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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러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는가 싶자 이번엔 인터넷 문제가 새로운 걸림돌로 부각되었다. 아니, 이미 인터넷 문제는 심각하게 도사리고 있었지만 우선 옴짝달싹하지 못했던 추위에 가려져 있다가... 이제 겨우 기로가 따스한 방에서 생활이 가능해지자, 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화가'라고는 하나 혼자 그림만을 그릴 뿐 대외적으로 활동이 거의 없던, 그리고 세상에서 거의 알아주지 않는 기로에게 홈 페이지 '화가의 일기'는, 화가로서 이 세상과 소통하는 장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자신의 일상적인 삶을 작품과 함께 그저 독백식의 일기와 편지를 써서 올리는 사이버 상의 한 공간이었는데,
비록 유명하지도, 겉으로 드러난 것마저 없는 보잘 것 없는 홈페이지이긴 했지만, 그에겐 어쩌면 살아가는 희망이자 화가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며 세상과 교류하는 통로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 기로에게는, 인터넷이 어느새 삶의 필수불가결의 요소일 수도 있었다.
그러면 이 대목에서 잠깐 기로의 홈페이지에 대해 짚어보기로 한다.
'화가의 일기'.
어차피 화가의 개인 홈페이지였기 때문에, 기로 역시 그 공간에 자신의 작품인 그림을 올리는 게 기본이었다.
그렇지만 몇 년 정도 그 사이트를 운영하다 보니, 그림만을 올려 놓아 봤자 찾아오는 방문객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방문객의 숫자에 무감각했던 기로였지만, 방문객이 없는 사이트를 운영하는 건 갑갑하지 않을 수 없었고, 차츰 무용지물이란 자각을 하게 되는데,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자신마저 재미가 없다 보니, 이제 자연스럽게... 뭔가 방문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요소를 찾게 되었다. 그게 비록 의식적이거나 계획적이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뭔가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던 것이다.
물론 그림도 어떤 방문자들에겐 감동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림이란 게 달걀이 알을 낳듯 하루에 하나씩 그려지는 것도 아니고, 그나마 없던 방문객들의 마음까지 사로잡기에는 턱없는 부족함 같은 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바로 ‘글’인데, 글도 '어떤 글이냐'가 문제였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어차피 자신의 사이트에 들어오는 방문객들과의 소통이라면, ‘대화식의 편지’가 좋을 것 같았다.
기로야 일단 그 사이트의 운영자의 입장이다 보니, 들어오는 방문객이 누군지도 모르고, 또 어떤 방문객들은 자신의 정체를 전혀 드러내지 않은 상태로 그저 사이트에만 들어왔다가 조용히 나가기도 하기 때문에... 어쩌면 기로 쪽에서 일방적으로 던지는 편지일 수도 있다는 것에 착안해서,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쓰는 편지’라는 제목을 붙이기에 이르렀는데,
그렇다고 편지 역시 날마다 쓸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또 생각을 모았던 게, 그저 평범한(어쩌면 100% 사실 그대로는 아닐지라도) 화가의 일상을 담은 일기도 함께 올리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고,
결국 일기와 편지를 함께 올리기로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게 가능했던 건,
기로에겐 자신이 가지고 있던 또 다른 재주일 수도 있는 글짓기(기로는 어릴 적부터 글짓기에도 남다른 재주가 있어서, 백일장 대회 같은 데에 나가면 줄곧 상을 받기도 했던 학생이었다. 그뿐 아니라 평생을 써온 일기 때문인지, 글을 쓰지 않는 생활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화가로써의 직업이 있었지만, 평생을 글과 함께 해오기도 했다는 말이다.)에 취미와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자신의 작품인 그림과 자신이 찍은 사진(아무래도 화가이기 때문에 구도잡는 거나 또 자신만의 독특한 사진에 대한 해석이 있었기 때문에, 보통 일반인이 찍는 것과는 확연히 구분될 정도의 사진 실력도 가지고 있었기에), 거기다가 일기는 물론, 이따금 본인이 느끼는 일상에 대한 편지글을 제공하면 어떤 방문객들에게는 아주 흥미로운 홈페이지가 될 수도 있겠다는 판단이 섰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꼭 밝히고 넘어가야 할 것은,
더구나 요즘이 기로에게는 이전의 그 어떤 때보다 더 홈페이지에 정성을 들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여태까지는 그저 혼자서 그 일을 거의 비공개적으로 유지 운영해 왔던 거라면(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명의 꾸준한 방문객이 생겨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거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던 시점인데다),
이제부터는 바로 얼마 전에 펴냈던 자신의 책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쓴 편지’에 바로 자신의 홈페이지를 공개했기 때문에... 홈페이지 운영방식 역시 확연히 달라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소극적인 자세로 홈페이지를 운영해 왔다면, 지금 부터는 뭔가 적극성을 가지고 홈페이지를 찾는 사람들에게 보다 재미있는 내용(콘텐츠)을 선사해야만 한다는 자세의 입장 전환이 필요하던 시기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 게 여태까지 몇 년의 홈페이지를 운영해 왔던 기로에게 생겼던 노하우이자 결론이었던 것인데,
서울 생활을 때려치우고 '둔터니'로 내려올 수 있었던 한 원인 중에는,
앞으로 기로가 맞닥뜨릴 시골 생활을 있는 그대로 생생하게 인터넷에 알리는 재미를 홈페이지 회원들에게 제공해보고 싶다는 바람도 작용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건, 기로 뿐만이 아니라 친구인 범상도 대찬성이었는데,
범상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호숫가 별장이기도한 '몽상'의 '미래를 위한(?) 선전'도 될 수 있다는 자각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이전에 기로에게 누차 그 곳에 와서 살라고 할 때도,
범상을 잘 알던 기로 입장에서는,
"내가 거기에 가서 살게 되면, 인터넷은 필수불가결이다."는 말을 누누이 강조 했었고,
범상 역시,
"인터넷 문제는 내가 다 책임져 줄 테니, 걱정 말고 내려와... 니 뜻을 맘껏 펼쳐라!" 고 성화였기 때문에, 거론의 여지조차 없는 문제이기도 했다.
