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암만유, 그렇구말구유
양 승 본
비가 오고 있었다.
비는 눈물이었다. 눈물은 고향이었다.
고향은 순정(純情)을 잃어버린 채 서럽게 울고 있었다.
나는 아스팔트 위에 세워둔 승용차의 유리창에 떨어져 내리는 빗물 사이로 문득 냇물을 바라보았다. 고향은 냇물에도 없었다. 어디를 보아도 고향은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잃어버린 고향을 찾고 싶어 눈을 감았다.
내 고향은 내가 서울의 ㅅ대 법대 1학년에 다닐 때까지도 언제나 웃음으로 나를 반겨주고 있었다. 여름방학이 되어 기차를 타고 대전 아래의 간이역에서 내리면 곧 양지(陽地)라는 읍내의 장터가 나왔다. 장터를 지나면 우시장(牛市長) 뒤로 뻗어나간 신작로를 따라 걸었다. 그때부터 다니기 시작한 시내버스는 신작로 위에서 덜커덩거리며 지나가고, 그에 따라 먼지들이 잘난척하며 공간에 흩어져서 길가의 풀숲에 내리곤 했다. 신작로는 계속 이어져 갔지만 고향 마을은 1km쯤 거리에서 냇물을 건너는 곳에 있었다.
징검다리가 놓인 냇물에는 송사리 떼가 쏜살같이 오르내리고 냇물의 상류 지역에서 작은 고추를 내놓고 멱을 감던 아이들이
“대학생 아저씨! 안녕하시유!.”
외치곤 했다. 그들의 외침은 고향의 순수였다. 징검다리를 건너 제방(堤防)을 넘으면 고향 마을이 연자방아를 앞세우고 나타났다. 너무 오래되어서 군데군데가 썩어있는 여섯 개의 나무 기둥이 받치고 있는 연자방아의 지붕은 짚으로 엮어 만든 원형이었다. 밑바닥은 돌을 바둑판처럼 깔았고 연자방아를 둘러싼 울타리는 돌로 쌓아서 만들었다. 들어가는 입구는 돌층계를 3단으로 만들고 그 연자방아의 돌울타리 옆에는 입구 쪽으로 커다란 느티나무가 서 있어서 그 주위를 온통 그늘로 만들고 있었다. 느티나무에는 언제나 낮 동안은 한 마리의 소가 매어져 있었다.
마을 입구의 연자방아를 지나면 10여 미터 앞에 동네의 집들이 50가구 정도 자리를 잡고 있었다.
우리 집은 첫 골목에 있었다. 골목에 접어들면 마을 입구 쪽에서 맨 끝에 있었다. 그러므로 집 뒤가 바로 동산이었다. 나는 우리 집을 무척 좋아했다.
마을은 이조시대 그의 조상이 참봉을 해서 참봉 댁이라 불리던 내 친구 이정수네 집 하나가 기와집이고 나머지는 모두 초가집이었다. 나는 우리 집이 초가집이라는 데 대하여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것은 나의 성격과도 상통하고 있었다. 곡선으로 된 초가집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안방의 마루 벽과 건넌방 쪽의 마루 벽을 두 개의 장 나무가 건너질러진 시렁 위에는 항상 돗자리, 광주리, 채반, 소쿠리 등이 얹혀 있었고 시렁 앞쪽의 장 나무에는 굴비 묶음이 늘 매달려 있었다.
집의 뒷벽 쪽으로 솟아난 굴뚝 주변의 벽은 연기로 그을린 채 검은색을 드러내고 들창 문 위의 벽에는 시래기가 걸려 있었다.
뒤뜰의 우물곁에는 장독들이 있었는데 그 장독 주위는 흙담을 쌓았고 그 흙담 위로는 용마름으로 덮여 있었다.
충청남도 ○○군의 양지읍 변두리에 있는 고향 마을!
나는 그 고향의 모습을 눈을 감은 채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내 생각을 40대의 중반인 현실로 돌린 것은 승용차 문을 두드린 천덕이 때문이었다.
“남 검사님! 안녕하셨시유?”
“아니, 천덕이 아닌가?”
“네. 저 박천덕이에유.”
나는 자동차 문을 열어 주었다. 그가 비닐우산을 접으면서 운전석인 내 옆으로 들어오려 하면서 말했다
“남 검사님! 이렇게 아랫바지가 젖었는디….”
“괜찮아 이 사람아!”
“그래두유. 우산에서도 물끼가 떨어지는 구만유.”
“허어, 이 사람. 천덕이 어서 들어와 어서.”
“그럼 앉을 께유.”
그는 승용차 안이 물방울로 얼룩질까 봐 조심스러워하면서 내 곁에 앉았다. 내 곁에 앉은 것도 무척 송구스러워하는 마음이 그의 얼굴에 가득 나타나 있었다. 순간 나는 그 천덕이의 모습에서 잃어버린 고향을 찾을 수 있었다.
초가집이 기와집과 양옥집으로 바뀌고, 신작로가 아스팔트 길로 바뀌고 많은 농토에 공장이 들어선 고향은 환경이 변하듯 사람마저 변했어도 고향의 천덕이는 고향의 모든 것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랬다. 천덕이는 내가 찾던 고향의 모습이었다.
나는 천덕을 옆에 앉히고 변해 버린 고향 마을을 향해 천천히 차를 몰았다.
“검사님! 오늘은 한식(寒食)날도 명절 때도 아닌데 어떻게 오셨시유?”
“그냥, 일요일이어서 고향에 오고 싶었네. 자네도 보고 싶었고.”
“아유, 검사님두. 지 같은 것이 보고 싶다니유.”
“정말이야, 나보고 검사님, 검사님 하지 말라니까.”
“그럼 뭐라구, 불러유?”
“지난날에도 말했잖는가? 그냥 형님이라 부르라구.”
“하지만 어떻게유. 입이 안 떨어지유. 읍내의 경찰서장님두 영감님이라고 부르는 뒤 워째 지가 형님이라구 부른대유?”
“이 사람 천덕이! 자네 형님인 천수와 내가 친구니까 친구의 형님도 형님인 거네.”
“알았시유. 검사님!”
“아니, 또 검사님인가!”
“……?”
그는 멋쩍어하며 자신의 뒤통수로 한 손을 가져갔다.
나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고향의 사투리를 서울말로 바꾸듯이 내 생활은 실제로 고향을 떠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부모님 때문에 가끔 다니러 온 것뿐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사법고시에 합격했을 때 많은 고향 사람들이 서울의 우리 집까지 찾아와 축하해주었다. 그리고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에서 축하회를 해줄 때 고향에 잠깐 들렀을 정도였다. 천성적으로 몸이 약한 아버지는 나의 사법고시 합격을 모른 채 일찍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 시름시름 하던 어머니마저 내가 검사로 근무하기 시작한 해에 세상을 떠나가 형님은 출국을 서둘렀다.
“넌 검사니까 먹고살 만한 공무원이야.”
그는 이 한 마디로 한국에서의 생활을 마감해 버렸다. 이북에서 내려온 부모님이었기에 상구 형의 미국 이민은 나를 갑자기 고아로 만들어 버렸다
그는 내게 고향의 뒷동산에 잠들어 있는 부모님만을 남겨두고 대신 고향에 있었던 옛 집터까지 모두 팔아 챙기고 떠나 버렸다.
상구 형이 그의 아내와 어린 두 남매를 데리고 떠나던 날 나는 아내의 착한 마음을 알았다.
“미국은 타향이에요. 원하는 돈은 모두 가져가게 하세요. 저는 당신의 봉급이면 살 수 있어요. 우리 식구가 건강하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
아내의 말이 나의 뼈마디 마디마다 뜨거운 인정으로 스며들었다.
형이 출국할 때 아내의 배 속에 있던 아들 현재와 어린애였던 딸 소영이가 지금은 각각 중3, 고3이 되어서 이다음에 미국 유학을 가서 큰아버지 댁 식구를 만나보겠다고 가끔 떠들어대지만, 나는 왠지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날 비행장에서 아내는 소영이를 안은 채 걸으면서 쓸쓸해 하고 있었다. 서녘 하늘에 외로운 황혼이 지고 있었다. 나를 위로하면서도 아내의 얼굴은 바로 그 외로운 황혼빛이었다. 신림동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어둠이 은빛을 몰아내고 우리 식구들을 비웃는 듯 키들키들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래서 내 마음은 그 어둠만큼이나 고독했다.
나는 서울 생활의 피곤을 달래기 위해 고향을 찾았다. 그때는 가을이었는데 아직도 고향은 옛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물론 측량 기사들이 가끔 왔다 갔다 하고 땅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기 시작한 것은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의 가을부터였지만, 고향이 도시화로 되기 위한 그 몸부림 속에서도 고향은 내가 대학 1학년까지도 외형적이고 실제적 변화는 없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황금 물결치는 들판에서 곡식을 거두고 있었다.
지붕 위에 널려진 빨간 고추며, 수수밭 사이로 노랗게 물든 콩잎이며 청잣빛 하늘을 고추잠자리가 평화롭게 날아다니는 계절이었다.
그런 고향이 본격적인 도시화로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대학 2학년 때부터였다. 하지만 나는 대학 3학년, 4학년 때는 물론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가끔 고향에 내려와 이미 남의 손에 넘어간 옛집 앞을 지나 뒷동산을 향해 걷기를 좋아했다. 뒷동산은 끝까지 유일하게 내 이름으로 남아 있던 내 소유의 산이었다. 상구 형이 그 뒷동산까지 미국 이민을 위해 팔아버리지 못했던 것은 부모님의 산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혼자 산소 앞에서 부모님에게 절을 했다.
그런 다음 산소 앞에 앉았다.
하늘은 청잣빛이었다. 그 청잣빛의 서녘 하늘에는 솜 같은 하얀 구름이 서너 개의 무더기로 되어 한가롭게 떠다니고 있었다. 하얀 갈대가 산소 주위에서 가을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갈대의 흔들림만큼이나 내 마음은 외로움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나의 눈언저리가 이슬에 젖어오기 시작했다. 부모님에 관한 생각, 형에 대한 원망 같은 것이 한데 어울려 내 눈을 젖게 하였다.
승용차가 마을을 지나 뒷동산 밑에 이르자 빗줄기가 더 굵어졌다.
“형님! 지는 언제나 형님을 보면 천수형이 생각나유.”
“나는 천수와 무척 친하게 지냈지. 하지만 자네를 보면 난 언제나 자네의 형님보다는 자네 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 있네.”
“그래유? 고마워유. 지는 검사님인 형님을 보면 아버지 생각두 나지만유 천수 형님 생각이 더 나유. 그리고 천수 형님을 생각하면 미국으로 간 검사님의 형님인 상구 형님이 원망스럽구만유. 그런디 이상하게도 검사님만은 싫어지지가 않아유. 모두들 검사님이 무서운 사람이라고 하는디 지는 하나도 안 무서워유. 죄만 없으믄 그만 아니에유.”
“그럼, 그러니까 자네보고 말했잖나? 난 천수와 친구니까 형님으로 부르라구….”
“하지만 어떻게 검사님인디… 그래서 자꾸 검사님이랬다가 형님이랬다가 그렇게 되네유. 앞으로는 형님이라고 부르도록 할께유.”
“그건 그렇고. 왜 상구 형이 원망스럽다는 건가?”
“…….”
그는 한동안 말없이 승용차의 앞 유리창에 떨어지며 부서져 흐르는 빗줄기를 바라보았다. 내 눈에는 유리창에 떨어져 내리는 그 빗물들이 다시 눈물로 보였다.
그 눈물은 바로 내 마음이었다. 나는 그만큼 고향에 올 때마다 눈물 같은 슬픔에 젖곤 했다. 외모도 아름답고 마음씨마저 고운 아내와 여고 3년, 중학 3년의 남매가 있었지만 나 자신으로 보면 형제도, 친척도 없는 고아가 되어버린 생활 환경 때문이었다. 천덕이의 얼굴에도 외로움이 엿보였다.
그의 외로움도 세차게 내리고 있는 빗물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의 눈언저리에 나타난 이슬 같은 서러움이 고여 있는 것은 그가 이야기하려는 사연 때문인 것 같았다.
“지는유. 죽을 때까지 입을 다물려고 했는디유. 형님을 보니 다시 죽은 천수 형이 생각나는 구만유. 천수 형이 월남에서 대구의 육군병원으로 이송된 후 죽기 전에 내게 말했지유. 천수 형이 상구 형님을 만난 것은 군대에서였지유. 같은 고향 사람끼리 군대에서 만난 것도 인연이지유. 아니 운명 같은 것이지유.”
그가 계속 빗줄기를 바라보면서 말을 계속 이어갔다.
남상구 소위는 ROTC 장교로 중부 전선에서 약간 후방부대인 ○○부대에 전입되었다. 그는 중대장에게 신고를 마치고 선임 하사인 소재일 중사의 안내를 받아 소대 본부로 가고 있을 때였다
“충성.”
상등병 계급장을 달고 있는 사병 하나가 씩씩하게 경례를 부쳤다. 그 순간 경례를 부치던 사병의 손이 아래로 내려오기 전에 허공에서 남 소위의 손안에 꽉 쥐어졌다.
“아니?”
“그래 나다. 상구야!.”
“형님! 반가와유!”
“그래, 반갑다! 너의 동생 천덕이에게 네가 군대에 가서 복무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런데 여기서 만나다니 정말 반갑구나.”
“형님은 대학까지 나왔으니 장교님이 되셨구만유. 부러워유.”
“…….”
“참, 형님! 상일이가 사범 시험에 합격했다면서유. 형님두 부럽지만 친구인 상일이가 더 부러워유.”
“그래?”
“상일이는 똑똑하기도 하지만유. 겸손해서 지같이 초등학교 6학년에서 그만둔 고향 친구들에게두 언제나 친절해서 좋아유.”
“고맙구나. 그럼 이따 소대 본부에서 만나자.”
이때 소 중사가 박 상병에게 한 마디로 일침을 놓았다.
“박 상병!”
“예!”
“앞으로 공적인 자리에서는 형님이라고 부르면 절대 안돼. 어디까지나 우리의 소대장님이야. 알겠나?”
“네, 선임하사님! 지금부터 명심하겠습니다.”
박천수 상병은 선임 하사 앞에서 부동자세를 취한 채 대답했다. 갑자기 남상구 소위와 박천수 상병과의 따스했던 대화들이 소재일 중사의 한 마디에 의해서 초가을의 공간 속으로 달아나 버렸다.
어디까지나 단조로운 상하의 명령어들이 세 사람 사이에서 군기를 잡은 채 으스대고 있었다. 그 군기들을 병사(兵舍) 내외에도 철저하게 보초처럼 세워둔 것은 ‘독사’란 별명으로 사병(士兵)들 사이에 군립하고 있는 소 중사였다.
“내무반으로 가 있어.”
“네!”
소 중사의 명령에 박 상병은 두 상관에게 경례를 부치고 뛰어갔다. 비록 중사란 계급에 불과하지만 6.25의 경험까지 있고 군대 생활이 몸에 밴 데다가 나이까지도 남 소위의 아버지와 비슷한 그에게는 이제 ROTC 장교로 갓 군대에 들어온 나이 어린 소위 정도야 안중에도 없었다. 다만 군대란 계급의 사회이기에 형식적으로 상관의 대우를 했을 뿐, 소 중사의 마음속에는 그 나름대로 직업군인다운 긍지와 자부심이 자리하고 있었다.
“소대장님! 인사 기록 카드를 보니까 임관 후 최일선인 전방부대에 계셨더군요. 우리 부대는 대개 후방부대에서 진입 온 병사들이 많아요. 최전방 부대에서 전입 온 장병은 소대장님과 3소대의 선임 하사 정도에요.”
“원래 최전방 부대원은 눈앞에 휴전선을 보고 있으니까 전쟁의 실감을 느끼거든. 그래서 월남 파병 지원이 적어. 오히려 후방 부대원이 많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거지. 하지만 난 임관 전부터 월남 파병을 원하고 있었는데 최전방 부대로 배치되더군. 그래서 이번 2차 파병에 지원을 했지.”
두 사람은 1소대의 내부 반에 들어섰다. 남 소위는 소대원들의 빛나는 눈동자에서 강한 투지력을 보았다.
다음 날부터 1소대를 포함한 ○○부대는 중대별로 월남 파병을 위한 특수훈련을 실시했다. 사단장 이하 모든 부대원은 피나는 노력으로 훈련에 임했다. 계획된 훈련이 끝났을 때 그들은 부산항에서 월남을 향했다. ○○부대가 부산항을 떠날 때부터 ○○부대의 전투적인 작전은 시작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부대가 월남에 도착하여 사이공 북방 디안○○기지에 배치되었다.
월남은 전선이 따로 없는 전쟁터였다. 많은 전과를 올리고 한국의 명예를 올렸지만, 아군의 희생자도 많았다. 하지만 ○○부대는 작전이 개시된 이후 큰 희생자 없이 승리의 전과를 계속 올리고 있었다. 바로 이것이 남 소위에게는 비극을 안겨다 준 계기가 되었다. 그날도 승리의 기쁨에 들떠있는 데다가 그동안의 전공(戰功)에 의하여 예상보다 빠른 진급이 되어 중위 계급장을 달게 된 날이었다. 기분 좋아서 남 중위는 소대원들에게 회식을 베풀었다.
회식이 끝난 소대원들 역시 부대의 무사함을 빌면서 막 잠을 청했을 때였다. 선임 하사인 소 중사가 남 중위를 깨웠다.
“소대장님! 중대장님의 명령입니다. 지금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그래? 빨리 비상 걸어!”
“알겠습니다!”
남 중위는 소대원을 지휘하여 작전이 벌어지고 있는 곳으로 달렸다. 바로 중대 본부 뒤의 300여 미터 지점이었다. 남 중위가 지휘하는 1소대 좌우에는 다른 소대는 물론 다른 중대의 지원 부대도 작전을 전개하고 있었다. 월맹군은 베트콩들의 지원과 안내를 받아 산발적으로 기습 공격을 하고 있었다. 밤하늘에는 조명탄이 지속적으로 터지고 있었다. 조명탄은 하늘에서 피어 오르내리는 꽃처럼 보였다. 조명탄의 환한 불빛에 반비례하여 지상의 아군과 적군은 수십 명이 검은 죽음 속에서 떨어져 가고 있었다. 부상들의 신음, 그 위에 승리와 패배가 교차 되는 소리, 그 소리로 덮인 어두운 숲속에서 사람들은 총과 폭탄을 쏘아대고 퍼붓고 있었다. 그것은 살아가기 위한 죽음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처럼 들렸다. 살기 위해 죽어가는 모순을 창조해내는 슬픈 인간의 무리가 빛과 어둠의 소용돌이 속에서 설쳐대고 있었다.
