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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복(分福)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1)
전 5:1-20
어떤 사람이 사막에서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가지고 있던 식량이 다 떨어졌습니다.
이틀간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결사적으로 걸었습니다.
그 사람은 마침내 사막 가운데의 한 작은 샘터를 발견하고, 거기에 이르러 급히 물을 마시고 보니, 얼마 전에 천막을 쳤던 흔적이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혹시 천막을 치고 머물렀던 사람들이 어떤 음식이든 조각이라도 떨어뜨린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자세히 주변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다가 그 사람은 놀랍게도 어떤 주머니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얼른 그것을 만져보니, 손에 떡처럼 단단한 것이 만져졌습니다.
그 사람은 미친 듯이 주머니를 헤쳐서 열었습니다. 그리고 주머니에 손을 넣고 속에 있는 것을 한 움큼 움켜서 꺼내 보니, 그것들은 아주 크고 질이 좋은 진주알이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손에 한 움큼 쥐었던 진주들을 사방에 던져 뿌리며 외쳤습니다. ‘겨우 진주였단 말인가?’
그리고 그 사람은 사막에 누워 죽어갔습니다.
아무리 크고 질이 좋은 진주라고 할지라도, 사막에서 배고파 죽어가는 사람에게는 한 조각 떡보다 못한 것입니다.
바로 복이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누리고 싶어 하는 복도, 가지고 싶어 하는 보석도 때에 따라 한 모금 물보다도 더 못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동양인의 복의 개념은 한자를 풀이하면 그 뜻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한자 복 복(福)자는 옷 의(衣), 한 일(一), 입 구(口), 밭 전(田)이 합친 것입니다.
이를 해석해 보면, ‘복(福)은 옷 잘 입어 등 따시고, 하나 뿐인 입에 풀칠할 전답만 있으면 족하다’는 뜻입니다. 서양인들의 복의 개념도 비슷합니다.
‘하루의 행복은 이발소에 가는 것이고, 일주일 의 행복은 결혼하는 것이고, 한 달 행복은 말 타는 것이고, 일 년 행복은 새집 짓고 사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복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다분히 감정적이고, 한 없이 이기적인 것임’을 말해 줍니다. 그러나 성경은 ‘구원받은 자가 행복자라’고 했고, 또 예수님은 ‘남에게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솔로몬 왕은 오늘 말씀의 결론을 18-19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주신 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서 수고하는 그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누리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이것이 그의 분복이로다.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능히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분복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솔로몬 왕은 ‘분복은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셔서 우리가 마땅히 누려야 할 복임’을 분명하게 말하여 준 것입니다.
“분복(分福)”은 ‘분배받은 복’이라는 말입니다. “분복”은 영어로는 ‘각 사람에게 할당된 몫’이라고도 하고, 영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주신 상,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분복을 잘 누리고 살면 행복하게 되지만, 이 분복을 잘 누리고 살지 못하면 불행해집니다.
그래서 솔로몬 왕은 “내가 해 아래서 큰 폐단이 되는 것을 보았나니”(13절)라고 해서 ‘사람이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분복을 분복대로 누리지 못하면 오히려 그 사람에게 큰 폐단이 된다.’고 말한 것입니다.
“폐단”이라는 뜻은 ‘고통을 주는 악’이란 뜻입니다. 한마디로 ‘불행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축복의 선물로 주신 분복을 분복으로 누리지 못하고, 우리의 욕심이나 생각, 가치관 때문에 폐단이 되게 해서 불행해져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솔로몬 왕은 인생의 황혼기에 이르렀을 때, 죽음 앞에서 이것저것을 생각해 보며, 지나간 자기의 과거인생을 회고해 봅니다.
