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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음악이란 어떤 것일까?
오늘 포크 음악 소모임의 감상회를 치룬 후에 차를 마시면서
나온 얘기가 포크라는 장르의 구분이 분명치 않아 심지어는 소모
임 회원들마다 의견이 조금씩 분분한 것에 의외의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 사람들 있는 곳에서 제가 간단히 말하기는 했지만 소
모임은 학회가 아닌 감상 모임이므로 명확한 장르 구분에 대한
필요성보다 오히려 소모임이 나아갈 바, 즉 모임의 색깔을 분명
케 하는, 회원들 간의 이른바 취향이 모여서 이루어 지게 되는,
장르의 구분 보다는 약간 더 포괄적인 (심하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를 갖는 것이 바람직 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이야기를 달리하
여 언더동의 게시판은 회원 전체가 열람하는 공간이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최대의 열띤 토론에 의해 최대한의 구분을 설정하
는 작업이 그리 뜻없는 일을 아니라 생각되어 기나긴 한 문장을
끝맺습니다.
제가 오늘 모임에서 가지게 된 몇가지 의문점을 질문하는 것을
시작으로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가겠습니다. 말을 할 수 있는 한
확실하게 전달하기 위하여 좀 촌스럽지만 하나, 둘, 셋 하는 식
으로 이야기 주제가 바뀔때마다 숫자를 매기겠습니다.
하나, 나는 포크라는 장르에 대하여 일반적인 인식 수준을 넘
지 못하는 문외한입니다만 포크란 무엇인가를 질문하기에 앞서
제가 나름대로 추측한 포크의 발생에 관하여 먼저 말을 하겠습니
다. 제 말에서 틀린 부분이 있을때에 즉시 지적을 해 주시면 토
론에 큰 도움이 될 줄로 믿습니다.
포크의 발생은 미국입니다. 미국이란 나라, 청교도들이 핍박을
피하여 온 피난처, 후에 아프리카 노예 유입, 기존 인디언의 혼
합 문화 발생지입니다. 역사는 불과 200여년. 아메리카의 원래
주인들과 문화적 연결 고리가 전혀 없음으로 인하여 유럽 및 아
시아에 비해 대단히 짧습니다. 미국의 음악은 처음엔 유럽의 음
악과 동일하였을 것이고, 결정적인 변화는 흑인 노예들에 의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주도 되었을 것입니다. 그 음악들은 다듬어
지지 않은 노동요, 청교도 계열의 흑인 사이비 예배시의 링 사우
트정도 였을 것이고, 훗날 깨끗이 다듬어진 형태의 흑인 영가,
가스펠, 블루스, 랙타임이 등장했고, 모든 문화 혼합의 온상이었
던 뉴올리안즈에서 재즈의 발생은 필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흑인 음악에 대하여 백인들은 백인 영가 및 포스터등으로
대변되는 미국식 민요등이 있었으나 사실 흑인 음악에 크게 밀리
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읍니다. 좌우지간 이 모든 음악이 생겨
난 적어도 1930년대까지는 포크란 장르가 없었다고 봐도 되지 않
습니까?
록음악이 본격적으로 대쉬하기 시작하고 대중 음악 시장이 비
약적으로 성장하면서 그 주류는 크게 리듬&블루스와 컨츄리&웨스
턴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때에는 이미 포크 음악은 그 뒷면에서
성장하고 있었다고 축측하게 하는 몇가지 이유로는 제가 생각하
는 포크 음악의 외적인 면인데, 블루스로부터 그 체제를 거의 그
대로 이어 받아 중심 악기가 기타인 록과 마찬 가지로 비록 어쿠
스틱이기는 하지만 포크도 기타 중심의 음악을 펴나가고 있고 단
지 블루스 특유의 블루 노트를 배재하고 백인 취향의 화음과 상
대적으로 단순하게 맞아 떨어지는 간단한 리듬 형태의 음악이
이 시기쯤 되면 분명히 있을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포크가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킹스턴 트리오의 "Tom Dooley"란 곡
의 발표 연대가 1958년 10월인 것을 감안한다면 앨범으로 증거되
는 포크 음악은 매우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봐야합니다. 게
다가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포크 가수들은 밥딜런과 존 바에
즈, 영국의 도노반 정도라고 한다면 일반적으로 보편적으로 받아
들여지고 있는 포크는 불과 20여년의 기간 동안 성장을 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것이 제가 알고 있는 포크의 간단한 역사입
니다. 질문을 하자면, 전 포크의 기원에 대하여 추측을 했을 뿐
어떤 역사적 근거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그러나 포크의 발생
시기로 부터 현재까지의 시간적 차이들은 민속 음악적인 포크와
모던 포크의 중요한 분기점이 되므로 그 시작이 언제인지를 질문
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둘째, 그런데 포크 음악을 사전적 의미로 풀이하여 말 그대로
의 '민속음악'이라고 하는 것을 보고 약간의 혼란을 느낍니다.
포크가 단지 민속음악이라고 한다면 그 역사는 20년이 아니라,
민요는 문화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있다고 할 수 있으므로 포
크의 역사 또한 200여년이 되는 것입니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포크 음악이라고 불리는 밥 딜런등의 음악과는 전혀 무관한 (예
를 들면 한국 민요등) 민속 음악 조차도 포크로 여기는 것은 좀
심한 비약이 아닙니까? 이 말대로라면 초기의 블루스도 포크 음
악이고 백인 영가도 당연히 포크 음악이 됩니다. 포크의 개념은
이렇게 포괄적인 것인지가 의문입니다.