그런데 기로가 둔터니에 내려왔을 때는, 그것 역시 준비가 안 된 상태였던 건 물론,
예상했던 것보다는 훨씬 어려운 문제로 대두되고 있었는데......
아무튼 이제부터의 이야기는 기로의 '몽상'에서의 일기와 편지가 주를 이룰 수밖에 없는데, 그 양이 엄청나기 때문에... 일일이 다 가져올 수는 없을 듯하다.
그래서 핵심적인 것들만을 추려볼 생각인데, 그게 가능할지는... 미지수로 보여진다.
*
전주로 돌아갔던 친구는 본인이 직접 전화국에 가서 인터넷과 전화를 신청하면서 나에게 핸드폰을 걸어왔다.
자기도 바쁠 텐데......
물론 그도, 나에게 인터넷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스스로 발로 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부근에 열여섯 개의 라인이 있는데, 다 차서 새로 시설하기가 거의 불가능할 거라고 하니,
큰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는, 담당자를 직접 쫓아 다니면서까지 사정을 한 모양이다.
그래서 결국 금요일에 시설해주겠다는 약속까지 받은 상태로 다시 연락이 왔다.
그런데도 나는 굳이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애를 쓰고 있는 범상이 여간 고마운 게 아니었다.
그러니까 진즉에 했어야 하는 일인데, 말로만, '와서 살라'고 했지 뭘 제대로 준비해 놓은 게 없으니... 내가 어찌 불평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래서 끝내 둘이 옥신각신 다투고 나서야 발등에 불이 떨어진 듯 움직이고 있는 친구가 한 편으론 안 돼 보이기도 하고, 또 미안한 마음도 없지가 않은 것이다.
그러면서는 지난번 그에게 막 퍼부었던 걸, 약간 후회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없었다면,
지금 그가 이렇게 서두르고 있을까?
나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기까지 했다.
어쨌거나 이제 조금 희망은 있다.
인터넷만 된다면, 내가 절해고도에 있다한들 무슨 대수겠는가......
그리고 이젠 수돗물만 나오면, 다른 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거 같다.
3 . 4
# 시골 시간
시골에 오니, 제일 먼저 피부로 느끼는 건 시간이 많이 남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내 서울 생활도 밖에 나갈 일이 많질 않아서 남들보다 훨씬 많은 개인 시간을 가지고 살아온 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시골에 와서 며칠을 지내다 보니, 갑작스레 나에겐 주체할 수 없도록 많은 시간이 남아돈다는 걸 절감합니다.
TV도 안 되고, 인터넷도 안 되다보니(아직 컴퓨터 하드도 도착하지 않아서), 그런 쪽에 시간을 뺏길 일이 없어서 그러겠지요만.
그러니 내가 투자하는 시간이 단지 먹고 사는 것 준비하는 일 뿐이니,
당연히 시간이 많이 남는 거겠지요.
그런데 그 시간이라는 것이,
낮에는 이런 저런 단순 노동으로 시간을 보내기도 하다 보니(내 자의이기도 하지만, 그런 일을 않고서는 이 시골에서 살아갈 수가 없으니), 그런대로 흘러가긴 하던데,
일단, 어두워지면 시간이 어둠처럼 끝도 없이 내 앞에 펼쳐진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모니카를 불거나 노트북에 글을 쓰거나, 그리고 스케치 북 앞에 보내는 시간이 많아질 수밖에요......
그래도 시간이 남아,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열 시 경에 잠자리에 드니,
잠이 많지 않은 나는 쓸데없이 새벽에(어떤 때는 새벽이라기보단 한 밤중에) 잠을 깨게 됩니다.
그러니, 새벽 시간도 뭘 어찌해야할지 고민스런 겁니다.
갑작스런 변화.
아마, 이런 게 시골 생활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오늘은 내 하드(컴퓨터)가 택배로 배달될 거고 또 집 전화가 개통이 된다고도 했고, 2 - 3 일 내에는 인터넷도 연결시켜준다 하니... 이제는 서울 같지는 않을지라도, 다시 그 나름대로 리듬을 타게 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시간이 조금 남아주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시골이니, 여유 있는 시간이 좀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건 내 헛된 바람일지도 모르지만, 시간도 다 그 나름이니... 아껴 쓰고 또 내 식으로 조절해간다면, 서울에서 보다는 조금 많은 시간을 쓰게 될지도 모르지요.
