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벽부(赤壁賦)> 소식(蘇軾)
@소식이 황주(黃州)에서 적거(謫居)하고 있던, 북송 신종 원풍 5년, 그의 나이 47세 되던 해 7월에 황강현의 적벽 아래서 뱃놀이를 하면서 지었으며, 그의 달관한 인생관을 잘 보여준다. 사부류(辭賦類)의 고문으로, 산부(散賦)의 전형적인 작품이다. 산부란 산문체를 섞어 쓴 부로서, 용운(用韻)이 비교적 자유로운 것이 특징이다.@
[1]
임술년(壬戌年) 가을 7월 16일에, 나는 객과 더불어 배를 띄워 적벽(赤壁) 아래에서 노닐게 되었다. 맑은 바람이 가볍게 불어오고 물결은 일지 않았다. 술을 들어 객에게 권하며, 명월(明月)의 시를 읊조리고 요조(窈窕)의 가락을 노래했다. 이윽고 달이 동산 위로 떠올라 북두성과 견우성 사이를 배회하니, 흰 이슬은 강에 비껴있고, 물빛은 하늘에 이어졌다.
@임술년(壬戌年): 송(宋) 신종(神宗) 원풍(元豊) 5년(1082).
@적벽(赤壁): 호북성(湖北省)에는 '적벽'으로 불리는 곳이 여럿 있다. 실제로 '적벽대전'이 벌어졌던 곳은 가어현(嘉魚縣) 동북쪽의 '적벽'이다. 소동파는 무창현(武昌縣) 동남쪽 황강현(黃岡縣)에 있는 적벽에서 노닐면서 적벽대전의 고사를 끌어다가 이 <적벽부>를 지었는데, 이는 소식이 잘못 알았다기 보다는 고사를 사용하여 문장의 정취를 살리려 한 것으로 봐야 한다.
@명월(明月)의 시: 《시경·진풍(詩經·陳風)》의 <월출(月出)> 편을 가리킨다. 모두 3장으로 구성되며, 그 첫째 장이 요조(窈窕)의 가락이다. "달이 밝게 떠오르니, 그녀의 예쁜 얼굴 얼마나 예쁜가, 아리따운 그녀 모습, 내 속을 태우는구나(月出皎兮, 佼人僚兮, 舒窈糾兮, 勞心悄兮)"
한 조각 작은 배가 가는 대로 맡겨두고, 아득히 넓은 만경창파를 건너간다. 넓고도 넓어 허공을 타고 바람을 몰아가다가 그 머물 곳을 알지 못하는 듯하고, 둥실둥실 속세를 버리고 홀로 서서 날개가 돋아 신선이 되어 하늘에 오르는 듯했다.
[2]
이에 술자리의 흥이 무르익어 뱃전을 두드리며 노래하였다. 노래하기를 "계수나무 노와 목란 삿대로 물 속 달그림자를 치고 달빛 흐르는 강을 거슬러 오르네. 아련히 내 맘 속에 떠오르는 그녀는 하늘 저쪽 끝에 있다네." 객 중에 퉁소를 부는 자가 있어 노래에 맞추어 연주를 하였다. 퉁소 소리는 오오~ 하며 퍼지는 것이 마치 원망하는 듯 애모하는 듯, 흐느끼는 듯 호소하는 듯하였다. 여음은 가늘게 이어지며 실올처럼 끊이지 않으니, 깊은 골짜기 물속에 잠겨있는 교룡을 춤추게 하고, 외로운 배의 과부를 울리는 듯하였다.
[3]
나는 슬픈 표정으로 옷깃을 바로잡고 단정히 앉아 객에게 “어찌하여 그렇게 구슬프게 불었소?” 라고 물었더니, 객이 대답하였다. “‘달은 밝고 별은 성기고, 까막까치는 남쪽으로 날아가도다.’ 이것은 조맹덕(曹孟德: 조조曹操)의 시가 아니오? 서쪽으로 하구(夏口)를 바라보고 동쪽으로 무창(武昌)을 바라보니, 산천은 겹겹이 얽혀있고 초목은 울창한데, 이곳은 조맹덕이 주랑(周郞: 주유周瑜)에게 곤욕을 당했던 장소가 아니오? 바야흐로 조맹덕이 형주(荊州)를 깨뜨리고 강릉(江陵)을 점령한 뒤 강물의 흐름을 타고 동쪽으로 내려올 때, 함대는 천 리에 걸쳐 이어지고 깃발은 하늘을 덮었지요. 술을 걸러 강물을 굽어보며 창을 비껴들고 시를 읊었으니, 진실로 일세의 영웅이었소. 그런데 그랬던 그도 지금은 어디에 있소? 하물며 나와 그대는 강가 모래톱에서 고기 잡고 나무하며, 물고기나 새우와 짝하고 고라니 사슴과 벗을 삼고 있음에랴! 일엽편주에 몸을 싣고 술 바가지를 들어 서로 권하며, 하루살이 같은 짧은 삶을 이 천지에 기탁하고 있으니, 작고 보잘 것 없기가 까마득하여 넓은 바다에 던져진 한 톨 좁쌀 같구려. 덧없이 짧은 우리 인생이 슬프고, 끝없이 흐르는 장강이 부럽구려. 신선을 끼고 즐겁게 노닐며, 밝은 달을 안고 오래도록 산다는 것도 선뜻 이룰 수 없음을 알기에 퉁소의 여음을 쓸쓸한 가을바람에 맡긴 거라오."