세째,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인데, 포크와 모던 포크를 구
분하시는 차이가 분명치가 않습니다. 일단은 모던 포크와 포크록
이라는 용어가 동일한 것인지를 묻겠습니다. 전 두 단어를 같은
의미로 간주하고 계속 진행하겠습니다. 모던 포크와 포크의 구분
을 하실때 단지 전자 기타를 썼느냐 안 썼느냐로 구분을 하시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엘비스 프레슬리의 러브 미 텐더는
전자 기타가 없으므로 포크가 됩니다. (이것은 포크 음악이 맞습
니까?) 더욱 큰 문제는 록이나 재즈도 전자 기타를 쓰므로 모던
포크는 이 둘과 음악적인 차이가 분명히 있음을 보여 주어야 하
며 단순히 전자 기타 사운드를 내포한 포크가 모던 포크라고 하
는 것에는 많은 애로 사항이 있읍니다. 일단은 포크라는 장르 안
에서 사운드의 차이에 따라 나누는 것은 아쉬운 대로 쓸만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둘의 차이는 정말로 사운드의 차이밖에는 포
크 안에서 다시 장르를 구별할 필요가 있겠느냐 싶을 정도로 비
슷하기 때문입니다. 모던이던 민속적이건 록과의 구별은 확실합
니다. 포크는 드럼의 사용이 상당부분 억제되어 있고 고전 주의
피아노 소나타와 비슷한 도솔미솔 도솔미솔하며 반주하는 형태를
기타 아르페지오로 표현하고 대신에 증/감화음등의 약간은 애매
한 화성을 자주 사용함으로써 곡의 뉘앙스 효과를 유도하는 방식
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말이 길어 졌는데, 본인이 하고자 하는
질문은 포크와 모던 포크의 차이점은 일렉트릭 사운드의 사용 여
부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나는 잘 모르는 어떤 음악적인 구별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셋째, 앞서 말했듯이 일반적으로 포크 음악의 대명사는 역시
밥 딜런, 존 바에즈 등입니다. 그런데, 이것과는 다른 좀 더 오
래된 오리지날 포크에 관한 이야기를 하신 기억이 있는데 그런
앨범이나 가수는 누가 있는 것입니까.
오늘 모임을 통해 가지게 된 의문은 대략 이정도가 됩니다. 토
론이 긍정적으로 상승작용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막연하다 싶
은 개념을 정리하는 것은 2차원 도면에 3차원 모형을 그리는 것
처럼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를 수 가 있습니다. 당연히 사물을 정
확하게 묘사하기 위해서는 곱절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같은 이치
로 훌륭한 토론 끝에 포크란 이것이다라는 결론이 내려진다고 해
도 그 결론이 단 몇마디에 끝날 수 있는 성질은 아닐 것입니다.
Written by Ken Lee
답변에 감사 드립니다. 그럼 제가 글을 읽은 다음에 조정되어
야 한 견해에 관해서 정리를 해 보겠습니다. 단, 이야기를 시작
하기 전에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우리는 포크라는 장르
에 대한 명확한 구분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이미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쓸데 없이 보이는 토론을 해
야 하는가 하면 장르의 구분이 불가능 하다는 이 명제가 실제로
옳은가를 알고자 함입니다. 과연 어디 선에서 장르의 한계를 짓
기가 모호하고 개인차는 얼마나 심한지를 단 한번도 논한 적이
없기 때문에 며칠 전 감상회 후에 나왔던 이야기들이 나올 수 밖
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런 상상을 합니다. 단편적인 말
들의 조각들로는 포크라는 장르에 대하여 확실한 개념을 정의할
수 없으나, 이 말들의 조각들을 일련의 규칙에 따라 배열해 놓아
본다면 마치 2차원 도면으로 3차원 영상을 유추해 내듯이, 또는
구조주의 문학에서 주장하는 개개의 요소를 모아서 생기는 어떤
알파라는 인상을 뽑아낼 수 있다는, 다시 말해서 포크에 대한 한
층 뚜렷한 포괄 개념을 마치 집을 짓듯이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
는 확신 때문입니다. 집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단지 비바람을 피
하는 공간이지만 건축가에게 있어 그것은 영혼을 의미하기도 합
니다. 포크 또한 마찬가지로 어떤 이에게는 단지 흔하디 흔한 음
악들 중의 하나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영혼이기도 할 것입니다.
바로 그 영혼을 찾아 보자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 포크를 모른다고 말하는 제가 포크란 이것이다라는
토론의 주제를 제시하고 참여한다는 것이 대단히 건방지게 보일
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질문과 답을 모두 제시한다면 그것보다
건방진 행동은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토론에 제가 참여할 수
있읍니까. 저는 오로지 질문만을 할 수 있을 뿐입니다. 또한 질
문에 대한 답변들을 모아서 좀 더 분명한 개념으로 나아가기 위
한 다리들을 하나 하나 놓는 작업들 중에서 일부만을 제가 할 수
있습니다. 이 점을 이해하신다면 제 행동이 특별히 오만 방자한
행동으로 비추어 지지는 않을 것으로 믿고 본론으로 들어가겠습
니다.
