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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천년이 하루 같으신 하나님[6]
말 씀 베드로후서 3장 1-8절
예수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겠다는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성도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구원의 조건대로 살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 그 삶의 모습에 따라 상급과 심판이 주어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의 자녀들이 거할 처소를 하나님나라에 마련하고, 반드시 돌아오시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 약속은 반드시 성취될 것이며, 그 약속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예수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믿음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
성도가 믿음을 지킨다는 것은 자기의 생각을 버리고 말씀에 복종하는 것이며, 인간의 의를 버리고 하나님의 의를 위해서 살겠다는 다짐입니다.
말씀에 복종하지 않으면 경건치 않은 자들의 미혹에 넘어갈 수 있으므로, 예수님께서 선물로 주신 구원을 스스로 버릴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9장 23절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하나님의 자녀로 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자기자신을 부인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자신이 성자하나님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보좌를 버리지 않으셨다면 절대로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자하나님이 자기를 부인하는 거룩한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화목제물이 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며 성도들에게 약속하신 것이 바로 재림입니다.
재림하실 때 울리는 나팔소리를 듣는 조건이 있는데 그것은 자신을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의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자신을 부인한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자기를 부인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만을 인정하고 위해서 사는 인간이 자기자신을 부인하기 위해서는 자기가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섬길만한 대상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 신뢰의 대상이 바로 하나님이어야 하며, 하나님을 절대 주권을 가지신 절대자로 섬겨야만 자기만 아는 세상에서 자신을 부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세상에서 인정받고, 자랑하기 위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으며, 성공만 하면 그 모든 죄악이 묻혀버리는 곳이 세상입니다.
그런 본능을 가진 사람들에게 자기자신을 부정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육신의 정욕을 죽여야 하고, 그리스도안에서 영적으로 새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의 성공이 믿음으로 이룬 것이 아니면 하나님께 나는 실패한 인생이라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 바로 자기의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성령을 방해하는 죄가 자신을 이끌려고 할 때마다 예수님과 함께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지 않는다면 거듭날 수 없을 것입니다.
육을 가졌기 때문에 세상에서 열심히 살아야 하지만 그것이 믿음의 도구가 아니면 헛되다는 것을 알고 살아가는 성도들의 삶이 바로 십자가를 진 것입니다.
이런 성도들은 재림하시는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소망이 세상의 성공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자신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 믿음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의 자세입니다.
여러분도 이런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계실 것입니다.
인간의 본능을 부인하고 날마다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자신을 못박는 믿음의 삶은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그 날까지 계속 되야 할 것입니다.
마라톤을 하다가 중단하면 결승점을 통과할 수 없는 것처럼 믿음의 길은 달리다가 중단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핍박과 고난이 있더라도 중단하지 말고 하나님을 만나는 그 날까지 달려야만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진 성도의 삶을 살아낼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7절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 하시리니 그리스도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사도바울은 성도들의 부활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일어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믿음으로 죽은 성도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다음에 살아있는 성도들이 공중으로 올라가 주님을 영접할 것입니다.
그 첫째 부활에 참여한 복을 받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동안 왕노릇하는 동안 나머지 죽은 자들은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할 것입니다.
첫째 부활에 참여한 성도는 둘째 사망을 만나지 않을 것이고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노릇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은 육신이 죽는 첫째 사망과 영혼이 영원히 지옥에 떨어지는 둘째 사망을 만날 것입니다.
지금은 믿음으로만 주님을 믿고 의지하지만 재림하신 주님을 공중에서 뵈올 때는 얼굴과 얼굴을 직접 볼 것이고 영원히 함께 있을 것입니다.
주의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나팔소리가 날 때 믿음의 성도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구름속으로 끌려 올라갈 것입니다.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할 때 셀 수 없이 많은 믿음의 성도들을 만날 것이며, 육체의 죽음인 첫째 사망을 넘어 부활한 성도들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성도들의 육체의 죽음은 영원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예수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죽지 않는 몸을 갖게 되고 영생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4장 13절의 말씀을 보면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진 성도들의 축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금 이후로 주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는데 그들은 지금까지 세상의 모든 수고를 그치고 안식을 누릴 것이며, 이 축복은 모두 그들이 행한 믿음의 행위로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재림하시는 날 부활하고 안식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세상의 핍박을 성도들이 인내로 이겨내야만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서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삶은 그 자체로 순교입니다.
순교의 믿음을 갖지 못한 자들은 나팔소리 조차 듣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팔소리를 듣고 어린양과 함께 시온산에 서는 십사만 사천의 구원받은 자녀들은 모두 예수그리스도를 향해 새 노래를 부를 것입니다.
십사만사천은 정해진 수가 아니라 구원받은 모든 성도의 완전수입니다.
시온산에서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아버지의 이름을 쓰고 새 노래를 부르는 성도들이 모두 십사만 사천인 것입니다.