그렇게 해보렵니다.
시골에서 사는 장점을 내 스스로 조절해가면서 누려봐야겠지요......
3. 4
그렇듯,
비록 고생을 하고 있기는 했지만, 기로의 시골에서의 살아가겠다는 자세나 의지는 퍽 긍정적이었다.
처음 해보는 시골 생활에 대한 부푼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도시에서 태어나 또 도시에서만 자라왔지만, 그는 어릴 적부터 상당히 시골생활을 동경해 왔던 사람이기도 했기에,
쉰이 돼가는 나이에 해 보는 시골 생활이 싫을 리 없었던 것이다.
*
밤에 김 선생님의 전화가 왔다.
30분이 넘는 통화였는데,
선생님은 날더러, 오줌을 먹는 건강 생활을 해보라고 권하신다. ‘요로법’이라는데, 어차피 이런 시골에 내려와 혼자 살 생각이라면, 몸도 건강해야 하지 않겠냐면서......
선생님의 전화를 받을 때 나는 작업 중이었는데,
전화를 받으면서도 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었다.
오늘 있었던 일, '해는 서산에 지고...'.
역시 일기체 드로잉이다.
아침은 더욱 쌀쌀하고 추웠다.
어제나 거의 마찬가지로 살얼음이(어제보다는 조금 덜) 얼었는데, 해가 나질 않아서인지 더욱 을씨년스럽고 추웠다.
게다가 아궁이에 군불을 지피는데도 불이 제대로 붙어주지 않아, 매운 연기를 뒤집어쓰고 눈물을 얼마나 흘렸는지 모른다.
그렇게 밖에 쭈그리고 앉아서 불을 지피는데, 안으로 들어가도 춥고 밖에 있어도 춥고......
그래도 한쪽엔 불이라도 있으니 바깥이 나을 것 같아 엉거주춤 아궁이 앞에 앉아있는데,
"안녕하세요?" 하는 소리가 들려서 뒤 돌아 보니, 열 살이라던 반장 딸('정미'라던가? 초등학교 3 학년)이 인사를 했다.
"응, 학교 가는구나."
"예......"
학교 선생님이 인사는 잘해야 한다고 교육을 철저히 시켜서 그런지(애 아버지인 반장이 그랬다.), 인사성 하나는 밝은 아이라는데,
요 며칠 지나다니며 큰소리로 인사를 하는 모습이 이쁘다.
어쨌거나 인사를 잘하는 아이니 밉게 보일 리가 없는 것이다. 아니, 신통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우리 아이들은 그렇게까지 씩씩하지 못했는데......
아무튼 그 아이는,
혼자 저기 호수 다리 뒤편의 '마암 분교'까지 등교하는 것이다.
스쿨버스가 '둔터니' 입구까지 온다던가?
역시 시골생활이다.
서울에선 거의 없던 일인데, 손발 시린 게 다반사다.
양말도 빵꾸가 몇 군데 났던데, 그런 걸 염두에 둘 겨를도 없다.
군산의 형수님과 조카가 온다기에, 꾀죄죄한 몰골을 보여주기 싫어 물을 데워 머리를 감았다.
양치질도 이틀 만에 했고 일주일 만에 면도도 한 꼴이다.
옷도 갈아입었는데, 세탁기를 돌릴 수가 없으니... 빨래만 한 박스 쌓여간다.
빨래를 맡기는 일이 있을 수 있는 일인지는 모르지만, 지금 당장 여기선 빨래를 할 수가 없는 형편이니... 형수님 편에 군산으로 보내 며칠 후에 형이 오는 길에 가져오라고 해야겠다.
범상에게 핸드폰으로 전화 가설이 안 됐다고 하니,
인터넷이 들어오는 금요일 낮에 같이 들어오기로 됐다고 한다.
그 것도 모르고 나는 종일,
'왜 전화국에서 나오지 않나?' 기다리기만 했을 뿐이다.
오후에 형수님과 조카가 왔다 갔다.
김치와 밑반찬, 그리고 비키니 옷장 등을 가지고 와서 반찬 걱정을 덜었다.
보통, 밤에는 밥을 잘 해 먹지 않는 나지만, 오늘은 밥을 해서 김치와 다른 반찬을 곁들여 풍성하게 먹었다.
오랜만에 사람 사는 것 같은 식사를 했던 것이다.
저녁 무렵이 되면서 날씨가 좀 풀렸다.
거짓말처럼, 언제 추위가 있었냐는 듯 추운 기가 자취를 감추어버린 것이, 퍽 신기하기까지 하다.
추위가 가시니 방의 위풍도 많이 수그러들었다.
그래서 해동(解冬)이라고 하는 건가?
방에 불을 때는 일이 한 시간 정도 소비되는 걸 알면서, 나는 그 시간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방에 난방을 않고 살 수는 없고, 더구나 이 집은 흙집이라 군불을 때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인 것 같은데......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
3 . 5
# 하필이면 이런 때
날씨가 을씨년스럽고 변덕이 심합니다.
가끔 호수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제법 매서운 맛도 있습니다.
그리 높은 것은 아니지만 여기도 산중이라 구름도 자주 끼고, 가까이에 있는 제일 높은 앞산마저 가끔은 그 모습을 감추기도 합니다.