먼저, 포크의 기본 개념을 둘로 규정하셨습니다. 하나는 민속
음악으로 서의 포크. 이것은 대단히 폭넓은 의미로 쓰인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민속 음악이라는 것은 인간이 문화를 형성한 곳이
라면 어느 곳에서나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의 포크
음악이라는 것은 전 대륙을 포괄하고, 음악에 있어서 가장 근본
적인 것이 되며, 예를 들자면 한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이 의미 보다는 좀 더 작은 의미, 즉 미국에서 발생한 100년이
채 안되는 음악의 장르로 규정 지을 수 있겠습니다. 한가지 주의
할 점은 포크 음악을 민속음악에 바탕을 둔 음악이라고 정의하면
안됩니다. 민속음악에 바탕을 둔 음악이라면, 중세의 그레고리안
성가를 비롯한 교회 음악들과 마드리갈, 심지어는 모테트 까지도
포크 뮤직이 되며, 클래식 작곡가들이 떠도는 집시들의 민요 선
율에서 착상을 얻은 경우는 매우 많으므로 클래식 음악들의 일부
도 포크 음악에 들어 가게 되고, 전에 어느 분이 말씀하셨지만,
한국 민요에 바탕을 둔 김영동의 음악도 포크에 들어가게 됩니
다. 따라서 작은 범위 내에서의 포크 음악은 그 지역적 범위도
될 수 있으면 미국에 한정을 시켜야 합니다. 따라서, 미국에서
발생한 100년 이내의 역사를 가지는 백인 음악이 포크의 외관상
의 특징이 될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포크를 백인 음악으로 규정하고 컨츄리와 쌍을 이
루는 장르로 규정을 하셨는데, 저는 포크와 컨츄리의 정확한 차
이점을 모르겠습니다. 둘 다 어쿠스틱을 사용하지 않습니까? 그
리고, 백인들로부터 생겨난 음악이고, 게다가 둘 다 기타 중심의
음악 아닙니까? 결국 둘의 차이는 가사를 논해야만 확실해 지는
것이 되는 것인지가 궁금합니다. 컨츄리는 아무래도 단어가 주는
어감상 좀 더 가볍고 상대적으로 즐거운 듯한 내용을 위주로 한
다는 뜻에서의 차이인지, 아니면 대중적인 음악이 컨츄리이고 약
간은 더 심오한(?) 음악이 포크인지, 아니면 구체적인 음악적인
차이가 있는 것인지. 일단 그 음악적인 차이를 논하는 것은 약간
만 뒤로 미루기로 하고, 좌우지간 컨츄리와 포크가 분명한 차이
가 있다면 포크는 미국에서 발생한 100년 이내의 역사를 가지는
백인 음악 중에서 컨츄리가 아닌 장르의 음악입니다.
그리고 포크의 발생에 관하여 유럽 음악의 영향이 근저에 깔려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유럽 본토에
서 포크 음악의 탄생은 불가능하고 미국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
이라면 유럽 음악의 영향 외에 기타 다른 영향들이 있어야 합니
다. 그것이 미국과 유럽과의 문화적 차이에 따른 음악적 차이 인
지 (이 경우, 인종은 백인에게 국한되며 각종 행사나 절기에 따
른 절차들, 즉 문화가 서로 다를 것이고 당연히 그 안에서 사용
되는 음악에도 차이가 있을 것이란 뜻이 됨), 인종적 차이에서
오는 음악적 차이인지 (이 경우, 주로 백인 음악에 대한 흑인 음
악의 영향을 뜻하며 다시 말해서 유럽 음악과 흑인 음악의 융화
에 있어서 블루스 같은 장르보다는 훨씬 백인 색채에 가까운 음
악으로 서의 가능성을 말함), 아니면 둘 다의 영향이라면 그 퍼
센테이지 정도는 어떻게 되는지, 그리고 또 다른 영향 (예를 들
어 포스터가 작곡한 미국 민요화 된 노래들)은 무엇인지가 논의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포크는 미국에서 발생했고, 미국 내의 특
수한 지역적, 인종적, 문화적 여건을 고려한 (이것에는 구체적으
로 무엇이 있었는지가 좀 더 토론의 되어야 할 문제임) 100년 이
내의 역사를 가지는 백인 음악 중에서 컨츄리가 아닌 장르의 음
악입니다.
