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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박국 3:16-19(p구1305) / 여호와로 인한 감사
오늘은 많은 교회들이 추수감사 주일로 지키며 하나님께 특별히 감사드리는 날입니다.
농촌 교회에서는 추수한 곡식과 과일들을 하나님께 드리려고 예배당에 가지고 옵니다.
추수감사절은 수고하고 노력하여 수확한 것들을 먼저 하나님께 드리고 또한 이웃들과 함께 감사하며 즐겁게 잔치하는 기쁜 날입니다.
오늘 추수감사절 주일을 맞이한 여러분들의 느낌은 어떻습니까? 한해를 마무리 하는 시점에 와서 여러분들은 그동안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하셨습니까? 혹시 여러분들이 계획하였던 목표에 훨씬 못 미쳐 감사할 수 없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겪었던 수많은 사건사고를 면하게 하신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병원에 입원하지 않도록 건강 주신 것 감사합니까? 놀지 않고 일 할 수 있도록 인도하신 것 감사합니까?
오늘 성경말씀에 기록된 하박국 선지자가 감사한 것은 우리를 놀라게 한 위대한 감사였습니다. 함께 살펴보며 우리도 이러한 감사를 할 수 있기를 소원하십시다.
1. 당시의 배경은 캄캄한 칠흑같은 암흑이었습니다.(렘 26:20-23)
하박국 선지자가 활동하였던 유다왕국은 여호야김 왕의 악정으로 많은 백성들이 피를 흘렸고 선지자 우리아를 죽였고(렘 26:20-23), 예레미아 선지자가 받은 계시의 두루마리를 빼앗아 불에 던져 태우는(렘 36:23)등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기원전 587년경에 바벨론 나라를 사용하여 유다나라를 징계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예언을 하박국 선지자가 듣고 말씀을 기록하였는데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유다왕국에 대한 처벌이 얼마나 처참하였는지 선지자는 창자가 흔들렸고, 입술이 떨렸고,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왔고, 몸이 떨린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쟁으로 인하여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말씀처럼 모든 것을 잃어버려 생존의 위기에 처해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혹시 이러한 처지에 빠져 본 경험이 있으십니까? 아마 이러한 혹독한 처지를 경험하신 분들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한다면 우리에게도 이러한 환난이 올 수 있음을 깨닫고 항상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잘못하여 매를 맞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삶에서 일이 잘 안 풀리고 어려움들이 찾아온다면 여러분들의 생활을 점검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 어떤 교회 권사님 한 분이 계셨습니다. 이 권사님은 20대에 과부가 되었습니다. 아들 하나, 딸 하나를 자기 생명보다 더 귀하게 잘 길렀습니다. 그런데 그만 그 아들이 고등학교 3학년 때 폐병에 걸렸습니다. 극진히 간호했지만 시름시름 앓더니 세상을 떠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권사님은 기도하는 가운데 모든 시련을 믿음으로 잘 이겨내었습니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자기의 귀중한 재산, 생명같이 모아놓았던 재산을 절반 뚝 잘라서 하나님께 아들의 이름으로 감사헌금을 드렸습니다. 아들이 죽었는데........ 봉투에 감사의 이유를 이렇게 적었습니다.
“하나님, 내 아들이 이 죄악된 세상에서 방탕하게 살다가 지옥 불에 떨어지지 않도록 내 아들이 죄악에 물들기 전에 예수 잘 믿을 때 저 영화로운 천국에 인도해주시는 진실로 감사합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성도의 감사인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어려운 일이 있습니까? 그럴수록 하나님께 감사해보세요.
환난 날에 드리는 감사는 언제나 우리에게 놀라운 기적의 역사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바울과 실라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빌립보에서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고쳐 주었습니다. 병을 고쳐 주었으면 상을 받아야지요.
그런데 바울과 실라는 억울하게 매를 맞았습니다. 깊은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그 환난 속에서 낙심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기쁨의 기도를 드리고 감사의 찬미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 그 환난 속에서 감사드릴 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옥터가 흔들리고 매였던 쇠고랑이 다 풀어졌습니다. 그 놀라운 기적을 보고서 빌립보 감옥의 간수가 회개하고 온 식구가 예수 믿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와 같은 어려울 때 드리는 감사는 언제나 우리에게 기적과 축복을 안겨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환난 가운데 처해 있습니까? 여러분의 생활이 어렵습니까?