@조맹덕의 시: <단가행(短歌行)> "달은 밝고 별은 드문데, 까마귀와 가치는 남쪽으로 날아가네. (까마귀와 까치가)나무를 몇 번이나 맴돌지만, 어떤 가지에 의지할꼬?(月明星稀, 烏鵲南飛, 繞樹三匝, 何枝可依.)" '맹덕'은 조조(曹操)의 자(字).
[4]
내가 말하였다. “그대도 저 강과 달을 알고 있소? 흘러가는 것이 이 강과 같이 쉬지 않고 흐르지만, 일찍이 가버린 적이 없소. 차고 기우는 것이 저 달과 같지만, 끝내 없어진 것도 자라난 것도 없소. 대개 변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천지는 한 순간도 변함없는 그대로일 수가 없고, 변하지 않는다는 관점에서 보자면 만물과 나는 모두 무궁한 것이지요. 그러니 또한 무엇을 부러워하겠소? 게다가 천지 사이의 만물은 각기 그 주인이 있으니, 참으로 내가 가진 것이 아니면 털끝만한 것이라도 취할 것이 없소. 오직 강물 위로 부는 맑은 바람과 산 위로 떠오르는 밝은 달은 귀로 들으면 아름다운 음악이 되고 눈에 담으면 멋진 그림이 됩니다. 내가 가져도 금하는 이가 없고, 아무리 사용해도 없어지지 않으니, 이는 조물주가 주신 무진장한 보물창고입니다. 그리고 나와 그대가 함께 즐기고 있는 것이지요.”
객이 기뻐하며 웃더니, 잔을 씻어 다시 술을 따랐다. 안주는 이미 바닥나고, 술잔과 쟁반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었다. 배 안에서 서로를 베개 삼아 베고 누우니, 동녘이 이미 밝아온 것도 알지 못했다.
<前赤壁賦> 蘇軾
壬戌之秋, 七月旣望, 蘇子與客泛舟, 遊於赤壁之下. 淸風徐來, 水波不興. 擧酒屬客, 誦明月之詩, 歌窈窕之章. 少焉, 月出於東山之上, 徘徊於斗牛之間, 白露橫江, 水光接天. 縱一葦之所如, 凌萬頃之茫然. 浩浩乎如憑虛御風, 而不知其所止, 飄飄乎如遺世獨立, 羽化而登仙.
於是飮酒樂甚, 扣舷而歌之. 歌曰: “桂櫂兮蘭槳, 擊空明兮泝流光. 渺渺兮予懷, 望美人兮天一方.” 客有吹洞簫者, 倚歌而和之. 其聲嗚嗚然, 如怨如慕, 如泣如訴. 餘音嫋嫋, 不絶如縷, 舞幽壑之潛蛟, 泣孤舟之嫠婦.
蘇子愀然, 正襟危坐而問客曰: “何爲其然也.” 客曰: “月明星稀, 烏鵲南飛, 此非曹孟德之詩乎? 西望夏口, 東望武昌, 山川上繆, 鬱乎蒼蒼, 此非孟德之困於周郞者乎? 方其破荊州, 下江陵, 順流而東也, 軸艫千里, 旌旗蔽空. 釃酒臨江, 橫槊賦詩. 固一世之雄也. 而今安在哉? 況吾與子, 漁樵於江渚之上, 侶魚鰕而友麋鹿. 駕一葉之扁舟, 擧匏樽而相屬, 寄蜉蝣於天地, 渺滄海之一粟. 哀吾生之須臾, 羨長江之無窮. 挾飛仙以遨遊, 抱明月而長終, 知不可乎驟得, 託遺響於悲風.”