또한 모던 포크와 포크 록의 차이가 지적되었습니다. 모던 포
크 보다 더 이전의 포크에 관해서는 특별하게 부를 만한 용어가
생각나지 않으므로 편의상 원형 포크 음악이라고 제가 부르겠습
니다. 전통 포크라는 말은 전통 가요 = 트로트 라는 공식이 성립
되는 한국적인 특수 상황을 염두에 둘 때 마치 트로트 적인 포크
음악이라는 인상이 남는 것 같아서 별로 사용하고 싶지 않습니
다. 그러면 포크는 시대가 흐르면서 원형 포크, 모던 포크, 포크
록, 기타 등등의 순서를 밟아 온 것이 됩니다. 원형 포크와 모던
포크의 차이는 시대적인 차이라는 기본적인 것 외에 원형 포크는
작곡자가 대부분 분명치 않고, 악보 없이 구전되어 왔다는 점 외
에는 모던 포크와 거의 동일하다고 받아 들여질 수가 있는 것입
니까? 잠깐 채팅실에서 제가 들은 바로는 1944년에 어떤 사람이
완전한 창작곡의 포크 음악을 앨범으로 발표한 기록이 있다고 하
는데, 그렇다면 원형 포크와 모던 포크의 분기점은 1944년이 되
는 것입니다. 이 두 포크 음악이 비슷하다는 것은 음악적인 변화
가 매우 서서히 일어났었다는 것이 되며 1944년을 전후로 하여
칼처럼 두 장르가 분리 되어질 수 없고 단지 대략 그 시기에 일
어난 변화만을 예측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비슷하게, 포크록
의 시작은 밥딜런이 전자 기타를 들고 나왔던 1965년이 됩니다
만, 같은 이유로 인하여 모던 포크와 포크록은 지금까지도 공존
하고 있으며 이런 이유가 포크라는 장르에 애매함을
가져다 준
요인중의 하나가 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 까지 오면 포크에 대한 역사적인 고찰에 대한 어느 정도
의 기본틀은 갖추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제는 실제적으로
음악적인 측면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포크의 구분을 애매하게 만드는 것은 다른 장르와의 경계선이
확실하지 않은 이유가 가장 큽니다. 그 중에서 대표적으로 제시
된 것이 원형 포크와 모던 포크, 포크와 컨츄리&웨스턴이고, 이
와는 상대적으로 모던 포크와 포크록의 구분은 사운드의 차이라
고 확실하게 말할 수가 있는 것 같고, 악기 사용이 비슷한 록과
의 구분 또한 두말한 나위가 없을 만큼 확실합니다.
원형 포크와 모던 포크, 포크와 컨츄리&웨스턴이 매우 구분하
기 힘들다고 한다면 둘의 장르를 나눈다는 것은 지나친 세분화이
고 둘을 나눈다는 것에 아무 의미도 없다고 하면 금방 들고 일어
나실 근거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그 근거들이 포크가 다른 장
르와 나란히, 뚜렷한 개성을 가지고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는
이유입니다. 일단은 이 두 가지의 애매모호함을 확실히 규정하는
작업이 필요하겠습니다. 앞서 말했지만 저는 포크에 대하여 문외
한 입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고 있는 포크음악에 대한 막연한
상을 가지고는 있으니, 그것을 이야기 하고 틀린점을 지적 당하
거나 또는 전면 수정하는 방식으로 진행 되어야 할 것으로 사료
됩니다.
먼저 원형 포크와 모던 포크입니다. 불행하게도 저는 이 원형
포크라는 음악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충분히 들어 보지 못했습니
다. 따라서 막연히 추측을 할 수가 있을 뿐인데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원형 포크의 기간은 아메리카 대륙에 백인들이 발을
들여 논 때 부터 1940년대를 지나 1950년대 말까지 지속되었다고
봅니다. 그 증거는 앞에서 말한 1944년의 어느 앨범과 1958년의
탐 둘리라는 곡입니다. 음악적으로는 블루스와 대단히 유사할 것
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블루 노트가 배제된 블루스입니
다. 백인들의 귀에 난생 처음으로 듣는 블루스는 단지 거친 신음
소리 처럼 들렸을 것이고, 그것에 익숙해 지는데에는 꽤 오랜 세
월이 걸린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블루스가 가지는 악기의 구
성이나 연주 방식들은 백인들에게도 어필하였고, 자신들에게 익
숙지 않은 블루 노트 대신 순수한 장음계 민요들에 나름대로의
애환을 담은 가사를 적용한 결과라고 보면 어떻겠습니까. 포크는
블루스 처럼 구전되었고, 미국의 어느 마을엘 가던지 마치 전설
처럼 한두곡 씩은 꼭 상주해 있기 마련이라는 추측에까지 도달합
니다. 따라서 그것들은 대부분 작자 미상일 수밖에 없으며, 사람
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과정에서 개개인의 특성은 사라지고
다른 나라의 민요처럼 오로지 민족적인 정서만이 남게 됩니다.
따라서 원형 포크는 가사의 내용이나 음악이나 가장 아메리카적
인 토속 음악중의 하나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에 비하여 모던
포크로 오면 포크는 단지 연주자로서의 포크가 아닌 뮤지션이라
는 개념이 도입되는데, 그것은 사람에 따라서 충분히 정제되고
절제된 음악도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음악이 두루 섞여 있는 것
입니다. 당연히 원형 포크의 맛을 직관한 사람이라면 모던 포크
에 대하여 약간이라도 실망을 안 할 수는 없게 되고 좀 증상이
심한 경우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편견에까지 이르게 될 위험마저
내포하게 됩니다. 원형 포크와 모던 포크의 구분이 애매 모호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저는 보고 있고, 어느 분께서 원형
포크 이야기를 하실 때에 받은 느낌 그대로입니다.