생각해 보면, 별 매력도 없고 아직은 만물이 움츠리고 있는 시절이라 이 시골 생활에 불편함이 많습니다.
오가는 마을 사람 몇몇은 날더러,
"하필이면 이런 재미없는(남들이 선호하지 않는) 어설픈 시절에 이사왔어?" 하고, 안 됐다는 듯 말을 하기도 합니다.
허기야 형제들도 전화로,
"날이나 풀린 다음에 이사하지, 뭐 그리 서둘러 가서 고생을 하느냐?"고 나무라듯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이 즈음이 그럴 때인 것 같습니다.
별 특징도 없이 그저 한가한, 뭔가 준비를 해야 하기는 하지만 일을 시작하기에 아직은 어설프고 이른 시절,
그럴 때 내가 왔습니다.
그래서 나도 직접 몸으로 그 어려움을 겪고 있기는 합니다.
왜 그랬느냐구요?
글쎄요, 어쩐지 그러고 싶어서였습니다.
꽃 피는 춘 삼월,
꽃들이 아롱대고 따뜻한 양지에서 씨앗을 뿌리는 시절에 맞춰 올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내 스스로 시기를 그렇게 조정해서... 일부러 앞당겨 왔던 겁니다.
왜 그랬냐구요?
모두들 얘기하는 봄날에 이런 곳으로 갑자기 온다면, '김 영랑'의 시처럼 탄성을 지르며 찬란한 봄을 느끼겠지요.
내가 할 일 자체도 잊은 채 봄을 즐기려 들 겁니다. 틀림없이......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러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왜냐구요?
미리 가 있고 싶었습니다.
그 상황도 익히고, 또 살아가는 준비도 하고... 그러다가 서서히, 그러니까, 어느 한 귀퉁인가에서 새싹이 겨울을 뚫고 솟아 나오거나 나무의 눈이 움트는 모습부터 차근차근 보고 싶었던 겁니다.
그러니까, 아름다운 꽃만 보고 감탄하기보다는, 미리 눈이 움트는 모습부터 보고 싶었던 겁니다. 그러다가 '꽃샘추위'가 오면 깜짝 놀라 숨어들어가는 모습까지도요.
그러자니, 나 역시도 조금은 고달픕니다.
아직, 손발이 시린 차거운 기온에다 얼굴을 얼얼하게 하는 찬바람도 맞아야 합니다.
그러다가 비라도 내리면 산골이라 진눈깨비로 변해,
'내가 왜 이런 곳에 내려와 고생인가?' 하는 후회도 하면서 말입니다.
게다가 물 사정이 안 좋아(수도도 3월에 개통시켜 준다는 말이 있긴 합니다만, 아직은...), 옆집에서 물을 길어다 밥을 해 먹어야 하며, 그래서 며칠씩 얼굴을 못 씻어 산적같이(?) 꾀죄죄한 모습인데도 말입니다.
3 . 6
기로의 일기를 보면, 하루가 다 지난 다음에 전체적으로 쓸 때도 있고 또 하루에도 몇 번씩 수시로 컴퓨터 앞에 앉아 그 때까지의 상황을 기록하기도 하는 식이다.
그러다 보니 현재 진행형 같기도 하고 또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일도 있는가 하면, 지난 과거의 기록 같기도 하다.
그런데 그건, 기로가 하루에도 몇 차례... 본인이 일기를 쓰고 싶을 때(그런 조건이 성립될 때), 바로 컴퓨터 앞에 앉아 메모해놓는 식이다 보니,
일기 쓰는 시점이 어느 때인가에 따라 시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즈음은 막 시골생활이 시작된 시점이기도 해서, 하고 싶은 말(이야기)들이 너무 많은 이유도 있다.
*
어제 저녁부터 풀리기 시작한 날씨는 비를 예고한 것이었던가 보다.
잠결에도 추녀 끝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새벽 공기가 차서인지 방안의 위풍도 다시 싸늘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잠이 깼다.
'마당에 있는 검불이 비에 다 젖었겠다......' 하는 걱정으로 문을 여는데,
방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아!"
나는 탄성을 올리고 말았다.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땅에 닿으면서 녹는, 많이 쌓이지는 않을 눈이었지만... 그래도 호수 건너 편 앞산은 어느새 하얗게 눈에 덮여있었고, 마당 군데군데에도 다소간은 쌓여있었다.
내가 여기로 온 뒤로 처음 내리는 눈이었다.
'이제는 봄인가?' 했었는데......
'오늘 같은 날은 방이 따뜻해야 돼. 어쩌면 친구가 전주에서 컴퓨터(서울에서 보낸 택배)를 찾아 가지고 올 지도 모르니까......'
그런 생각으로 나는 군불을 지폈다.
그러나 추녀 끝에서 떨어지는 눈녹은 물은 아궁이 앞에 앉으면 바로 몸에 닿을 거리여서, 불을 때기도 쉽지가 않았다.
'그러게, 무슨 가마솥이야. 솥만 아니었으면 비를 맞지 않아도 되는데......'
