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이행기
한국 시문학의 1910년대의 한국 시문학사
특성
1. 시대 규정과 기점의 문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문화 변동의 시기에는 자신의 고유한 문화를 지키려는 경향과 이를 혁신하려는 경향이 상호 충돌하는 법이다. 하지만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고 문화 담당 주체들의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참여가 이루어진다면 이러한 대립적인 경향들은 분명히 생산적인 융합 지점을 찾아내기 마련이다. 그러나 외세의 침투 속도가 너무 빠르고 주체들이 그것을 받아들일 자각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많은 복잡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우리 안의 봉건 잔재를 청산하는 일과 물밀어오는 제국주의 침탈에 맞서는 일이 동시에 요구되던, 구한말의 경우가 그러한 복잡성이 드러나는 좋은 보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가 한국 근대¹ 시사의 가장 초기에 해당하는 시기라는 사실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러한 복잡성의 첫 번째 예가 해당 시대를 규정하는 용어 문제다. 시대를 규정하는 명칭을 무엇으로 삼을 것인가 하는 이 문제는 그 시기를 언제부터 언제까지로 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밀접히 맞물려 있다. 뿐만 아니라 이 문제는 또한 문화의 고유성을 옹호하는 입장과 외래문화의 수용을 옹호하는 입장 가운데 어느 편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 하는 문제와도 결코 분리될 수 없다. 개화기 · 애국 계몽기 · 이행기 · 자유시 형성기 등의 용어가 그 예들인데, 각각의 용어들은 제 나름의 존립 근거를 분명히 갖고 있어서 선택과 배제를 어렵게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글에서는 그 가운데서 ‘근대(로의) 이행기’라는 명칭을 선택하려고 한다. 우선 가장 오래 폭넓게 사용되어 온 ‘개화기’라는 명칭의 경우 외래적인 것의 수용만을 전면에 부각시키는 문제점이 있다. 이에 비해 ‘애국계몽기’는 반제反帝와 반봉건半封建 혹은 개화開化와 자강自强의 목표를 하나로 아우른 가장 바람직한 명명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해당 시기가 1905년에서 1910년경으로 제한된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리 되면 그 시기를 전후한 다양한 흐름들을 묶어 설명할 길이 없어진다. ‘자유 형성기’라는 용어²는 근대 초기 전체에 대한 명명이기보다는 ‘애국 계몽기’의 후대인 1910년대를 중심에 두려는 명칭이다. ‘근대 이행기’라는 명칭은 기왕의 명칭들이 지닌 이러한 문제점들을 보완할 수 있는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애국 계몽기’와 ‘자유시 형성기’라는 특정의 시기를 하위 단위로 포괄할 수 있어 설명의 유연성을 제공한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일 것이다.
한국 근대시사의 초기를 ‘근대 이행기’로 규정한다는 것은 특정 시기를 근대문학의 기점으로 잡으려는 사고방식에 대한 반성과도 관련되어 있다. 주지하다시피 기점론이란 특정의 연대를 제시하여 근대의 시초로 잡으려 하는 논의다. 그 가운데 중요한 몇 가지를 들어 보이면 다음과 같다. 우선 17, 18세기 영·정조시대 기점설, 1860년대설, 1876년설, 1888년,1894년, 1900년, 1905년³ 등이 있고, 특정 연대로부터의 기점을 문제삼지 않고 임 · 병 양란 이후부터 이행기移行行로 설정하는 견해들이 있다.
이들 가운데 논의의 선편을 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임화의 갑오경장(1894)설이다. 문화의 고유한 지속성보다는 변화와 새로움에 주목한 그는, 갑오경장 이후 외래문화의 영향 아래 탄생한 문학이야말로 근대문학의 근간이라고 생각하는 이식문학론移植文學論을 펼쳤다. 이를 극복하고 문화의 자생성 및 주체성을 강조하려는 입장이 1970년대 김현 • 김윤식에 의해 제기된 17, 18세기 기점이다. 그들은 식민사관의 청산을 위해 국사학계에서 형성된 내재적 발전론의 틀과 연구 성과를 빌어와 영·정조시대에 이미 자생적인 근대화 운동이 시작되었음을 주장한다. 그 예로 든 것이 사설시조와 연암의 한문소설들, 판소리 등이었다. 1990년대에 들며 이들 두 견해가 지닌 논리적 과잉 부분을 조절하려는 견해가 제출되었다. 최원식의 견해가 그것인데, 그는 전자가 반봉건이라는 목표에, 후자가 반제라는 의식에 지나치게 경도되었다는 것을 지적하고, 이들을 변증법적으로 통일시켜 보려는 틀, 곧 애국 계몽기(1905~1910)설을 제시했다. 이들과 달리 특정 연대의 기점을 부정하고 점진적 이행기를 제시한 이는 조동일이다. 그러나 조동일의 견해는 이행기의 폭을 지나치게 넓혀 잡아 시기 구분의 의의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문제점이 있다.
앞서 말했듯이 이 글은 근대 이행기라는 조동일의 견해를 빌어와 기본 관점으로 삼는다. 하지만 그 폭을 좁혀 1860년대부터 1919년의 3.1운동기 까지를 대상 시기로 할 것이다. 어차피 이행기라고 했으니 특정 연대를 출발점으로 잡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1876년이나 1894년을 시작점으로 잡지 않고 대략 1860년경부터를 이행기로 보려는 이유는 외부 충격을 중시하는 입장보다는 우리 시문학의 자생성을 더 강조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이다. 하한선을 3·1운동기로 잡은 이유는 그 이후에 동인지들을 통해 발표되는 시편들은 확실히 ‘새로움'이 강조되는 형태와 내용을 구비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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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근대문학과 현대문학 가운데 어떤 명칭을 쓸 것인가 하는 것 역시 간단하게 해결될 성질의 문제가 아니긴 하지만, 필자는 근대문학이라는 명칭을 준용하기로 한다. ‘근대’가 보다 엄격한 시대 구분의 개념으로 자주 사용된다면, ‘현대’는 보다 범박하게 ‘당대’의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더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 이러한 명칭을 사용하는 대표적인 글들은 다음과 같다. 정우택, 「한국 근대 자유시 형성 과정」과 그 성격, 성균관대 박사논문, 1998; 김성윤, 「한국 근대 자유시 형성기 연구」, 연세대 박사논문, 1999.
2024.3.29.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