작전이 시작된 지 30분 후에는 연대 본부의 지원이 있었다. 그때부터 밀리기 시작한 월맹군과 베트콩은 새벽빛이 어둠을 몰아내기 시작한 시간에 어둠처럼 물러가기 시작했다.
작전이 끝나자 각 소대에서 중대로 전과 보고가 있었다. 보고는 바로 그 작전의 끝남을 말하는 것이었다. 남 중위가 지휘했던 제1소대는 월맹군 3명, 베트콩 2명을 사살하고 10여 종의 소화기(小火器)를 노획했다. 그러나 1명의 사망자가 있었다. 처음에는 아군의 전사자가 생기면 소대는 물론 중대까지도 슬픔에 젖은 채 가슴 아파 했다. 전쟁이 계속되고 이곳저곳에서 전사자가 늘어나자 그 늘어나는 비례만큼 사람들의 마음은 무디어 갔다. 그래서 전사자가 생기면 언제나 행정적인 뒤처리로 끝나버렸다.
남 중위는 전사자의 행정처리를 선임하사에게 명령하고 나머지 소대원들을 앞세워 귀대 중이었다.
새벽은 간밤의 전쟁에 대해서 시치미를 딱 떼고 신선하게 찾아들었다. 남 중위가 새벽 속을 걸으며 소대원들의 뒤를 따르는 데 소변이 마려웠다. 그는 소대원들과 약간 처진 채로 바지의 단추를 내리고 오줌을 갈겼다. 팽팽하던 하복부가 갈겨대던 오줌 줄기로 인해 상쾌해졌다. 그가 바지의 단추를 마지막까지 다 잠그고 막 돌아서려 할 때였다. 바로 눈앞의 숲속에서 사람의 신음이 들렸다.
제일 뒤에 따라가던 박천수 상병이
“소대장님! 작전이 끝났지만, 이곳은 전쟁 지역입니다. 뒤에 처지시면…….”
“쉿!”
남 중위는 손가락을 입에 대면서 눈짓으로 박 상병을 가까이 오도록 했다.
박 상병이 가까워졌을 때 역시 눈짓으로 주위를 엄호하도록 명령한 후 조심스럽게 눈앞의 숲을 살폈다. 새벽의 고요 속에서 신경을 곤두세운 남 중위의 귀에, 보다 뚜렷이 들려온 신음은 고통을 견디려고 애쓰는 소리였다. 그가 숲을 헤치고 M16 소총을 겨눈 채 앞으로 조심스럽게 다가섰을 때 사람의 발목이 보였다.
그것은 총알이 스쳐 간 발목이었는데 그 주변에 핏물이 고여 있었다. 자세히 보니 여자였다. 헝클어진 머리, 옷이 찢긴 채 이곳저곳에 살이 드러난 여인의 모습은 고통으로 젖어있었다.
여인이 베트콩이란 걸 당장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맨 월맹군의 소총이며 풍기는 인상부터가 그랬다. 확인이 되자 남 중위가 마음을 놓고 말했다.
“빨리 가서 위생병을 불러.”
“사살해 버리죠. 소대장님!”
“저 처절한 형상만으로 불쌍해. 빨리 불러.”
곧 위생병이 뛰어왔다. 베트콩 여인은 왼쪽 발목에 총상을 입었는데 혼자 걷다가 귀대하는 한국군을 보고 갑자기 엎드려 숨은 것이었다. 위생병은 그녀를 응급처치했다. 옆에서 박 상병이 못마땅한 듯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계속 사살을 해버렸으면 하는 표정이었다. 그것은 응급처치를 하고 있는 위생병도 같은 표정이었다. 그래서 처치를 하는 위생병의 손길이 자연히 거칠게 다루어지고 있었다.
“어떻게 하시렵니까?”
일어서면서 위생병이 남 중위를 쳐다보았다.
“소대 본부로 데리고 가.”
남 중위는 여자 베트콩을 자신의 막사로 들게 했다. 식사를 제공한 후 그녀가 진정되자 포로로 행정처리를 하려고 했다. 그때 여자가 웃으면서 남 중위에게 말했다. 남 중위는 월맹어를 몇 개의 단어로 이해했는데 그녀의 말은 몸을 씻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는 오후가 되면 소대를 떠나 포 수용소로 넘겨질 그녀를 위해 간이 목욕장에서 하도록 하락을 했다. 그녀는 발목에 감긴 붕대에 물이 가지 않도록 대충 몸을 씻었다. 그녀가 목욕을 하고 나오자 베트콩이라는 인상보다는 순진한 여자로 보였다.
그녀는 몸에 묻은 더러움과 더위를 씻어낸 후 남 중위가 쓰는 야전 침대에 쓰러져 천진스럽게 잠을 잤다. 오후였으므로 소대원들은 다음에 불시에 들이닥칠 작전을 위해 잠을 자고 있었다. 외곽 지대의 보초들을 점검하고 막 돌아온 남 중위가 간이막사 안의 자기 침대를 보았을 때 잠자는 베트콩 여자의 풀어 헤쳐진 가슴과 찢겨 나간 무릎 위의 살결에 눈동자가 머물렀다. 그때였다. 잠을 자고 있던 그녀가 누운 채로 살며시 눈을 뜨면서 남 중위를 향해 씽긋 웃었다. 순간 남 중위는 자기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몸 위로 자신을 내던졌다. 여인이
“엠유안, 엠유안.”
하고 남 중위를 끌어안았다. 엠유안(사랑해요.)이라고 연발한 여인의 속삭임 속에 그는 넋을 잃은 채 그녀를 소유했다.
그가 여인에게서 몸을 떼고 바지를 막 올려 입고 있을 때 선임 하사인 소 중사와 박 상병이 뛰어 들어왔다. 두 사람은 부대 이동을 알리기 위해서 소대장을 찾은 것이었다. 그때까지도 여인은 옷을 제대로 입지 않은 상태여서 거의 상하체가 드러나 있었다. 들어온 두 사람이 외면하면서 몸을 돌리고 잠깐 서 있었다. 잠시 후 소 중사가“소대장님! 저의 오랜 군대 생활 경험을 통해서 보면 여자와 살을 섞으면 반드시 신변에 위험이 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행히 아직 포로에 관한 수속을 끝내지 않았으니 저 베트콩을 죽여버리기로 하십시오.”
하고 조용히 말했다.
박 상병은 두 사람 사이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세 사람의 딱딱한 분위기에 눈치를 챈 베트콩 여자는 재빨리 더러운 군복을 주워 입었다. 잠시 소대장실의 침묵이 죽음처럼 흐르고 있었다. 그 고요를 깨뜨린 것은 남 중위였다.
“그건 안돼.”
“그럼 포로수용소로 보낼 때까지는 지금 부대가 이동 중이므로 데리고 다니면서 감시하려면 1명의 병력이 필요하게 되어 귀찮아집니다.”
그때 박 상병이 끼어들었다.
“소대장님! 선임하사님 말씀대로 처치해 버리죠.”
“이 자식 말이 많아. 입 닥치지 못해.”
겁먹은 베트콩 여자가 일어나 남 중위의 바짓가랑이를 붙들면서 살려달라고 애원을 했다. 그 눈빛이 서럽게 젖어있었다.
“놓아 줘.”
“아니? 소대장님! 그건 절대로 안 됩니다. 만약 저 베트콩을 놓아주면 우리가 당합니다.”
“소대장은 나야. 이 남 중위지 소 중사가 아니라고!”
“하지만…….”
박 상병이 말을 하려 하자 그 말을 남 중위가 가로막았다.
“명령이야. 저 여자를 놓아줘! 이 눈빛을 보라고. 순진한 눈 속에 고인 눈물도.”
“그건 베트콩의 거짓입니다.”
남 중위는 다시 입을 열었다.
“놓아 줘!”
이리하여 베트콩 여자를 놓아주었다. 그녀는 수없이 땅에 머리를 조아린 후 막사를 빠져나갔다. 뒤이어 1소대는 본부 중대를 따라 다른 소대와 함께 어둠이 덮인 후 작전상의 25번 도로를 이용해서 사이공 북방 디안 ○○기지에서 약 2km 지점인 △△기지로 이동을 했다.
남 중위가 경계 임무에 단단히 주의를 주고 소대 본부로 들어와 막 철모를 야전용 침대에 올려놓고 앉으려 할 때였다.
천지를 진통시키는 폭음이 들리고 막사의 이곳저곳에서 소총 소리가 불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가 무장한 자세에서 철모를 쓰고 밖으로 나왔을 때 박 상병은 머리에 총상을 입고 쓰러져 있었으며 선임 하사 소 중사도 두 다리에 총상을 입고 피가 낭자했다. 어느 사이 쑥밭이 되어버린 1소대는 나머지 대원들이 다른 소대와 어울려 적의 기습을 막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전투는 약 10분 만에 끝나 버렸다. 이미 중대의 지원 부대가 왔을 때 적군은 빠른 기습을 끝내고 숲속으로 달아나 버렸다.
적의 기습은 1소대가 목표인 듯했다. 아침에 주변을 자세히 수색해 보니 적의 시체는 1구밖에 발견되지 않았는데 그 시체가 바로 포로로 잡았다가 놓아준 베트콩 여자였다.
머리를 다친 박 상병과 두 다리를 다친 소 중사를 곧 병원으로 후송시켰다. 박 상병은 머리를 다쳤으므로 아무런 말이 없었으나 소 중사는
“박 상병과 제가 다친 것은 소대장님 때문입니다. 제 두 다리는 소대장님이 책임지십시오. 제가 그 계집애를 죽이자고 했을 때 죽여버렸으면 아무런 탈이 없었을 것 아닙니까?”
라고 원망의 눈으로 말했다.
남 중위가 소속된 사단 규모의 부대는 곧 귀국을 서둘렀다. □부대와의 교체였다.
소 중사와 박 상병은 대구 육군병원으로 후송되었다. 베트콩 여자 문제를 비밀로 묻어둔 채로 귀국한 남상구는 곧 무사히 제대했다. 그는 서울에서 주식에 손을 댔다가 실패한 후 작은 사업체를 벌였다. 다행히 동창들의 협조로 그럭저럭 꾸려 나갔다.
여성들을 상대로 한 화장품 계통이었으므로 아내의 역할도 대단했다. 그래서 할만한 사업이 되었다.
어느 날 그가 하루의 경리를 정리한 여사무원을 보내고 막 퇴근하려 할 때였다.
“남 사장님!”
하고 들어온 사람은 휠체어에 앉아 있는 소재일이었다. 그 휠체어는 미는 사람은 그의 동생이었다. 갑자기 사무실에 찬바람이 일어났다.
“천수는 병원에서 죽었습니다! 죽은 사람이야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산 사람이지요!”
“원하는 게 뭔가?”
“왜 이러십니까? 빤히 알면서 …….”
“월남에서는 전쟁 중이었네. 나만의 잘못은 아니었네.”
“아니? 뭐라구요? 남 사장님이 그 베트콩 계집애만 건드리지 않았더라도 천수가 죽고 제 멀쩡한 두 다리가 날아가지는 않았다는 건 사장님이 더 잘 알잖아요?”
“…….”
“흥, 아름다운 명예 제대를 했더군요. 아직도 공소 시효는 남아 있어요. 제가 입만 벌리면 남 사장님은 물론 이 사업체도 끝장인 걸 아실 테죠?”
“얼마냐?”
“진작 그럴 것이지. 3천만 원이요!”
“3천만 원이나?”
“그럼 3천만 원 아끼시오? 그 3천만 원으로 내 두 다리를 복구시킬 수 있어요? 싫으면 관두슈. 야! 휠체어 돌려!”
“잠깐!”
이렇게 해서 남상구는 소재일과 본국에서 첫 대면을 했다. 그러나 그 첫 대면은 시작에 불과했다. 소재일은 잊을 만하면 찾아와 손을 벌렸다. 때로는 술에 취해서, 때로는 멀쩡한 정신으로 찾아와 남상구를 괴롭혔다.
소재일에게 돈을 뜯기기 시작하면서 남상구의 사업은 영양실조로 말라 가는 사람처럼 찌들어 가기 시작했다. 그는 갑자기 한국이 싫어졌다. 결국 그의 출국은 소재일의 끈질긴 협박, 공갈과 사업 실패 등의 복합된 요소를 가지고 있었다.
하늘에 구름은 잔뜩 끼어 있었지만, 어느새 비가 천천히 멈추어 가고 있었다. 천덕은 비가 개어 가는 산 쪽을 바라보면서 지난날의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지가 대구 병원에 갔을 때 천수형은 지 손을 꼭 쥐면서 말하더구만유. 모든 사실을 말이에유. 그리고 지게 부탁하더구만유. ‘이 사실은 니만 알고 있거라. 나 때문에 내 친구인 상일이를 원망해서는 안 된다. 다 운명이구 팔자인기라.’ 지금도 천수형의 마지막 눈물이 눈에 선하구만유.”
“…….”
나는 할 말을 잃고 있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소재일 씨가 천수형이 죽은 지 일 주일 쯤 되어서 지에게 왔드구만유. 서울의 상구 형에게서 떳떳하게 가져온 돈이라면서 살림에 보태 쓰라고 하더구만유.”
“…….”
“하지만 지는 한 푼도 받지 않았시유. 죽은 천수형의 부탁이었으니께유.”
나는 말없이 자동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천덕이도 따라 나왔다. 그와 나는 말없이 뒷동산을 향해 올랐다. 뒷동산 너머의 하늘에서부터 검은 구름이 천천히 걷히기 시작하더니 날이 맑아졌다.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묘소 앞에 큰절을 했다.
물끄러미 서 있던 천덕이가
“형님! 옷이 젖을 틴디유.”
하고 걱정을 했다. 나는 일어나면서
“옷이 문제인가?”
했다. 그가 계면쩍게 웃으면서 말했다.
“암만유! 그렇구 말구유.”
그렇게 말한 그도 내 뒤를 이어 산소 앞에 절을 했다.
“아니! 이 사람아!”
“어때 유. 살아 계실 때 천수형과 지는 물론, 돌아가신 지의 아버지 어머니까지도 어른신네 신세를 안 진 분이 있남유.”
“고맙네. 우리 뒷동산에 온 김에 자네 부모님 산소에도 가보세.”
“좋아유.”
그가 천진스럽게 웃었다. 고향은 다 변했으나 천덕이의 마음과 행동 그의 얼굴에는 고향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고향은 천덕이의 모든 것에 살아있음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그와 나는 뒷동산을 지나 산길로 그의 부모가 잠든 공동묘지를 향해 걸었다. 바짓가랑이가 풀잎에 젖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질척거리기 시작했다.
“형님네 소영이는 월출 고등 핵교에 다니겠구만유?”
“올해 고3이야. 현재는 중3이고.”
“예? 벌시유? 세월이 빠르구만유.”
“그래, 자네 말대로 세월이 참 빠르지.”
약 15분쯤 걸었을 때 공동묘지가 나왔다. 비에 젖은 공동묘지가 더 파랗게 보였다. 주인 없는 몇 개의 무덤들이 붉은 황토색을 드러낸 채 그동안 쏟아진 비로 더 무너져 내려가 있었다. 5천여 평 됨직한 구릉지에 비슷비슷한 무덤들이 꽉 차 있었다. 어떤 무덤은 비석까지 세워져 있었으나 어떤 무덤은 나무로 된 십자가가 세워져 있고, 또 어떤 무덤은 아무런 표시조차 없었다.
저 수많은 무덤의 주인공들은 살아있을 동안에는 그 살기 위한 몸부림을 쳤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인생의 무상함을 느꼈다.
“천덕이! 자네나 내가 죽으면 바로 여기 이 무덤처럼 흙으로 되겠지?”
“사람은 다 죽게 마련이니께유.”
“나도 이런 공동묘지에 묻힐지도 모르지.”
“지도 산 하나는 사두었지유. 하지만, 지 같은 것이야 공동묘지에 묻히든 제 소유의 산에 묻히든 무슨 관계가 있겠어유? 그러나 형님은 말이나 될 뻔한 일이에유? 마을 뒷동산 부모님 곁에 잠드려야지유.”
“그곳이나 이곳이나 땅에 묻혀 썩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그래두유.”
잠시 서서 말을 하다가 천덕이가 무덤과 무덤 사이를 계속 앞장서서 걸었다. 나는 그의 뒤를 따랐다. 공동묘지 중간쯤에서 그가 멈추었다. 잔디가 잘 입혀진 무덤이지만 무덤 앞에는 아무런 표시도 없었다.
“형님, 여기에유.”
천덕이가 나를 향해 한마디하고는 천천히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나도 그의 뒤를 따라 절을 하려 하자 천덕이가 갑자기 나의 팔을 붙들고
“형님! 어떻게 형님이 지의 부모님 산소에…….”
“아, 이 사람 천덕이! 자네 부모님도 내 부모님이나 마찬가지야. 조금 전에 자네도 내 부모님 산소에 절을 올리지 않았는가?”
“그렇지만, 어디 형과 지가 같나유?”
“…….”
나는 말없이 천덕이의 부모님 산소에 절을 올렸다. 내가 일어나자 천덕이의 얼굴이 비가 갠 하늘처럼 맑았다. 비 온 뒤 오후의 햇빛이 따갑게 비추었다. 그가 밝은 표정이 되자 나도 마음이 한결 더 밝아졌다. 그와 나는 죽음의 표본인 공동묘지를 지나 다시 마을의 뒷동산을 향해 걸었다.
“천덕이! 자네 부모님 묘소를 이장(移葬)하지 그러나, 이제 자네는 부자가 아닌가! 그만한 돈이면 자네 형편에 얼마든지 할 수 있을 텐데.”
“아이구 형님두. 지가 뭐 그까짓 돈 때문에 이장을 안 하는 게 아니에유.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유언을 했시유. 당신께서 가장 미천한 인생이라면서 어머니가 잠드신 곳에 함께 묻어 달라 하셨시유. 그러시구 당신께서 이 세상에 태어나셔서 고향을 떠나 본 적이 없으셨으니 세상이 어떻게 변해드래두 이장하지 말라구하셨시유.”
“그렇구만, 이제야 난 자네의 깊은 속을 알만하겠네.”
그와 나는 공동묘지를 가로질러 다시 뒷동산으로 왔다. 뒷동산에서 보니 마을의 옛 모습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스팔트가 깔린 길 위로는 현대식 크고 작은 자동차들이 오가고 있었다.