蘇子曰: “客亦知夫水與月乎? 逝者如斯, 而未嘗往也. 盈虛者如彼, 而卒莫消長也. 蓋將自其變者而觀之, 則天地曾不能以一瞬. 自其不變者而觀之, 則物與我皆無盡也. 而又何羨乎? 且夫天地之間, 物各有主. 苟非吾之所有, 雖一毫而莫取. 惟江上之淸風, 與山間之明月, 耳得之而爲聲, 目遇之而成色. 取之無禁, 用之不竭. 是造物者之無盡藏也. 而吾與子之所共適.” 客喜而笑, 洗盞更酌. 肴核旣盡, 杯盤狼藉, 相與枕藉乎舟中, 不知東方之旣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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壬戌之秋, 七月旣望, 蘇子與客泛舟, 遊於赤壁之下. 淸風徐來, 水波不興. 擧酒屬客, 誦明月之詩, 歌窈窕之章. 少焉, 月出於東山之上, 徘徊於斗牛之間, 白露橫江, 水光接天.
임술년(壬戌年) 가을 7월 16일에, 나는 객과 더불어 배를 띄워 적벽(赤壁) 아래에서 노닐게 되었다. 맑은 바람이 가볍게 불어오고 물결은 일지 않았다. 술을 들어 객에게 권하며, 명월(明月)의 시를 읊조리고 요조(窈窕)의 가락을 노래했다. 이윽고 달이 동산 위로 떠올라 북두성과 견우성 사이를 배회하니, 흰 이슬은 강에 비껴있고, 물빛은 하늘에 이어졌다.
임술년(壬戌年): 송(宋) 신종(神宗) 원풍(元豊) 5년(1082).
명월(明月)의 시: 《시경·진풍(詩經·陳風)》의 <월출(月出)> 편을 가리킨다. 모두 3장으로 구성되며, 그 첫째 장이 요조(窈窕)의 가락이다. "달이 밝게 떠오르니, 그녀의 예쁜 얼굴 얼마나 예쁜가, 아리따운 그녀 모습, 내 속을 태우는구나(月出皎兮, 佼人僚兮, 舒窈糾兮, 勞心悄兮)"
縱一葦之所如, 凌萬頃之茫然. 浩浩乎如憑虛御風, 而不知其所止, 飄飄乎如遺世獨立, 羽化而登仙.
한 조각 작은 배가 가는 대로 맡겨두고, 아득히 넓은 만경창파를 건너간다. 넓고도 넓어 허공을 타고 바람을 몰아가다가 그 머물 곳을 알지 못하는 듯하고, 둥실둥실 속세를 버리고 홀로 서서 날개가 돋아 신선이 되어 하늘에 오르는 듯했다.
[2]
於是飮酒樂甚, 扣舷而歌之. 歌曰: “桂櫂兮蘭槳, 擊空明兮泝流光. 渺渺兮予懷, 望美人兮天一方.”
이에 술자리의 흥이 무르익어 뱃전을 두드리며 노래하였다. 노래하기를 "계수나무 노와 목란 삿대로 물 속 달그림자를 치고 달빛 흐르는 강을 거슬러 오르네. 아련히 내 맘 속에 떠오르는 그녀는 하늘 저쪽 끝에 있다네."
客有吹洞簫者, 倚歌而和之. 其聲嗚嗚然, 如怨如慕, 如泣如訴. 餘音嫋嫋, 不絶如縷, 舞幽壑之潛蛟, 泣孤舟之嫠婦.
객 중에 퉁소를 부는 자가 있어 노래에 맞추어 연주를 하였다. 퉁소 소리는 오오~ 하며 퍼지는 것이 마치 원망하는 듯 애모하는 듯, 흐느끼는 듯 호소하는 듯하다. 여음은 가늘게 이어지며 실올처럼 끊이지 않으니, 깊은 골짜기 물속에 잠겨있는 교룡을 춤추게 하고, 외로운 배의 과부를 울리는 듯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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蘇子愀然, 正襟危坐而問客曰: “何爲其然也.” 客曰: “月明星稀, 烏鵲南飛, 此非曹孟德之詩乎? 西望夏口, 東望武昌, 山川上繆, 鬱乎蒼蒼, 此非孟德之困於周郞者乎? 方其破荊州, 下江陵, 順流而東也, 軸艫千里, 旌旗蔽空. 釃酒臨江, 橫槊賦詩. 固一世之雄也. 而今安在哉?
