 없습니다. 당당하게 로마당국과 싸우면서 복음을 전합니다. 죽음을 겁내어 도망가는 자들이 아니라, 죽음을 극복하고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부활이 가진 놀라운 능력입니다.
<벤 부렌>이란 분이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이전에는 그리스도인이 없었다.” 이 말은 예수님의 부활이 참된 그리스도인을 만들었다는 의미입니다. 부활은 그리스도를 따르던 사람들로 하여금, 구경꾼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신분이 바뀌게 한 사건입니다. 우리 모두 다 예수님의 부활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된 것을 굳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몇해 전에 <유다복음>제목을 가진 책이 출판된 적이 잇습니다. 유다복음은 복음이란 말을 붙이기에도 아까운 책입니다. 복음이라고 책 제목이 붙여져 있지만, 책의 내용은 주님이 전한 복음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쓰레기 수준의 내용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 책에는 ‘예수님은 물위를 걷지 않았다, 물로 포도주를 만든 적이 없다, 유다가 은화 30냥을 받지 않았다, 유다는 오히려 배반당했다, 유다는 자살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책은 예수님의 동정녀탄생이나 부활을 모두 부정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사복음서에 나오는 모든 내용을 부정하면서 정반대로 적어 놓은 듯 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런 허무맹랑한 소설을 인용해서, 예수님의 탄생을 부정하고 부활을 폄하합니다.
“세례요한이나 베드로나 바울의 유골은 있는데 예수님의 유골은 어디에 있느냐”후안무치하게 말하는 고고학자도 있습니다. 이탈리아 북부에 있는 성 마카리우스 수도원에는 세례요한의 유골이 있다고 공공연하게 공포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예수님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것이 새로 발견되었다고 하였지만, 예수님의 유골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만일 예수님의 유골이 발견되면, 그것 자체가 더 거짓말입니다.
왜냐하면 부활하신 예수님에게 유골이 남아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저술가 박스터(Sidlow Baxter)는 말합니다.“만일 그리스도의 유해 중 하나라도 발견되었다면, 기독교는 이미 산산조각 나서 공중으로 분해되어 없어졌을 것이다.”
기독교 역사 2천년 동안 수많은 성도들이 복음 전파 때문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세상에서 헛것 때문에 목숨을 바치는 사람이 있나요? 아무 유익이 없는 일에 하나밖에 없는 내 소중한 목숨을 던지는 사람은 없습니다. 만일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면, 부활이 거짓말이고 가짜라면, 절대로 부활 때문에 목숨을 내놓을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사도들의 순교를 보세요. ①<베드로>는 네로 시대에 로마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순교당합니다. 세베대의 아들 ②<야고보>는 제자 중 최초의 순교자로서, 헤롯 아그립바 1세에 의해 참수를 당합니다. ③<안드레>는 그리스의 파트라스에서 X자 십자가에 달린 채 창에 찔려 순교합니다. ④<빌립>은 헤리오 폴리스에서 십자가 박힌 채 돌에 맞아 순교합니다. ⑤<바돌로매>는 인도에까지 가서 피부가 벗겨지고 돌에 맞아 순교합니다.
⑥<도마>는 인도의 마드라에서 칼에 찔려 순교합니다. ⑦<마태>는 아프리카 에디오피아에서 창에 찔려 순교합니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나무망치에 머리를 맞아 순교합니다.
⑧<시몬>은 페르시아에서 톱으로 그의 몸이 두 동강이 나서 순교합니다. ⑨다대오라 불리는 <유다>는 에데사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합니다. ⑩<맛디아>는 예루살렘에서 돌팔매질을 당한 후에 참수형으로 순교합니다.
⑪여러분이 잘 아는 <바울>은 네로황제에 의해서 로마에서 참수형을 당합니다. 사도 요한을 제외한 모든 사도들이 다 순교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도 아니라면, 사도들이 이렇게 자신의 목숨을 내 바치면서까지 복음을 전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코넬리우스 밴더빌트(1794-1877)는 미국의 대부호였습니다. 그는 해운업과 철도사업으로 억만장자가 된 사람입니다. 코넬리우스가 사망한 1877년 그의 자산은 포브스 추정치로 1억달러였고, 이것은 당시 미국 정부의 1년 예산보다 코넬리우스가 가진 액수가 더 많은 엄청난 금액이었습니다. 내슈빌에 있는 센트럴대학교에 엄청난 지원을 하여서 대학교 이름을 밴더빌트 대학교로 바꿀 만큼 그의 공헌은 컸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부자답게 돈 버는 것이 삶의 목적이었고 황금이 곧 신앙이었던 사람입니다. 한평생 돈 버는 것에만 목적을 두었던 삶이었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때에 암으로 극심한 투병을 하는 중, 방 밖에서 노래 하나를 듣게 됩니다.
그 노래는 흑인 하녀가 청소를 하면서 부르는 노래였습니다. 그 찬송이 96장(예수님은 누구신가)인데 이 찬송 소리를 듣는, 몸이 떨리는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흑인 하녀가 부른 2절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약한 자의 강함과, 눈먼 자의 빛이시며, 병든 자의 고침과, 죽은 자의 부활되고, 우리 생명 되시네.”라는 가사입니다.
