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맛’ 그 담담함…티베트 노스님들과의 해후
▲ 운문사의 절 천장 문양을 신기한 듯 쳐다보는 티베트 스님들.
왼쪽 네번째가 최고 연장자 롭상 쬔뒤 스님, 그 옆이 청전 스님,
맨 오른쪽이 가장 오지에서 온 체링 도르제 스님. 알 듯 모를 듯,
무심한 듯 은근한 듯 그저 빙그레 히말라야의 스님들을
한국에서 다시 만날 줄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5년 전 신문사를 1년 쉬고, 히말라야에 갔을 때 저와 한 달 동안
함께 했던 티베트 스님들이 한국에 온 것입니다.
제가 롭상 쬔뒤(81) 스님과 툽텐 왕걀(73) 스님을 만난 것은
히말라야의 다람살라였습니다.
다람살라는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가 망명해 살고 있는
산간 도시입니다. 달라이 라마가 망명해 사는
히말라야 최북단 라닥의 인연.
그들이 원래 사는 곳은 히말라야 최북단으로
인도의 티베트와 경계 지역 라닥입니다. 라닥은 애초 티베트 땅이었는데
인도에 편입된 곳이어서 지금도 대부분 티베트인들이 살고 있으며,
티베트 불교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라닥을 가보고
‘오래된 미래’란 책에서 그곳을 소개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곳이지요.
라닥은 겨울에 온도가 영하 30~40도까지 내려가는데도
스님들이 사는 높은 산 위의 절엔 난방조차 없습니다.
그래서 다람살라에서 달라이 라마의 지도 아래 수행하는
한국인 청전 스님이 노스님들이 겨울을 나도록
다람살라에 방을 마련해주었습니다.
저는 두 노스님과 청전 스님과 함께 히말라야에서도
가장 오지에 속하는 히마첼을 순례했습니다.
히말라야에 있는 천년 고찰들을 함께 찾으면서 숱한 고생을 함께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에서 한 번도 고통스런 모습을 발견한 적이 없습니다.
일반인과 한 방 써 본 적 없는 그들도
내 생활이 궁금한 듯 저는 순례를 다녀와서
다람살라에서 두 노승과 한방에서 보름을 함께 지냈습니다.
그러니 인도에서 한달 간을 그들과 함께 지낸 셈입니다.
두 스님은 티베트 스님이라면 누구나 존경하는 달라이라마의 궁이
바라다 보이는 방에 자리 잡았습니다.
달라이라마 궁이 10분 안 거리로 가깝고,
또 방 베란다에서 궁이 보이니, 스님들로선 만족스런 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방엔 두 스님이 쓰는 두 개의 침대가 나란히 붙어 있고,
부엌과 화장실이 딸려 있었습니다.
저는 그 방에서 매트리스를 깔고 빌붙기로 했는데,
숙박비를 아끼기 위함이 아니라
단지 두 노승이 좋기 때문이었습니다. “쥴레!”
“쥴레!” 제가 라닥말로 인사말을 하면,
두 스님은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큰 목소리로 화답했습니다.
어려서 출가해 티베트 불교 고찰에서만 자라온 스님은
스님이 아닌 일반인과 한 방을 써 본 적이 없었습니다.
두 스님은 늘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곤 했습니다.
‘스님이 아닌 사람은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나’하며
그 스님들도 내가 사는 모습 하나하나가 신기한 모양이었습니다.
하긴 공사다망한 내 삶이 어찌 궁금하지 않았겠습니까.
9시 잠자리 들어 새벽4시면 눈 떠 경 읽고 기도하는
‘시곗바늘’ 두 스님의 삶은 단순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철학자 칸트는 매일 오후 3시라는 같은 시간에
같은 길을 늘 산책했다고 합니다.
결혼 안 한 것까지는 칸트와 같은 셈입니다.
그런데 내가 칸트를 직접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칸트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덜 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규칙적이다 못해 시계바늘이었습니다.
그곳은 절도 아니고, 누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사람 한 명 없지만
두 스님은 밤 9시면 어김없이 잠자리에 들고,
정확히 새벽 4시에 눈을 떴습니다. 물론 괘종시계 같은 건 없었습니다.
일어나자마자 침대에서 부처님께 3배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앉아 경전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정확히 2시간 동안. 이어 화장실과 세면대에서
아침 볼 일을 본 뒤엔 6시 30분에 짜이를 끓여 마셨습니다.
2시간 동안 경전을 읽고 6시부터 약 30분 동안 볼 일을 보고,
6시30분에 짜이 한 잔을 마셨습니다.
짜이를 마시고 나면 그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달라이라마궁 주변을 돌며 옴마니밧메훔이라고 적힌
마니윤차를 돌리면서 기도하는 ‘꼬라’를 나갔습니다.
30분 가량 꼬라를 돌고 달라이라마궁 앞에서
노점상이 5개에 10루피(250원 가량)에 파는 빵을 사와 아침을 먹었습니다.
나 때문에 눈발 날리는 문 밖에서 1시간 떨었어도
즐거운 미소 한번은 밖에서 식사를 하고
노승들을 먼저 집에 들어가도록 했습니다.