그럴수록 감사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감사는 반드시 감사할 일을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2. 하박국은 생존의 위기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18)
하박국은 전쟁으로 인한 무서움과 소유가 다 없어짐으로 인해서 이젠 죽었구나 하는 절망을 보지 않고 다시 더 많은 것으로 회복시켜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놀라운 감사와 찬양입니다.
18절에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우리 하나님을 믿는 성도님들에게도 이러한 감사 찬양이 넘치기를 축원 드립니다.
우리 성도들에게서 나오는 감사의 찬양은 우리의 소유의 많고 적음이나 우리의 처한 처지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함으로 나올 수 있는 감사이고 찬양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고 구원하여 주신 은혜를 기뻐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어려움에 처하였을 때,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면 모든 걱정, 근심, 염려, 초조, 두려움 불안이 없어지고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와 평안이 풍성하게 우리의 마음에 찾아오고 어려움을 극복하게 하시고 더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합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환난을 축복의 전주곡으로 여기고 여호와를 즐거워하고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 전 이화여대 총장이었던 김활란 박사는 본래 첩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옛날에 첩의 딸이라면 얼마나 많은 수모를 겪으면서 자랐겠습니까? 멸시와 천대를 많이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김활란 박사는 자기의 불우한 처지와 환경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그 어려운 형편 가운데서도 서양의 문물을 부지런히 배워야겠다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는 자기의 어려웠던 시절을 이렇게 노랬습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 345장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1 캄캄한 밤 사나운 바람 불 때 만경창파 망망한 바다에
외로운 배 한 척이 떠나가니 아 위태하구나 위태하구나
2 비 바람이 무섭게 몰아치고 그 놀란 물 큰 파도 일 때에
저 뱃사공 어쩔줄 몰라하니 아 가련하구나 가련하구나
3 절망중에 그 사공 떨면서도 한 줄기의 밝은 빛 보고서
배 안에서도 하나님 계심 믿고 오 기도 울린다 기도 울린다
4 아버지여 이 죄인 굽어보사 성난 풍랑 잔잔케 하시고
이 불쌍한 인생을 살리소서 오 우리 하나님 우리 하나님
5 모진 바람 또 험한 큰 물결이 제 아무리 성내어 덮쳐도
권능의 손 그 노를 저으시니 오 맑은 바다라 맑은 바다라
김활란 박사는 자기의 어려웠던 시절을 생각하면서 자기가 겪었던 역경과 환난을 다른 여성들은 겪지 않게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해서 그는 자기가 갈고 닦았던 서양의 문물을 하나도 남김없이 한국의 여성들에게 다 쏟아 부었습니다.
김활란 박사는 63세에 이화여자대학교 총장직을 물러났습니다. 그리고 그 연로한 나이에도 불구하고 신학교에 들어가서 성경을 배웠습니다. 그리고는 자기의 생명이 다하는 그 시간까지 시골 구석구석, 산골짜기마다 돌아다니면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거했습니다. 드디어 임종할 때가 되었습니다. 김활란 박사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둘러서 있는 수많은 동료들과 후학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울지말아. 나는 내 인생을 헛되게 살지 않고 값있게 살았어, 나는 이 땅에서 내 할 일 다 끝내고 이제 내 아버지 집으로 가는 거야.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의 나라로 가는 거야. 그러니 내가 죽거든 슬픈 장송곡을 부르지 말고 헨델의 메시야에 나오는 할렐루야를 멋있게 불러줘."
그리고는 조용히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의 주변에 둘러서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훔치면서 그의 말대로 찬송을 불렀습니다.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 매었던 종들의 돌아오네
슬픔과 애통이 기쁨이 되니 시온의 영광이 비쳐오네
그런데 오늘날 그의 무덤을 찾는 사람은 다시 한 번 탄복을 한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마도 그의 묘비에는 수많은 경력과 학력과 숱한 찬사의 말이 기록되어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의 무덤은 다른 사람의 무덤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평범한 무덤입니다. 단지 한 가지 다른 것은 그의 무덤 앞에는 돌로 만든 자그마한 성경책이 한 권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성경에는 김활란 박사의 일평생을 좌우했던 중요한 좌우명이 새겨져 있습니다. 무슨 말씀이 새겨 있을 것 같습니까?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 세마디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김활란 박사는 숱한 역경 속에서도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그 사실을 깨닫고 주님 안에서 누리는 기쁨을 빼앗기지 않고 계속해서 간직하면서 이 세상을 기쁘게 살아갔습니다.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자기가 앞서려고 하지 않고 늘 기도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앞세우는 삶을 살았습니다.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고, 선한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 나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주신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어떠한 처지에서도 늘 감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해서 그는 멋진 인생, 성공한 인생, 승리하는 인생을 살게 된 것입니다.
