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5장1-11절 아나나아 삽비라 사건 260510 원주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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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니아라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매고 나가 장사하니라.
세 시간쯤 지나 그의 아내가 그 일어난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오니 베드로가 이르되,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이르되, “예, 이것뿐이라” 하더라.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어찌 함께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가리라” 하니, 곧 그가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는지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의 남편 곁에 장사하니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아멘.
1. 아나니아와 삽비라, 성령 충만한 교회에서의 비극
설교자들이 설교하면서 성경에서 피하고 싶은 구절이 몇 군데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오늘 이 본문 이야기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바나바가 땅을 팔아 사도들 발 앞에 두고 사람들을 구제하며 칭송받는 모습이 너무 부러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도 땅을 팔아 그중 얼마를 떼서 자기 것을 남기고는—반인지 3분의 2인지는 모르지만—일부분을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습니다. 그러고는 "내 땅값 전부를 팔아서 드립니다. 선하게 사용하십시오"라고 말했겠지요. 그런데 거짓말을 했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속이는 일이 있었다는 것이지요.
2. 하나님의 거룩함 앞에 세속의 사람들
여러분, 아나니아와 삽비라 같은 경우가 그 당시 성전에서 더러 일어나지 않았겠습니까? 오늘날 교회에도 더러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헌금 생활을 하는데, "하나님 앞에 만치 와뽕!" 이러면서... 저도 초등학교 다닐 때 집에서 교회 가라고 500원을 주면, 가는 길에 100원짜리로 바꿉니다. 그리고 100원 딱 남기고 400원은 빵 사 먹는 겁니다. 400원은 '삥' 친 거지요. 저 그런 짓 수태 많이 했습니다. 그래도 안 죽었어요. 그런 일이 예루살렘 성전이나 회당에서 왜 안 일어났겠습니까? 종교적 의식 안에서 사람 속이듯 하나님 속이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도 안 죽는데, 예루살렘 교회에서는 지금 죽어버린 겁니다. 그것도 부부가 다 죽었습니다.
이게 가능하냐고요? 가능합니다. 성경에 나왔으니까요. 그런데 "꼭 이랬어야 됐는가?"라는 질문을 저는 나누고 싶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그저 자기를 높이려는 마음에 이속을 챙기며 하나님을 속였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그 중심을 보고 말합니다. "성령을 속이고 땅값을 감추었느냐?" 다른 데서는 속여도 안 죽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여기는 어디입니까? 성령이 충만하고 하나님의 영이 직접 운행하시는 곳입니다. 이건 오늘날 신자들도 다 조심해야 합니다. 십자가의 은혜가 풀어지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침범했다가 저주를 받을 수도 있는 자리가 바로 성령 충만한 예루살렘 교회의 특징입니다. 이 공동체는 거룩하기 때문에 죄인이 하나님의 거룩함에 부딪혀 죽어버리는 것입니다.
3. 권위자의 입술에 담긴 축복권과 저주권
이런 상황에서 베드로가 어떻게 했어야 했나 고민이 됩니다. 세상에는 축복권과 저주권을 가진 권위자들이 있습니다. 가정에서는 부모가 권위자입니다. 부모의 말 한마디가 아주 독할 수도 있고, 아주 좋을 수도 있습니다. 축복의 말을 듣고 자란 사람들은 인생이 다릅니다. "잘된다, 염려 마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괜찮다." 이런 얘기 듣고 자란 사람과 "너 그럴 줄 알았다"는 소리 듣고 자란 사람은 다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축복의 말이 넘쳐나기를 축복합니다.
애들도 살다 보면 사고를 칩니다. 가정에는 꼭 그런 애가 한 명씩 있어요. 그걸 'IP(Identified Patient)'라고 합니다. 늘 사고 치는 애가 있으면 걔가 다 뒤집어씁니다. 자기가 안 한 것도 다 당하고, 그게 익숙해져 버려요. 형이나 누나가 잘못한 것도 자기가 다 당하며 감정의 쓰레기통이 됩니다. 그렇게 저주 섞인 말을 듣고 사는 것은 입으로 저주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권위자입니다. 선생님의 말 한마디가 애를 묶을 수도, 풀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언어생활에 푸는 말들이 풍성하기를 축복합니다.