솔로몬 왕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세상을 다스려 사람들로부터 영광과 칭송을 다 받아보았지만, 세상 온갖 부귀영화와 권력과 명예를 누려보았지만, 천 명의 처첩을 데리고 세상 쾌락을 다 즐겨보았지만, 참 행복과 만족을 누리지 못하고, 그 모든 것이 헛된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솔로몬 왕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전1:2-3)라고 인생만사가 헛될 뿐임을 토로합니다. 그래서 솔로몬 왕은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허무한 인생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만이 하나님께서 주신 분복대로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고, 의미 있는 삶을 산다.’는 것을 깊이 깨닫고, 그 사실을 오늘 우리에게 본문을 통하여 교훈하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솔로몬 왕이 하나님께 처음 구한 분복은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의 말씀과 뜻대로 다스려 하나님의 백성을 행복하게 해줄 지혜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분복을 구하는 솔로몬 왕이 너무 마음에 흡족히 여겨져서 솔로몬 왕에게 지혜뿐만 아니라, 온갖 부귀영화를 분복으로 누릴 수 있도록 더하여 주셨습니다.
솔로몬 왕은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그 분복대로 살면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분복대로 살아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 왕은 나중에 그만 교만하여 져서 하나님께서 주신 분복대로 살지 않았습니다.
솔로몬 왕은 자기의 생각대로 말했습니다.
솔로몬 왕은 자기 가치관대로 행했습니다.
솔로몬 왕은 자기 눈에 좋을 대로 가졌습니다.
솔로몬 왕은 자기 귀에 기쁜 대로 들었습니다.
솔로몬 왕은 자기 마음대로 즐겼습니다.
솔로몬 왕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쾌락에 빠져 살았습니다.
솔로몬 왕은 자기 수고를 기뻐했습니다.
솔로몬 왕은 이런 자기의 삶을 전2:9-11에서 뼛속 깊이 회개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이같이 창성하여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보다 지나고, 내 지혜도 여전하여,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금하지 아니 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 하였으니, 이는 나의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것이 나의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분복이로다. 그 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
하나님은 솔로몬 왕이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함으로 그에게 넘치도록 분복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 왕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인 분복대로 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불행해졌고, 백성들이 우상에 빠져 살게 했으며, 나라가 남북왕국으로 분열되게 하였고, 그로 말미암아 결국 이스라엘 왕국은 망하여 다 포로로 잡혀가게 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 왕은 “내가 해 아래서 큰 폐단이 되는 것을 보았나니”(13절) 탄식했습니다.
우리도 다 나름대로 분복을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로 받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분복대로 살면 행복해 질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솔로몬 왕처럼 하나님이 주신 분복대로 살지 못하면 우리도 불행의 폐단에 빠지게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솔로몬 왕을 통해서 귀한 교훈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분복대로 살아 행복해 지기 위해서 두 가지 사실을 알고 누리고 지켜야 합니다.
먼저는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분복을 선물로 주시는가?’를 알아야 할 것이며, 다음은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에게는 분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시는가?’를 살펴보고,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 어떤 분복을 선물로 주시는가?’를 구체적으로 알고 누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은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분복을 선물로 주시는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바르게 경외하는 자들에게 분복을 선물로 주십니다.
솔로몬 왕은 1-7절 말씀을 통하여 어리석은 자의 헛된 제사를 말함으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올바른 예배 생활을 요구하고 계심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앙생활은 무엇보다도 올바른 예배를 드리는 삶입니다.
예배란 하나님과 나와의 만남이 예배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만나시는 행위이며 하나의 사건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하나님이 받지 아니 하시는 헛된 예배를 드려 우매자가 됩니다.
헛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자기 신발을 삼가지 않습니다.
헛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여 듣지 않습니다.
헛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기도하지 않거나 기도해도 함부로 기도합니다.
헛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께 서원하고도 지키지 않습니다.
헛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교만하고 약한 자를 멸시합니다.
헛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돈과 물질을 최고로 여기며, 자기만을 위해 사용합니다.
그래서 헛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헛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과 교회와 성도들에게 큰 폐단을 끼치게 됩니다.
