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전강해(10)
좋은 교회가 되는 비결
본문 : 살전 2:13-16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도 바울에게
기쁨을 주는 교회였습니다.
사도 바울을 행복하게 해주는 교회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이 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참고 : 첫 번째 감사 1:6-7절).
그렇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짧은 역사 속에서도
모든 지방에 좋은 소문이 퍼지고....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는’(1:7)
자랑스러운 교회였습니다.
<좋은 교회가 되는 비결>
그러면 데살로니가 교회는
어떻게 그런 ‘좋은 교회’가 되었을까요?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이 이유를 두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첫째,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말씀 받는 자세가 달랐습니다.
13절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예,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말씀 받는 자세가 달랐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그 말씀을 전달하는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개역 성경에는 구분되어 있지 않지만
영어 성경에는 “받다”라는 동사가
다른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 received(받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 accepted(받아들이다).
“받다”와 “받아들이다”는
그 의미가 다릅니다.
전자는 귀를 가리키고,
후자는 마음을 가리킵니다.
전자의 동사는 듣는 것,
즉 사실이란 객관적인 문제만을
가리키는데 비해.....
후자의 동사는 신앙이라는 주관적인 문제로
그들의 마음에 받아들이는 것을 가리킵니다.
사도행전 17장 11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예,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은
베뢰아 사람과 같이 중심(마음)으로
말씀을 받았던 것입니다.
정보통신부 장관을 지냈던 진대제
씨가 한번은 강연을 하기 전,
‘100% 인생을 만드는 법’이라는
영어식 유머를 말하였습니다.
영어 알파벳에 순서대로
1∼26까지 번호를 붙여
단어의 숫자를 더해서....
100이 되면 100점짜리 인생이 된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일하는 것(Hard Work)은 98점,
지식(Knowledge)은 96점,
사랑(Love)은 54점....
행운(Luck)은 47점,
돈(Money)은 72점,
리더십(Leadership)은 89점인데,........
태도(Attitude)만이 100점을
받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자세로 살아가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이것은 신앙생활에서도 예외가 아니어서,
말씀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따라
신앙의 집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사랑하는 영적인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면서 ...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으라고 권면하였습니다.
딤후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그렇습니다.
믿음의 차이는 말씀을 대하는
차이에서 옵니다.
성경을 일을 때,
말씀을 들을 때 어떤 자세로(마음으로)
듣느냐 하는 것이...
우리의 믿음의 수준을 결정합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시절에,
다른 지역에서는 많은 기적이 일어났지만......
나사렛에서는 아무런 기적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고향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막6:3)하며
사람의 말로만 받았기 때문입니다.
로마 군인인 백부장 고넬료의
모습을 생각해봅시다.
그가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베드로를 청하고 베드로가
그의 집에 들어갈 때.....
그는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는데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행10:33)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은혜를 사모하는
모든 이들이 가져야 할 태도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자는 자기의 사사로운 생각을
방자히 전하지 않아야 합니다.
말씀을 듣는 자의 태도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이
먼저 하나님께서 일러주신 말씀을
잘 대언해야 합니다(신18:18∼20).
<신18:18∼20>
18절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
19절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전하는
내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내게 벌을 받을 것이요
20절 만일 어떤 선지자가
내가 전하라고 명령하지 아니한 말을
제 마음대로 내 이름으로 전하든지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면
그 선지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느니라.”
이러한 경고의 말씀에도
이스라엘에 거짓 선지자가 판을 치고......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 이가 드물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탄식하였습니다.
사29:13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바라기는 목회자이든 성도이든
말씀을 읽고 들을 때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13절에서는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설명합니다.
13절b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그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받는 자에게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다가 은혜를 받게 되면
크게 세 가지 역사가 일어납니다.
1. 회개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말씀을 듣다가 제일 먼저 깨닫는 것은
자기 자신이 얼마나 죄와 허물이
많은 사람인가 하는 깨달음입니다.
말씀을 통해 은혜 받은 사람들은
반드시 회개하게 되고,
회개하게 되면 거룩해지고 겸손해집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깨달아 집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 지 깨닫게 됩니다.