마을은 현대식 슬라브나 이 층 양옥으로 지어져 있었다. 그러나 유독 천덕이가 살고 있는 집만은 옛날 한국의 전통적 가옥 그대로였다. 원래 그 집은 정수 할아버지인 이 참봉의 소유였다. 나는 그 집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자네는 고집이 대단하구만.”
“왜유?”
“이 참봉 댁으로부터 샀던 집을 그대로 사용하니 말이네. 이 마을에서 자네 집만이 옛집 그대로 있잖는가?”
“사연이 많지유. 옛날 아버지가 살던 시대처럼 가난하면 모를까 지금은 살만한데 왜 옛집 그대로 두느냐는 거에유? 하기야 이 현대식 마을에서 한 귀퉁이에 자리 잡은 옛날 집 때문에 말도 많지만 죽기 전에는 그대로 둘레유.”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가?”
“그럼유. 지는 고향의 순정을 지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간직하고 싶구만유. 물론 문화나 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좋은 거지유. 그러나 인간의 인정마저 너무 야박해지면 싫어유. 그래서 그 인정을 붙들고 싶은 심정으로 두고 싶어유. 왜 거 뭐라든가. 아 참, 전통적인 것을 살리기 위한 무형 문화재로 있지만 유형 문화재도 있잖아유.”
“그래. 그렇게 보존하는 방법 있지.”
“지 생각이 바로 그거에유. 식품도 자연식품이 더 건강에 좋다두구만유. 사실 우리나라 집은 자연조건에 맞게 지었시유. 지붕의 처마 끝과 주춧돌과의 각도가 30도 내외가 되도록 하여 태양 광선이 비치도록 했지유. 이것은 동지와 하지의 정오 때의 태양 광선의 각도를 측정하여 그 평균값을 내어 적당한 햇빛을 취할 수 있도록 조절한 것이지유. 창호지만 해두유 오늘처럼 비가 올 때는 약간 늘어지고 지금처럼 맑을 때는 팽팽하게 되어 방안의 습도를 조절하는 기능을 하는 등 건강상 좋지유.”
“자네 말을 들으니 그럴 듯하네.”
“암만유, 그렇구 말구유.”
“자네, 꽤 유식하구만.”
“아이, 형님두.”
나는 그와 이야기하면서 천천히 동산을 내려왔다.
내가 승용차의 문에 손을 대자 천덕은 깜짝 놀라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형님! 가실려구유? 안돼유. 저희 집에 들어가셔유. 고향이라고 오셨는디 약주 한잔 하셔야지유. 저녁때가 다 되었으니 지도 오늘은 쉴래요.”
나는 그렇지 않아도 그냥 서울로 떠나는 게 서운했었다. 다행히 천덕이가 붙들어 주어서 그의 요구에 응했다.
“고맙네.”
“아이, 형님두.”
그와 나는 차 안에 들어가 앉았다. 나는 차를 그의 집으로 천천히 몰았다.
역시 마을의 거리에도 고향은 없었다. 사람들도 고향 사람은 천덕이네 식구를 빼고는 거의 없었다. 고향은 철저하게 변모되어 있었다.
“고향에 넓은 아스팔트가 놓이면서 땅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대유. 그러자 고향 사람들은 도시에서 들이닥친 사람들에게 집, 논, 밭, 산 마구 팔아대며 도시로 가버리데유. 그래서 모두 떠난거지유.”
“…….”
“요즈음 세상은 순식간에 변하드구만유.”
“그러게 말이네. 아까 고향에 왔을 때 냇물 곁의 아스팔트에 차를 세우고도 전혀 옛날의 고향을 찾을 수 없었네. 냇물까지도 변해버렸으니…….“
“그럼유. 그전에는 냇물에서 물고기를 잡아 끓여 먹었지유. 여름철의 밤에는 아낙네들은 위쪽에서 남정네들은 아래쪽에서 멱도 감았지유. 지금은 기름 냄새 때문에 아무 것도 못해유. 냇물이 아니라 하수구가 됐지유. 하긴 징검다리가 아스팔트로 변했으니께유.”
“그러게 말일세. 자네 집이 아니면 고향에 와도 고향이 아닌 곳을 찾아온 줄 알고 돌아가게 되겠네.”
“그럴 꺼에유.”
차를 천덕이네 집 앞에 세웠다. 그의 집은 아스팔트로 이어지는 마을의 끝 쪽에 서편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의 집 주위에는 모두 2층 양옥이었으나 그의 집만은 이 참봉네가 살던 옛집 그대로였다.
“원래 저희 집은 형님두 알다시피 초가삼칸이었지유. 그런디 지가 참봉댁의 이정수 형님네 집을 사서 이렇게 넓게 늘렀지유. 정수 형님도 서울로 가버렸으니 그 형님댁이었던 우리 집만 옛 고향의 모습이지유.”
“그렇구만.“
나는 그의 대문 앞에 서서 한참을 서 있었다. 문득 대구 육군병원에서 죽은 천수 생각이 났다.
“천수의 산소는 어디에다 썼는가?”
“서울 국군 묘지에 있지유.”
“아, 참 그렇지? 깜박했네. 내가 그만큼 무심한 사람이 되었네. 미안하이.”
“참, 형님두.”
“다음 일요일에는 천수의 무덤에 가보세.”
“그래유. 형님이 가신다면 지야 고마울 뿐이지유.”
옛 조선시대 가옥의 구조를 갖춘 대문 안에 들어서자 그의 식구들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그의 아내가 고1인 장남과 중2인 딸아이를 앞세우고 환하게 웃었다.
그녀의 모습은 비 갠 하늘의 태양처럼 웃음꽃이었다.
“검사님 오셨구만유.”
아이들의 어머니가 인사를 하자 아이들도 내게 인사를 했다.
“불청객입니다.”
“아유, 검사님두 별말씀을 다하시네유.”
“형님과 뒤뜰에 가 있을께.”
“알았시유.”
천덕의 순박한 아내가 순정을 앞세우고 술상을 준비하기 위해 종종걸음을 쳤다.
앞의 30여 평 정원에는 보기 좋게 손질된 10여 그루의 향나무가 있었다. 잔디가 잘 가꾸어진 곳에는 정원용 나무와 돌들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정원은 집 전체와 어울려져 옛 전통을 풍기고 있었다.
뒤뜰에는 10여 평의 땅에 토마토, 오이, 고추 등속이 있었는데 커다란 포도 줄기가 땅에서 지붕까지 올려져 있었다. 바로 그늘진 그 아래 평상이 놓여 있었다. 그와 나는 그 평상에 자리를 잡았다.
바람이 솔솔 불어와 시원했다. 비가 개면서 들리기 시작한 매미 소리가 자연의 교향곡처럼 공간에서 맴돌고 있었다.
잠시 후 그의 아내가 술상을 차려왔다.
텁텁한 막걸리였다.
“형님은 양주를 좋아하실 텐데유.”
“아닐세, 고향에서 막걸리를 먹어야 격에 맞네.”
“암만유, 그렇구말구유.”
그와 나는 주거니 받거니 하며 술잔을 기울였다. 주전자에서 콸콸 쏟아지는 막걸리가 대포 잔에 자리를 잡자 그 술잔 속에 고향의 옛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어린 시절로부터 내가 대학 진학을 위해 고향을 떠날 때까지의 추억이 현실처럼 되살아나고 있었다.
내 친구 천수와 그의 동생 천덕은 초등학교를 그만둘 만큼 가난했었다.
나와 천수가 초등학교 6학년 때였고 천덕은 3학년 때였다. 그때는 ‘보릿고개’란 대명사로 우리의 가난을 표현했지만 천덕이네는 그 가난이 더욱 심했다.
그에 반하여 내 친구 정수의 할아버지인 이 참봉네와 우리는 꽤 잘 사는 편이었다. 도시락을 못 싸간 천덕과 천수는 정수와 내가 도시락을 열고 먹으려면 가까이 와서 쳐다보곤 했다. 그러면 나는 나의 도시락을 반만 먹고 천덕에게 주었고 정수는 역시 반을 천수에게 주었다. 두 형제는 나에게나 정수에게나 체면을 차리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다정하게 학교를 함께 다녔다.
나와 천수, 정수는 나이가 같았으므로 학교를 오고 갈 때의 잔심부름은 천덕이가 맡았다. 그래도 천덕이는 우리 틈에 끼어드는 것만으로 좋아했다. 학교는 바로 마을의 가운데에 있었으므로 우리 넷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학교가 끝나는 즉시 사철 학교에서 놀곤 했다.
이 참봉네는 논이 많았다. 천석꾼으로 우리 군내에서 소문이 난 집이었다. 정수의 할아버지 이 참봉은 참봉 벼슬을 한 옛 양반 체통을 그가 동네를 떠날 때까지도 유지하고 있었다. 이 참봉네가 모를 심는 날에는 온 마을이 잔칫날과 같았다. 마을의 모든 일꾼은 이 참봉네의 일이 있으면 그의 일꾼이 되었다. 천수의 아버지 박덕보 씨는 저녁을 먹고 나면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내일 참봉 나으리네 모심으로 오시래유. 알았시유?”
하고 다녔다. 그것도 못미더우면 동이 트는 새벽에 다시 한번 온 마을을 돌아다녔다.
“참봉 댁 나으리 네서 아침 드시러 오시래유.”
“지금 곧 가겠네.”
하고 일꾼의 집에서 말하면 언제나 그는
“암만유, 그렇구 말구유.”
하는 것이었다. 이 참봉네가 일하는 날이면 그는 늘 ‘안 되유’ ‘싫어유’란 말을 쓸 줄 몰랐다. 누가 뭐래도 ‘암만유, 그렇구 말구유’를 버릇처럼 토해냈다. 그래서 이 말은 그의 몸에 배어들어 있었다. 모를 심는 일꾼보다 밥을 얻어먹으려는 아낙네와 조무래기들로 더 붐볐다. 그래서 참봉네는 한 끼의 밥을 위해 큰 가마솥으로 두 번씩이나 밥을 해야 했다. 그러나 참봉네에 큰일이 없거나 마을의 다른 집에서도 잡일이 없는 경우에는 천수네 식구들은 배가 고파 쩔쩔매는 것이었다.
그날도 마을에는 일꾼을 사서 일할만한 일거리가 없었다. 나는 상구 형이 보다가 펼쳐 놓은 채 둔 중학교 영어책을 의미도 모르면서 구경하고 있었다.
그때 상구 형은 중학교 2학년이었는데, 사춘기가 막 시작된 때여서 외출하려면 여러 번 거울 앞에 서곤 했다. 초등학교를 마을에서 졸업한 상구 형은 동네에서 약 1km쯤 떨어져 있는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고등학교에 병설된 전체 학년이 6학급의 학교였다. 그 시절 그는 주로 그 중학교 동네에 가서 그의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고 있었다. 가끔 우리 동네에 와서 여자에 관한 이야기로 수군대기도 했다. ‘펜팔’, ‘여자친구’ 등의 단어가 형의 친구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그날도 상구 형은 중학교 동네로 놀러 가고 집에는 없었다. 내가 글씨도 모르는 영어책의 그림을 보고 있는데 천덕이가
“상일형!”
하고 불렀다.
“들어와!”
나는 책을 본 채 말했다. 그 때 어머니가 부엌에서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상일아! 윗말 논에 아버지 일하는 곳까지 이 점심 좀 갖다 드리고 오너라.”
나는 못마땅해서 찌푸린 표정이었다.
아버지가 일하는 윗말 논까지는 상당한 거리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문득 옆의 천덕을 보았다.
“천덕아! 너 내 대신 우리 아버지 점심 좀 갖다드리고 올래?”
“그럴 게. 갖다오면 나 밥 좀 줘. 형.”
“그래, 걱정마.”
그가 땀을 펄펄 흘리며 갔다 오자, 어머니는 말없이 그에게 소복이 쌓아 올린 밥상을 내밀었다. 반 이상이 보리밥이었지만 그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그는 숟갈을 들자 입이 찢어질 듯 퍼 넣었다. 한참을 먹더니 번 듯 생각나는지 자기형인 천수를 찾았다.
“천수형은 배고플 텐데…….”
“너나 먹어. 천수는 내가 데려다 같이 먹일 테니까.”
“…….”
그는 늘 배가 고플 때면 우리 집 주위를 맴돌았다. 그럴 경우마다 나는 그를 손짓으로 불러서 밥을 먹이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의 어머니는
“어린 것이 얼마나 배가 고프면…….”
하고 혀를 찼다. 사실 동네에서 굶지 않고 먹고 살만한 집은 이 참봉네와 우리 집뿐이었다. 그래서 거지들도 이 참봉네와 우리 집 대문을 제일 많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가끔 거지들을 마당의 멍석에 앉혀 놓고 밥을 먹고 가게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한동안 그 멍석에 앉지를 못했고 밥을 먹을 때도
“어머니! 이 밥그릇 거지에게 밥 담아준 거 아니지우? 숟갈도유?”
하고 말했다. 천수나 천덕이가 우리 집에서 밥을 먹는 것은 좋았지만 거지는 싫었다. 나와 동갑네인 천수는 물론 그의 동생 천덕은 내 말이면 죽는시늉까지 했다. 그들에게 나와 정수는 거의 신적 존재였다.
내가 6학년 2학기에 들어선 지 채 한 달도 못 된 때였다. 언제나 학교 갈 시간이면 우리 집까지 와서 나의 책보를 들어주던 천덕이가 보이지 않았다. 이 참봉네의 정수에게도 갔으나 그날은 천수가 오지 않았다고 했다.
나와 정수는 갑자기 외로움 같은 것을 느꼈다. 우리는 천수네 집으로 가보았다. 거의 쓰러져 가는 오막살이집의 마루에 앉아 있는 천수 아버지 덕보 씨가 울고 있었다. 그는 우리를 보자 고개를 돌렸다.
“천수 있어유?”
“방안에 있나부다.”
입을 열었던 내가 마루 위로 올라가 방문을 열었다. 부엌의 딸린 단칸방에 천수 어머니가 누워서 신음하고 있었으며 그녀의 양옆에는 천수와 천덕이가 훌쩍거리고 앉아 있었다. 나는 그때서야 천수 어머니의 병세를 실감했다. 동네에서는 몇 년 전부터 천수 어머니가 폐병쟁이라면서 떠들고 있었다. 동정심이 많은 정수의 할아버지 이 참봉이나 나의 부모는 물론 정수의 부모도 천수네 집에 가는 것을 몹시 싫어하던 것도 그 자리에서 느낄 수 있었다. 윗목에는 방금 닦아 낸 듯한 피에 젖은 걸레가 놓여 있었다. 방안의 구석구석에 가난이란 놈이 슬프게 붙어 있었다.
나는 천수 곁으로 가까이 가서 그의 한 손을 말없이 꼭 쥐여주었다. 그가 이슬 맺힌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때 천수 어머니가 콜록거리며 기침을 하면서 누운 자세에서 엎드리는 순간 피 섞인 가래가 방바닥을 적셨다. 그러자 천덕이가 윗목의 피 묻은 걸레로 닦아냈다. 내 곁의 정수가 내 귀에 대고
“상일아! 천수 어머니 쪽으로 가까이 가지마. 폐병 옮아.”
하고 속삭였다. 나는 등에 식은땀이 솟았다. 얼른 일어났다.
“우리 그만 갈란다.”
나는 천수를 향해 한마디하고 정수와 일어났다.
고개를 푹 숙이고 한숨만 쉬고 있는 천수 아버지 덕보 씨가 온몸에 걱정과 우울을 뒤집어쓰고 앉아 있는 모습이 가련했다. 그는 이백 근이나 실히 될 거대한 체격이었다. 배는 남산만하고 시커먼 눈썹 가에는 왕방울만한 혹이 우습게 매달려 있었다. 거기다가 시옷(ㅅ)자로 난 수염은 채풀린 같은 담담한 서글픔까지도 지니고 있었다. 그가 웃을 때는 호박꽃처럼 비짓이 웃었다. 웃음소리는 백치 아다다처럼 반 굴림소리를 내었다.
그가 거리를 걸어 다닐 때는 배꼽이 한참이나 보이도록 굇말을 늘어뜨리고 다니는 버릇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배불띠기’ 사장이라고 불렀다. 그가 골목을 지나면 아이들이
“배불띠기 사장유? 배불띠기 사장유?”
하고 놀려도 그 함박꽃 같은 웃음을 비짓 웃을 뿐 그만이었다. 어른이나 아이들에게 사시사철 성 한번 내본 적이 없는 그였다. 그저 누가 뭐라고 하면 ‘암만유, 그렇구 말구유’ 이 한 마디로 그의 모든 마음을 표현할 뿐이었다. 그런 그가 너무도 처량하게 앉아 있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천수 어머니가 쓰러진 날 이후 천수와 천덕은 초등학교마저 그만두었다.
뒷동산의 낙엽송들이 노오랗게 물들어 가면서 한 잎 두 잎 떨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떨어져 내린 낙엽이 뒷동산에 쌓이면서 가을바람에 흩날리던 날, 천수 어머니는 못 먹고 못 입은 채 세상을 떠났다.
아무런 대가도 없이 동네의 좋은 일, 궂은일을 모두 맡아 하면서도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았던 덕보 씨, 그토록 가난에 찌들어 살면서 못 먹고 못 입으면서도 언제나 얼굴에 그 특유의 함박꽃 웃음을 잃지 않았던 덕보 씨가 공동묘지에 천수 어머니를 묻고 서럽게 울었다.
산역을 맡았던 마을 사람들이 그 공동묘지를 다 떠난 뒤에도, 해가 지고 어둠이 그녀의 죽음처럼 쓸쓸히 찾아온 뒤에도 그는 그 묘지 앞에 앉아 오래오래 울었다.
그날 그는 목이 쉬도록 울었다. 천수와 천덕이도 마찬가지였다. 천수 어머니가 죽은 지 닷새가 지나도 천수네 식구는 통 외출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외출을 시작한 것은 천수와 그의 아버지 덕보 씨였다. 아버지와 아들은 함께 일하러 다녔다.
전처럼 덕보 씨는 마을에서 품삯 일을 했으나 천수는 자신이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그 학교의 사환이 되었다. 이 참봉이 교장에게 찾아가 천수네의 딱한 사정을 이야기 한 것이다. 천수가 학교의 사환으로 결정되던 날 덕보 씨는 이 참봉네 집으로 갔다.
대문에서 정수를 만나자
“도련님! 고마워유, 고마워유.”
를 연발했다.
대문 안에 들어선 그는 마루 위의 이 참봉에게 연실 허리를 굽신대면서 역시 ‘고마워유’를 연발했다. 이 참봉은 정수인 손자와 며느리를 데리고 사는 부잣집이었다.