친구는, 날 위해, 이 집에 분위기를 돋운다며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가마솥을 구해다가 새로운 아궁이를 만들어놓았다는데,
그것까지는 좋았는데(그는 혼자 기분 내는 걸 좋아하고, 또 그걸 나에게 자랑하듯 얘길 하곤 한다.), 그래서 그만큼 뒤로 물러나가 앉아야만 불을 지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빗물을 고스란히 맞으며 불을 때야 하는 상황이어서,
하는 수 없이 우산을 쓴 채 쭈그리고 앉아서 불을 땔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내가 생각해도 좀 우스웠다.
우산을 쓰고 불을 지피다니... 이것도 희한한 모습이리라......
3 . 6
# 인터넷 문제
무슨 토요일이 이래?
나는 마치 토요일은 날씨가 쾌청해야만 하는 것처럼 대상도 없이 볼멘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끈질기게 이틀을 내린 비가 멈춘 것까지는 좋은데, 구름이 끼어 이따금 해가 얼굴을 삐죽이 내밀 뿐 날씨는 음산하기만 합니다.
그랬습니다.
내가 우려했던 생각이 현실로 정확히 맞아 떨어진 건지, 여기는 인터넷이 지원이 안 되는 지역으로 현 상태로는 연결이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러니 내 심사가 보통 뒤틀린 게 아니었지요..
어저께 전주 전화국에서 한 직원이 나와 이 마을 여기저기의 전선주에 오르내리며 춥고 을씨년스런 날임에도 불구하고 비를 맞아가며 열심히 일을 했는데,
인터넷 가동의 실험을 해보니...
아,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의 말로는, 기지국하고의 거리가 너무 멀어 지원이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최소한 4km 이내에 들어야하는데 자신이 추측하기론 5km는 넘을 것 같다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나 저제나 하고 목을 빼며 기다려왔던 나는,
정말 앞이 콱 막히는 기분은 물론, 환장할 노릇이더라구요.
그렇게 낙심한 상태로 내내 가라앉아 있습니다.
아무리 내가 시골생활을 하러 왔다지만, 절에 수행하러 들어간 게 아니기 때문에 인터넷 없이 산다는 건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일이었거든요. 그러면, 무엇보다도 내 홈페이지는 어떡하느냐구요...... (여러분도 걱정 아닙니까?)
그리고 내 친구도 내가 인터넷이 안 되면 여기서도 살 수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는데, 여기로 이사오는 조건 중의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인터넷 설치였는데... 이런 모양이니......
그리고 애당초 그 사실을 알았다면, 이런 식으로 여기에 무모하게 내려오지도 않았을 거구요.
지금 상황은 어쨌거나, 인터넷을 하려면 이곳을 벗어나야 하고, 여기에 맞춰 살려면 홈페이지는 접어야 합니다.
다른 건(난방이며 물 또는 조리 시설 등) 아무리 불편해도 웬만큼은 감수하고 살 생각이기도 했지만, 그래서 여태까지는 어쨌거나 미적대면서라도 여기서 버티고 있었는데,
인터넷이 안 된다니... 내가 뭘 어찌해야할지 몰라 이렇게 난감해하고 있는 겁니다.
아, 여기로 이사 오면서... 모든 게 악조건입니다.
난방이며 물, 또는 조리 시설 등이 나를 그토록 힘들게 하더니, 그리고 컴퓨터도 내 애를 태울 대로 다 태운 뒤에 겨우 조금씩 시늉을 해주더니,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인터넷에서 콱 막혀버린 기분입니다.
빌어먹을......
다른 건 그랬다 해도, 인터넷만큼은 되어주었어야 했습니다.
3 . 8
*
여기로 이사 온 뒤 내 스스로 한 번도 마을 밖으로 나간 적이 없다.
아니, 집 밖으로 나간 적도 마을 내의 집집마다 떡을 돌린 것과, 저 앞 키큰 아저씨 집에 물 길러 몇 번 갔다 온 것이 전부다.
그러니까 아직까진 다른 사람에 의해 나의 필요용품이 배달되었지만, 이제 내 스스로 조달해야할 시점이 다가온다는 걸 알고는 있는데,
허지만, 이런 몰골로 나간다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리고 별로 나가고 싶은 마음도 없다.
내가 그렇다.
원룸 생활에서도 그랬잖은가 말이다.
그러니, 이 시골 생활 역시 누군가 나에게 먹을 것만 조달해준다면, 나는 나가지 않으려 할 것 같다......
해가 잠시 나오는가 싶더니 다시 구름 속으로 파묻혔다.
날씨는 비만 안 올뿐, 어제와 별 다른 게 없이 음울하기만 하다.
정말 이 놈의 날씨는 언제까지 이럴 건가?
생활 자체가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다. 도심 생활보다 훨씬 더......
인터넷이 되면 컴퓨터 놓은 책상이 정리가 될 것이고, 그러면 조금씩 짐은 정리될 것이다.
그런데, 어제 인터넷이 안 된다는 순간부터 나는 다시 맥이 빠져... 아무 것에도 손을 못 대다 보니, 이래저래 여간 어수선한 게 아니다.
그러니 집안을 정리하거나 치운다든지 하는 의욕도 없다.
위성 인터넷 회사에서 연락이 왔는데, 안테나 등 초기 설치비용이 40 만원이 되고 매달 사용료도 나간다고 한다. 게다가 인터넷을 사용하는 동안에는 전화가 통화중이라니... 속도를 보면, 전화 모뎀은 0. 5 메가 보통 ADSL은 2 메가인데 비해 위성 인터넷은 그 중간인 1 메가라고 한다.