3. 하나님이 우리의 힘이 되십니다.(시18:1~2)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제물에 많은 애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은행 구좌에 돈이 없으면 힘이 빠지고 우울하지만, 돈이 많이 들어 있으면 힘이 나고 기분이 좋습니다. 그래서 재물을 잃지 않으려고 보험도 들고 보안 장치도 하지만 예기치 못한 사고나 자연재해로 소중한 재산을 송두리 채 잃어버린 경우를 우리는 2008년 9월 11일 카트리나, 쓰나미 등을 통해 보아왔습니다. 이러한 사고를 당하여 가족들을 잃고 모든 제산을 잃은 사람들이 과연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을까? 우리는 우리가 가진 소유의 넉넉함을 가지고 세상의 것들에 매여 있다면 결코 어려움에 처하였을 때에는 감사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라는 찬송을 합니다. 이 찬송을 부르면 힘이 솟아납니다. 시편 18:1-2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라는 말씀을 곡을 붙여 찬송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만이 우리의 힘이 되심을 고백하고 믿고 살아간다면 이 세상에서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절망하게 하고 좌절하게 하여 감사가 없게 하겠습니까?
하나님을 인해서 감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인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를 들어서 생각해봅시다.
부모에게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서 부모가 물려주는 유산, 물질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자녀가 있다면 그것은 올바른 자녀의 태도일까요?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인하여 감사를 드리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물질적인 복, 육신적인 복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면 그것은 올바른 신앙인의 태도가 아닙니다. 사랑의 하나님, 소망의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해서 감사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뇌성마비 시인 송명희 를 여러분도 알지요? 말 한 마디 하려면 온 몸을 비비틀어야 간신히 말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많은 신앙의 시를 썼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특별히 감동을 주는 시가 있습니다. 그 시를 잠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제목은 「내가 행복한 이유」입니다.
"내가 행복한 이유는 내게 재물이 많은 이유 아니요 주 내게 분깃 된 이유 때문에
내가 행복한 이유는 내게 친구 많은 이유 아니요 주 내게 친구 된 이유 때문에.
내가 행복한 이유는 내게 영광이 많은 이유 아니요 주 내게 기쁨 된 이유 때문에.
자기에게 재물이 많기에, 친구가 많기 때문에, 세상적인 영광이 많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께서 나의 분깃 되시고,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나의 진실한 친구 되시고, 예수님이 나의 영광이 되시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송명희 자매가 행복하다면 우리는 왜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불행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 불만족하십니까? 사치스러워서 그런 것 아닙니까? 말도 제대로 못하는 송명희 자매가 행복하다는데 왜 우리가 행복하지 않습니까?
여러분에게 어떤 어려움이 있습니까? 세상을 바라보지 마십시오. 낙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람을 바라보지 마십시오. 좌절할 수 밖에 없습니다.
눈을 들어서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 소망의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 그분으로 인해서 감사할 수 있는 우리가 되자는 것입니다. 이 다음에 우리가 주님 앞에 서게 될 텐데 그때 우리가 이런 고백을 드리게 되면 예수님이 얼마나 기뻐하실까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 앞에 섰을 때 저와 여러분이 이런 고백을 드리게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저는 세상에서 남들만큼 고대광실 높은 집에서 살지 못하고, 또 부귀영화도 누리지 못했습니다. 높은 지위에 올라가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해 주시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이 언제나 나와 동행해주셨지 않습니까? 제 손을 붙드시고 선한 목자 되셔서 인도해주셨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는 남들만큼 잘 살지도 못했고, 남들만큼 배우지도 못했지만 예수님이 저와 함께 해 주셨기 때문에 참으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이런 고백을 드릴 때 예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이 고백이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해서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고생하는 여러분들의 모습을 잘 알고 있습니다.
추수감사절 주일을 맞이하여 여러분들에게 드린 이 말씀이 여러분들의 인생 여정에서 항상 되새겨지는 말씀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을 붙들고 있는 한 여러분들 앞에 어떠한 고난이 오더라도 극복되어 지며 항상 여호와로 인하여 감사가 넘쳐 나고 구원의 하나님을 기뻐하는 성도님들이 되실 줄 확신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복을 받으신 성도님들이 계십니까? 가난한 자들과 함께 나누십시오.
모든 것을 잃고 고통 중에 있는 분들 계십니까? 더 많은 것으로 복 주실 것을 인하여 즐거워하고 감사하시는 추수감사절 주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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