노승들의 취침시간이 밤 9시였기에 8시30분에 자리를 파하고
먼저 집으로 가 쉬게 한 것입니다.
노구의 몸으로 히말라야의 고산들을 여행하느라 몹시 지친데다
작은 스님은 여행 내내 허리 통증이 도져
어서 빨리 자리를 펴고 눕는 게 급했습니다.
저는 한 시간도 더 늦게 거리에 머물다 집에 갔습니다.
그런데 집에 도착해보니 두 노승들이 방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눈발이 휘날리는 문 밖에서 추위에 떨고 있었습니다.
이미 노승들의 취침 시간은 1시간도 더 지체한
밤 10시가 넘어선 시간이었습니다. 그제야 난 외출할 때
방문을 잠근 뒤 열쇠를 내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난 황망해서 얼굴을 들 수 없는 지경인데,
노승들은 즐겁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습니다.
밤을 새지 않고 1시간 만에 왔으니 얼마나 다행이냐는 표정이었습니다.
아차 실수로 불 켠다는 게 불 꺼버려도 웃음 활짝,
인도에선 전력사정이 좋지 않아 밤이 되면 전기가 나갈 때가 많습니다.
전기가 나가지 않더라도 형광등은 밤마다 꺼지기 일쑤입니다.
백열등은 그대로 있는데 형광등만이 나가,
난 형광등이나 점멸등이 오래돼 수명이 다한 것으로 여기고
밤늦게 가게를 찾아 새 것을 사와 바꿔 끼우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형광등이 밤마다 거의 나간다는 것을
안 것은 한 참 뒤였습니다. 밤에 전기사용량이 늘면
그렇게 되는 것 같았습니다.
하루는 스님들이 경전읽기에 몰입해 있는데,
또 형광등이 꺼졌습니다. 스님들은 그것도 모른 채 어두운
백열등불에 의지해 티베트어 경전을 읽고 있었습니다.
내가 형광등을 빨리 켜려고 스위치를 올리는 순간 방 안이 캄캄해졌습니다.
형광등 스위치를 올린다는 것이 백열등 스위치를 꺼버린 것입니다.
순간 스님들의 경전 읽는 소리가 그쳤습니다.
나는 다시 스위치를 올렸습니다. 방안이 밝아졌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전등보다 더 밝은 것을 보았습니다.
두 노스님의 얼굴이었습니다.
두 노스님은 나를 보며 활짝 웃고 있었습니다.
우리를 위해 형광등을 켜려다 그런 것 아니냐는 표정이었습니다.
두 스님 전생은 “몇 생 전 부터 부부”
대부분의 사람은 남이 자기에게 웃어줄 때 웃습니다.
남이 비웃거나 잘못하면 찡그리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상대야 어떻든 담담함을 잃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그들이 알게 해주었습니다.
난 두 노스님의 얼굴에서 알듯 말듯 흐르는
반가사유상 같은 미소가 떠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웃어야 할 때만 웃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상대가 실수를 했거나 잘못을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나름대로 ‘전생’을 아는데 일가견이 있다는 한 스님은
이 노스님들을 본 뒤 “몇 생 전 부터 부부 사이였다”고 했습니다.
큰스님은 남편, 작은 스님은 부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식의 전생담을 액면 그대로 믿진 않지만,
함께 살아본 나로선 과연 그럴 법 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언젠가는 베란다에 나가보니, 늙어서 힘도 별로 없는
큰스님이 작은 스님의 허리를 주물러주고 있었습니다.
요즘 작은 스님이 허리 통증이 심해진 것을 봐온 그였습니다.
어느 날은 작은 스님이 땐뚝에 넣는 시금치와 양파,
토마토를 사러갔다가 비를 흠뻑 맞고 왔습니다.
그러자 평소엔 부엌에 거의 가지 않던 큰스님이 아무 말 없이 나가
땐뚝을 끓였습니다. 이렇게 둘은 무심하면서도 은근한 데가 있었습니다.
자극의 시대, 질리지도 지루하지도 않을 사람.
지금은 자극의 시대입니다. 진한 조미료로 미각을 자극하지 않는
음식은 찾는 이가 없고, 테크노나 뽕짝의 변화무쌍한 음으로
고막을 자극해야 음악을 들었다고 할 뿐
물이 흐르고 산들바람이 불고 곤충이 우는 것을
천지의 교향악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음료수도 톡 쏘는 콜라엔 ‘바로 이 맛’이라고 하면서,
그냥 물 맛은 제 물 맛인 줄 모릅니다.
어둠 속에 빛나는 폭죽을 환호하고, 일출과 석양빛엔 감격해 하면서도
변함없이 밝게 빛나는 낮 동안 햇빛의 고마움은 잊습니다.
단 맛을 탐닉하면 달지 않은 것을 대할 때마다 불쾌해지고,
자극에 맛을 들이면 자극적이지 않을 때 늘 지루해 침울해지고,
괴로움에 휩싸이는 과보를 받는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아무리 마셔도 질리지 않는 물.
여러 생을 함께 해도 지루하지 않을 사람.
내 동거인들이 그러했습니다.
조현기자
2007. 12. 27 .
한겨레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