그런데, 그 것도 돈이다.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먹기는 해야 했다.
통나무집에 가서 밥을 올려놓고, 우두커니 서서 을씨년스런 바깥 풍경을 바라보고 서 있자니... 그런 사전 정보도 없이 덜컥 이사 온 게 후회스럽기만 했다.
인터넷도 안 되는 곳에서 뭘 하겠다고......
푹푹 한숨만 쉬었다.
그러다 급기야 싸락눈이 내리기까지 했다.
때 마침 동네 뒤 언덕에 며칠 전에 베어 냈다는 나무들이 많이 있어서, 솟대를 만들려고 반장에게 물어보니,
얼마든지 가져다 쓰라는 말을 들었던 터라...
오늘, 마땅한 일이 없어(마음이나 달래보려고) 친구가 사온 장화를 신고 올라가 보았다.
나무들은 많았으나 포크레인으로 밀어붙여서 다들 이리저리 뒤섞여 얽혀있었다.
그 안에서 적당한 나무를 꺼내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 중의 두 개를 한참 실랑이를 한 다음에 끄집어 내 경사진 밭으로 끌고 내려왔다.
그리고 바로 껍질을 벗겨내기 시작했다.
껍질은 생각보다 잘 벗겨지는 편이었다.
그러나 7 - 8 m는 될 나무 두 개의 껍질을 벗기는 일도,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군불을 지피는데, 아직 산에 걸리지 않은 해가 서쪽 하늘에서 반짝 비친다.
'날이 이렇게 길어졌나?' 하고 방문을 열어보니 탁자 위의 시계는 4시 반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한 시간을 잘 못 보고 방에 군불을 지폈던 것이다.
하는 수 없지......
군불을 지피느라 밖에 쭈그리고 있었더니 추웠다. 그렇다고 저녁을 해 먹을 시간으로는 너무 이른 시각이어서 방으로 들어와 아랫목에 누웠다.
그때 전화가 왔는데 친구 범상이었다.
내일 오려고 하는데 뭐 필요한 건 없냐고 묻는다.
필요한 것 보다는 인터넷이 안 돼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니,
그도 난감해 한다.
언뜻 잠이 들었나 보았다.
방바닥이 따끈했다.
시간은 6 시가 넘어가 날도 조금 어두워져 가는데, 나는 그대로 잠이나 자고 싶었다.
간단하게 또르띨야를 해 먹고, 후다닥 내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하모니카를 불었다.
불을 끄고 어둠 속에서......
어차피 앞과 옆 창을 통해선 바깥 가로등의 붉으레한 빛이 투영되어 어둠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런대로 좋았다.
그리고 나는 드로잉을 시작했다.
펜을 사용하여 검은 잉크를 종이 가득 메우는 작업이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오줌을 누려고 밖에 나가보니 하늘엔 별이 총총했고, 멀리 운암대교 부근엔 현란한 네온사인이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기온도 아주 춥지는 않았다.
내일은 맑으려나?
방에 들어와 해 놓았던 드로잉의 스캔을 한 뒤, 그림은 벽에 붙였다.
이렇게 내 벽엔 하나 하나 드로잉으로 채워져 간다.
그런 맛이라도 있어야 살지......
3 . 8
*
오늘은 맑을 모양이다.
어제 한 시간 여 일찍 군불을 땐 이유로 새벽엔 방이 미지근할 뿐이었다.
자면서도 그 게 느껴졌다.
'일어나 다시 군불을 때야하나?' 망설이다가, 미적미적 가로등이 꺼질 때까지 누워 있었다.
방바닥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 사람을 꽤나 불안하게 만든다.
역시 믿을 건 방구들뿐이다. 넉넉히 불을 땐 이후에야 안심이 되는......
서리가 하얗게 땅을 덮고 있다.
춥긴 했지만 군불을 지펴야 했고, 땅이 얼어 있어서인지 조금 뒤에는 발이 시리기까지 했다.
그러고 보니, 시골로 온 뒤 손발 시린 일이 매우 잦다.
웬만큼 불을 지피고, 방에 들어와 보일러를 켰다.
아랫목의 미지근한 것만으로 아침을 버티기 힘들 것 같았고, 작은 방이 따뜻해지면 내 방에 불기운이 오를 때까지 컴퓨터 작업도 조금 할 생각이다.
인터넷이 안 된다고는 하나, 홈피에 업그레이드시킬 것을 미리 해 놓으면, 최악의 경우엔, 혹시 외부에 나갈 일이 있을 경우 CD에 구워가지고 가서 올릴 수도 있을 것 같아서다.
친구 범상이 왔다.
날씨가 좋아서, 여기 와서 평상도 고치고 좋은 날씨를 즐기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와 나란히, 그가 엊그제 사왔던 장화를 신고 둘이서 뒷산에 올라 솟대 할 나무를 몇 개 끄집어내 오고,
또 안방에 선반 지를 대나무도 베어 왔다.
그런 일마저도 한가한 시골 생활의 멋 같게 느껴져 좋았다.
