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은 네 것이 아니니라.
성경본문 고전10;29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
말세를 흔히 종말적인 것만 얘기합니다만 말세란 음란하고 악한 세대를 말합니다.
말세란 양심이 화인 맞은 세대를 말할 수 있습니다. 고로 개인 적인 말세, 가정적인 말세,
국가적인 말세, 민족적인 말세, 시대적인 말세를 말합니다. 이것을 모르면 성경은 말세 말세 하면서 도대체 말세에 대한 예언을 언제까지냐고 비아냥거립니다. 저주를 잘 모르니까 ~병들고 아프면, 또 살림이 가난해 지면, 갑자기 불행해 지면, 저주 아래 있는 것처럼 오해 합니다. 저주란 양심이 화인 맞아 부모 자식 모르고 사람을 되기를 포기한 자가 아니겠습니까?
지금 세대는 윗사람 아랫사람 없습니다.
아무나 대들고 따지고 협박하고 눈 부릅뜨고 부모 자식도 없고 기가 막힌 세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상식보다 상식이하가 판을 치고 큰소리와 술수와 괴변이 이깁니다.
이런 세상을 어두움의 세계, 공중권세 잡은 자의 세계라 합니다.
살아있는 양심은 내 입장이 아닌 남의 입장에서 생각해 주지요.
예수님 당시만 해도 현장에 간음한 여인에게 죄 없는 자는 돌로 치라 할 때 아무도 돌을 던지지 않고 묵묵히 사라 졌다는 것은 양심이 그래도 살아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지금도 교회에 분쟁이 나면~ 볼~만 합니다. 양심 없는 싸움, 교회에 질서도 없고 왜 그러지요...........
하나님 아는 지식도 없고 예수 아는 지식도 없는 무식한 교회란 것을 증명 합니다.
속히 내 것이 아닌 양심을 가져야 됩니다.
1.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행16;31-34)
원래 에덴동산의 사람은 착한 양심으로 창조 되었는데 옛 뱀의 미혹에 선악과를 따먹으므로
타락 되어 실낙원의 후손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양심이 제 기능을 못하고 힘을 발휘 하지 못합니다. 저주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피 흘려 대속 하시므로 우리가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전기나 수도가 내 집까지 연결 되었다 할지라도 수도꼭지나 전기 스윗치를 틀지 않으면 되겠습니까?
믿고 시인하고 선포하고 회개의 열매를 맺으시면 확실히 이루실줄 믿습니다.
2.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니 (히11;1)
하나님 말씀으로 양육을 받아 하나님 아는 지식으로 거듭나 살고 보니 선한 양심이 작동하여 이제는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가책 때문에 다른 사람 눈치 보고 사는 것이 아니라
빛이 옳다 아니다 가르칩니다. 믿음과 행함이 일치 하여 사노라면 예수 아는 지식으로
양육 받아 아들의 영이 임하므로 누명과 억울함을 달게 받아 핍박하면 오히려 축복하고
대신 죽을 수 있는 거룩한 양심이 작동하니 보지 못한 것의 증거입니다.
혹 어떤 목사님이 이런 질문합니다. 착한 것이나 선한 것이나 뭣이 다릅니까?
착할 선 짜인데 왜 세분합니까? 살아 보시면 확실 합니다라고 대답 드립니다.
예수 없는 이방인도 신자보다 더 정직하고 착한 분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 분들의 양심, 착한 양심입니다. 선한 양심은 선한 분은 한분 밖에 없다는 주님의 말씀
대로 선한 말씀을 믿음으로 실상이 이루어 진것 아닙니까?
제가 20여년전 부터 이 말씀 전했는데 15년만에 다시 만나 목사님의 설교 기억난다고
말씀을 한 분을 뵈었습니다. 감격적이지요. 오래토록 기억해주는 분이 있으니 행복하고 보람이 느껴집니다.
제가 만든 말씀도 아니고 다만 성경에 있는 말씀을 감동 받아 선포 한것 뿐입니다.
결론은 믿음과 착한양심 선한양심 거룩한양심 내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내가 행한 것이 아니요 주께서 행하심이 확실해 집니다.
조약돌이 내가 이렇게 작아지고 겸손해 졌다고 자랑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만들어 주셨는데 내- 것이 어디 있습니까?
몇 십년 후면 우리는 흔적도 찾기 힘듭니다. 부질 없는 생각 다 버리고
무소유의 세계로 사나 죽으나 주의 영광을 위하여 삽시다. 아멘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