나는 슬픈 표정으로 옷깃을 바로잡고 단정히 앉아 객에게 “어찌하여 그렇게 구슬프게 불었소?” 라고 물었더니, 객이 대답하였다. “‘달은 밝고 별은 성기고, 까막까치는 남쪽으로 날아가도다.’ 이것은 조맹덕(曹孟德: 조조曹操)의 시가 아니오? 서쪽으로 하구(夏口)를 바라보고 동쪽으로 무창(武昌)을 바라보니, 산천은 겹겹이 얽혀있고 초목은 울창한데, 이곳은 조맹덕이 주랑(周郞: 주유周瑜)에게 곤욕을 당했던 장소가 아니오? 바야흐로 조맹덕이 형주(荊州)를 깨뜨리고 강릉(江陵)을 점령한 뒤 강물의 흐름을 타고 동쪽으로 내려올 때, 함대는 천 리에 걸쳐 이어지고 깃발은 하늘을 덮었지요. 술을 걸러 강물을 굽어보며 창을 비껴들고 시를 읊었으니, 진실로 일세의 영웅이었소. 그런데 그랬던 그도 지금은 어디에 있소?
況吾與子, 漁樵於江渚之上, 侶魚鰕而友麋鹿. 駕一葉之扁舟, 擧匏樽而相屬, 寄蜉蝣於天地, 渺滄海之一粟.
하물며 나와 그대는 강가 모래톱에서 고기 잡고 나무하며, 물고기나 새우와 짝하고 고라니 사슴과 벗을 삼고 있음에랴! 일엽편주에 몸을 싣고 술 바가지를 들어 서로 권하며, 하루살이 같은 짧은 삶을 이 천지에 기탁하고 있으니, 작고 보잘 것 없기가 까마득하여 넓은 바다에 던져진 한 톨 좁쌀 같구려.
哀吾生之須臾, 羨長江之無窮. 挾飛仙以遨遊, 抱明月而長終, 知不可乎驟得, 託遺響於悲風.”
덧없이 짧은 우리 인생이 슬퍼고, 끝없이 흐르는 장강이 부럽구려. 신선을 끼고 즐겁게 노닐며, 밝은 달을 안고 오래도록 산다는 것도 선뜻 이룰 수 없음을 알기에 퉁소의 여음을 쓸쓸한 가을바람에 맡긴 거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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蘇子曰: “客亦知夫水與月乎? 逝者如斯, 而未嘗往也. 盈虛者如彼, 而卒莫消長也. 蓋將自其變者而觀之, 則天地曾不能以一瞬. 自其不變者而觀之, 則物與我皆無盡也. 而又何羨乎?
내가 말하였다. “그대도 저 물과 달을 알고 있소? 흘러가는 것이 이 강과 같이 쉬지 않고 흐르지만, 일찍이 가버린 적이 없소. 차고 기우는 것이 저 달과 같지만, 끝내 없어진 것도 자라난 것도 없소. 대개 변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천지는 한 순간도 변함없는 그대로일 수가 없고, 변하지 않는다는 관점에서 보자면 만물과 나는 모두 무궁한 것이지요. 그러니 또한 무엇을 부러워하겠소?
且夫天地之間, 物各有主. 苟非吾之所有, 雖一毫而莫取. 惟江上之淸風, 與山間之明月, 耳得之而爲聲, 目遇之而成色. 取之無禁, 用之不竭. 是造物者之無盡藏也. 而吾與子之所共適.”
게다가 천지 사이의 만물은 각기 그 주인이 있으니, 참으로 내가 가진 것이 아니면 털끝만한 것이라도 취할 것이 없소. 오직 강물 위로 부는 맑은 바람과 산 위로 떠오르는 밝은 달은 귀로 들으면 아름다운 음악이 되고 눈에 담으면 멋진 그림이 됩니다. 내가 가져도 금하는 이가 없고, 아무리 사용해도 없어지지 않으니, 이는 조물주가 주신 무진장한 보물창고입니다. 그리고 나와 그대가 함께 즐기고 있는 것이지요.”
客喜而笑, 洗盞更酌. 肴核旣盡, 杯盤狼藉, 相與枕藉乎舟中, 不知東方之旣白.
객이 기뻐하며 웃더니, 잔을 씻어 다시 술을 따랐다. 안주는 이미 바닥나고, 술잔과 쟁반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었다. 배 안에서 서로를 베개 삼아 베고 누우니, 동녘이 이미 밝아온 것도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