또 한가지, 모던 포크, 즉 뮤지션의 창작곡들은 원형 포크가
가지는 모든 테크닉과 음악 구조들을 그대로 도입할 수 있습니
다. 그리고, 뮤지션이라면 원형을 그대로 쓰지는 않습니다. 원형
의 기본 틀은 놔두면서도 뭔가 변화를 시도할려는 것은 자연스럽
습니다. 우리는 원형과 모던을 들으면서 다르다라고 느끼지만 말
로는 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 변화가 대단히 미묘하기 때문이 아
니겠습니까? 그 미묘함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하는 것은 순
전히 제 경험 부족일 수도 있고 음악이론은 설명되지 못하는 특
유의 뉘앙스라든지 하는 그것일 수도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두
장르의 구분에 대한 애매성에 대하여 제가 추측하고 있는 바입니
다.
마지막으로 모던 포크의 가사가 사회성이나 정치 성향을 띄는
이유는 원형 포크가 가지고 있던 가사내용에 대한 논리적인 변화
가 아니겠습니까? 만약 지금까지의 제 추측이 크게 틀린 것이 없
다고 하면, 민족성을 내포하는 민요들에 담겨 있는 애수들과 개
인이 몸담고 있는 사회에 대한 어떤 사건들에 대하여 말할 수 밖
에 없게 하는 작용들에는 깊은 연관이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는
다만 이 정도로 하고 가사에 대한 얘기는 본론의 얘기들이 어느
정도 종결된 다음에 다시 거론되어야 방향성을 잃지 않을 것 같
습니다.
그렇다면 원형 포크나 모던 포크와 컨츄리&웨스턴의 차이는 무
엇이겠습니까. 저는 컨츄리&웨스턴은 포크에 비해 상대적으로 팝
적이라고 보고 싶습니다. 즉, 대중적이고 상업적입니다. 포크에
비해 듣기 쉬운 멜로디, 단순한 화성, 무엇보다도 유유자적을 표
방하는 가사 내용, 아무런 고뇌도 절망도 없는 즐거운 분위기를
묘사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런데 이것이 그렇게 단순한 문
제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같은 주제를 어떤식으로 표현할 때 그
것이 빛을 발하는가 하는 것은 천재 혹은 수재라는 단어와 맞물
리면서 그 또한 애매해 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것이 좋고 저
것이 별로라는 것은 알 수 있지만 어떻게 해야 좋은것이 나오고
어떻게 하면 별로가 되는지에 대해서는 단편적인 지식만을 가지
고 있습니다. 이것이 컨츄리&웨스턴과 포크의 선을 명확히 구분
짓지 못하는 이유가 아닐까 하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상으로 개략적인 포크 음악에 대한 상을 제가 설명해 보았습
니다. 이상한 점이 있는 대로 즉시 즉시 게시판에 글을 써 주신
다면 더욱 활발한 토론이 진행 될 것입니다.
이제야 비로소 우리는 음악 자체 뿐만 아니라 포크 음악이 가
지는 사회적 기능과, 문화적 측면을 고려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온 말이 '카운터 컬쳐'라는 단어 인데, 이게 무
슨 문화를 뜻하는 것인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카운터 컬쳐라는
말은 3번이 나오는데, 단지 그 앞뒤의 문맥만으로 고려해 본다면
기득권 계층의 문화에 대한 저항을 담고 있는 언더그라운드의 문
화로 히피 문화는 카운터 컬쳐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
까?
아울러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는 것은 제가 원형 포크라고
부른 음악, 트래디셔널 포크의 존재에 관해서입니다. 제가 편의
상 구분을 시도한 원형 포크와 모던 포크의 구분은 애시당초 우
드거스리부터 이미 저항 정신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여
완전히 모던 포크와 원형 포크를 분리시켜 놓으신 것입니다. 즉,
1944년 우디 거스리를 분기점으로 그 이후의 음악에 관해서는 매
우 설득력 있는 설명을 해 주셨지만 이 원형에 관한 것은 여전히
베일에 감추어져 있는 느낌입니다.
이 시점에서 저는 역사적으로 단절된 느낌을 받습니다. 우디
거스리의 앨범조차도 저항 정신을 담고 있고 그 흐름이 모던 포
크로 이어지는 것은 이해가 갑니다만, 본 토론에서 트래디셔널
포크의 거의 최초 앨범으로 간주되고 있는 우디 거스리의 그 앨
범이 민요의 재편곡이 아니라고 한다면 어느날 갑자기 포크라는
음악이 등장한 것이라는 얘기가 되니까요. 따라서 이렇게 이해하
면 어떻겠습니까. 민요의 재편곡이 아니란 말은 바꿔 말해 순수
창작곡이란 말이 되며 그 창작곡은 사회전역에 퍼져 있는 민요에
바탕을 둔 음악 형식을 갖는다고. 왜냐하면 미국 동부에 있다고
하는 애팔래치안 민요를 언급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포크
의 저변에 깔려 있는 민요의 자취를 아주 지울수 없다고 보는 제
견해는 수정될 필요가 없게 되고, 혼란도 사라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분명히 음악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포크뿐
만 아니라 모든 음악은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사회 및 문화의 분
위기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것을 알
수가 있습니까? 가사가 없는 음악인 경우에 이것을 전혀 알 수가
없다면 그 음악은 무가치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다름 아니라
음악적인 형식이 문화 현상의 반영을 말해 주고 있기 때문에 그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그레고리안 성가 시대인 10세기에, 3도 화음은 악마
의 화음이라고 하여 금지되었읍니다. 그 전통은 거의 수백년을
이어져 왔는데 작곡자는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교묘히 3도의 화
성을 사용합니다. 그것이 바로 형식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문
화 현상에 대한 반영이 단지 가사만으로 알 수 있으므로 중요하
다고 한다면 우리는 문학 작품이나 시를 읽으면 됩니다.