4. 베드로의 사역과 엘리사의 곰 예화: 죽이는 사역인가, 살리는 사역인가
교회에서는 누가 권위자입니까? 목사입니다. 목사의 말 한마디가 축복과 저주가 됩니다. 교인들도 사고를 칠 수 있습니다. 그때 "집사님, 주님은 모두 용서하십니다"라고 하는 것과 "너 그랬나?" 하는 것은 다른 얘기입니다. 오늘 베드로는 아나니아의 죄를 정면으로 지적했습니다. 부드럽게 "너 왜 그랬니, 새 마음으로 회개해라"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베드로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아나니아가 죽어버렸습니다.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세 시간 뒤 아내 삽비라가 왔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베드로를 좀 측은하게 생각하거나 따지고 싶습니다. 아내가 들어왔을 때 "큰일 났다, 네 남편 죽었다"라고 먼저 말해주면 안 됐습니까? 장례도 절차가 있고 가족을 모아서 예배드리고 다독여야 하는데, 젊은 사람들 시켜서 그냥 장사 지내버렸습니다. 사실 베드로의 사역에서 이렇게 사람 죽는 일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만약 이게 정답이었다면 1년에 한 명씩은 꼭 죽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베드로는 주로 회개시키고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사역을 했습니다.
구약의 엘리사도 보십시오. 엘리야의 능력을 전수받고 내려오는데 청년들이 "대머리여 올라가라" 하고 신체적 결점을 놀렸습니다. 엘리사가 화가 나서 저주를 하니 숲에서 암곰이 나타나 42명을 쳐 죽였습니다. 이게 좋은 사역입니까? 이걸 '저주 사역'이라고 합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은 사람들은 입술을 조심해야 합니다.
5. 묶는 말을 끊고 축복하라 중보하라
여러분, 독한 말이 자녀에게 박혀 열매 맺기를 원하십니까? 화난다고 막 죽여버리고 성질대로 뱉으시겠습니까? 여러분의 입술에는 축복권만 있다고 선언하십시오. "너는 이것밖에 안 돼"라고 하는 것은 사람을 가두는 '묶는 말'입니다. 묶는 말을 많이 들으면 스스로 한계를 정하고 그 밖을 나가지 못합니다. 그게 저주입니다.
상대방이 나를 공격하거나 선생님에게 대들 때, 감정선이 건드려질 때 권위자는 참아야 합니다. 참으면 안에 분노가 쌓여 만만한 가족에게 터질 수 있습니다. 목사들도 많이 참다가 집에서 터지곤 합니다. 그러니 참은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토설하십시오. "하나님, 저 사람이 저럴 수 있습니까!" 하고 하나님께 다 말하십시오. 하나님은 저주하지 않으시고 "힘들었구나" 하십니다. 그리고 저주할 타이밍에 오히려 중보하십시오.
6. 결단: 사람을 세우는 아름다운 교회
오늘 베드로의 사역이나 엘리사의 일이 옳았는지에 대해 저는 감히 도전해 봅니다. 권위를 가진 사람들은 축복권을 복되게 사용해야 합니다. 저주권은 사용하지 마십시오. 따라 해 봅시다. "내 입술에 저주권은 없다!" 혹시 열 받아서 잘못 말했다면, 화가 풀린 뒤에 반드시 사과하십시오. 감정이 격해지면 상대의 약점을 공격하게 됩니다. 그때 꼭 사과해서 푸십시오.
혹시 그런 저주의 말을 듣고 자랐다면, 예수님 안에서 내 인생을 묶는 모든 결박이 끊어졌음을 선포하십시오. 십자가 안에서 모든 저주는 예수님이 짊어지셨습니다. 그분을 이해하십시오. 그분도 그 윗대부터 그런 말만 듣고 살아서 그렇습니다. 우리 교회는 무너진 인생을 세워내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사랑의 마진을 가지고 격려하십시오. 황무지에 꽃이 피고 가시밭에 백합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축복의 말 잔치가 가득한 가정이 되시길 예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날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영광을 보게 하시고, 아버지의 뜻과 의를 이루며 그 마음을 기쁘시게 하는 은혜를 주옵소서. 오늘 어버이 주일입니다. 가정마다 회복의 역사가 가득하게 하시고, 부모의 입술에는 축복이, 자녀의 입술에는 공경과 감사가 풍성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