정수 아버지는 6.25 때 서울 ㅅ대 의대를 다니다가 학도병으로 나가 전사했다. 이 참봉은 그 많은 농사일을 머슴 하나만을 두고 처리해 나갔지만, 웬만한 일은 덕보 씨에게 맡기곤 했다.
덕보 씨는 원래 그의 아버지가 백정이었다. 그래서 마을에서 약 300여 미터 떨어진 도살장 옆에 살고 있었다. 그 도살장에서는 늘 소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 소 울음소리는 장날 아침에는 더 많이 들렸다. 그곳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살았던 덕보 씨는 우리 마을의 5일 장이 상설 시장으로 바뀌던 시절에 그 도살장도 부르도저에 밀려나 공설 운동장으로 변해버리면서 마을로 들어와 살게 되었다. 그 도살장이 없어졌다는 것은 바로 덕보 씨의 직업이 없어졌다는 것을 뜻했다.
그는 장날 아침이면 도살장에서 그의 아버지처럼 소를 죽이면서, 돼지를 죽이면서 살았다. 조상 적부터 내려온 백정이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네들의 직업이었을 뿐이었다.
세상 사람들이 ‘백정’이니 ‘피쟁이’니 하면서 마치 그들은 인정사정도 없고 파렴치한 성질로 생각하는 경우도 없지 않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피상적인 것에 불과했다.
그들은 생각보다 더 순정이 있고 인정이 많았다. 그러기에 그들의 마음은 단순하고 순진했다.
덕보 씨가 마을의 끝머리에 그나마 오막살이라도 터를 잡게 된 것은 오직 이 참봉 덕분이었다. 그가 그의 밭 한 귀퉁이를 집터로 선뜻 내준 것이었다. 이 참봉은 깐깐한 구한말 벼슬아치답지 않게 동정심이 많았다. 그도 전에는 칼날 같은 성격의 소유자였다. 모를 심을 때면 독수리 같은 눈초리로 논두렁을 왔다 갔다 하면서 조금이라도 일을 등한시하는 일군들이 있으면 허리께에 가 있는 뒷짐 진 한 손을 번개같이 앞으로 내질러 상대방을 가리키면서
“요, 놈팽이!”
하고 호통을 쳤다. 그러면 일하던 사람들은 꼼짝도 못했다. 동네에서는 그를 무시하고 생활하기란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6.25 때는 굶주린 마을 사람들을 먹여 살렸다. 결국 우리 마을은 음으로 양으로 이 참봉의 신세를 지며 살았다. 하지만 우리 집만은 예외였다.
우리 집은 옛날부터 인삼을 재배해 왔는데 그런대로 경제적인 면에서는 이 참봉네와 거의 비슷했다. 다만 이 참봉네가 논농사를 주로 한데에 반하여 우리는 식량 거리를 위한 논농사와 얼마 안 되는 밭농사, 그중에서도 인삼재배가 주종을 이루었다. 학교에 가면 나와 정수 이외는 어느 아이나 옷들은 모두 꿰맨 것이었다. 특히 무릎이나 팔꿈치 부문은 어떤 아이의 옷이든 간에 꿰맨 모습의 일색이었다.
벼슬아치를 했던 이 참봉은 언제나 마을의 안팎에 관한 일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간 데 비하여, 나의 아버지는 참봉네의 하는 일에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식이었다. 그것은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이 참봉이 웃어른이기도 했지만, 아버지의 성격에도 그런 태도가 몸으로 배어 있었다.
이 참봉의 그 꼬장꼬장한 옛날의 성격이 특히 6.25 후에는 전혀 달라졌다. 그것은 아들인 정수 아버지의 죽음 때문이었다. 그의 아들을 6.25 때 전사해서 한 줌의 재로 돌아왔다.
그의 아들이 돌아오던 날 마을은 온통 슬픔에 젖어있었다. 이 참봉을 닮아서 건장하고 미남형인 그의 아들은 한 사병의 목에 걸린 하얀 거즈(Gaze)에 의해 매달려 있는 흰 상자 속에 잠들어 있었다. 이 사병을 데리고 온 중사계급의 군인이 이 참봉에게 거수경례를 부치면서
“선생님의 아들은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거룩한 전사를 했습니다.”
했다. 순간 이 참봉은 마루 위에 선 채로 한동안 까닥도 하지 않았다. 그는 넋을 잃어버린 사람이 되어 있더니 뒤이어 그 자리에 펄썩 주저앉았다. 그때의 광경을 덕보 씨는 가끔 동네의 어귀에 있는 정자에서 아이들을 모아놓고 옛이야기 식으로 말할 때가 많았다.
“그때 이 참봉 어른의 정신은 나가버렸시유. 정수 도련님도 그때는 댓살 정도의 어린애였지유.”
덕보 씨는 우리가 모르고 있는 이야기를 할 때는 더욱 신이 나서 어깨를 들썩거리며 떠들어댔다.
그날 펄썩 주저앉은 이 참봉이 잠시 후 겨우 내 뱉은 소리는
“이유야 어떻든 애비보다 먼저 죽는 놈은 불효야.”
라는 것이었다. 부엌의 문고리를 잡고 울먹이던 이 참봉의 며느리가 끝내 울음보를 터뜨렸다. 그녀는 어린 정수의 손을 꼭 쥐고 있었다. 죽음의 의미도 모르던 정수가 어머니를 따라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래서 정수는 어릴 적부터 어머니와 할아버지 그늘에서 자랐다. 이 참봉은 그의 아들을 그의 아내 무덤 곁에 묻게 했다. 그곳은 들판을 지난 마을의 구릉지대로 된 산이었는데, 이 참봉은 그의 아내와 아들이 누워있는 앞산을 황혼이 질 때면 언제나 물끄러미 바라보는 버릇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황혼 때의 이 참봉은 더욱 쓸쓸해 보였다.
내가 대학교 2학년에 다니기 시작한 봄부터 우리 마을에도 전국적인 부동산 경기가 회오리바람처럼 휩쓸기 시작했다. 하루가 다르게 땅값이 뛰어오르고 있었다. 마을 주변에 하나, 둘 공장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내가 천수, 천덕, 정수와 냇가에서 고기를 잡아먹을 수 있었던 것은 대학교 1학년의 여름방학 때가 마지막이었다. 나는 체를 들고 냇가의 가장자리의 우거진 풀숲을 다니면서 잔고기를 잡았다. 물밑으로 살살 이동한 후 체를 대고 그 체 안으로 들어가도록 풀숲을 툭툭 치면 새우, 작은 피라미 등속이 체 안에 들어왔다. 그때마다 천덕은 빙그레 웃고 세숫대야에 고기를 받았다.
한 편에서는 정수와 천수가 작은 그물을 이용하여 고기를 잡았다. 그렇게 잡은 고기는 우리 집이나 정수네 집으로 가지고 갔다. 그러면 우리 어머니나 정수 어머니는 풋고추 등의 양념을 적당히 넣어 끓여주곤 했다. 그 핑계로 천수와 천덕은 배가 터지도록 밥을 얻어먹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학 2년 때의 여름에 똑같은 냇가에서 똑같은 방법으로 고기를 잡아 정수네 집으로 가져갔지만, 그 고기들을 끓인 국물을 한 숟갈도 먹을 수가 없었다. 기름 냄새 때문이었다. 냇물의 모습은 그대로였지만 이미 냇물은 새로 들어선 공장의 폐수로 더럽혀져 있었다.
그즈음, 마을은 점점 도시화로 변하기 시작했다. 새벽이면 일터로 나가던 마을의 젊은이들은 늦게 일어나 새로 생겨난 다방에서 모닝커피를 마시면서 다방의 아가씨들과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들은 한마디 노닥거리면서 아가씨의 손을 잡고 한 마디 노닥거리면서 아가씨의 엉덩이를 어루만지고, 또 한 마디를 노닥거리면서 아가씨의 다리를 쓰다듬었다. 고향 사람들은 농사가 지겹다고 고향을 버리고 떠나기 시작했다. 그들이 떠나는 숫자만큼 비례해서 술집과 유흥장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끝까지 고향에 남았던 덕보 씨네와 우리 집, 그리고 정수의 할아버지 이 참봉네는 고향 땅을 지키고 땅 투기에 말려들지 않더니, 어느 날 갑자기 이 참봉네에서 고향을 버리는 크나큰 비극이 일어났다.
원래 정수의 어머니는 정수를 낳았지만, 새색시처럼 아름다웠다. 그녀의 모습은 정수가 대학교 2학년 때까지만 해도 별로 변함이 없었다. 고향 마을에 자가용이 붐비기 시작하면서 많은 사람이 사장이란 이름으로 드나들었다. 어느 유행가의 가사처럼 앞을 보아도 사장이요, 뒤를 보아도 사장이었다. 그런 많은 사장 중의 하나가 임윤석이었다.
그는 서너 명의 부하 직원들을 데리고 양지읍에 나타났다. 그리고 갖은 유혹과 수단 방법을 총동원하여 이 참봉네 땅을 투기 군들에게 소개했다. 그는 소개비만도 1~2억을 거뜬히 받아 챙겼다.
말이 사장이지 사실은 회사도 아닌 부동산 소개업자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서울에 첩이 세 명이나 있었다. 그가 정수의 어머니에게 눈독을 들인 것은 이 참봉네의 부동산을 현 시가보다 두 배로 넘겨준 날이었다. 좀처럼 남자들이 있는 곳에는 잘 나타나지 않는 그녀를 임윤석이가 본 것이었다. 이 참봉과 임 사장은 매매가 순조롭게 된 것에 만족하며 이 참봉네 마루에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물론 그의 부하 직원들도 이 참봉의 술잔을 받았다. 이 참봉은 땅이 갑자기 현찰로 바뀌자 부자가 되었다는 자신을 실감했다. 그도 세상의 유행에는 나약한 존재에 불과했다. 하지만 며느리가 재가하는 것만은 반대한 그였다. 이유는 정수를 키우면서 인생을 견딜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그날 정수는 대학교 2학년 1학기 중간고사가 끝나는 날이어서 오랜만에 서울에서 집에 내려왔다.
바로 옆 가게에서 술과 안주를 배달시켜 술상을 벌린 일행은 왁자지껄 떠들면서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었다. 정수 어머니는 그동안 자기가 쓰는 건넌방에 있다가 ‘어머니’하고 부르면서 들어 온 정수를 향해 반가움으로 뛰어나왔다. 곧이어 그녀는 정수에게 점심을 차려주기 위해 마루를 지나 부엌으로 갔다. 그 모습을 유난히도 지켜보는 사람이 임 사장이었다.
그는 정수 어머니가 건넌방에서 나올 때부터 부엌을 들어갈 때까지, 다시 부엌에서 밥상을 들고 건넌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음흉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여인의 몸매에 대한 전체적인 아름다움과 특히 풍만하게 흔들리는 앞가슴에서 그는 심한 이성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사장님! 뭐하세요? 약주 드셔야죠!”
넋을 잃고 있는 그를 보고 그의 직원 한 사람이 입을 열자, 그는 얼떨결에
“그러지!”
하고 마지못해 술을 마셨다. 임 사장의 머릿속에는 처음 본 정수 어머니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내 저 여자를 반드시 내 것으로 만들어야지.’ 그의 마음은 강하게 그녀를 향해 솟구치고 있었다.
임 사장에게는 술자리가 갑자기 뜨거워짐을 느꼈다. 그날 이후 그는 양지읍을 다람쥐 제 구멍 드나들 듯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전에는 부하들을 보내서 결정적인 순간에만 나타난 그가 양지읍을 대상으로 하는 부동산 문제에 직접 나선 것은 그의 검은 속셈 때문이었다. 그의 농간으로 양지읍의 땅은 그 주인이 서서히 바뀌어 가기 시작했다. 고향 사람들은 엄청난 현찰을 움켜쥐고 신바람이 난 채 도시를 향해 고향을 등져갔다. 옛날 일제시대에는 그들의 선조들이 못 먹고 못 입은 채 고향을 뒤에 두고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만주로, 간도로 돌렸다. 뒤돌아보며 한 많은 눈물을 뿌리면서 떠나갔다.
그러나 부동산 투기 붐으로 변신 되어 가는 고향 사람들은 고향을 떠나는 것이 무척 자랑스러운 양 입 언저리가 찢어질 듯 웃으며 떠나갔다. 그러기에 그때까지도 고향에서 생활을 꾸려나가고 있는 사람들의 어깨는 움츠려지고 눈동자는 힘이 없었으며 고개는 축 처져 들었다. 그러나 고향을 떠나는 사람들의 어깨는 짝 벌어졌고, 목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으며, 눈동자는 희망의 빛으로 반짝거리고 있었다. 고향의 변화를 가장 열심히 부추긴 사람은 임 사장이었다.
그는 양지읍의 도면을 복사해서 들고 다니면서 도시 계획과 공장 예정지 등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찍어 내렸다. 그 앞에서는 군청 직원도, 마을 사람들도 굽실대고 있었다. 임 사장의 출현으로 인하여 양지읍의 실질적 세력을 쥔 사람은 이 참봉에게서 임 사장에게로 바뀌었다. 이 참봉은 양식이 될 극히 일부의 전답만을 남기고 다 정리한 후 조용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고향은 임 사장의 머릿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정수 어머니를 유혹하기 위해서 그녀를 직접 공격하지 않았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 그녀에게 그는 우회 전법을 이용했다. 그 대상이 바로 마을에서 정수 어머니와 같은 처지에 있었던 안창만이 어머니였다. 창만이 어머니도 정수 어머니와 비슷한 사연으로 남편을 잃었다. 그래서 고향 마을에서는 유일하게 두 과부끼리 절친했다.
하지만 정수 어머니와 창만 어머니는 성격이 전혀 달랐다. 정수 어머니가 조용한 성격에 말이 없고 창만네 집 외는 외출이 없었지만, 창만 어머니는 활달하고 누구 하고나 농담을 주고받으며 놀러도 잘 다니는 성격이었다. 임 사장은 바로 창만 어머니의 그런 점을 이용했다. 그는 창만 어머니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사모님! 코피 한잔 해요!”
“아, 양지읍만 아니라 우리 군내가 다 아는 임 사장과 코피를 마시면 저의 영광이 지유.”
“자, 그럼.”
그녀는 쉽게 임 사장의 자가용에 올랐다. 둘은 그날 코피로 끝나지 않았다.
코피에서 저녁 식사로, 저녁 식사에서 맥줏집으로 이어져 갔다. 맥줏집에서 얼큰하게 취한 둘은 다시 카바레로 가서 밤늦게까지 춤을 추었다. 그리고 춤추던 곳에서 나와 근처의 고급여관으로 들어갔다.
창만 어머니는 인생을 적당히 즐기자는 투였다. 그 여관에서 임 사장의 간절한 부탁이 그녀의 육체적 굶주림을 채워줌으로써 약속되었다. 그녀는 정수 어머니를 임 사장에게 붙여주는 조건으로 백만 원의 소개비를 받았고, 다시 정수 어머니가 용돈으로 사용하도록 전해주는 조건으로 백만 원의 돈을 받았다. 하지만 창만 어머니는 정수 어머니 몫인 그 백만 원 돈도 자신이 챙겨 가졌다. 대신 그녀는 정수 어머니에게 찾아가는 횟수가 엄청나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정수 어머니! 참신한 사람 하나 소개할 게유.”
“아니? 창만이 어머니, 그 말같이 않는 소리 하지 마세유.”
그녀는 펄펄 뛰면서 더 이상 말도 못 꺼내게 했다. 다음에 창만 어머니는 고급 화장품 등속을 가지고 가서 내놓으면서 넌지시 운을 띄었다.
“정수 어머니! 인생은 내 것이라는 말이 있지유. 지금 시상에 아들도 다 필요 없시유. 내 팔자 내가 고쳐야 하는 거에유. 혼자 수절해 봤자 누가 알아나 주는가유. 다 소용 없이유.”
“참, 창만 어머니두.”
두 번째 말을 꺼낼 때는 처음보다 훨씬 누그러졌다. 그리하여 세 번, 네 번, 다섯 번 ……. 창만 어머니의 중매 노릇은 끈질기게 계속되었다.
“정수 어머니, 우리 몸은 늙어지면 그만이유. 죽어봐유. 관에 넣어 땅속에 들어가면 그만이지유. 썩은 다음에는 흙이 될 터인데 누가 거들떠나 본다유.”
“하긴 창만 어머니 말에두 일리가 있지유.”
정수 어머니의 말은 얌전해지고 부드러워졌다. 그 순간 창만 어머니는 결정적인 기회임을 포착했다. 연락을 받은 임 사장은 다시 창만 어머니에게 활동비 백만 원을 건네주었고, 값비싼 보석을 정수 어머니에게 전달하도록 했다.
임 사장은 쉽게 돈을 벌었던 만큼 쉽게 돈을 쓰고 있었다. 그날도 창만이 어머니는 정수 어머니를 유혹하고 있었다.
“정수 어머니! 제가 선물하나 드릴께유.”
“언제나 말벗이 되어주고 신세만 지는 디 무슨 선물이에유.”
“아유, 정수 어머니! 우리 동네에서 지난날에 이 참봉 어른의 신세 안진 사람도 있어유?”
“다 옛날 이야기에유.”
“사람이 은혜 모르면 그게 어디 사람이에유?”
“…….”
“자, 이거에유.”
창만 어머니는 선물을 포장한 채로 내밀었다.
“그만 둬유.”
정수 어머니는 선물을 창만 어머니 무릎 쪽으로 밀었다.
“참, 정수 어머니는…….”
다시 선물이 정수 어머니 쪽으로 밀려갔다. 그 선물이 다시 창만이 어머니 쪽으로 밀려오려는 순간 그녀는 재빨리 일어서며 말했다.
“오늘은 이만 갈께유. 우리 내일 ‘20세기 다방’에서 코피나 한잔 해유.”
창만 어머니는 미련 없이 정수 어머니 방을 나갔다. 그녀가 나가버리자 정수 어머니는 호기심이 났다. 조심스럽게 선물을 끌러 보았다. 왠지 마음이 떨렸다. 그녀의 마음이 떨리자 손이 바르르 떨렸다. 가슴이 형용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에 의해 저려오듯 떨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떨림이 그녀의 운명을 바꾸리라고는 그녀 자신도 모르고 있었다.
그녀가 선물 포장을 끌러 보았을 때 자신도 모르게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그녀는 그 선물 앞에서 여인의 사치적 본능을 들어내고 있었다. 눈이 부시도록 빛나는 난생 처음 보는 보석 반지!