베드로는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사도들이 전한 말씀을 잊지 말고 믿음의 삶을 살아야만 재림하시는 주님을 만날 수 있다고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이렇게 놀라운 예수그리스도의 재림과 성도들의 부활은 믿음으로만 가능한 것이며, 새 예루살렘에서 누리는 영원한 안식 역시 성령의 은혜로만 받을 수 있는 것이므로 믿음은 사후를 결정하는 중요한 열쇠인 것입니다.
재림과 심판이 있다는 것을 경건치 않은 자들은 믿지 않기 때문에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에 있느냐고 성도들을 핍박할 것입니다.
그리고 심판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왜 여러 세대가 지났는데 세상이 그대로 있느냐고 조롱할 것입니다.
물론 선지자나 사도 심지어 예수님께서 재림과 심판을 말씀하셨지만 세상은 아직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심판을 받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마지막 때에 일어날 일들을 말씀하셨던 것을 보면 세상은 지금 심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말씀하시길 많은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와서 자기가 그리스도라고 말할 것이고, 그 말에 사람들은 미혹을 당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들을 것이며,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할 것이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을 것이라고 알려 주셨습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면 재난이 시작된 것이며, 그 때 사람들이 성도들을 죽일 것인데 그 이유는 바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믿음 때문에 핍박을 받고, 믿음을 지키다가 순교하는 때가 바로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웠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현재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무감각한 가운데 있으며, 기독교를 핍박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대속하심이 거짓이고, 현재 그대로 남아 있는 세상을 보면서 심판이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눈에 보이는 심판은 아직 없습니다.
성도들이 세상을 믿음으로 볼 때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신 것처럼 전쟁이 일어나고 있으며, 나라마다 지진과 재난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그리스도라고 말하며 사람들을 미혹하자 사람들은 판단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처럼 그를 따르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이루어지며 심판을 향해 세상이 달려가고 있다는 것을 성도들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사람은 볼 수 없기에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모든 징조 뒤에 적그리스도가 성도들을 향한 핍박이 있을 것입니다.
성도들이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고,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데 내어줄 것이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할 것입니다.
이 모든 핍박 역시 재림을 준비하는 것이므로 세상은 오직 진리만을 전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점점 핍박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법이 서서히 교회의 법을 무너뜨리기 위해 좁혀질 것이며 변질된 교회들이 먼저 솔선수범하며 세상의 법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이 하나님을 조롱하면 도리어 하나님의 아들들이 스스로 더 타락하며 세상을 두려워하는 죄에 빠져듭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세상이 물로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죄를 이겨내야 하는 성도들이 죄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7절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라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어떻게 심판하실지 베드로는 자세하게 기록했습니다.
과거에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타락하자 하나님께서는 죄로 관영 한 세상을 물로 심판하셨지만 미래에는 세상을 불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물로 심판하시면서도 하늘과 땅을 남겨 두신 이유는 미래에 불로 심판하시기 위해서 남겨 두신 것입니다.
물로 심판하실 때는 세상에 노아를 살려두시므로 한번의 기회를 더 주셨지만 불로 심판하시는 세상은 이제 기회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천사들이 불로 세상을 심판할 때는 살아남을 사람이 한 명도 없을 것이며, 하나님의 분노를 잠재울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도를 핍박했던 잔인한 사람들과 생명을 경시했던 사람들과 자기 외에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었던 사람들을 향한 분노를 재림하시는 날 모두 이 땅에 쏟아 부을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심판하시는 날과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고난의 세월을 살았던 성도들에게 상급을 주시는 날은 분명히 있습니다.
성도들은 세상이 두려워하는 그 날이 분명히 올 것을 알기 때문에 그 사실을 아는 성도들이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심판을 피할 길을 알려주는 성도의 사랑과 영혼 구원을 위해서 천년을 하루같이 기다리고 계신 하나님을 비웃고 있습니다.
이렇게 눈에 보이는 거대한 하늘과 땅이 불로 심판을 받아서 사라질 것이라는 말씀이 믿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조롱하고 육신의 정욕을 좇는데 인생을 보낸 사람들은 세상과 함께 불로 심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물로 심판하실 때 세상을 멸하지 않고 그냥 두신 것은 인간에게 한번의 기회를 더 주신 것이므로 기회를 받은 인간은 회개하고 돌이켜서 심판을 피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가 관영한 세상에서 성도들이 믿음으로 죄를 이겨주기를 바라고 계시는데 그것은 죄를 이기는 성도의 믿음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빛나게 하기 때문입니다.
에덴동산에 생명나무와 선악과를 함께 두신 이유는 아담과 하와가 사탄이 유혹했을 때 단호하게 물리쳐 주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고 육체의 정욕을 이기지 못하여 사탄이 유혹하는 데로 선악을 알게 하는 과실을 먹고 말았습니다.
