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 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3:7-14)
니체는 하나님을 부인하고 육체를 숭배하여 낙타처럼 사막을 혼자 묵묵히 걷듯 홀로서기를
하고 단련이 되어 용을 이기는 사자처럼 싸우고 아기처럼 유연하게 재창조하는 것이라고
떠들다가 그만 자신 속에 있는 배설물을 처리하지 못해 정신병자로 죽어가고 말았습니다.
인간이 아담 안에 있는 죄를 지닌 체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도 배설물만 내 뱉습니다.
어느 교수가 치매환자는 과거의 한으로 인해 자신의 똥을 귀중하게 여긴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 똥으로 벽이나 장판에 그림을 그리는 겁니다. 어느 국회의원이 심한 말을
하는 걸 다른 당의 국회의원이 왜 입으로 배설하느냐고 힐난하는 걸 봅니다. 그 말은
왜 똥 같은 소리를 입으로 뱉느냐 하느냐는 말일 겁니다. 국회의원 그들이야 똥이든
오줌이든 그들에게 유리하다면 뭐든지 하는 이들이 되어 버렸으니 입으로 배설을 해도
그런가 하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이 입으로 배설물을 토해내고 있으면 이건 중환자입니다.
바울은 육체로도 신뢰할 만한 자신이라고 말합니다(빌3:4) 심지어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을 정도이나 그 율법으로 얻은 자신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은 하나님의
의기 때문에 자신에게 유익한 모든 육체의 조건을 그리스도를 위해 해로 여긴다고 합니다.
심지어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에 그를 위해 모든 것을 잃고
배설물(dung)로 여긴다고 말합니다. 우리 성경은 점잔하게 번역했지만 dung은 똥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육체의 선함을 발휘하여 인간답게 살려고 노력하는 철학이나 인문학의
교육이론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익힌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똥 같은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는 공자, 소크라테스, 맹자, 장자 또는 설령 유신주의 철학이라
하지만 키르케고르 등을 들먹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는 다 영적인 치매환자들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육체의 조건이나 그 업적을 지닌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똥과 같을 뿐입니다. 어떤 육체도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으면 그 십자가의
원수가 되고 맙니다(빌3:18) 얼마 전에 어떤 애국운동 목사의 인터뷰를 보다가
바로 꺼 버린 이유는 바로 ‘나 때문에’라는 말을 배설하는 걸 보고 그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말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과 같이 울고 싶습니다(빌3:18)
우리 육신으로는 당연히 애국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걸 자신의 자랑하고는 연관을 짓지
말라는 겁니다. 나야 나하는 건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업적과 부합이 되지 않고
기독교의 사표인 바울의 계산과도 맞지 않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발견이 된
자신과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얻은 하나님의 의를 계산하느라 자신의 과거의 업적을
똥으로 계산(count)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육신의 배가 하나님이 되어 땅의 일을
생각하느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가 되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빌3:18-19)
다만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이 된 자신의 새로운 자아를 계산하고 시민권이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음을 알고(빌3:20)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을 얻기 위해
그 죽으심과 다시 사심에 합하는 고난을 배워 그 죽으심을 본 받으므로 죽은 자 가운데
부활을 얻으려고 끊임없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는 경건의 연습을 반복해야 합니다.
여차하면 우리는 옛 사람으로 돌아가서 똥 이야기를 하고 마는 악성과 악습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겉으로 나타나는 육신의 자랑으로 내 똥 니 똥 하며 다투게 되는 걸 봅니다.
문제는 성경을 좀 안다는 사람들이 더 질깁니다. 자신의 똥이 더 아까워 보이는 겁니다.
그걸 입에 담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배설합니다. 배설물은 뒤로 나오고 앞으로 달려야
비로소 참회록이 되는 겁니다.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이 자신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경계선임을 안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붙잡힌 채로 부르심 따라 푯대를 향해 달려야 합니다.
거기에 우리의 생명의 면류관이 있고 영광의 면류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빌3:21)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주께 영광을!
아멘!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주께 감사!