그녀는 황홀했다. 돈이 많았던 시아버지 이 참봉이지만 그녀는 바깥출입이 없었으므로 손에 용돈을 쥔 적이 없었다. 그저 집안에서 밥해 먹고, 빨래하며 아들인 정수와 시아버지인 이 참봉의 음식 시중을 들어주면서 그 나이를 살아온 게 그녀의 인생이었다. 한마디로 말하면 그녀는 순진한 여인이었다. 그런데 그 순진성은 오히려 그 선물 앞에서 더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녀는 생전 처음으로 받아본 선물을 가슴에 안았다. ‘창만 어머니 고맙구만유.’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다음 날 창만이 어머니가 다시 찾아왔다. 그녀는 신바람이 나 있었다.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돈이 들어왔고 그에 따라 신명이 났다.
“어제 그 선물 마음에 들었어유?”
“고마워유.”
정수 어머니는 그렇게 말을 해놓고 부끄러움에 얼굴이 빨개졌다. 하지만 그녀는 현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진하고 단순한 여자였다. 자신의 마음을 먼지만큼도 속일 줄 모르고 양심으로 살아가는 여자였다.
“정수 어머니! 왜 전에 내가 말한 임 사장이라구 있지유? 그분이 코피나 한잔하자는데…….”
“하지만 남이 보면…….”
이미 정수 어머니의 마음은 흔들리고 있었다.
“아유, 정수 어머니도 그까짓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나유?”
창만이 어머니가 일어나면서 정수 어머니를 잡아끌었다. 사실 정수 어머니는 정수 하나만을 낳아 길렀을 뿐 남편을 일찍 잃었으므로 외로운 인생이었다. 그대로 늙어버리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그녀의 허전한 가슴을 이슬비처럼 적시는 것이었다.
그녀는 못 이기는 척하며 따라나섰다.
20세기 다방에 들어섰다. 임 사장은 두 여자가 나타나자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 점잖은 어조로 입을 열었다.
“어서 오십시오.“
정수 어머니는 창만 어머니 뒤로 몸을 숨기려 하였다. 그러자 창만 어머니가 재빨리 임 사장 앞의 빈자리에 앉아 버렸다. 공간에 떠 있는 꼴이 된 정수 어머니는 홀로 서 있게 되었다. 이때 임 사장이 창만 어머니가 앉은 옆의 빈자리를 가리키면서
“앉으세요.”
했다. 세 사람이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창만 어머니가 먼저 말했다.
“정수 어머니! 이분이 제가 전에 이야기한 임 사장이에유. 아시겠지만 정수네 땅도 임 사장님이 팔아 주셨지유.”
정수 어머니가 약간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임 사장이 정중하게
“임윤석입니다.”
했다. 그러자 창만 어머니가 끼어들었다.
“사실은 지난번에 준 보석 반지도 임 사장께서…….”
정수 어머니는 그 보석의 출처를 어렴풋이 느꼈지만, 사실을 알게 되니 얼굴이 빨개졌다. 그녀는 가까스로
“아유, 고맙다는 인사도 못 드렸이유.”
했다.
“원,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그까짓 반지 하나 갖고 그러세요.”
“…….”
“저는 홀아비입니다. 너무 외로워서 지난번에 이 참봉네의 땅을 소개할 때 정수 어머니를 보고 첫눈에 그만…….”
이때 창만 어머니가 끼어들었다.
“과부와 홀아비가 만났는디, 뭐 흉 될 게 있어유?”
“아, 그럼요.”
임 사장이 기분 좋은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저, 잠깐 볼일이 있어서유.”
창만 어머니가 다른 곳에 바쁜 볼일이 있는 것처럼 서둘러 나갔다. 그녀는 나가면서 한마디를 잊지 않았다.
“서로 진심을 털어놓고 이야기 하세유.”
그녀는 자신의 몸을 준 임 사장에게 아무런 질투나 시기를 느끼지 않고 정수 어머니를 그에게 붙여주려 했다. 그녀가 임 사장에게 몸을 허락한 것은 그녀의 성격이었다. 그리고 정수 어머니를 임 사장과 어울리게 하려는 것은 그녀의 세상에 대한 반항심이었다. 고향 마을에서 정수 어머니와 자신이 과부 신세가 된 것은 세상이 못된 탓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런 생각으로 그녀는 적당히 세상에 대하여 반항하고 적당히 즐기는 생활을 했다. 그녀는 임 사장과의 단 한 번의 즐거움으로 자신의 마음을 닫아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정수 어머니를 임 사장에게 붙여주려 한 것은 임 사장으로부터 중매료도 욕심 있었지만 정수 어머니가 이 세상을 끝까지 홀로 산다는 것이 못마땅했다.
그녀는 가끔 생각했다. ‘흥, 지가 무슨 춘향이 후손이라고. 그래봤자 지만 불상해지지 어느 연놈이 알아줄까 봐.’ 그녀는 임 사장이 아니라도 마음만 바꿔 먹으면 얼마든지 자신의 생활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수 어머니는 다르다는 생각이었다. 그 다르다는 생각이 정수 어머니를 임 사장에게 오기로라도 붙여주려는 마음을 더욱 불러일으켰다. 그런 창만 어머니이기에 그녀는 20세기 다방을 나와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을 향할 수가 있었다.
그녀가 중3 때 집을 나가버린 아들 창만이를 찾지 않는 것도 그녀의 특수한 성격이었다. 창만이가 비록 어린 나이로 집을 나갔지만, 그 일단의 책임은 자기 스스로 져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므로 일단 집을 나간 이상 자기 스스로 생활을 해결해야 하고, 그의 생활이 불행하게 되든 행복하게 되는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운명이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아들이 스스로 돌아오면 받아는 주겠지만, 고생 좀 해 보라는 식이었다. 그녀는 비좁은 버스에서 어린아이가 서 있어도 자리에 앉게 하지 않았다. 너무 어린이를 위해 주면 자립심이 없어진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남자관계만은 자기처럼 적극적인 성격이 아닌 한 중매가 필요하다는 생각이었다.
정수 어머니의 재혼을 적극 발 벗고 나선 것도 그런 그녀의 마음에 깔린 성격 탓도 있었다.
늘 남자를 상대해 본 사람은 남자에게 깊이 빠지지 않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에는 다를 수가 있는 것이다. 마치 온실에서 자라난 꽃들이 온실 밖으로 나오면 비바람에 더 약한 것처럼 정수 어머니도 이 참봉이란 가정에서 곱게만 생활했기에 남자에게 약했다. 그녀의 마음이 약해진 것만큼 정수 어머니는 임 사장에게 끌려가고 있었다. 원래 임 사장의 생김은 미남형인 데다가 여자를 후려내는 천부적인 말재주와 솜씨가 있었다.
그는 여자란 그 상대가 이 세상의 누구라도 유혹하는 데 자신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의 생각은 여자란 선물 공세, 돈, 그리고 자기처럼 잘생긴 남자의 모습이면 누구나 다 넘어온다는 가치관을 갖고 있었다. 거기에다가 따스한 말로 다독거려 주고 앞날에 대한 여자의 생각을 그녀가 꿈꾸는 대로 설계해서 이야기해 주면 더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또 여자의 몸을 정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분위기 조성이며, 여자란 무릇 분위기에 약하고 분위기에 쉽사리 빠지며 분위기에 의해서 몸을 스스로 여닫는 특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처음으로 단둘이 앉아 이야기를 하게 된 임 사장은 다방에서처럼 자기는 혼자 사는 홀아비임을 끝까지 강조했다. 그는 정수 어머니 몫으로 링컨이라는 고급 외제 승용차를 준비했으며 강원도 강릉, 충청도 속리산, 양지 읍에서 멀지 않는 유성에 별장을 가지고 있으므로 서울의 50평 아파트와 같이 4계절의 철 따라 별장 특유의 생활을 즐길 수 있으며 원한다면 아무 때나 외국 여행을 이웃집 드나들듯 할 수 있다고 했다. 그의 말은 모두 거짓말이었다.
별장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그의 첩들의 집이었다.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난다’는 속담처럼 그는 부동산 소개업이란 불로 소득의 대가를 향락과 여자들을 농락하는 데에 사용했다. 본래 땀 흘려서 얻은 재물이 아니면 향락에 쓰이게 마련인 것이다.
그는 정수 어머니와 대화를 시작한 지 10여 일 만에 그의 목적을 달성했다. 그는 여자를 섹스 적인 상대의 몸으로만 생각하는 위인이었다.
그가 그의 목적을 이루기 전까지는 정수 어머니에게 간이라도 꺼내줄 듯 다정하게 대했다. 그토록 달콤한 말로 유혹하던 그가 일단 목적을 이루자 그의 행동은 너무나도 천박하게 변했다.
그는 이 참봉의 완고한 고집에도 불구하고, 이 참봉에게 큰소리를 탕탕 치면서 정수 어머니를 서울로 데려갔다.
화병이 난 이 참봉은 손자인 정수를 곁에 두고 병자로 살았다. 그래서 정수의 대학 생활은 언제나 우울했다. 하지만 정수의 우울은 끝내 커다란 비극의 눈물이 되어 그의 집안을 슬프게 적셔 버렸다.
길가에 심어 놓은 코스모스가 한 잎 두 잎 피어나는 계절에 정수 어머니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링컨이랑 고급 승용차로 떠나던 때와는 반대로 생명 없는 시체가 되어 장의차에 실려 임 사장 부하들의 손에 의해 돌아왔다. 그녀는 세 사람의 첩들이 설쳐대는 임 사장 앞에서 견디기에는 너무나 연약했다. 그녀들이 바늘로 이마를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게 느껴지는 뻔뻔스러운 생활 태도에 반해 정수 어머니는 세상 물정을 너무도 모르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세 여인에 의해 머리채가 움켜쥐어지고 털이 뽑히던 날, 그 50평의 고층 아파트에서 떨어져 죽었다.
이 참봉도, 정수도 그의 며느리나 어머니를 위해 울어주지 않았다. 그들은 정수 어머니가 고향과 그들의 집을 떠날 때 모든 인연이 끝난 것이라고 규정지었다. 특히 정수는 그의 어머니가 떠나자 그의 어머니를 몹시 원망했다. 예로부터 자식은 부모를 버리는 경우가 있고 ‘불효자식’이란 단어가 있지만, 부모가 자식을 버린다는 행위란 드물다면서 그녀는 자기 어머니가 아니라고 내게 종종 말했다.
정수 어머니는 공동묘지에 묻혔다. 그녀는 이 참봉의 며느리로서 자격을 잃어버렸듯이 묻힐 땅도 잃어버렸다. 정수 어머니가 묻히는 날, 산역을 맡은 사람들과 그녀의 친정 식구들, 그리고 마을에서 각별하게 지냈던 그녀의 친구들이 참석했다. 그러나 창만이 어머니는 낮 동안 눈에 띄지 않더니 밤에 정수 어머니의 무덤을 찾아와 목을 놓고 울었다.
공동묘지를 내려온 그녀는 그날 밤으로 고향을 떠났다.
그러자 그녀의 시부모와 시누이도 역시 며칠이 안 되어 서둘러 마을을 떠나고 말았다. 가장 고향에 대하여 애착을 가져야 할 이 참봉마저도 정수 어머니의 죽음을 본 후 서울에서 대학 생활을 하고 있는 손자인 정수와 함께 산다는 명분을 내세워 고향을 떠나 버렸다. 정수네가 서울로 이사 간 날은 겨울을 재촉하는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다. 토요일이어서 나도 동네에 내려와 있었던 날이었다. 정수는 대학 2학년으로 고향에서 우리와 슬픈 이별을 했다. 이 참봉은 미리 이삿짐을 보내놓고 정수와 버스 정류소로 갔다.
그들은 동네 사람들과 인사를 한 후 떠나갔다. 나는 정수를 더 오래 보고 싶어서 동네의 버스 정류소까지 함께 갔다. 그는 버스 정류소를 향해 우산을 펴들며 내게 말했다.
“상일아! 잘 있어.”
“잘 가, 그리고 주소 좀 알릴 겸 편지 꼭 해.”
“알았어.”
그가 돌아서서 이 참봉과 함께 버스에 올랐다.
버스 위로 발을 디딘 그가 다시 한번 나를 쳐다보았다. 그의 눈동자에는 이별의 슬픔이, 고향을 떠나는 외로움이 빗물처럼 고여 있었다. 그의 그 젖은 눈동자가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버스 문안에 서 있던 이 참봉과 정수가 함께 어우러져 가는 모습이 한동안 비 오는 허공에서 맴돌고 있었다. 정수가 떠나자 고향은 더 쓸쓸했다. 이 참봉이 떠남으로써 고향의 토박이들은 천수네와 우리 집뿐이었다.
양지읍은 원래 이 참봉과 우리 집에서 내주는 일거리로 근근이 살아가는 가난한 동네였는데 이 참봉네가 고향을 떠난 것은 고향의 토박이들이 고향을 버려야 한다는 것과 같았다. 그 이후 고향은 급속도로 변해가고 있었다. 천수가 6학년 2학기에서 천덕이가 초등학교 3학년 2학기에서 학교에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중․고등학교까지는 정수가 있었다. 또 그가 대학 생활을 했던 시절도 가끔은 얼굴을 보이곤 했다. 그러나 정수가 떠난 후부터는 나는 무척 외로움을 느꼈다. 정수가 아주 가버린 동네는 텅 비어 보였다.
나는 서울에서 내려오면 언제나 천수와 천덕이 그리고 그의 아버지를 만났다. 그들 삼부자는 고향이 변해가는 속도만큼 생활이 나아져 갔다. 집 짓는 일이며, 길을 새로 내는 것 등 농사를 지었던 옛날보다 수입이 늘어갔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들과 만나면 언제나 좋았다. 그들의 표정에서는, 그들의 언어에서는, 고향은 변화 없이 존재하고 있었다.
나는 서울에서 올 때마다 그들 삼부자를 습관처럼 만나고 나서 집으로 들어갔다. 내가 대학에 다닐 때까지도, 우리 집의 땅은 그 고향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버티고 있었다. 그것은 우리 집이 큰길에서 떨어져 있는 마을 뒷동산 밑인데다가 우리의 인삼밭이 역시 마을에서 좀 먼 곳에 있었던 탓이었다.
나는 가끔 고교 시절에 쓰던 나의 방에서 독서를 하곤 했지만, 그 시간이 지나면 변해가는 동네가 싫어서 그 동네를 벗어났다. 나는 우리 인삼밭으로 가는 논둑 길을 걸으며 고향의 자연을 감상하곤 했다.
내가 대학 2학년 때 형은 서울 ㅈ대학 경제학과 졸업반이었다. 그 형마저 서울 생활을 했던 고향은 더 쓸쓸했다.
서울의 대학교에서 오면 빈집을 지키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도 외롭게 보였다. 아버지는 늘 일군들과 인삼밭에서 지내는 편이었다. 나는 그 일하는 모습이 보고 싶었다. 그보다도 천수, 천덕과 그의 아버지의 모습이 더 보고 싶었다. 나는 그 삼부자의 인정을 좋아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학 2학년 겨울이 되면서 고향에 내려와도 나는 방안에 틀어박혀야 했고, 서울의 학교에서는 쉬는 시간에도 공부를 해야 했다. 사법고시 준비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일제시대에 독립투사로 활약하다 옥살이를 했다. 그러다가 해방이 되면서 출옥 즉시 경찰에 투신했다. 그는 정년퇴직 후 그동안 묵혀두다 싶이 해서 남에게 관리시켜온 인삼밭을 손수 관리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마을에서 1,500여 미터 떨어진 인삼밭까지 걸어 다니며 일군들을 부렸다.
밭이나 논도 있었지만, 인삼밭이 더 넓었다. 내가 철이 들면서 아버지가 이 세상을 뜰 때까지 본 모습은 인삼을 관리하는 모습이었다. 모든 것이 활동적이고 성격이 거칠며 그러면서도 단순한 상구 형보다는 매사에 꼼꼼하고 차분하며 모든 일을 빈틈없이 처리해 나가는 내게 더 기대를 걸고 있었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니던 때에, 그는 가끔 내 손을 잡고 들판을 거닐며 했던 말을 세상을 뜨기 직전까지도 똑같이 말했다.
“넌 공무원이 적성이야. 아버지는 네가 법대에 가서 법조인이 되기를 바란다.”
나는 아버지의 그런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가 그런 말을 하기 전에 나는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검사를 생각했다. 초등학교 시절, 그 운동장에서 본 ‘검사와 여선생’이란 영화를 보고 ‘나도 커서 검사가 되겠다.’는 꿈을 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고등학교에 다니면서도 내 마음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 차에, 아버지의 말은 내게 더 확신을 심어주었다.
고 1을 어영부영 보내던 나는 고 2부터 대학 입시 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공부하다가 머리가 아프면 나도 집에서 꽤 떨어진 인삼밭까지 걸어가곤 했다. 그럴 때는 아버지의 감독하는 모습보다는 천수, 천덕과 그들의 아버지인 덕보 씨의 일하는 모습이 고맙게 느껴졌다.
언제나 보아도 덕보 씨는 일을 열심히 했다. 그런 광경을 보고 집에 오면 공부가 더 잘 되었다. 결국 나는 아버지의 희망대로 서울 ㅅ대 법대를 다니게 된 것이었다.
내가 중학교 1학년에 다니던 여름이었다. 천수 아버지 덕보 씨가 아침 일찍 이 참봉네로 일하러 가기 위해 그의 집을 나오고 있었다. 그때 나는 아침 조기 청소를 하기 위해 빗자루를 들고 마을의 골목을 지나가다가 그와 마주쳤다.
“천수 아버지! 안녕하셨시유?”
내가 인사를 하자, 그는 비짓이 웃으면서 나의 볼을 어루만지는 것이었다.
솥뚜껑만한 그의 시커먼 손이 내 볼에 닿는 순간 꺼칠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가 싫지 않았던 것은 그의 따사로운 웃음 때문이었다. 나는 덕보 씨가 한 번도 성을 낸 것을 못 보았다. 그는 성내는 것을 모르는 사람 같았다.
나는 그가 일터로 갈 때는 요란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그가 일터로 갈 때는 너무도 요란하므로 그를 직접 보지 않고도 모두 덕보 씨인 줄 알고 있었다. 그의 거동은 늘 같았다. 큰 거구였으므로 걸음걸이가 괴기 영화에 나오는 킹콩 같았다. 한 걸음 한 걸음을 걸으면 골목 안이 쿵쿵 울렸으므로 길가의 집들은 그들의 방 안에 있는 구들장이 울리는 것을 느꼈다.
그가 기침을 한 번 할라치면 으레 방귀 소리가 함께 쏟아져 나왔다. 그는 자신의 발자국과 그 방귀 소리에 장단을 맞추어 걷는 것이었다.