그래서 솔로몬 왕은 1절에서 “하나님의 전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말씀합니다.
“네 발을 삼갈지어다.”라는 말은 ‘행동을 조심하라. 네가 행하고 있는 바와 네가 가고 있는 곳을 조심하라’는 금지명령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임재하신 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손발을 씻는 결례나 거룩한 장소에 들어갈 때 신을 벗는 습관을 염두에 두고 한 말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전은 거룩한 곳이기 때문에 예배를 드리는 자는 누구든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두렵고 떨리는 심정으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명령은 ‘경건하고 진지한 태도로 하나님을 섬기며, 이런 마음가짐으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강력하게 명령하는 말씀입니다.
솔로몬 왕은 “우로나 좌로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잠4:27), “내 아들아, 악인들과 함께 길에 다니지 말라. 네 발을 금하여 그 길을 밟지 말라.”(잠1:15) 말하였고, 시편 기자는 “내가 내 행위를 생각하고, 주의 증거로 내 발을 돌이켰다”(시119:59)고 간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호렙 산의 불붙은 떨기나무 가운데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모세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3:5)
하나님의 전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거룩한 곳이므로, 그 발을 삼가야 하는 곳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전에 들어갈 때 발을 삼가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의미입니까?
솔로몬 왕은 네 가지 면에서 이것을 설명해주었습니다. 제사와 기도와 서원 그리고 하나님을 올바로 경외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 발을 삼가는 것’은
‘바른 제사를 드리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구약시대는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제물이 될 짐승을 끌고, 한 달을 걸어서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 갔습니다. 강도를 만나기도 했습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제사를 드리러 간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이 제사가 오늘 날 예배입니다.
그런데 구약시대의 제사와 오늘 날 예배는 같은 점이 있고, 또 다른 점이 있습니다.
같은 점은 제사나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 생명을 제물로 드리러가는 것입니다.
다른 점은 구약시대의 제사는 자기 대신 짐승을 죽여 하나님께 제물로 드려 죄를 용서를 받게 되지만, 오늘 날 예배는 내 생명을 하나님께 예물로 드려 나의 죄를 용서받고 살게 된 것을 감사드리러 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배는 날마다 나를 죽여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이 성전에서 예배드리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아십니까?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생명을 걸고 예배를 드리기 위해 앞세워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자의 제사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1절에서 말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들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는 하나님이 기쁨으로 받으시고, 선히 여기시고, 원하시는 올바른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화창한 봄날, 어미 꿩이 새끼 꿩들을 들판에 데리고 나가 먹이를 주워 먹고 있습니다. 어미 꿩이 졸졸 따라다니는 새끼 꿩들을 모아놓고 단단히 주의를 줍니다.
‘얘들아, 땅 위에서 먹이를 찾아먹을 때에는 입으로는 먹이를 먹고, 눈으로는 먹이를 찾고, 발로는 더듬고 뒤집겠지만, 귀만은 언제나 열어놓고 내 음성을 듣도록 해라. 어느 때에 갑자기 여우가 와서 우리를 헤칠는지 모르니까, 내가 큰 소리를 치면 빨리 내게로 달려오도록 해라’ 어미의 주의를 들은 새끼 꿩들은 먹이를 먹다가도, 어미 꿩이 큰 소리로 위험을 알리면 모두들 모여듭니다.