한층 더 나아가 우리는 음악을 듣고 무엇인가를 느낌으로서 우
리는 좀 더 직관적인 경험에 도달하기에 음악의 형식이란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당연히 포크의 음악적 변천 과정은 매우 중
요한 의미를 갖지 않을 수 없다고 봅니다. 따라서, 저는 60년대
대학가에 번져 있었다는 전쟁 반대, 좌파들과 히피들의 초기 문
화 형태의 한계로 부터 발생했다는 말에 충분히 수긍하면서 동시
에 음악적인 면, (창호님께서도 말씀 하셨듯이) 순수 포크를 통
해서는 이룰수 없다는 포크 음악 자체의 변화의 필요성에 의하여
다른 것을 도입한, 또한 뮤지션 개인으로 볼때에는 음악적 변화
(제가 앞에서 언급한 적이 있는데, "뮤지션이라면 원형을 그대로
쓰지는 않습니다. 원형의 기본 틀은 놔두면서도 뭔가 변화를 시
도할려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라는 말이 여기에 해당됨) 라고
할 수 있는 선율적인 변화, 화성의 변화, 악기의 변화등은 대단
히 중요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사회 현상 자체가 가져다 주는 음악상의 변화는 이처럼 매우
중요하기 하지만 그것이 음악일 수는 없읍니다. 만약, 밥 딜런이
대통령이 되어 미국의 모든 핵무기를 해체하겠다고 한다면 그 말
에 주의를 기울일 사람들은 뮤지션들이겠습니까, 정치가나 혹은
일반 대중들이겠습니까. 물론, 우리는 음악들 들을때 가사가 있
는 경우에는 음악과 가사 두가지를 동시에 듣고 있습니다만, 제
가 시 또는 산문에 대해 영 아니올시다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음
악쪽으로 기우는 것이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포크는 시 이전에
음악 아닙니까? 그러므로 단지 가사 내용으로 장르가 구분된다는
것도, 전자 사운드의 여부로 구분된 다는 것도 지금에 와서 보면
한쪽으로 치우친 견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 다른 얘기로 이러한 사회적이고 정치적이기까지한 내용이
거의 없는 음악이 남부 보수적 기득권 층의 사랑을 받았다고 하
는 컨츄리 음악이 되는 것은 아닙니까? 그렇다면, 컨츄리와 포크
에 대한 구분은 좀 더 확실히 집니다. 일단은 정치성향이 있고
없고의 단순한 차이지만 음악적인 내용은 딴판으로 달라지지 않
습니까? 포크 음악에서 자주 보여지는 증 또는 감화음이 가져다
주는 그 불안정한 뉘앙스와 컨츄리 풍이라고 할 때의 그 대책 없
이 흥겨움만을 강요하는 인상의 화음들 사이의 선이 얼마나 애매
모호하다고 보시는지요. 오히려 모던 포크에 대한 불확실성은 표
현의 자유를 위해서 일부분 도입하기 시작인 록이나 블루스의
'요소'들 때문인 것 같습니다.
컨츄리와 포크에 대해서 한가지 여담 비슷한 얘기를 하겠습니
다. 사람이라면 누구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미화시키고자 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어떤 음악이든지 자신이 좋아한다면 "이것은
에술이야"라는 말을 종종 사용합니다. 그런데, 진정한 예술이란
그렇게 흔한 것입니까? 마찬가지로, 컨츄리와 포크라는 두 단어
를 놓고 볼때 일반적이도 보편적인 평가 기준을 놓고 보면 컨츄
리 보다는 포크라는 말이 더 지적으로 들립니다. 즉, 자신이 좋
아하는 음악이 분명한 컨츄리 음악인데도 너무 좋아하는 나머지
이것은 예술이야 하는 말과 똑같은 어조로 이것은 포크다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것은 개인 취향
이니까 어쩔수 없다는 식의 변명조로 해설을 곁들이기 보다는 음
악은 원샷에 듣고 결정하려는 자세보다 좀 더 시간적 여유를 같
고 음미해 보는 태도가 중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뇌리를 팍~ 스치
는군요. (오랜만의 조크입니다. 웃어 주세요)
일단은 포크를 민요로 보는 대단히 포괄적인 개념과 본 게시판
에서 이야기 되고 있는 포크라는 말의 차이는 확실히 구분되어
졌다고 봅니다.
그런데, 포크의 발생에 대하여 제가 질문한 것, 다시 한번 상
기시켜 드린다면 유럽 본토에서 포크 음악의 탄생은 불가능하고
미국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면 유럽 음악의 영향 외에 기타
다른 영향들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유럽과의 문화적인 차이인
지 인종적인 차이인지, 둘 다라면 그 비중은 어느 정도이고 기타
다른 요소에는 무엇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변은 아직
없읍니다.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되는 이 질문에 대한 답변
을 기다리겠습니다.