그러면서 친구는,
여기에 내가 와서 살아가는 이유 중의 하나였던 인터넷 문제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본인이 책임지고 해주겠다는 말을 했다.
최후의 방법인 위성안테나를 설치해서라도 자신이 했던 약속을 지키겠다기에,
나는 고맙기도 미안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는 또, 며칠 전에 그에게, '이런 집에서 살라고 오라고 했냐?'며 마구 퍼부어댔던 것도 미안해지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얘긴 다시 꺼내지 않았다. 어쩌면 그런 말은 이제 필요 없는 것인지도 몰랐다.
(내 생각일 뿐이었을까?)
허기야 우리가 어디 하루 이틀 사이 친군가?
어쨌거나 오늘은 하루 종일 친구와 집안 여기저기에서 부산하게 일을 했다.
때로는 그와 함께, 그리고 때로는 나 혼자서......
적당한 나무를 잘라 껍질을 벗기고 구멍을 파고... 틈틈이 솟대도 만들었다.
그리고 친구와 함께 대나무 두 개로 선반을 질러 놓으니, 방이 새로운 분위기였다.
역시 자연적인 대나무의 제 모습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는 것을 느꼈다.
아무튼 여기 생활도 조금씩 자리가 잡혀간다.
3 . 9
# 솟대
오늘은 날이 포근했습니다.
이런 날씨만 된다면 봄날이라고 해도 될 성 싶었습니다.
햇살이 강하니, 얼었던 마당의 습기도 말라가는 것 같고......
점심을 해 먹고 사흘 만에 이를 닦고 머리도 감았고 며칠 만에 옷도 갈아입었습니다.
그러면서 거울을 보니, 얼굴이 제법 그으른 것 같더라구요.
요즘 바깥에 있으면, 솟대를 깎느라 햇볕 있는 곳만 쫓아다니니까요.
새벽에 일어나니 아직 다섯 시가 안 되어 있던데, 일어나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위풍도 세고 아랫목도 썩 따뜻하지가 않아 미적대고 있었는데... 언뜻, 솟대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 솟대를 깎자.'
일어나 마루에 있는 솟대 새 모형을 안으로 들여 와 구멍을 넓히는 작업을 했습니다.
내 짐 속에 있던 조각도를 꺼내 조금씩 구멍을 넓히고 연결부위의 나무를 좁히고... 그렇게 새의 머리 목 몸통 부분이 조금씩 제 위치에 붙어가기 시작했습니다.
한 시간쯤 파다보니 엄지손가락 바닥이 얼얼하드라구요.
'이러다가 물집이 잡힐 지도 모르겠네......' 하는 생각도 들었답니다.
오늘도 날이 좋았습니다. 내가 여기로 온 뒤로 가장 좋은 날인 것 같았지요.
구름 없는 맑은 날.
그러다 보니 그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세워져 있을 솟대 생각에, 나는 마음이 바빠졌습니다.
그래서 새벽에 팠던 솟대를 조금 더 깎아서, 성급한 마음에... 본 나무기둥에 끼워 통나무집에 기대어 세워 보았습니다.
'양 옆으로 벌어진 간격이 조금 더 넓었으면 좋았으련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가지 사이가 너무 좁아서 그 넓은 하늘을 배경으로 좁다랗게 모여 있는 것 같아서요.
그게 약간 불만이긴 했지만,
'허기야 이런 나무마저 그리 쉽게 구할 순 없었으리라......' 하고 자위를 했답니다.
그런데요, 내가 그러고 있을 때, 여기 한전에서 나와 앞 길가에 전선주를 갈아세우는 작업을 했거든요?
포크레인에 지게차 등, 사람은 셋 뿐이었는데, 그 무거운 콘크리트 전선주를 세우는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의 한 사람이 내가 솟대를 깎는데 와서 말을 걸더라구요.
"지금 뭘 하시는 거지요?" 하고 호기심어린 목소리로 묻기에,
"솟대를 만들고 있는데요......" 하니,
"'솟대'가 뭔데요?"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나는 이상했습니다.
오히려 시골 사람들이 솟대에 대해선 도시 사람보다 더 모르는 것 같더라구요.
왜냐면, 이 마을 사람들도 다들 내가 하는 일에 신기해 했거든요?
내가 솟대를 만든다니까, 그제야, TV에서 본 것 같기도 하다는 둥... 미신 아니냐고 묻기까지 했으니까요.
아무튼, 한 마리의 새는 하늘로 떴습니다.
이제 다른 가지에 또 한 마리의 새를 끼우기만 하면 됩니다.
그래서 작업을 더 하려고 했는데, 손가락 바닥이 아파서, 무리를 하면 문제가 생길 것 같아 나중에 하기로 마음을 바꿔 먹었습니다.
솟대를 완성한다 해도, 마당의 축대가 끝나야 세울 수 있을 테니까요......
아무튼 나는 솟대 반절을 만든 기쁨으로(기념으로?), 전선주 갈아세우는 작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커피를 대접했습니다.
저 앞 '산장 가든'에서 점심을 먹고 오기에, 내가 미리 준비했던 커피 세 잔을 갖다 주니... 거기 평상에 잠깐 걸터앉아서 고마워하며 커피를 마시던데,
아,
파란 하늘에 새 한 마리가 떴어도... 나는 행복하기만 했답니다......