그런데 어미 꿩이 한 말을 별로 마음에 두지 않고, 자기 멋대로 여기저기 좋은 먹이를 찾아 자꾸 멀리 가는 새끼 꿩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너무 멀리 나간 그 새끼 꿩은 여우가 왔을 때에 어미의 소리를 들을 수가 없게 되어 결국은 여우에게 잡혀 먹히고 말았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멀리가도 들을 말은 들을 수 있는 위치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들어야 할 하나님 음성은 들으며 살아야 합니다. 아무리 바빠도 우리는 들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은 들어야 삽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축복의 길이요, 생명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 발을 삼가는 것’은
‘올바로 기도를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2절)
우리가 기도할 때는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두렵고 떨리는 심정으로 한 마디 한 마디 하나님께 아뢸 때 '아주 신중하게 하라’는 겁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를 솔로몬 왕은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말합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높으신, 하늘에 계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반면에 우리는 지극히 낮은, 땅에 있는 피조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는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솔로몬 왕은 연이어서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말하지 말고, 조심스럽게 한 마디 한 마디 사려 깊게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마땅히 말을 적게 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솔로몬 왕은 3절에서 “말이 많으면 우매자의 소리가 나타나느니라.” 충고합니다.
‘중언부언 헛소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셨습니다.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는 길이가 긴 것이, 말이 많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기도드리는 마음이 얼마나 진실한가.’가 중요하고, ‘기도드리는 그 중심이 얼마나 깊은가’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 발을 삼가는 것’은
‘하나님께 서원한 것은 지키라’는 것입니다. 4절을 보세요.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 하지 말라. 하나님은 우매자를 기뻐하지 아니 하시나니, 서원한 것을 갚으라.” 하십니다.
“서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제게 은혜를 베풀어주시면 그 보답으로 이러이러한 것을 드리겠습니다. 이것을 하겠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약속하는 것이 서원입니다.
사람은 사람과 한 약속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지키지 않으면 거짓말쟁이가 되고, 사기꾼이 됩니다.
하물며 하나님께 약속한 것이겠습니까?
사람이 하나님과 한 서원을 지키면, 하나님은 반드시 축복을 해주십니다. 그러나 사람이 서원을 지키지 않으면, 축복을 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전에 올라와서 하나님께 서원하고 지키지 않는 자를 여기서 “우매자/ 어리석은 자”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매자를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서원한 것은 꼭 갚아야 합니다.
솔로몬 왕이 5절에서 뭐라고 합니까?
“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나으니” 말합니다.
‘지키지 못할 서원을 하는 것보다는, 애당초 서원을 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고 했습니다.
서원은 의무가 아닙니다. 자발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지키지 못할 서원을 하느니, 서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서원을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6절을 보십시오.
“네 입으로 네 육체를 범죄케 말라' 합니다.
‘네 입으로 너의 전 인격을 죄로 물들지 않게 하라’는 말입니다.
‘서원을 하고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는 행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야고보 사도는 ‘인간이 자기 혀를 잘 제어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릐 삶이 결정된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사사 시대 입다 사사를 잘 아시지요?
입다가 사사로 있을 때, 암몬 족속이 쳐들어왔습니다. 그때 입다가 백성들을 이끌고 전쟁터에 나가면서 하나님께 서원을 했습니다. “하나님, 만일 하나님께서 암몬 족속을 제 손에 붙여 주신다면, 돌아올 때 저의 집 문 앞에서 제일 먼저 저를 영접하는 자를 그가 누구든지 간에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겠습니다.”
입다는 남의 생명을 걸고 서원을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입다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에게 승리를 안겨주셨습니다.
입다가 승리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 그의 집에서 누가 그를 제일 먼저 영접했습니까?
입다의 하나밖에 없는 무남독녀 외동딸이 소고 치며 춤추며 나와 그를 영접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린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입니까?
그러나 하나님께 한 서원이기 때문에, 입다는 그대로 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서원하면 그대로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 발을 삼가는 것’은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것입니다.(7절). 올바른 신앙의 길은 하나님 여호와를 바르게 경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씀을 정리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분복을 선물로 주시는가?’
하나님은 하나님을 바르게 경외하는 자들에게 분복을 선물로 주십니다. 그래서 솔로몬 왕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말씀합니다.
‘바른 제사를 드리는 자가 되라’
‘올바로 기도를 드려야 한다.’
‘하나님께 서원한 것은 지키라’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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