<히4:12-13>
12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13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2. 변화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은혜 받은 만큼 변합니다.
성도님들이 예수 믿은 뒤
얼마나 변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성품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인격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생각하는 것이 다릅니다.
가치관이 다릅니다.
인생관이 다릅니다.
삶이 다르고 말하는 것이 다릅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예수님을
점점 닮아갑니다.
빌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3. 능력 있는 성도가 됩니다.
죄와 싸워 이길 수 있는
경건의 능력이 생깁니다.
거룩하게 살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뿐만 아니라 환란과 시험을
이길 수 있는 큰 능력이 생깁니다.
예전에는 환란이 오면 낙심을 하고
걱정을 했는데....
이제는 담대하게 나아가 찬양하고 기뻐하며,
전화위복이 될 것이라고 믿고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립니다.
은혜 받은 성도에게는
기도의 능력이 있습니다.
전도의 능력이 있습니다.
믿음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
성경을 읽을 때에도
세상 책 읽듯이 하면 안 됩니다.
또 설교를 들을 때
교양강좌를 듣는 것처럼 하지 마십시오.
설교자들이 얼마나 유식하고 아는 것이
많은가에 관심을 두지 마십시오.
설교를 들을 때에는 하나님이
이 시간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일까?
어떤 교훈을 주시려고 하는 것일까?
하나님에게만 관심을 가지고 집중하십시오.
그래서 설교를 듣는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길 바랍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어떻게 그런 ‘좋은 교회’가 되었을까 ?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이 이유를 두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첫째,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말씀 받는 자세가 달랐습니다.
둘째, 데살로니가 교회가
그렇게 모범적이고 ‘좋은 교회’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고난을 받으면서도 낙심치 않고
잘 감당했기 때문입니다.
14절 “형제들아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은 자 되었으니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 너희 동족에게서
동일한 고난을 받았느니라.”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예수 믿기 때문에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고난은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왔습니다.
동족으로부터 왔습니다.
그 박해는 먼저 유대에 있는
교회들이 당했습니다.
그런데 그 박해는 이방인이 아닌,
동족인 유대인들로부터 왔습니다.
바울은 유대인의 죄악된 실상을
그대로 고발합니다(다섯 가지 항목).
<15-16절>
15절 “유대인은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우리를 쫓아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어
16절 우리가 이방인에게 말하여 구원받게 함을
그들이 금하여 자기 죄를 항상 채우매
노하심이 끝까지 그들에게 임하였느니라.”
그러나 유대에 있는 교회들은
그 박해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지켜내고 있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그들을 본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도 자기 동족으로부터
박해를 받고 있습니다
(역시 대부분은 유대인 – 잘못된 선민사상).
그 고난을 잘 이겨내는 모습을 볼 때
사도바울은 감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예수님께서
유대인들로부터 고난을 받으셨지만
끝내 사명을 완수하신 것처럼,
타락한 유대인들의 박해로부터
유대의 교회들이 믿음을 지켜내고 있는 것처럼,...
그들도 동일한 고난을 잘 견뎌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데살로니가 교회가
그 지역 교회의 본이 되는 이유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고난은 피할 수 없는 숙명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6:24에서....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은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믿음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 가는 것입니다.
믿음의 절정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던 것처럼 ....
우리도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세상 사람들이 멸시하고
천대하여도 예수 믿는 자답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사람답게 살아서....,
손해를 보게 되고 고난을 당하게 된다고 해도
기꺼이 그 고난을 기쁨으로 받을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마5:11-12, 행5:41).
<맺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님들 !
우리 금산교회가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좋은 교회’로 소문이 나기를 원합니다.
저와 성도님들이이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처럼
칭찬듣고 본이 되는 성도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 성경을 읽고 들을 때마다...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신다”는
감격과 두려움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말씀을 부여잡고....
그 길을 순종하며 걸어가다가 만나는
그 어떤 고난도 기쁨으로
이겨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와 성도님들 !
모두가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처럼......
지역의 다른 교회에,...
우리의 후손들에게 믿음의 참된 본을 보이는
신앙생활을 해 나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금산교회 김화준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