3 . 10
*
오늘 연락을 해준다던 위성인터넷 회사에선 감감 무소식이어서, 내가 연락을 했다.
그런데 그 것도 복이라고, 다운로드엔 별 이상이 없는데 업로드엔 문제가 많다는 안내를 한다.
나 같은 화가가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건 이미지를 올려야 하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인데,
업로드가 힘들다면?
그 것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인터넷을 포기할 수는 없을 것 같아 신청하기로 했다.
이미지가 안 올라가면, 다른 방법을 쓸 수밖에 없으니까.
그러니까 정규적으로 이미지를 가지고 다른 장소에 나가 업로드 시킬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렇게,
이래저래 내가 원하는 쪽과는 거리가 먼 쪽으로 일이 진행된다.
빌어먹을......
아무튼, 인터넷이 안 되니까... 답답해서 미치겠다.
점심을 먹고 안방에서 컴퓨터 작업을 했다.
날씨는 화창했으나 나가진 않았다.
내 홈페이지에 올릴 작업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어제 친구가 가져온 의자에 앉아 작업을 하다가 방문을 열어보니,
아, 보이는 그 자체가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호수에, 산에, 하늘에......
이제 날씨가 따뜻하게 풀려 문 열어 놓고 작업을 하면, 나는 완전한 자연 풍경과 함께 하게 되는 것이리라......
음악도 크게 틀어놓고 있으니, 기분이 썩 좋았다.
그렇게, 혼자서 행복해했다.
저녁을 해 먹고 작업을 하려고 했지만 거의 4 시간을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앉아만 있었다.
그 사이 졸기도 했고, 두 통의 전화를 받기도 했다.
그런데 머릿속에 잡히는 것이 없었다.
이 건 분명 괴로운 일이다.
아무 것도 떠오르는 것 없이, 그림을 그린답시고 몇 시간을 헤맨다는 것은......
내일은 인터넷이 되려나?
3 . 10
# 매화 피는 집
그런데 오늘, 여기 '몽상(夢想?)'엔 나를 반갑게 해주는 요소가 하나 더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사는 집 뒤 언덕에 세 그루의 나무가 있는데, 여태까지 난 그 게 모두 감나무인 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이 동네엔 감나무가 많거든요.
그런데 알고 보니, 제법 오래 된 매화나무 두 그루가 눈을 틔우고 있는 모습을 보았던 겁니다.
사실 나는 그런 건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기도 하고 모르고 있었습니다만, 집 주인인 친구가,
"여기는 매화나무도 있다?" 하며 약간 자랑하듯 하는 말에,
"정말?" 하면서, 그 나무 가까이에 가서 자세히 보니 가지마다 눈이 툭 불거진 모습이... 이제 머지않아 꽃이 필거라는 걸 내 눈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던 겁니다.
'아, 매화 향기 가득한 집에서 살겠구나......' 하는 생각이 스치면서, 갑자기 나는 부자가 된 느낌이 들었답니다.
친구는, '매실도 많이 딴다'고 말했지만,
나에겐, 매실은 그 다음 문제였습니다.
우선 매화가 피는 것를 보는 것입니다. 내가 사는 집에서......
그러고 보니, 애당초 내가 이 집을 참 잘 보긴 했다는 생각도 스치더라구요.
몇 년 전 통나무 집 유리창을 통해서 볼 때만 해도,
'이 방엔 어떤 선비가 살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그것과도 너무 잘 맞아 떨어지는 얘기이기도 하니까요.
아무튼, 나는 생각지도 않았던 횡재를 한 느낌이었답니다.
그 꽃이 피었을 때 꽃을 보고 감탄하는 것도 좋겠지만, 이렇게 꽃을 기다리는 순간도 행복하다는 것을 느낀 겁니다.
물론, 그런 걸 염두에 두고 추운데도 불구하고 미리 내려왔지만, 정작 나무의 꽃망울을 보면서는... 아주 새로운 무엇인가를 발견한 것처럼 마음이 환해지더라는 겁니다.
가장 먼저 피는 꽃 중의 하나인 매화가 필 준비를 하는 즈음에 이사를 왔으니, 그것 역시 아주 때를 잘 맞춘 것 아니겠습니까?
나는, 그동안 힘들었던 여태까지의 고생은 다 날려버린 듯,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꽃이 피면 어떻게 한다지요? 앞에선 잘 보이지도 않을 집 뒤에서 꽃이 피면, 어떻게 한다지요?
한 가지를 꺾어다 내 작업대 위에 꽂아놓는 겁니까? 그리고 혼자서 그 꽃을 보고 폼만 잡고 있는 겁니까? 아니면 꽃을 아끼는 마음으로(내 방문을 열면 바로 뒤 언덕에 있는 꽃이니)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하는 걸까요......
우선, 그런 고민부터 해보게 되드라구요.
어쨌거나,
아, 내가 매화 피는 집에서 살아보다니!
이 건 뜻하지 않은 커다란 호재이자 행운입니다.
벌써부터 매화 향이 집안에 가득한 기분이거든요......
근데요...
사실, 난, 매화 향이 어떤 것인 줄도 모르거든요? 꽃도 잘 모르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그런 향이 그윽한 기분이라는 겁니다.
3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