그들의 죄는 전 인류를 죄인으로 만들었으며, 노아시대에 살던 사람들은 죄를 이기지 못해서 물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 두려운 심판이 하나님의 때에 세상과 경건치 않은 자들에게 임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루를 천년 같이, 천 년을 하루같이 인내하고 계실 때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회개해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의 약속이 더딘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천년이 하루 같은 하나님의 시간과 하루가 천년처럼 길게 느껴지는 인간의 시간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 전부터 계신 영원하신 분이기 때문에 인간이 길다고 생각하는 천년이라는 시간 개념과 상관이 없으신 분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더디다고 불평하고, 죄악 된 세상을 왜 심판하지 않느냐고 불평하는 성도가 있다면 그는 자신이 믿음으로 잘 살아 왔다는 생각 때문에 그런 교만한 말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믿음이 정말 주님의 재림을 맞이할 수 있는 온전한 믿음인지 돌아본다면 그 누구도 하나님께 그런 말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선지자 요엘은 마지막 날에 일어날 일들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왕이 오시는 호각소리가 나면 이 땅에 있는 사람들은 어두워지는 세상과 빽빽한 구름이 끼인 것을 보게 될 것이며 이 세상에서 구원의 소망이 완전히 사라진 여호와의 날을 두려워하며 맞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가뭄이 들었을 때 산 불이 나면 순식간에 불이 휩쓸고 지나가는 것처럼 세상에 임한 심판은 그 모양은 말이 달리는 것처럼, 큰 힘을 가진 군대가 진격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보는 것만으로 두려울 것입니다.
요엘[BC830]은 하나님께서 천년을 하루같이 기다려주실 때 돌이키지 못한 것을 사람들은 후회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모세는 시편 90편에 기록하기를 주는 산과 땅이 생기기전에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셨던 하나님이시며, 사람들의 인생을 돌아가라고 명령하시고 티끌로 돌아가게 하신 창조주라고 고백했습니다.
주께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과 같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전한 말씀을 들어보면 하나님께서는 시작이 없으신 영원한 분이시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재림이 인간이 생각하는 시간 개념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경건하지 않은 자들이 하나님의 심판과 그리스도의 재림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을 보면 인간이 얼마나 사악한지 알 수 있고, 눈으로 보는 것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습니다.
성도들은 이런 미혹에 절대로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의 생각은 분명 주님의 약속이 더디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승천 하신지 벌써 이천년이 지났고, 자신이 그리스도라고 나타난 사람들이 꽤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전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인내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내가 없다면 저와 여러분의 구원도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인내하시며 성도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주기를 기다리고 계실 때 사명을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나팔소리가 났을 때 과연 여러분은 그 소리를 듣고 기뻐하며 찬양하는 자리에 있을 것인지 아니면 소망이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참혹한 심판의 자리에 있을 것인지 지금 결정하셔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3장 3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내가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예수님께서 사데교회에 보내신 편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데교회를 향해 내가 네 행위를 아는데 너는 살아있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실은 죽은 자라고 하셨습니다.
아마도 사데교회는 물질적으로 부요 했기 때문에 자신들이 믿음이 좋아서 세상 복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이 도적같이 이를 것이라고 믿기 보다는 자기들이 정한 때에 오실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사데교회에 다시 한번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너는 네가 지금까지 어떤 말씀을 듣고 어떤 은혜를 받았는지 생각해보고 지키어 회개하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생각하고 지키고 회개하기 위해서는 온전한 말씀을 듣는 것이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올바른 진리를 듣지 않는다면 회개하고 싶어도 거짓복음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어서 돌이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올바른 진리의 말씀을 듣고 귀한 성품을 가진 성도를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므로 진리를 듣고 바른 신앙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10절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주님의 재림이 도적과 같이 온다는 것은 재림이 사람의 생각과는 달리 갑자기 임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는 자들을 향해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임할 것이므로 결단코 피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 날에는 눈이 높은 자가 낮아질 것이고, 교만한 자가 굴복할 것입니다.
세상 모든 것이 불에 타 버릴 것이므로 재림이 없다고 말했던 교만한 자와 거만한 자와 자고한 자들은 다시는 기회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성도들은 영적인 어두움에 있지 않기 때문에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이 도적과 같이 임할지라도 염려할 것 없습니다.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과 어울리지 않고 늘 깨어 있으면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런 성도들은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고 자기의 구원의 옷을 지켰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하늘 나라 시민권을 가진 거룩한 백성이기 때문에 진리안에서 자유함을 가지고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회개하고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어쩌면 더디 오시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겠지만 그 사랑을 아는 성도는 더디 오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더 감사하며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그 귀한 말씀을 혼자만 알고 있지 말고 엄청나게 두려운 심판을 세상과 지옥불에 떨어질 영혼들을 향해 전하시기 바랍니다.
심판을 전하지 않는 것 역시 하나님의 책망을 받기 때문에 성도 여러분은 여러분이 그리스도 재림 때 누릴 축복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거룩한 선지자의 예언과 사도들이 가르쳐주고 싶어하던 간절한 말씀을 듣고 배웠으므로 그 진리의 말씀을 생각하고 지키고 회개하며 재림의 소망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소망을 가진 자로써 많은 영혼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며 경건한 삶을 사시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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