이 노래를 듣는 순간 밴더빌트는 아내를 통해 목사님을 모셔 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목사님이 온 뒤에 밴더빌트는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주님, 저는 가난하고 천한 사람입니다.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고백합니다. 찬송가에 나오는“죽은 자의 부활되고”라는 가사를 들을 때에 ‘죽어 있던 자신의 영혼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경험하였다’고 밴더빌트는 고백합니다. 이렇게 주님을 받아들이고 고백이 있은 후 일주일 후에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이처럼 심령을 변화시키고 죽음에서 생명으로 이끄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이런 놀라운 부활의 능력을 다 함께 누리기를 소망합니다.
2. 진실하신 하나님의 증거.
15 상반절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 된다”라고 합니다. 무슨 뜻이에요? 예수님이 부활하지도 않았는데, 우리가 “예수님이 부활했다”고 떠들고 다니면 그것 자체가 <거짓 증인>이라는 말입니다. 만일 예수님의 부활이 없으면, 오늘 우리가 예수님이 부활했다고 말하는 모든 것이 다 거짓증인이 말하는 거짓말에 불과합니다.
미국의 법학자인 <시몬 그린리프>는 이런 주장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실제로 죽은 가운데서 살아나지 않으셨는데도, 제자들이 부활의 진리를 확고하게 끝까지 주장하였다는 것은 사실은 불가능하다” 잠시 동안은 자신의 신념에 사로 잡혀서 억지 주장은 할 수 있지만, 2천년을 이어오는 시간을 통해, 그리고 동서고금을 통해 예수 믿는 모든 성도들이 “예수님이 부활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진실은 수많은 증인들과 기독교 순교자들에 의해 잘 증명됩니다. 사람은 진리를 지키고 전파하는 것을 위해서는 자신의 목숨을 던질 수 있지만, 거짓말을 전파하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초개처럼 던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헬라어 단어를 보면 “증인”라는 말과 “순교”라는 말은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로 예수님의 증인이라는 말은 예수님의 순교자라는 말과도 같습니다.
법정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십시오. 거짓 때문에 목숨을 바치는 사람은 없습니다. 거짓을 진실이라고 착각해서 자신의 신념을 굳히지 않는 사람은 있어도, 거짓이라고 확실하게 아는데도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사람은 찾기가 어렵습니다.
증인 선서를 보십시오. 증인들은 “진실을 말하고 진실대로 말하며 오직 진실만을 말할 것을 선서합니다.”라고 합니다. 증인의 본분은 진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증인이 할 일은,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진실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성도는 그리스도의 증인입니다. 한번 예수님의 증인이 되면 영원토록 증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 법정의 증인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은 한 가지 차이점이 있습니다. 세상 법정의 증인은 증언이 끝나면, 증인석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끝나 버립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증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증인은 증인석에 한번 올라가면 내려올 수 없습니다. 평생토록 목숨을 걸고 예수님을 증언하고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해야 합니다. 죽어 하나님 앞에 서는 순간까지 증인입니다.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대한민국은 택배가 생활 속에 완전히 접목되어 있는 나라입니다. 이제는 택배가 우리 생활의 일부분이 되어버렸습니다. 택배 어때요? 정말로 편합니다. 단돈 몇 천원이면, 안방에서 편하게 전국 어디에서나 물건을 받아 볼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택배회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소비자들은 어떤 택배회사를 가장 신뢰하고 선호할까요? 기준은 한가지뿐입니다.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택배회사는 배달사고를 내지 아니하고, 정확하게 배달해 주는 회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성도는 배달꾼입니다. 내가 보고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전달해서 배달사고를 내지 않도록 증언해야 합니다. 복음의 증인은 정확하게 복음만을 전달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달한다고 해 놓고 다른 것을 배달하면 배달사고가 납니다.
요즈음에도 가끔 저에게“000가 간증집회를 하니 와서 교인들도 참석시키고 저더러 참석해 달라”라는 요청이 들어오기도 합니다. 저는 가지도 않을뿐더러 그 집회를 소개 하지도 않습니다. 제가 그 동안 경험한 바로 사람이 하는 간증이라는 것이 처음에는 순수하고 깨끗한 심령으로 잘 합니다. 그런데 간증자가 간증을 몇 번 하다 보면, 사람들이 무엇을 듣고 싶어 하는 것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때부터 문제가 됩니다. 듣는 사람들의 호응을 더 끌어 내기 위해서 “과장되는 간증”이 이루어집니다. 적당히 살을 붙여서 사람들이 듣기 좋은 말로 각본을 짜게 됩니다. 이때부터는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 하는 간증이 아닙니다. 내 신앙을 자랑하고, 내가 경험한 것을 자랑하는 자신의 자랑질에 불과합니다. 간증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것을 가장 조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소명은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는 일입니다. 자기 자랑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의 부활이 나의 부활이 되도록 믿음으로 앞으로 달려 나가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의 부활이 곧 나의 부활이라는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부활의 주님만 찬양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