또 한가지, 제가 원형 포크에서 모던 포크로 넘어가는 과정이
라면서 추측으로 일관한 내용, 즉 블루노트가 배재된 블루스적인
악기 편성에 백인들의 선율이 어우러져 마치 전설처럼 되어버린
노래들을 뮤지션들이 또한 그 형식을 빌어다가 창작을 하기 시작
했다는 내용은 어느 정도가 정확한 것이고 어디가 틀린 부분인지
를 지적해 주십시오. 전혀 언급이 없으신 것이 제 말이 모두 옳
다는 얘기는 아닐 텐데요.
우리는 지금까지 포크란 무엇인가에 대해 부족한데로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였다. 사실 문제점만 제기된 채 전혀 결론이 도출되
지 못하고 있으니, 이제는 시각을 점점 좁히는 의미헤서 개개인
의 특수 상대성을 가지고 있는 포크 음악에 대하여 일반적인 상
대성으로 한층 승화시켜야 할 때이다. 그럼, 다시 한번 쪽팔림을
무릅 쓰고 밥 딜런의 밥도, 존 바에즈의 존도 모르는 무식쟁이의
썰을 풀겠다.
전에 어떤 글에선가 영화를 예를 들면서 움직이던 화면이 정지
하는 순간에 우리는 무한한 뉘앙스를 느끼게 된다는 말을 한적이
있다. 물론, 이 멋있는 말은 어느 책의 내용을 내가 표절한 것이
다. 계속 영화를 예로 든다면, 그 영화의 내용이 극적이고 긴장
감이 넘치거나 지극히 감동하는 정도가 강할 수록 그 영화의 정
지된 장면들은 뇌리에 깊에 남기 마련이다. 우리는 어떤 영화를
보고 나서 그 영화의 모든 것을 기억할 수는 없다. 우리가 기억
하는 것은 몇마디의 대화, 장면등 단편적인 조각들이다. 이 단편
들은 영화를 보지 않고서는 전혀 의미가 없는 것들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흔히 접할 수 있는 경험담을 하나 이야기 하
자. 사랑과 영혼이라는 직배 영화가 몇년 전에 엄청난 인기를 끌
었다. 모두 그 영화 너무 감동적이라고 난리다. 곳곳에서 주제곡
이 흘러 나온다. 그러나, 영화를 안 본 사람이라면 사랑과 영혼
의 그 주제곡은 그저 듣기 좋은 팝송에 불과 하다. 그러나, 그
영화를 감동적으로 본 사람이라면 그 주제곡이 흘러 나올때마다
영화의 몇 장면들이 슬라이드처럼 지나가면서 음악적 효과는 배
로 증대된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이미 말한 대로 사랑과 영혼의 주제곡
은 그저 흔한 팝송의 하나일 뿐이다. 가사도, 오 마이 러브, 마
이 달링 하는 식으로 상투적이다. 그러나, 영화를 통하여 그 주
제곡에는 사랑과 영혼이라는 영화를 통해 느껴진 낭만적인 감정
들이 농축된다. 역으로, 맨 마지막 장면에는 페트릭 스웨이즈가
부루스 윌리스의 마누라와 뽀뽀 한후 저승으로 떠나는 장면이 있
다. 그 장면은 특수 효과를 사용하여 사뭇 환상적인 분위기를 내
는데, 패트릭이 뒤돌아 걸어가는 장면은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
으로서 걸맞으며, 이 장면은 관객의 뇌리속에 그대로 정지된 화
면이 되어 남게 된다. 후에 관객이 친구와 수다 떨다가 이 영화
얘기가 나오면 그는 분명이 이 장면을 머리에 떠올릴 것이고, 그
와 함께 주제곡이 머리속에서 흘러 나오면서, '사랑해 몰리, 나
는 늘 당신을 사랑했지롱~'하는 대사를 한꺼번에 떠 올리게 되는
것이다.
포크 음악 얘기가 웬 쓸데 없이 영화 얘기로 길어져야만 할까.
포크 음악이 가지고 있는 가장 특이할 만한 요소는 바로 내가 지
금까지 침이 마르게 영화를 예로 들어 설명한 이 농축 효과이다.
그럼 무엇을 농축 시켰을까. 그것은 인간의 삶이다. 아메리카의
개척자로서 인디언을 잔인하게 몰아내기도 하고, 금광을 찾아 나
서기도 했던 이 사람들의 이야기로 트래디셔널 포크 음악은 시작
된 것이다. 음악의 소재는 애환, 이별, 죽음 따위의 고통스러운
것일 수 밖에 없다. 또한 입에서 입으로 음악이 전해졌다는 것은
곧 개인 성향이 없어지고 민족적 성향이, 다시 말해 다수의 음악
으로 새롭게 태어남을 뜻한다. 당연히 음악 구조는 천치가 아니
라면 부담없이 따라 부를 수 있는 쉬운 것이어야 한다. 이것이
포크 음악이다. 쉬우면서도, 무한한 뉘앙스를 농축시켜 놓은 대
중의 음악이 포크 음악이다.
포크라는 용어도 적절하다고 본다. 일반적으로 여기에서 포크
라고 하는 것은 일단은 미국에서 생겨났고, 영국까지는 포함 시
켜야 하는 음악을 뜻하지만, 사실 넓은 의미에서 포크라는 말은
민요를 뜻한다. 단언하건데, 모든 민요는 이러한 농축 효과를 가
진다. 한국의 신민요 아리랑을 생각해 보자. 이 단순한 선율속에
는 한국 민족의 슬픔, 고뇌, 애환등 모든 것이 스며들어 있다.