그날 아침도 그는 기침하며 나의 볼을 쓰다듬고 난 직후 일어서더니, 땅이 흔들릴 듯 쾅쾅 걸어가며 방귀 소리를 요란하게 내면서 꾸어댔다. 그런데 그 요란한 방귀 소리가 한 번만 들리면 모를까, 한동안 그의 걸음걸이와 함께 계속되었다. 내 주위로 몰려와 있던 서너 명의 아이들은 입을 가리며 킬킬거리며 웃어대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그의 방귀 소리가 하도 신기해서 숫자를 세고 있었다.
“하나, 둘, 셋……, 야! 서른일곱 번이다.”
나는 소리를 지르면서 아이들과 함께 웃음보를 터뜨리고 있었다. 덕보 씨가 살며시 뒤돌아보면서 역시 비짓이 웃었다. 그러자 정수가 한마디 했다.
“천수 아버지, 팬티 안 찢어지셨시유?”
뒤를 이어 다른 아이가 맞장구를 쳤다.
“천수 아버지, 똥 안나왔어유?”
“야아, 애들아! 팬티가 찢어지구 똥이 나오면 어떻기 방귀를 낄 수 있다냐? 니들도 방구 끼면 팬티가 찢어지구 똥이 나오니?”
“아니에유.”
내가 대답했다.
“나두 똑 같아야, 그러니께 방귀를 마음대로 뀔 수 있는 게야.”
그가 또 함박꽃처럼 활짝 웃었다.
그리고 다시 땅을 쾅쾅 울리며 걸어갔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동네 사람들은 누구나 흐뭇한 웃음을 웃고 있었다. 그러면 덕보 씨는 더욱 신이 나서 즐거워했다. 마음이 즐거워질 때는 그는 햇살처럼 달라붙은 행복감을 온몸에 가득 받으며 일터로 걸어갔다.
덕보 씨의 일터로 가는 아침은 그날처럼 늘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그러한 덕보 씨를 동네 사람 중에서 누구 하나 그의 걸음걸이가 경박하다거나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방귀를 자주 뀌어도 주책바가지라고 나무라지 않았다. 그날처럼 아이들도 킬킬거리고 웃는 것은 그를 놀리는 의미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를 더 좋아하며 따르는 마음을 그런 킬킬거리는 웃음으로 표현을 했다.
나는 아침에 덕보 씨를 만나면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항상 기분이 좋았다. 나는 그 조기청소 날 아침에 그렇게 덕보 씨를 만나고 난 후, 내 어린 마음에 덕보 씨는 흙냄새가 구수하게 나는 고향의 인정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조기청소를 끝내고 집에 들어오자 덕보 씨는 동네의 여러 일군과 섞여서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내가 집안에 들어서자 대부분의 일꾼이 한마디씩 했다. 그들의 한 마디란 ‘얌전한 이 집의 둘째 도련님이 오셨다.’느니 ‘공부를 잘해서 이다음에 충청남도 도지사감’이라느니 ‘형인 상구는 성질이 괄괄한데 동생인 상일이는 눈매가 날카롭지만, 성질이 차분하다’느니 그런 말들이었다. 거의가 아침 식사를 하면서 왁자지껄 떠들던 그들은 나와 형을 대상으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러나 덕보 씨는 그런 대화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듯 무관심하더니, 나보다 약간 뒤에 들어 온 형을 향해 말했다.
“식사하거라. 학교 늦을라. 상일이도 함께 먹도록 하거라.”
하면서 마치 심부름 다니는 어린아이들처럼 부엌으로 뛰어가 어머니와 어머니를 돕는 아낙네들을 향해서 입을 여는 것이었다.
“이 집의 귀한 아드님들 오셨구만유.”
그리고 어머니가 부엌에서 밥상을 들고나오자 얼른 되받아 형의 방에 갖다 놓아주었다. 그는 형과 내가 수저를 들고 밥을 먹기 시작하자 다정스럽게 쳐다보는 것이었다. 내가 그에게 말했다.
“천수 아버지유. 천수와 천덕이 오라구 하세유. 아침 우리와 같이 먹게유. 우리 상에 다 밥 한 그릇씩만 갖다 놓으면 되니께유.”
나는 그때 그 덕보 씨의 눈동자가 따사로운 인정으로 가득 차오름을 엿볼 수 있었다. 내 어린 마음에도 너무나 좋아하는 그 표정 앞에서 나는 마음이 즐거워졌다 그의 얼굴은 여름 햇살 탓인지 구릿빛으로 그을려 있었다. 골목길에서 나의 얼굴을 어루만져 주던 손의 마디는 아무리 봐도 거칠었다.
그의 손마디는 굵었고 때가 묻은 듯 까만 손등은 곳곳이 터진 채였다. 그러나 그의 그 투박한 손에서는 흙 내음 같은 풋풋하고 강인한 의지가 빛나고 있었다. 그는 내 말이 끝나자마자 어린아이처럼 덩실덩실 춤을 출 듯이 좋아하면서, 그의 집을 향해 단숨에 뛰어갔다.
그 큰 덩치의 덕보 씨가 대문 밖으로 뛰어나가자 상구 형이 말했다.
“꼭 어린아이 같애. 천수 아버지 말이야.”
형은 내게 어른처럼 보였다. 그는 중학교 3 학년답게 덩치가 크고 건강했다. 부리부리한 눈동자에 활달한 성격인 그는 내 눈에도 잘생긴 미남형이었다.
목소리가 굵어졌고 턱수염이 제법 까만 그는 내게는 어른스럽게 보였다. 하지만 형은 나를 은근히 미워하고 있었다. 나는 형이 나를 미워하는 것을 초등학교 때는 몰랐다. 그러나 중학교에 들어와 첫 번째 본 월말고사가 발표되던 날, 형은 몹시 우울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성적표를 들고 형을 기쁘게 해주려는 생각에서 형과 함께 쓰는 건넌방으로 뛰어들었다.
“형, 나 일등 했어!”
그러자 형이 기뻐할 줄 알았던 나는 형의 이외의 반응에 깜짝 놀랐다.
“야, 이 새꺄, 누굴 놀리는 거냐? 그래, 넌 초등학교에서부터 이날 이때까지 계속 일등만 차지했단 이 말이냐? 그래서 언제나 10여 등 선에서 머물고 있는 나를 비웃는 거냐?”
“…….”
“이 새꺄. 말 좀 해봐. 난 니 같은 새끼꼴도 보기 싫어! 그전에도, 그리고 지금 도…….”
“형! 왜 그래?”
“아니? 이 새끼가 왜 그래라니? 모르고 묻는 거냐?”
형이 내 얼굴을 갈겼다. 나는 휘청거린 채 방바닥에 쓰러졌다. 형이 나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이 새꺄. 공부만 잘하면 다냐? 까불면 죽여버릴 테다!”
형의 눈은 당장 나를 죽일 듯이 독사의 눈처럼 빛을 발하고 있었다. 나는 형의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갈 곳이 없었다. 집안은 일터로 나간 아버지와 어머니로 인하여 텅 비어 있었다.
나는 골목으로 접어들면서 천수를 생각했다. 그래서 천수에게 가려고 그의 집 쪽을 향하려 하는데 옆 골목에서 천수 아버지 덕보 씨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일하러 간 이 참봉네의 심부름으로 술을 사오는지 나무로 된 막걸리 통을 메고 오는 것이었다.
“상일이구나!”
“천수 아버지 안녕 하세유?”
“그럼, 그런디 어디 가려구?
“천수 집에 없어유?”
“응. 초등핵교 사환이니께 아직 안 왔지. 그래서 천덕이만 집 보고 있지.”
그는 막걸리 통을 옆에 놓더니 시커먼 손으로 내 뺨을 어루만지며
“아니? 너 누구랑 싸웠니?”
그의 말에 그때까지 참아왔던 설움이 눈물로 변하면서 두 뺨 위로 주루루 흘러내렸다.
“그래, 너를 때린 놈이 누구냐? 내 그놈의 자식을 그냥…….”
“…….”
“말해 봐.”
“형이…….”
그는 내 손에 쥔 성적표를 보더니
“통신표 때문이구나. 니 없는 데서 지난번에 형이 아버지께 혼난 걸 봤다. 전에도 가끔…….”
“그래유?”
“응, 니네 아버지가 상구를 야단치드라. 동생보다 못한 놈이라구. 1등 한 번 못했다구 막 야단치드라.”
그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더니 막걸리통을 둘러메고 일터로 갔다.
나는 막걸리 통을 메고 일터로 가는 덕보 씨의 모습에서 나와 같은 어린애다운 모습을 보았다. 그는 엉덩이를 실룩실룩 움직여 가면서 걸어갔는데 그의 온몸에 어린애 같은 순수함이 커다랗게 자리 잡고 있음을 느꼈다.
어떻든 그날 이후 형이 나에 대한 시기나 질투가 계속 그림자처럼 내 주위에 머물러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더욱 형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그 여름의 농번기에 덕보 씨는 참으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일했다. 그래서 같은 시간에 같은 일을 하더라도 쉴새 없이 움직이면서 일했으므로 다른 일군들보다 훨씬 바빴다. 그는 일하다가 죽을 것처럼 열심히 일에 빠지는 성격이었다.
어떻게 보면 일을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 그러한 그가 왜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나중에 덕보 씨가 가난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조시대의 천민이었던 그의 집안은 계속 가난했고, 그 가난을 이어받은 그는 역시 가난할 수밖에 없었다. 남의 양반 집에 얹혀살거나 국가에서 지정한 천민 집단의 후손이 부자로 되기는 어려운 노릇이었다.
내가 형에게 매를 맞았던 날 덕보 씨는 내게 ‘너를 때린 놈이 누구냐? 내 그놈의 자식을 그냥…….’하고 큰소리쳤지만, 그때 나를 때린 사람이 형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었어도 그는 나를 위하여 ‘그놈이 자식을 그냥’하는 의지대로 행동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의 성격은 남을 혼내주거나, 야단을 치거나, 싸울 수 있는 사람이 못 되었다. 그래서 형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혼내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말이나 행동에서 ‘안 돼유.’라든가 그런 의미로 움직이는 성질이 아니었다. 아이들에게는 무조건 친절했고 어른들의 지시나 부탁에는 특별한 설명을 해야 할 내용이 아닌 한 ‘암만유. 그렇구 말구유’ 그 한 마디로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버릇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말은 그의 순종적 발로였다.
그런 덕보 씨는 어떻게 보면 일을 위해 태어났고 일을 위해 살며 인생의 목적이 일에 있는 사람 같았다. 내가 고향을 떠날 때까지 덕보 씨의 느낌은 한 마디로 일보였다. 그래서 동네의 어느 집이든 농사철이 되면 ‘’덕보 씨가 일해 주었으면‘ 하고 바랐다. 농사철에 농사일만이 아니었다.
어느 집의 외양간을 고쳐도 덕보 씨를 찾았으며, 돼지우리를 지어도 덕보 씨를 데려갔다. 또 헛간을 하나 지어도 덕보 씨부터 찾았다.
그는 동네의 가장 필요한 존재였다.
덕보 씨는 한 마디로 동네의 가장 충실한 일꾼이었다.
모를 심을 때는 동네에서 제일 먼저 주인집에 가서 밥을 먹고 누구보다도 먼저 논으로 들어갔다. 물론 밭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그가 논에서 나올 때는 반대로 제일 늦게 나왔다.
대개의 일꾼은 모를 다 심으면 미련 없이 논 둑길로 올라와 즉시 손발을 씻고 식사하는 곳으로 가버리지만, 덕보 씨는 달랐다. 모가 심어진 논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았다. 그런 다음 쓰던 물건을 지게에 얹고 일했던 주인집에 가져가서 정리를 해 놓았다.
어떤 일꾼은 덕보 씨 때문에 게으름을 피우고 싶어도 피우지 못했다. 나의 아버지는 내가 중학교 2학년 되는 해의 봄부터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버지의 일을 충실히 이행할 수 있는 머슴을 한 사람 두었다. 그는 아버지가 경찰로 근무할 때 데리고 있었던 경찰서의 용원이었다. 당시 용원으로 근무 시에 협잡이 많아서 그곳을 그만두었는데, 그동안 직장이 없어 떠도는 것을 아버지가 불러들였다. 아버지가 그를 부른 것은 옛정 때문이었다.
그는 우리 집의 머슴일 뿐이었는데도 동네에 와서는 과거의 경력을 속이고 있었다. 그는 우리 집에 오자마자 아버지의 지시를 받아 집안의 잡일을 보기 시작했다. 가끔 일하는 도중의 쉴 짬을 이용하여 일군들 앞에서 자기의 경력을 화려하게 늘어놓았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할 때는 큰기침부터 하고 어깨를 움츠리면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옛날에 내가 서울 ㄷ경찰서에 근무할 때는 대단했지. 나는 비록 말단 형사였지만, 나보다 높은 형사들보다 범인을 잡는데 단연 최고였어. 난 척하면 도둑이나 강도를 알아보고 벼 논에서 피를 뽑아내듯 깡그리 잡아냈지. 거리의 깡패들은 내게 살살 기었어. 고양이 앞에 쥐 꼴이었지. 상도 많이 타왔지. 경찰서장 표창으로부터 내무부장관 상까지 깡그리 타왔지.”
그는 자기의 지난 경력을 거짓으로 말하는데도 불구하고 신바람이 나서 떠들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홍기철이란 30대의 우리 집 머슴에 대하여 다른 집 머슴보다 달리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여름철, 저녁을 먹고 나서 동구 밖 정자나무 아래에 앉아 동네 아이들을 모아놓고 똑같은 내용을 가지고 기염을 토했다. 나와 같은 중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은 그의 말에 현혹되어 그를 우러러볼 정도였다. 나도 그의 말에 마음을 뺏기고 있었다. 그래서 중학교 2학년 봄부터 내 마음에는 홍기철 씨의 이야기가 늘 새겨져 있었다. 그동안 나는 은근히 덕보 씨를 좋아하고 있었는데, 그가 나타나고서부터 기철 씨도 좋아하게 되었다.
어느 날 아버지는 몸이 더 불편한지 학교에서 돌아온 상구 형에게 말했다.
“상구야! 우리 논에 모를 심는데 가서 못줄이나 잡아 줘라.”
했다. 비록 인삼밭 재배에 힘을 쓰는 우리 집이었지만, 논도 10여 마지기 있었으며 동네 근처의 밭도 2,000여 평 되었다. 형은 아버지의 눈치를 보더니 나를 손으로 불렀다. 그는 아버지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히 말했다.
“상일아, 너 빨리 지금 모를 심는 논에 가서 내 대신 못줄을 잡아 줘.”
나는 가기 싫었지만 형의 주먹이 무서워 말없이 모를 심는 논으로 갔다.
내가 논에 가자, 오후의 새참이 끝나고 일꾼들이 조금 쉬고 있을 때였다. 내가 그들이 쉬고 있는 논두렁으로 가자, 제일 먼저 아는 체를 하는 사람은 역시 덕보 씨였다. 그의 곁에 있던 천수가 내게로 가까이 오더니 말했다.
“벌써 핵교에서 왔냐? 나도 오늘은 핵교에 특별한 일이 없다고 교장 선생님께서 일찍 보내줘서 니네 모심는 것 보러 왔지.”
“고맙다.“
“난 니가 부럽다. 난 초등학교도 제대로 못나왔으니…….”
“그런 생각 말거라. 학교가 뭐 그리 대단하니?”
“난 논에 나온 후 우리 아부지를 따라 아부지와 같은 일군들이 모심기에 편하도록 못줄을 잡았다. 우리 아부지는 못줄을 내 반대쪽에서 잡으면서 모를 심었다. 니가 왔으니 우리 아부지 쪽에서 못줄을 잡아줘라.”
“알았다.”
그는 나를 쳐다보면서 다정하게 웃었다. 바로 그때였다. 덕보 씨가 일어나면서
“밥 묵었으니께. 부지런히 모를 심어야지.”
하면서 반쯤 모가 심어진 논의 빈 곳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일군들의 중앙에서 똑같은 내용의 옛이야기를 하면서 거짓 경험을 말하던 기철 씨가 벌떡 일어나더니
“여부슈. 덕보 양반, 천천히 쉬었다 합시다. 아니 시간이 좀 먹는답니까?”
하고 허리께에 손을 올리면서 신경질 조로 말했다. 그러자 덕보 씨는 들은 체도 하지 않은 채 물 고인 논으로 들어갔다.
“아니? 저 짜식이 사람 말 같지 않나?”
“…….”
그래도 덕보 씨는 말이 없었다. 그중에 동네의 한 일군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니. 30대인 기철 씨가 어떻게 40대의 덕보 씨에게 저렇게 할 수 있간디유.”
그러자 기철 씨가 그를 향해 지금 뭐라고 그랬느냐는 듯 쏘아보자, 그는 외면해 버렸다. 그러자 기철 씨는 다시 덕보 씨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아니, 저 짜식이 귀가 먹었나. 벙어리가 되었나?”
계속해서 덕보 씨는 논으로 걸어 들어 가서 모를 심으려고 천수를 향해서 입을 열었다.
“천수야! 상일이랑 못줄을 잡아라. 어서 모를 심어야지.”
“알았어유. 아부지.”
천수가 막 못줄을 잡기 위해서 일어서려 했을 때, 기철 씨는 후다닥 논바닥을 향해 갑자기 뛰어들면서 덕보 씨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그 순간 나는 걱정이 되었다. 킹콩 같은 덩치의 덕보 씨가 그 솥뚜껑 같은 손으로 기철 씨를 움켜쥐고 그 물 고인 논 위로 집어 던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의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기철 씨가 멱살을 움켜쥐었는데도 덕보 씨는 그 버릇대로 비짓이 웃으면서 말했다.
“기철 씨! 이거 놔유. 우리 모나 심어유.”
“아니? 이 짜식이 누굴 약올리는 거야?”
“약올리다니유? 전 기철 씨에게 아무런 감정두 없어유. 전 그저 일만 하면 되니께유.”
“아니? 그래도 이 짜식이…….”
기철 씨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는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덕보 씨의 덩치 큰 몸을 향해 주먹을 갈겨댔다. 그러나 그의 주먹은 덕보 씨에게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덕보 씨는 약간 웃음을 지어버리더니
“정말 왜 그러시는거유.”
하면서 기철 씨에게 더 이상 상대하기 싫다는 듯이 그대로 허리를 굽혀 모를 심었다. 그러자 그때까지 구경만 하고 있던 일군들도 논으로 들어가 모를 심기 시작했다.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기철 씨의 모든 힘을 덕보 씨에 비하면 속된 말로 새발의 피였다. 그보다도 나는 덕보 씨의 마음이 끝없는 바다처럼 너그러움 대하여 더욱 존경심이 일어났다.
기철 씨는 무안을 당하고 논바닥을 빠져나와 동네를 향해 가 버렸다 나는 천수와 부지런히 못줄을 잡아 주면서 덕보 씨의 착한 마음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 그날 내가 일군들과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은 후 무심코 문간방을 들여다보았을 때야 기철 씨가 우리 집을 떠나간 것을 알았다. 건넌방의 한 귀퉁이에 덩그러니 놓여 있던 그의 가방이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기철 씨가 나가자 더 이상 머슴을 두지 않았다. 밤에 아버지는 덕보 씨를 안방으로 불렀다. 그때 안방에는 우리 동네에서 유일하게 라디오 한 대가 있었는데 ‘제니스’라는 이름의 독일제 라디오였다. 지금의 TV만한 그 라디오는 우리가 살고 있는 군내에서 가장 귀한 물건이었다.
나는 그 시간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
그때 덕보 씨는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 아버지에게 굽실대며 들어와 아버지가 입을 열기 전에 먼저 입을 열었다.
“어르신네 죄송하구만유. 지 때문에 기철 씨가 떠난 것 같아유. 지가 잘못해어유. 어르신네 볼 면목이 없구만유.”
“덕보, 이 사람아! 난 자네의 마음을 잘 알고 있네. 나만 알고 있는 게 아니라 동네 사람들도 다 알고 있네. 앞으로 우리 집 일이나 잘 봐주게나.”
“암만유, 그렇구 말구유.”
덕보 씨는 선 채로 뒤통수를 긁으며 아버지의 말을 들었다.
덕보 씨는 늘 자기보다 윗사람이 무슨 말을 하면 자신의 가장 진실된 마음의 표시로 ‘암만유, 그렇구 말구유’로 결론을 내렸다.
다음날부터 덕보 씨는 이 참봉네와 우리 집 일을 번갈아 가며 해냈다. 우리 집에서나 이 참봉네서 그를 일군으로 쓰지 않을 경우에는 동네의 어떤 일이든 마다하지 않고 했다. 그가 그렇게 품삯 받는 일을 해도 계속 가난 속에 살아야 했던 것은, 조상 대대로 내려온 도살업(백정)에 대한 일이 없어져 실직한 것과 그 후에는 죽은 아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의 아내가 폐병에 걸렸을 때는 그녀의 치다꺼리로 가난했다. 다음에는 그의 아내가 죽자 그녀가 살아 있는 동안에 동네 사람들에게 진 빚 때문에 가난했다.
나는 덕보 씨를 보면 세상이 너무 불공평하다고 생각되었다. 덕보 씨는 남보다 거의 두 배나 더 일했다. 그 대신 그는 밥도 남보다 두 배로 먹으며 살았다.
그가 일을 할 때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떠들든 말든, 비웃든 놀리든 그저 묵묵히 일만 했다. 만약 일을 시키는 집주인이 하는 일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간섭하고 떠들면 그의 지시가 열 번이든 백번이든 그저 한마디 ‘암만유, 그렇구 말구유’로 대답할 뿐이었다.
덕보 씨는 동네의 궂은일도 혼자 도맡아 했다.
내가 중학교 2학년 때의 겨울이었다.
나는 정수, 천수 등 동네 아이들 10여 명과 아침을 먹고 동네 옆 물 고인 논에서 썰매를 타기 위해 몰려갔다. 그 논에는 정수의 할아버지인 이 참봉네 논이었다.
그 논에는 물이 고여서 얼음이 얼었지만, 그 옆 논에는 마른 곳에 볏짚단이 쌓아져 있었다. 나는 아이들과 그 볏짚단을 바람막이로 이용하면서 그 중의 짚단 한 뭉치를 내리깔고 앉아 양말을 잘 신기 위해서 앉았을 때였다. 아이들의 일부는 이미 논바닥의 얼음 위에서 썰매를 지치고 있었다. 내 옆에 있는 천덕이가
“상일 형! 저것?”
순간 나는 식은땀이 주르르 흘렀다.
그것은 볏짚단 속에 들어있던 시체였다. 두 다리만 나와 있었는데 천덕이가 먼저 발견한 것이었다. 천덕이나 천수보다 먼저 아이 하나가 동네로 뛰어가 덕보 씨를 데려왔고, 고등학교에 다니던 상구 친구들은 파출소로 달려갔다. 덕보 씨의 뒤를 이어 동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동네 어른 하나가
“저것 치우게!”
하자 아버지가 말렸다. 그는 경찰 출신답게 일 처리를 지시했다.
“경찰이 오기 전에는 현장을 그대로 두게.”
곧 경찰은 왔고, 그들에 의해 볏짚단이 들추어지자 ‘앗!’ 모든 사람이 시체의 얼굴을 보자 깜짝 놀랐다. 지난여름에 덕보 씨와 싸우고 우리 집을 떠난 홍기철 씨였다. 시체는 얼굴이 노오랗게 빛을 띠고 있었으며, 떨어진 가죽 잠바에 코르덴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뻣뻣하게 굳어져 있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자살로 판명되었는데 그의 유서로 봐 일자리가 없는 것을 비관하고 있었다. 경찰들이 그 시체의 운반을 병원까지 의뢰하려 했을 때도 누구 하나 구경만 했지, 협조하려 하지 않았다. 이때 그 무서운 시체를 살아 있는 사람처럼 덥석 안은 채 경찰과 함께 병원까지 가지고 간 사람이 덕보 씨였다.
홍기철 씨의 자살 사건은 한동안 동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에 따라 갖가지 소문도 많았다. 그 소문을 종합해 보면 기철 씨가 죽은 것은 일자리 때문이지만, 보다 근본 원인은 가정불화라는 것이었다. 건들거리고 노는 기철 씨가 못마땅해서 그의 아내가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는 것이었다.
그 겨울에 덕보 씨는 무보수로 남의 일을 해주고 있었다. 내가 제일 기억나는 것은 우리 동네의 늙은 할머니의 일을 해준 것이었다. 그녀는 동네 입구의 둘째 번 골목으로 난 그 길의 끝에 살고 있었다. 그녀는 6.25 때 아들이 전사하여 그 보상금으로 근근이 생활을 이끌어 나가고 있었다.
덕보 씨는 하루의 시간을 몽땅 들여 혼자 사는 그 늙은 할머니의 초가삼간 지붕을 엮어 주었다. 다른 사람들은 손을 호호 불면서 빠른 속도로 골목을 지나거나, 또는 팔짱을 끼고 양지바른 집들의 벽에 서서 농한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덕보 씨는 추위도 모르고 지붕을 엮어 주고 있었다.
그는 내가 점심을 먹고 정수와 천수랑 썰매를 타다 돌아올 때까지도 그 지붕 엮는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지붕 엮는 솜씨가 신기해서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그때 이장 집 막내아들이 그의 친구들인 초등학교 3학년들끼리 자치기 놀이를 하다가, 놀이하는 막대기에 이마를 다쳤다. 그는 지붕을 엮다 말고 아이의 이마에 피를 닦아주고는 간이 병원을 차린 김 의원에게 아이를 업고 뛰어가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말로만 아이가 이마에 피를 흘리니 어떡하느냐고 했지 손수 나서지는 않았다. 병원에 다녀온 덕보 씨가 계속해서 지붕을 엮고 있을 때 이장은 소식을 듣고 찾아와서
“덕보! 고마우이.”
했다. 그러자 덕보 씨는 멋쩍게 웃으면서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인데유.”
할 뿐이었다.
의심 많은 동네의 일부 사람들은 덕보 씨가 그 늙은 할머니가 죽으면 그녀의 집과 단 몇 푼의 돈이라도 얻어보려는 속셈 때문이라고 수군대기도 했다. 그러나 동네 사람들의 그런 입방아는 남의 말을 좋아하는 버릇에서 나온 것뿐이었다. 그 겨울 그 늙은 할머니는 덕보 씨 덕분에 따스하게 지냈다. 그러나 사람의 운명이란 이상하게도 나 같은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많았다.
막 살 만하기 시작한 그 할머니는 봄에 몹쓸 병에 걸렸다. 그것은 염병이라고 불리던 병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그 할머니의 집 주위에 새끼줄을 쳐 놓고 사람들의 접근을 막았다. 병이 옮겨지기 시작하면 동네 사람 모두가 죽을 위험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른도, 아이도 그 할머니의 집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봄이 되자 나는 겨울을 벗어났다는 기분으로 일요일 오후 뒷동산에 올랐다. 동네 전체가 내려다보였다. 나는 봄과 함께 중3이 되면서 조금은 고독을 느끼며, 조금은 인생에 대한 깊은 생각에 적기 시작한 때였다.
동네는 따스한 봄 햇살에 하나, 둘 봄의 계절에 피어나는 꽃들이 아름답게 보였다. 나는 아물거리는 아지랑이 속에 잠들어 있는 것처럼 고요한 마을을 바라보면서 한동안 뒷동산의 숲속에 서 있었다. 동네의 뒷동산은 우리 소유였으므로 나뿐만 아니라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형도 뒷동산을 좋아했다. 나는 뒷동산을 거닐면서 소월의 시집을 폈다. 그리고 몇 개의 시를 암송하고 있었다. 나는 다시 약간 구릉처럼 볼록한 잔디 위에 앉아 동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덕보 씨가 그의 집을 떠나 밖으로 나왔다.
그의 걷는 발 소리가 내 귀에까지 들려오는 듯했다. 그의 기침 소리와 함께 방귀 소리도 들릴 듯했다. 나는 그의 방귀 뀌는 버릇을 생각하고 있었다. 언젠가 그가 방귀를 뀌었을 때 나는 그 방귀 횟수를 세고 있었는데, 무려 37번이나 뀌었던 것을 생각하며, 혼자 킬킬거리고 웃었다.
그런데 나는 혼자 웃던 웃음을 스스로 갑자기 멈추었다. 덕보 씨가 새끼 줄이 처져 있던 그 할머니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나는 신경이 곤두세워져서 바싹 긴장되었다. 동네 사람들이 얼씬도 하지 않는 그 할머니의 집을 들어간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덕보 씨는 그 집에서 빈 그릇을 들고나왔다. 그리고 다시 자신의 집으로 가서 밥과 반찬이 든 보자기를 들고 할머니에게 가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서야 아무도 접근하지 않는 그 집에서 어떻게 할머니가 병든 이후에도 홀로 살아왔는가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덕보 씨의 헌신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홀로 사는 할머니는 끝내 그 인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그 할머니가 죽자 살았을 때도 발길이 끊어진 곳인데 하물며 죽은 다음에야 누가 거들떠보기라도 할 것인가!
오직 덕보 씨만이 그 할머니의 죽음 앞에 나타났다. ××교회 사람도 ○○교회 사람도 그 집에 가지 않았다. 다만 덕보 씨의 지시로 천수와 천덕이가 죽은 할머니 집과 자신의 집을 뛰어다니며 아무 말 없이 송장의 뒤처리를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덕보 씨는 준비가 끝나자, 천수와 천덕이는 집으로 돌려보내고 혼자서 송장을 치다꺼리하고 염을 한 다음, 혼자 울어주고 혼자 떠 매어 가서 공동묘지에 묻어 주었다. 그래도 동네 어른들은 덕보 씨에 대해서 수군거렸다.
“다 생각이 있어서 저러지유.”
“암, 그럼유. 할머니가 가진 재산도 꽤 많을 테니까유.”
“당연하지유. 어디 세상에 공짜가 있남유?”
덕보 씨는 동네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는 즉시 군청으로 경찰서 등으로 돌아다니면서 할머니의 연고자를 찾았다. 그래서 죽은 할머니와 가장 가까운 친척 벌 되는 20대의 남자를 찾았다. 그는 할머니와 8촌이 되는 사람이었다. 서울 동대문 근처의 고아원에서 교직원 일을 보고 있는 그가 덕보 씨의 안내로 할머니네 집을 들어섰다. 그는 할머니네 집에서 남아 있는 저금통장과 재산이 될만한 것은 모두 챙겨 가지고 갔다. 떠날 때 덕보 씨에게 한마디 말도 없었다.
그제야 동네 사람들은 덕보 씨의 진심을 오해한 것에 대하여 미안하게 생각했다. 수십 년을 같은 동네에서 살아오면서 덕보 씨의 마음을 헤아려 볼 수도 있으련만, 그들은 죽은 할머니의 8촌이 떠난 다음에야 알아주었다.
“참, 그러니께 천수 아버지는 살아있는 하나님이구만유.”
“그럼유. 자신도 가난하면서도 딱한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는 자기의 살점이라도 베어줄 사람이구만유.”
“그런디, 왜 그 사람은 그렇게 가난한지 모르겠네유.”
“모르지유. 우리의 눈에는 가난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천수 아버지는 우리보다 훨씬 더 부자일지두유.”
“그럴지도 모르지유. 어디 꼭 물질적인 재산만이 재산인가유.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이나 마음의 세계에서는 그 사람이 우리보다 부자일 수도 있겠지유.”
“맞아유. 그 사람은 마음으로는 더 부자에유.”
나는 동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덕보 씨가 부자일거라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덕보 씨에게 들려서 고맙다는 한마디 인사를 하고 떠나야 사람의 도리인데 그러지 않는 그 8촌을 욕했다. 혹시나 덕보 씨가 남은 재산 중의 일부를 요구할까 봐서 그가 그토록 도망치듯 할머니네 집을 떠난 것이라고 공격했다. 그에 반하여 덕보 씨의 선행은 더욱 빛을 발했다.
내가 중3, 1학기 기말시험을 준비하던 날 밤이었다. 그동안 땅이 갈라질 듯 가뭄이 심했다. 그러던 날씨가 저녁때가 되면서 내리기 시작한 비는 밤이 되자 더 줄기차게 쏟아져 내렸다. 처음에는 가뭄 해결 때문에 좋아하던 동네 사람들은 밤이 깊도록 비가 내리자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밤 12시경에는 동네 앞의 개천이 불어나는 물로 넘칠 위험이 되었다.
동네 어른들은 종을 치고 공회당으로 사람들을 모으게 하여 그 대책을 의논한 후 개천 둑으로 나갔다. 내 나이 또래의 아이들도 둑이 넘치면 동네가 떠내려갈 것이라는 공포심 때문에 어른들의 뒤를 따랐다. 아낙네들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등불을 켜 들고 둑으로 갔다.
어둠 속에서 물은 무섭게 흘러가고 있었다. 새벽이 가까워져서야 비가 개기 시작했다. 그래도 물은 계속 둑을 넘실거리면서 소리를 내고 흘러갔다. 그 사이에, 벌써 날이 밝아오면서 새벽이 왔다. 잠을 잃은 사람들이 그대로 둑에 서서 물 구경을 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어둠과 새벽빛의 충돌 속에서 냇물 위로 양지읍 윗동네의 초가 집채가 떠내려가는가 하면 돼지 같은 짐승들도 냇물 위로 흘러갔다. 철없는 어린이들은 깔깔대고 웃었지만, 나는 계속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 옆에서 정수가 외쳤다.
“저기 둑에 금이 갔어유.”
개천에서 물이 흘러 들어오지 못하게 막은 둑 중에서 동네로부터 약간 위쪽의 둑이었다. 사람 중의 누군가가
“둑이 무너지면 동네가 위험한디!”
하고 불안의 소리를 냈다. 모여 있던 동네 사람들은 빠른 동작으로 가마니를 갖다 흙이건 모래건 퍼담았다. 그리고 두서너 명이 그것을 들어 무너지려는 둑 안쪽으로 쌓아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때 덕보 씨는 혼자의 힘으로 그 무거운 가마니를 두 손으로 번쩍 안아다가 쌓기 시작하는데, 다른 사람의 열 곱 스무 곱을 해내는 것이었다. 그 광경을 보자 모여 있는 아이들이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 경황 중에서도 그는 그 특유의 웃음을 비짓이 짓는 것이었다.
둑을 완전하게 한 다음 동네 사람들은 아침 식사를 위해 각자 집으로 들어가면서 서로들 덕보 씨를 자기 집으로 데려다 아침밥을 먹도록 하려 했다. 결국 내가 조르는 바람에 우리 집으로 가게 되었다. 나는 천수와 천덕이도 데리고 갔다. 뒤에서 동네 사람들은 덕보 씨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덕보 씨가 없었다면 우리 동네는 떠내려갔을 꺼구먼유.”
“암만유.”
“아이쿠, 그 황소 같은 힘, 그래도 그보다 더 약한 사람이 주먹질을 해도 참는 것을 보면 하나님 같은 마음이지유.”
“그렇구 말구유.”
나는 덕보 씨와 천수 그리고 천덕이와 집을 향해 걷는 마음이 무척 자랑스러워졌다. 덕보 씨는 큰 밥그릇에 소복하게 푼 밥을 삽시간에 먹어 치웠다. 그리고 다시 한 그릇을 더 먹었다. 국도 두 대접이나 물 마시듯 들이켰다. 나는 그가 식사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그의 곁에서 나와 함께 식사하는 천수도 천덕도 행복한 표정들이었다. 그들 삼부자의 모습은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처럼 밝아 보였다.
내가 ㅅ대 법대 1학년 때의 가을이었다.
나는 중학교 2학년 때의 사춘기 시절부터 학교에서 돌아와 책을 들고 자주 뒷동산을 오르는 습관이 있었다. 대학에 다닐 때도 고향에 오면 마찬가지였다. 그날도 나는 내가 그 전부터 무척 좋아하고 있었던 시구를 외우면서 동산을 오르고 있었다.
가을 햇볕이 따스했다. 동네를 벗어난 들녘에는 노오랗게 익어가는 벼 이삭들이 가을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콩밭에 우뚝 솟은 수수 이삭 위로 빨간 고추잠자리가 비행을 하는 가을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는 청잣빛이었다. 동구 밖의 길가에는 코스모스가 피어나 그 청잣빛 가을 하늘을 향해 미소 짓고 있었다.
그 가을의 청초함이 내가 걷는 뒷동산에 난 숲길로 햇살처럼 내리고 있었다.
낙엽은 한 잎 두 잎 떨어져 내리며 숲 사이를 빠져 오고, 가는 바람을 따라 흩날리고 있었다. 진정 나는 그날에 가을을 내 전신으로 느끼면서 낙엽을 밟고 걸었다. 내 입속으로부터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내가 막 시를 외우고 나서 적당한 자리를 골라 앉으려 할 때였다. 들에서 일하던 동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왔다. 그 무리 중의 천수와 천덕이가
“아부지! 아부지!”