일단 트래디셔널 포크 음악에 관하여 내가 생각하기로 가장 핵심
적인 것은 바로 지금까지 얘기한 바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부
분에서 포크 음악의 뛰어남을 강조하기 위해 말을 길게 늘리고,
감정 과다 증세를 보이는 것도 해 볼만한 일이긴 하다. 농축 효
과라는 것은 그만큼 대단한 요소이기 때문에. 핫핫. 이런식으로
말을 해서 다시 한번 이 핵심 요소를 강조했지롱~
그렇다면, 소위 모던 포크는 여기까지의 설명으로는 포크의 부
류에 들어갈 수가 없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카타르시스라는 말의
철학적 의미를 아직 잘 몰라서 이 용어를 쓰기에 주저스럽지만,
국어 사전에 나와 있는 데로 '비극의 효과가 항상 울적한 인간의
공포에 눌린 긴장감을 해소하고 상쾌한 기분으로 전환하는 일'이
라는 설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 들여도 무방할 듯 하므로 바로 이
런 뜻으로 카타르시스라는 말을 사용하면, 트래디셔널 포크로 부
터 우리가 갖는 카타르시스와 모던 포크를 통한 카타르시스는 일
치하거나 적어도 비슷해야 한다. 왜냐하면, 따지고 보면 트래디
셔널 포크는 원형이고 모던 포크는 그 변형이기 때문이다. 모던
포크는 트래디셔널 포크를 모방했을때에만 포크라고 불릴 수 있
는 것은 상식이다.
이번엔 재즈를 예로 들어 보자. 일반적으로, 뉴올리안즈 재즈,
빅밴드, 밥등은 서로 완전히 다른 음악이라고 봐도 무방할 만 한
데 통칭 재즈라고 한다. 참으로 이상하다. 그런데, 케니 지 양반
의 음악을 놓고 재즈냐 아니냐라고 할 때에는 말들이 참으로 많
다. 왜 그럴까? 케니 지는 훌륭한 임프로바이저임을 부인 하는
사람은 없다. 재즈의 생명인 즉흥 연주를 그렇게 잘 하는데 왜
그의 앨범은 재즈가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을까? 나는 케니
지의 음악에서 색소폰 솔로를 떼어 버리고 그 부분에 머라이어
캐리가 들어가 노래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상상만으
로도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즉, 케니 지 앨범은 모든 사람이 만
장 일치로 이것은 재즈다라고 할 만큼 기존 통념상의 재즈 필링
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이 현상이 포크에도 그대로 적용된 바 있는 것 같다. 밥 딜런
이 처음 음악을 들고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트래디셔널 포크
에 입혀진 모던 포크라는 새로운 옷을 좋아했다. 그런데, 포크에
롸을 섞은 이른바 포크롸으로 오면 상황이 달라진다. 물론 포크
롸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극단적으로 이것은 포크가 아니라
고 말하는 사람이 나오기 시작한 듯 한다. 이 갈등은 멀리서 찾
을게 아니다. 내가 포레스트 모임에 나와서 느낀 분위기도 그러
했다.
이 사실에서 유추해 낼 수 있는 것은 이러하다. 트래디셔널 포
크와 모던 포크의 관계에 있어, 전자는 촌스럽고 후자는 좀 더
세련되었다는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적어도 비슷한 카타르시스를
갖게 한다. 따라서, 아방가르드화 되기 좋아하는 요즘의 사조에
맞추어 점점 튀고 있는 포크 음악이라고들 하는 음악을 진짜 포
크 음악에 넣기 위해서는 포크라는 개념의 확대가 필요하다고 본
다. 음악의 구성 요소를 리듬, 멜로디, 화성으로 보는 고등학교
수준의 관점에서 볼때 존 케이지의 음악은 음악이 아니지만, 케
이지의 관점에서 볼때 그것은 음악인 것과 같은 이치이다. 앞서
말한 케니 지에 관한 것도 재즈라는 용어의 개념상의 범위가 넓
어 지던지 아니면 재즈에서 제외되던지 둘중의 하나이다.
그러므로 트래디셔널 포크가 원형이므로 근본적으로 이와 같은
필링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포크에 다른 장르가 섞이는 음
악들은 포크가 아니고, 시각을 다른게 볼때 포크라고 불러도 무
방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포크 음악이다. 어떤게 설득력을 갖
게 될지는 시간이 좀 더 지나야 할 문제인 것 같다.
그러면, 모던 포크가 모방한 트래디셔널 포크적인 요소와 모던
포크틱한 요소는 무엇일까. 더 이상 글쓰기 지겨우니 간단하게만
내가 생각하는 바를 말하면, 둘의 일치 요소는 음악적으로는 응
응응이고, 악기 면에서는 응응응이고, 시대적 측면에서는 응응응
이고, 소재의 측면에서는 응응응이라 할 수 있다. 둘의 다른 점
은 일단 창작자의 이름이 있냐 없냐의 여부 이고, 음악적으로는
응응응이고, 악기 면에서는 응응응이고, 시대적 분위기를 고려했
을때에는 응응응이라 할 수 있다. 다음 기회에 쓸까, 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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