“아부지! 아부지!”
울부짖으며 따랐다. 덕보 씨는 동네 사람들에게 집으로 운반된 후, 그의 단 하나밖에 없는 방에 눕히어졌다. 들에서 일하다가 갑자기 쓰러졌다고 했다. 그는 방에 누운 지 단 한 시간도 안 되어 오십도 안 된 인생을 마감하였다.
그는 너무 일찍 죽었다. 무슨 병인지도 모르고 소문도 내지 않고 들녘에서 일하다가 슬그머니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동네에서 덕보 씨처럼 갑자기 죽어간 사람은 없었다. 동시에 그의 죽음처럼 동네 사람들이 아쉬워 한 사람도 없었다. 동네 사람들은 오십도 안되어 죽은 덕보 씨를 모두들 안타까워하고 슬퍼했다.
나는 덕보 씨의 무덤 앞에서 슬프게 우는 천수, 천덕 두 형제를 보면서 덕보 씨의 영혼은 천당에 올라 있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두 형제는 목에서 피가 나도록 울었다. 동네 사람들이 공동묘지를 떠나면서
“자, 그만 울고 내려가자.”
고 해도 그들은 울기만 했다.
“아부지, 우린 어떻게 살아가유.”
“아부지, 우린 어떻게 살아가유.”
동네 사람들이 덕보 씨를 묻어두고 떠났건만, 두 형제의 통곡은 그칠 줄을 몰랐다. 정수가 내게 말했다.
“내버려 둬. 실컷 울게.”
정수의 눈동자도 나의 눈동자처럼 젖어 있었다.
공동묘지에 황혼이 지고 어둠이 온 후에도 두 형제는 아버지를 지키겠노라면서 울었다. 너무 울어서 목은 바람처럼 잔뜩 쉰 소리만 나왔다. 정수와 나는 그 두 형제를 일으켜 어두운 공동묘지를 떠났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동네 사람들과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착하디착한 사람이 저렇게 무심히 죽다니유.”
“그러게 말이유.”
“우리 집 일은 누가 내일처럼 해주게 되나유. 한 식구는 아니었지만 한 식구나 같았는데유.”
“그러게 말이유.”
“에이그, 불쌍도 하지유. 아들 둘만 덩그랗게 남겨두고 무심하게 죽다니유.”
“그러게 말이유,”
“이제 우리 집 농주(農酒)는 누굴 주지유? 여보!”
“그러게 말이유.”
어머니가 울먹일 듯 말하고 아버지는 설움을 입속으로 삼키며 ‘그러게 말이오’만을 내뱉고 있었다. ‘암만유, 그렇구 말구유’만을 말하던 덕보 씨의 죽음은 자신의 인생을 마감하듯 고향의 순정마저 마감하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덕보 씨가 죽은 다음 날, 양지읍은 측량기사들이 더욱더 분주하게 돌아다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덕보 씨가 갑자기 죽은 것이 고향의 변화가 싫어서 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향의 순정을 그대로 안은 채 잠들고 싶어서일 것이라고 느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동네는 측량기사들이 움직이는 것만큼 눈에 보이지 않은 부문에서는 무섭게 변해가고 있었다. 이 골목 저 골목에 자가용이 늘어서고 그 자가용의 숫자만큼 투기꾼들이 몰려왔다. 그런 고향이 나의 대학 2학년 때부터 외형적으로 빠르게 도시화 되어가기 시작했다.
고향의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곡선의 도로나 주택들은 직선의 도로나 양옥집으로, 이 층이나 삼 층 집 등으로 바뀌어 갔다.
여름이면 멱을 감던 개천은 기름이 흐르기 시작하고 오솔길이 아스팔트로 급속하게 변화되어 갔다. 땅을 가진 고향 사람들은 갑자기 벼락부자가 되었다.
덕보 씨를 시작으로 새벽이면 들로 나가고 저녁이면 집으로 들어오던 사람들이 대낮에도 다방과 술집에서 아가씨들의 다리를 만지고 엉덩이를 두드리고 있게 되었다. 이러한 고향의 변화 과정에서 나는 사법고시 준비에 밤낮으로 더욱더 시간을 뺏기고 있었다.
아침 새벽에 일어나 학교에 가서 자율학습을 하고 교수들의 강의 시간이 끝나면 7법 전서로 고시 준비에 열을 올렸다. 저녁을 먹고는 또 기를 쓰고 공부를 했다. 그해의 봄에 아버지가 이 세상을 떠났다. 나를 비롯한 가족들의 슬픔은 처절했다.
대학을 다니던 상구 형은 가끔 주말이면 ROTC 복장으로 고향에 내려와 하숙비나 용돈을 타가지고 곧바로 올라갔다. 내가 고등학교에 올라온 이후 한 번도 1등을 벗어나지 않았던 것도, 대학에서의 장학생이 된 것도 못마땅한 형에 대한 반항 중의 하나였다. 나의 3학년 고교 시절에 그가 가끔 고향에 내려오면 나는 그에게 매달렸다.
“형, 수학 좀 가르쳐 줘.”
“야, 잇마! 난 한 번도 1등을 못 해 봤어. 어떻게 늘 1등만 하는 널 내가 가르칠 수 있니?”
“그래도 형은 대학생이잖아?”
“야, 일없어.”
그는 나의 말을 완력으로 깔아 뭉개버렸다. 그런 형은 정작 아버지가 이 세상을 떠나서 뒷동산에 묻히게 되었는데도 고향에 내려오지 않았다.
나중에 내려온 형은
“넌,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도 안 왔으니 앞으로 이 에미가 죽어도 안 오겠구나!”
하는 어머니의 꾸중에 한마디 변명으로 입을 다물어 버렸다.
“전방에서 소대장 실습인 유격 훈련이 있었어요.”
아버지는 죽기 전에 내게 말했다.
“상일아! 아버지는 죽은 후에도 네가 법관이 되는 것을 빌겠다. 사법고시만 합격하면 된다.”
“꼭 그대로 할께요.”
“그리고 형에게 잘해야 한다. 성격이 콸콸해서 그렇지 본심은 착한 애다. 아마, 내일쯤 형도 오겠지?”
“그럼유."
그러나 아버지는 그 밤을 넘기지 못했다. 나는 어머니의 도움으로 기를 쓰고 공부를 했다. 그래서 서울ㅅ대 법대에서 계속 장학생을 유지할 수 있었다. 내가 법대에 들어가자 우리 군내의 군수와 경찰서장이 화분을 가지고 찾아왔다. 그때에도 대학생이던 형은 고향에 오지 않았다. 학교와 동네에서 축하 파티까지 열어주었으나 형은 눈에 띄지 않았다. 당시로는 군내 역사상 처음으로 서울 ㅅ대 법대에 들어간 것이었다.
나는 어머니의 외로움을 알면서도 서울로 향했다. 아버지를 잃은 후 외로움으로 생활하던 어머니는 그해 가을부터 내가 서울에서 고향에 내려올 때마다 고향의 부동산을 하나하나 정리했다. 그것은 전혀 상구 형의 계산에 의한 것이었다. 그는 군대에 있으면서 그 돈을 가져다가 사회 생활하는 친구를 이용하여 주식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주말마다 내려갔다. 어머니는 내가 내려갈 시간이면 늘 동구 밖까지 나와서 기다렸다.
형은 군대에서 외출을 나오면 나와 같은 하숙집에 있었지만, 얼굴조차 보기 힘들었다. 나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언을 생각하면서 기를 쓰고 공부를 하여 대학 4학년 때 사법고시 1차 시험에 합격했다.
그리고 졸업 후의 2차 시험에 대비하기 위해 4학년 1년을 거의 학교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한편 졸업과 동시에 ROTC 장교로 군 복무를 한 형은 군대 생활 2년째 들어서면서 월남전에 참가하고 있었다.
나는 내 계획대로 졸업 후 사법고시에 응시하여 2차와 3차에 순조롭게 합격했다. 내가 합격하자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제일 먼저 뒷동산의 아버지 묘에 갔다.
“여보, 당신 아들 상일이가 사법고시에 합격했어유!”
어머니는 눈물을 흘렸다. 나는 아버지에게 합격 소식을 전하는 절을 올렸다.
“니, 아부지가 살아 계셨으면 얼마나 기뻐하시겠니?”
나는 어머니의 두 뺨 위로 주르르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내가 사법고시에 합격하자 어머니는 동네 치를 벌렸다.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에서는 전 교직원과 학생들이 운동장에 모여 축하회를 열어주었다. 나는 나 자신도 모르게 사법고시의 보이지 않는 위력을 느꼈다. 내가 사법연수원에서 마지막 연수 중일 때 상구 형은 제대했다. 그리고 결혼 후 계속 주식에 손을 대고 있었다. 어느 날 내가 필요한 책을 가지러 형의 집에 왔을 때였다. 형은 내게 절망적인 어조로 말했다. 평소에 형이 가지고 있었던 패기는 하나도 없었다.
“너가 부럽다. 나는 쓰레기 같은 놈이야, 무능력하고…….”
형의 눈빛은 흐려져 있었고 온몸이 술에 젖어있었다. 형수의 눈도 형처럼 젖어있었다. 나는 형의 절망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그의 주식은 휴지가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형의 사업 실패 후 어머니는 시름시름 앓더니 내가 검사로 근무하기 시작한 해에 거짓말처럼 갑자기 아버지 곁으로 떠나가 버렸다.
어머니가 돌아가자 형은 살판이 났다고 날뛰었다. 고향의 집터와 뒷동산의 땅을 제외하고는 아직 처분되지 않은 나머지 부동산을 모두 처분해서 다시 자기의 생각대로 사업을 벌였다. 그것이 화장품 계통의 회사였는데, 그럭저럭 이끌어 갔으나 월남전에서 있었던 그의 실수가 그 사업마저 방해하고 있었다.
나는 현직 검사로 임명되어 근무하게 되었지만, 형은 자기를 협박하는 소재일을 고발할 수 없었다. 그것은 동생인 나를 향한 자존심 때문이었다.
소재일은 여러 해에 걸쳐 형을 끈질기게 괴롭히고 있었으나 형과 나의 여전한 거리감으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
미우니 고우니 해도 형이었기에 형의 미국행은 내게 충격적이었다.
그사이 나의 고향은 거의 100% 도시화되어버렸다.
그리고 사람들마저 옛 덕보 씨 아들 천덕이 이외는 모두 떠나가 버렸다. 고향은 이제 옛 그 고향이 아니었다.
형이 출국할 때 젖먹이였던 딸 소영이가 고3이 되어 미국에서 온 전화를 받았다. 옆에서 중학교 3학년인 현재가 소리를 쳤다.
“아버지, 미국에서 삼촌 전화에요!”
전화기를 손에 든 내 가슴은 사뭇 두근거렸다.
“상일이냐?”
“네, 형님! 접니다. 상일이에요!”
“집안이 모두 편안하지?”
“네, 그곳도 별일 없지요?”
“덕분에 잘 지낸다. 고향이 그립다. 너의 형수는 고향에 가고 싶다고 눈물을 흘리는 게 버릇이 되었다.”
“형님, 조카들도 다 컸으니 가족 모두 귀국하세요. 지금은 이산가족도 다들 만나는 시대에요.”
“언제나 형의 잘못이 많다!”
형은 울먹이고 있었다. 20여 년을 미국에 살면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형제에 대한 애착심이 커진 것 같았다. 형의 귀국 의사는 내게 큰 기쁨이었다. 점점 핵가족화 되어 가는 세상에 나는 형제가 그리웠기 때문이었다.
형이 전화한 것은 일요일 아침이었다. 나는 갑자기 형에 대한 그리움을 나의 고향으로 돌렸다. 실질적으로 나는 대학 입학으로 고향을 떠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제 형의 식구들이 귀국하면 형제의 우의를 더욱 다지고 고향의 소중함과 고향을 품에 안은 조국의 가치를 이야기하리라 생각하면서 고향으로 차를 몰았다.
천덕이의 집 뒤뜰 평상에도 해가 뉘엿뉘엿 져가고 있었다. 천덕은 술이 취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왠지 나는 그토록 오랫동안 이야기에 취하면서 술을 마셨는데도 이상하리만치 술에 취하지 않았다.
“형님, 정말 오늘 술맛이 그만이구만유. 지난 일 이야기 하고 보니 가난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니구만유.”
“비록 가난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교훈은 될 수 있네.”
“암만유, 그렇구 말구유.”
그는 기분 좋을 만큼 술에 취하여 우리의 이야기로부터 자신의 이야기를 끌어냈다.
“저도 지금처럼 살 만하게 될 때까지 숱하게 고생했어유!”
그는 자기가 살고 있는 바로 집 옆에 이 층으로 된 ‘한식 음식점’을 가지고 있었다. 자기가 직접 그 음식점을 경영한다고 했다.
“고교 1학년이 된 아들과 중2인 딸은 늘 조르지요. 한옥에 이 층 음식점은 어울리지 않으니 우리 집도 양옥으로 뜯어 짓자는 것이지유. 그래서 내가 항상 말하지유. ‘내가 살아있는 한 살고 있는 집만은 그대로 두겠으니 그리 알아라.’ 딸아이의 입이 삐죽거려 지드군유. 전 고향의 옛정을 집에서나마나 느끼고 싶어서 그래유.”
“자네의 마음이 고맙네. 하지만 영웅도 시대를 따르라는 말처럼 자네의 집도 자네가 떠나면 곧 빌딩으로 치솟아 버릴지도 모를 걸세. 그래도 고맙네. 사실 문화나 문명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좋은 거네. 다만, 그 문화 문명의 발달에 의해서 심각한 공해로 인류의 생존이 불안해지거나 고향에 있었던 그 옛날의 순정 같은 것이나 인간의 따스한 정이 상업화로 되어버린다면 그게 가슴 아프다는 것이네.”
“암만유. 그렇구 말구유!”
그의 음식점 이름이 ‘한국음식점’인 것을 보면 고향에 대한 애착심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초등학교 3학년을 중퇴하고 고향에서 자란 후 조금 철이 들자 중국집 음식 배달 소년으로부터 웬만한 한정 식간의 주방장까지 했다고 했다. 그가 한국음식점뿐만 아니라 중국음식점 등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면서도 정작 파는 음식이 한식뿐인 것을 보면 고향을 지키려는 그의 순정이 그의 하는 일에도 나타난 것이라 생각되었다.
아무튼 천덕은 자기 집 옆의 음식점 사장이면서, 바로 또한 옆에 설치된 테니스장에서 테니스를 가르치는 코치라고 했다. 그도 마음만은 고향의 순정을 지켜보려고 몸부림을 치면서도 고향의 도시화에 어울리고 현대 문화 문명의 현실성에 기대어 생활하고 있었다.
나는 약간 취기가 들었으나 그는 술이 어지간히 올라 있었다. 나는 그가 이렇게 용하게도 마음이나 정신으로 고향의 순정과 그 아름다운 인정을 잃지 않으면서도 현대화에 어울려 잘 사는 것을 보고 기쁜 나머지 계속 말을 건넸다.
“여보게 천덕이! 자네, 장하구만. 참 좋으네!”
“예?!”
“자네가 이렇게 잘 사니 좋단 말일세.”
“그래유? 저는 뭐. 형님 알다시피 뭐 있어유? 배운 것도 없구, 돈두 없구유. 그저 열심히 일하고 그저 남에게 착하게 하려고 노력했어유. 그것 뿐이에유. 그래서 그런지 남이 많이 도와주더라구유. 그냐 좀 사는 편이유. 암만유, 그렇구 말구유.”
문득 나는 천덕이를 보면서 그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다. 그의 얼굴 모습이 바로 덕보 씨의 얼굴로 보였다.
나는 내가 천덕이를 보면서 몹시 기뻤던 것은 천덕이의 모습에서 그의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고 그 따스한 인정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나는 친구가 자기의 석학을 뽐내면서 산해진미를 향유하게 한데도 그때처럼 기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또 그날, 내 앞에 황진이(黃眞伊)가 버선발로 나타나 임 제(林 悌)의 한을 풀어준다 해도, 아니 내 품에 안긴다 해도 그날처럼 즐겁지는 않았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여보게, 자네 아버지는 자네를 낳고 휘 맑은 달을 쳐다보면서 고향의 순정을 생각했을 거네.”
“암만유, 그렇구 말구유”
“여보게, 자넨, 꼭 자네 아버지이고, 자네 아버지는 꼭 자넬세. 그려…….!”
“……?!”
“오늘, 이 막걸리 고마웠네. 정말 고맙고 기쁘네. 형님이 귀국하는 대로 다시 오겠네.”
내가 평상에서 일어나 천덕이네 집 대문을 나서자 온 식구들이 나와 인사로 배웅해 주었다.
“안녕히 계셔요. 그리구 자네두…….”
그의 아내와 자식들을 향해서 인사를 하고 천덕과 악수를 한 다음 나는 승용차에 올랐다. 옛날에 오솔길이고 골목길이었던 아스팔트 위로 차가 달리기 시작했다. 서녘에 고향이 저물어가듯 하루가 저물어가는 황혼빛이 쓸쓸했다.
그 황혼 길의 아스팔트 위로 옛 고향의 골목길이 보였다.
배가 남산만 하고, 에데데 하는 말투로 ‘암만유, 그렇구 말구유.’를 연발하는 덕보 씨의 모습이 꼭 닮은 천덕의 모습과 교차하며 황혼 어린 아스팔트 위로 나타났다. 그 모습 위에서 나는 분명히 덕보 씨의 목소리를 들었다.
“암마유, 그렇구 말구유”
동시에 그 목소리는 천덕이의 말이었다. 비록 현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있지만 덕보 씨의 모습은 천덕으로 이어지고 그 천덕의 모습에서 아직도 고향의 순정은 살아 있었다. 나는 그 고향의 소리를 들으면서 기분 좋게 차를 몰았다.
“암만유, 그렇구 말구유”
“암만유, 그렇구 말구유”
고향의 순정, 고향의 인정, 고향의 소리를 들으면서…….
---------------------------------------------------------------------------------------------------------------------------------
* ≪농축 투데이≫ 논설실장. 전)용인 서원고등학교 교장, 수원문인협회 회장, 경기문학인협회 회장, 경기문학상, 경기문학인상, 호국문예국방부장관상, 농촌문학상, 홍재문학상 수상, 국방일보, 경기일보, 문학 21, 한국 영농신문에 장편소설 연재, 시집, 동화집, 수필집, 장편소설 ‘햇살 만들기’ 등 20여 권.
![문학 [동행]](http://t1.daumcdn.net/cafe_image/cf_img2/img_blank2.gi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